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뭐 하세요?”
심은찬이 입술을 쭉 내밀며 이목구비를 가운데로 집중시켰다. 그 상태로 현우영을 쳐다보자 그가 상체를 조금 뒤로 떨어트리며 되물었다.
“예쁘다면서요?”
“…….”
“와-. 심은찬. 이건 아니지.”
현우영이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채 가만히 바라보자 소파 아래쪽에 앉아 있던 도준서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실소를 터트렸다.
“안 예뻐?”
“아잇. 얼굴 치워. 아, 오지 말라고.”
도준서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심은찬을 질색하며 밀어냈다.
앞에 앉은 류서오가 싸늘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면서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고 조용하라는 제스처를 취해서 곧 입을 꽉 다물긴 했지만 말이다.
자세를 바로 하고도 잠깐 동안 현우영은 심은찬을 계속 쳐다보았다.
예상외로 모두가 다 집중해서 본 덕분에 야식으로 주문한 보쌈은 결국 1화가 다 끝나고 나서야 개봉하게 되었다.
“진짜 재미있었어.”
도준서가 다 식은 보쌈 용기를 열며 말했다.
“스포하면 안 된다, 은찬아.”
김치 뚜껑을 열던 류서오도 한마디 거들었다.
“1화인데 진짜 장난 아니더라.”
“와. 은찬이 연기를 어떻게 그렇게 잘하지?”
문세별과 정민유가 감탄을 내뱉으며 젓가락을 꺼내 들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현우영이 앞접시를 가져다가 하나씩 놓아 주며 말했다.
함께 출연한 드라마를 보는 것과 앞에서 평가를 듣는 건 전혀 별개의 일이었다. 심은찬은 꾸물거리는 제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긴장과는 다른, 멋쩍음이었다.
“은찬이 또 맹꽁이 됐는데.”
류서오의 담담한 목소리에 심은찬은 뺨에 잔뜩 불어넣었던 공기를 뺐다. 그 바람에 입술에서 ‘쁍’ 하는 웃긴 소리가 났다.
“왜. 성에 안 찼어?”
도준서의 질문에 심은찬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멤버들이 음식을 세팅하다 말고 전부 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건 아닌데. 그건 당연히 아니지. 그냥 좀 민망해서 그랬어요.”
양손으로 콧잔등 아래를 감싸며 말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도준서가 평연하게 반응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가 됐다. 보쌈을 한 점씩 집어서 먹으며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했다. 심은찬 역시 멤버들을 따라 고기 한 점을 집어 입안에 넣고 먹기 시작했다. 야들야들 촉촉한 고기의 감칠맛이 기가 막혔다. 매콤한 보쌈김치도 입맛을 돋우었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이전에도 몇 번이나 먹었던 보쌈인데 먹을 때마다 맛있었다.
심은찬은 입안에 든 내용물을 삼킨 후 말했다.
“저 내일은 연습 좀 늦게까지 하려고요.”
“어? 뭐 언제까지 하려고?”
“드라마 끝나는 시간까지는 할까 싶은데요.”
심은찬의 대답에 다들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드라마 본방 사수는 어쩌려고 그러냐는 질문이 담겨 있었다.
“드라마는 이미 다 찍은 거라서 제가 어쩔 수 있는 부분이 없는데 저희 컴백은 이제 앞두고 있는 일이잖아요. 좀 더 완벽하게 하고 싶어서요.”
“하긴 그것도 그렇긴 하다. 나중에 재방하는 거 봐도 되긴 하고. 누튭에 올라오기도 할 거고.”
정민유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야식을 깔끔하게 다 먹은 후 뒷정리까지 마친 멤버들은 소화를 시킨다며 거실에 앉아 보드게임을 하기로 했다. 심은찬과 류서오는 좀 쉬겠다고 하며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코스모스에 들어가 보니 드라마에 대한 감상과 응원 메시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정말로 고마웠다. 비록 한 명 한 명을 찾아가 고맙다는 말은 