소설리스트

39화 (39/61)

#39

“너까지 왜 그래?”

“아니, 내가 뭘. ……너 고생하는 거 옆에서 다 봤으니까 그렇지. 잠도 못 자고 비틀거리면서 촬영하고 안무 연습했던 거 다 아는데.”

“…….”

심은찬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딱히 고생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물론 힘들지도 않았다면야 그건 거짓말일 테지만 그게 전혀 싫지 않았다.

“고마워. 잘 먹고 잘 쓸게.”

“그래. 그거 안대는 구하기 어려웠다. 마르고 닳을 때까지 잘 써.”

“아니, 그래도 그건 좀.”

심은찬이 곤란해하는 기색을 보이자 도준서가 혼내는 표정을 지으며 장난을 걸었다.

멤버들이 신경 써 주는 것에 마음 한편이 뭉클해지고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심은찬은 괜스레 입술을 말아 물며 헛기침을 했다.

“근데 우영이는 안 왔어?”

“응? 어. 안 왔는데.”

“그래도 내가 마지막은 아니네.”

도준서가 꼴찌는 면했다며 어깨를 흔들거렸다. 이러고도 정말 사전에 얘기를 안 한 건가 의문이 들었다. 현우영은 언제 오려나, 싶어서 기다렸지만 그는 그날 밤 심은찬이 잠들 때까지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날 <초승달 피는 여름밤 하늘 꽃> 1화의 시청률은 1.3%가 나왔다.

이전 생에서보다 낮은 시청률이었다.

* * *

1화 시청률을 조회해 본 심은찬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전 생과 달라지는 몇몇이 있긴 했었는데 결과가 더 안 좋을 줄은 몰랐다.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으로 확인한 심은찬은 화면을 끄고 내려놓았다. 이대로 시청률이 안 좋다면 어쩌지, 싶은 생각이 떠올랐으나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쳐 냈다.

결과물에 대한 반응은 심은찬이 어쩔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검색해 본다고 해도 뭔가 바뀌는 건 없다. 그러니 그만 찾아보는 게 맞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면 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지금 심은찬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안무 연습이다.

다시 음악을 재생한 심은찬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몸에서 흐른 땀으로 셔츠가 흠뻑 젖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 * *

[제목: 어느 나라의 흔한 방송국 드라마 퀄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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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음. 아무거나 방송 화면 가져온 건데 색감 대박.

내용도 장난 아님. 이제 1화 했는데 2화도 본방 사수할 각

사극이야?

└ㅇㅇ화랑 배경인데 걍 판타지라고 보는 게 좋을 듯

이거 채널 돌리다가 우연히 나온 거 봤는데 그대로 봤어 개존잼

└이거 봤구나 ㄴㄷㄴㄷ 연기자들 미모도 미친 것 같음

세 번째 애는 누구야?

└걔 신인 같은데 모르겠어

└└찾아보니 본업 아이돌이라던데?

└└└검색해보니 ㄹㅇ이네 헐;

[제목: 대한민국 타임머신 발명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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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얼굴만 봐도 한시간 뚝딱;

여주남주들 외모합 맞는 드라마 너무 오랜만임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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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랏음 진짜;

└미친 재방 달린다 어디서 하냐?

└└이거 NVN에서 금토 10시 50분에 방송함

└외모 시너지 쩐다

└└어디서 그림체가 비슷비슷한 애들끼리 모아놓음 제작진 리스펙

└└└감독이 망태기에 하나씩 담았다는게 내 피셜ㅋㅋㅋ

└외모가 알아서 챙겨주는 개연성

└└ㅇㅈ 저 정도 외모면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내가 옷깃 비벼서 인연만든다

└다들 연기도 잘하더라 거슬리는 애가 1도 없음

└└ㄹㅇ임 구멍이 하나도 없음

안본사람없게해주세요@zzziiiiii20000

은찬이 나온다ㅠㅠㅠ은찬아ㅠㅠㅠ분량 좀 늘었으면ㅠㅠㅠ

└이번생막덕질@s2s2s24528 은찬이 뭐 연기했었음? 뭐 저렇게 잘해ㅠㅠ기특해ㅠㅠㅠ

└└안본사람없게해주세요@zzziiiiii20000 예전에 한번 했었는데 제대로 한 건 이번이 처음임요 완전 연기돌재질ㅠㅠㅠㅠ

[제목: 미쳤다 읁챥아 4화에서 찢었다]

ㅎㅐmin이 그렇게 나가고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계획이 다 있었구나ㅠㅠ

└가만있는 애는 왜 건들임?살길 찾아 나간 애 머리채 못잡아 안달이네

└└탈퇴한 너네 새끼나 우쭈쭈해ㅗㅗ써방도 했는데 이걸 찾아내네 미련있는건 어느쪽임?

은쨔니 제발 흥했으면 비솓1도 흥했으면

└망돌 행회 불타는 소리ㅉㅉ

└└먹금

[제목: 연운이가 본업이 돌이라고?]

근데 나 왜 한번도 못 봤던 거임? 저 미모를 어디에 수납하고 다닌거임?

└그러니까 내말이 얘들 벌써 싱글 6집까지 낸 게 안믿김

└└무대 영상 얼마 없긴 한데 올라온거 보면 다 생글생글하고 있음 미쳤음

└└└찾아보고 서먹했잖아 왤케 잘 웃음?

[제목: 연운=/=은찬이란 거 알고 있는데]

직캠 계속 돌려보고 있음 와

이게 입덕임?

돌 파는 거 구오빠 이후로 10년 만인데 뭐부터 봐야하는 거임?

└ㄴㄱㄴ중독성 쩔어 (링크) 이건 봤어? 본업도 너무 잘해서 호감임

└└이 영상 뭐임; 나 처음봐 개대박;;;;

└└은찬이 화면보고 웃을 때 소름돋음 왤케 이뻐 와……..

└└이 영상에서 ㅇㅊ이 진짜 이쁘지 눈웃음칠 때 눈 반달되는 거 봐 도랏음

└└└완전 반달댕임 프롬s무대는 봤어? 거기서는 또 온도차 쩔어

└└└└그거 보고 미친사람됨 나 왜 은찬이 늦게 안거임…….

[제목: 아올대 얘가 걔임?]

미쳤나……. 아올대 보면서 아이돌 재질 미친다고 생각했는데 얘가 연운이라고?

└단독소개샷은 봤냐 그거 죽임

└└ㅇㅇㅇ진짜 아이돌 은찬이랑 연운이랑 동일인이라고 누가 생각하죠

└운동신경도 죽이더라 계주보고 뒤졌음

은찬이다가져@eunchanO2xx

연운이는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음

연운=ㅇㅇ=O2 산소인데 완전 심은찬 그 잡채임 심은찬 없으면 이 무료한 삶을 살 수가 없게 됨ㅇㅇ 그래서 덕계를 팠습니다

찾았다내오빠@dashchannnn2222

잘생기면 다 오빠라고 했습니다오늘부터은챥이팬합니다 잘부탁합니다

쨩이@pxbtone

얼마전에 입덕했는데 애들 앨범을 못구하겠어요; 다들 저와 같은 길을 걷고 계시는지;; 앨범이 씨가 말랐네요ㅠㅠ

이렇게갑니다@threestar

비솓1 이전 앨범 중고가가 10만원;;;도랏나;;;;저거 사지마세요;;;새로오신 분들이 저거 구입하실까봐...와;;양심무엇;;

└홀리@holymoly555 헐 진짜요?와;;;날강도들;;;;너무하네요;;;

└└이렇게갑니다@threestar 미쳤어요 진짜;이제 입덕하시는 분들이 간절한 맘에 저거라도 구입하시면 어떡할지;;;

[제목: 이번 6화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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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큰 대한민국이 오고야 마는 거야? 나만 그런 생각하는 거 아니지?

└여기 나도 있어

└└22222

└└333333

└└4444

└└555555

└└nnnnnn…….

[제목: 케미가 이쪽으로도 좋으면 어떡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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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 죽습니다

└미쳤다 둘이 쳐다보는 각도 봐 연운이 키가 길영이보다 더 커서 완전…….

└예술이다 절경이고 장관이다

└제작진이 노리고 한거임?그렇다면 완전 감사합니다

└└222222

└여주랑 케미 나쁜건 아닌데 저 둘이 붙어 있는 거 보면 왤케 흐뭇함

└야 씨발 거 멀쩡한 배역가지고 왜 이러는 거임;;딴데로 꺼져 좀;;;

└└하지말라고 규칙에 있음? 내가 공홈에서 이러는 것도 아니고 불편하면 너나 꺼져

└└└이상한 애 꼭 있어 (사진) 이거 보면서 진정해

└└└└헉 대박 첨보는 짤이다 댕이뻐 ㄱㅅㄱㅅ

* * *

4월이 코앞이었지만 밤에는 제법 쌀쌀했다.

현우영이 심은찬을 부른 건 연습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서였다.

하도 안무 연습을 했더니 몸에 달린 팔다리가 끝내주게 무거웠다.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길바닥에 누워서 자고 싶은 심정이었다.

“은찬 형.”

“네?”

“받으세요.”

심은찬은 자기 앞으로 내밀어진 걸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뭘 주나 싶어 의아함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이거.”

“뭐 좋아하실지 몰라서요.”

“갑자기 뭐예요? 오늘 무슨 날이에요?”

“이전에 드라마 첫방 끝나고 드리려고 했는데 늦었어요.”

“아.”

심은찬은 그제야 현우영이 내민 선물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러나 그가 내민 걸 바로 받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네모난 상자였다.

손바닥 위에 올라가는 사이즈의 꽤나 작은.

심은찬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받기 전에 한 가지 물어볼게요.”

“예.”

“이거 뭐 귀금속이에요?”

심은찬이 묻는 순간 현우영의 얼굴에 어떻게 알았지, 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고 그걸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심은찬은 입을 다물고 잠시간 그 상자를 바라봤다. 앞서 걸어가는 세 명의 그림자가 가로등 불빛을 받아 길게 늘어졌다. 거리가 좀 있지만 시간이 늦어 사람 통행이 적고 묘하게 고요했다.

심은찬은 현우영 가까이 몸을 내밀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정 반지예요?”

“아뇨. 그건 아니에요.”

현우영도 덩달아 목소리를 작게 냈다.

“음. 그래요?”

“그렇게 비싼 건 아니에요.”

그렇다면 다행인데.

아무리 그래도 자기보다 어린 현우영에게 비싼 선물을 받을 수는 없었다. 양심이 걸렸다. 뭐든 준다고 넙죽 받을 수 없었다.

“형들 것도 다 받으셨다면서요. 제 것도 받아 주세요.”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안 받을 수도 없었다. 심은찬은 현우영에게서 상자를 건네받았다.

“네. 그럼 잘 받을게요. 고마워요. 근데 우영이는 안 챙겨도 괜찮은데. 나이도 어리면서.”

“……스무 살이고 성인인데요.”

심은찬이 하는 말에 현우영이 정정하듯 덧붙였다.

“스무 살이면 아직 핏덩이죠. 얼마 전까지 미성년자였잖아요.”

“저 은찬 형이랑 딱 한 살 차이 나요.”

목소리가 조금 뾰족해졌다. 어린애 취급을 당한다고 발끈하다니 이거야말로 어린애라는 증거였다. 스물다섯만 되어도 가게에서 민증 검사를 한다고 하면 입을 귀에 걸고 다닌다.

“우영이 생일이 12월 중순이었죠? 저는 2월이에요. 빠른으로까지는 안 치더라도 이 정도면 두 살 차이죠.”

먼저 밝히자면 심은찬은 딱히 몇 개월 먼저 태어나고 늦게 태어났다고 존댓말 꼭 하라며 도끼눈을 뜨는 유교 보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부득부득 한 살 차이밖에 안 난다고 하는 현우영을 보고 있자니 그에게 장난을 걸고 싶었다. 그건 솔직히 인정했다.

심은찬의 논리적인 말에 현우영이 순간 할 말을 잊은 듯 입을 딱 다물었다.

“어이구. 화났어요?”

네댓 살의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한 말투로 말하는 것에 현우영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존댓말 하시면서 그러시니까 좀 그러네요.”

물론, 그 말은 심은찬에게는 다 들릴 정도의 크기였다.

“뭐가 그래요?”

“…….”

현우영은 차마 말로는 못 하겠는 모양이었다. 다시 입을 다무는 현우영의 반응에 심은찬은 결국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래서 그랬잖아요. 말 놓지 않아도 친해지는 건 무리 없다고. 이거 열어 볼게요.”

현우영에게서 받은 상자 안에는 작은 귀걸이가 들어 있었다. 어떤 장식도 없는 심플한 링 귀걸이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장식이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쪽이 좋았다.

“오. 좋네요. 고마워요. 잘 쓸게요.”

현우영에게서 바로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거 숙소 가서 바로 갈아 낄게요.”

“예.”

그제야 현우영이 대답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 보이는 건 느낌 탓일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좋으면 되는 거겠지.

태평하게 생각하며 받은 상자를 가방에 넣은 후 팔다리를 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오늘 연습하느라 수고했어요.”

“형도요.”

“그러게요. 너무 열심히 했죠, 제가.”

심은찬이 너스레를 떨자 현우영은 못 말리겠다는 듯 웃었다.

두 사람의 타박타박 걷는 운동화 소리가 거리에 울렸다.

* * *

반응이 심상찮았다.

1화 시청률은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첫 화를 본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드라마를 묻히게 둘 수 없다며 이를 악물고 영업 글을 활발하게 쓰기 시작했다. 그 덕분인지 2화부터 조금씩 오르더니 3화에서는 시청률이 7.3%까지 치솟았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각종 짤이 퍼지면서 소문이 나기 시작해 시청자가 유입되고 있었다. 가장 최근인 6화 시청률은 10%를 넘겼다.

재방송도 시청률이 높았고 누튜브에 올라간 클립들은 조회 수가 100만 뷰가 넘어간 것도 있었다.

이대로라면 7화 시청률이 더 올라갈 걸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출연진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올라가 이무흔 역의 박윤우에 대한 검색어 순위가 1위에 올랐다. 누가 남주인 거냐 추측하는 글들도 많아지고 각 남주마다 팬층이 각기 만들어져 얘가 남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배우들의 외모나 연기도 그렇지만 드라마의 만듦새 또한 두말할 것 없이 좋았다. 탄탄한 스토리와 스피디한 전개로 시청자들이 지루할 새를 없게 만들었다. 색 재현 작업을 통해 색감을 신경 써서 보정해서 아름다운 영상미 또한 돋보였다.

화랑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가상 국가라는 것 또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해외에서도 입소문이 났는지 수출 계약 제안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상하다.”

그러나 정작 그 화려한 반응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심은찬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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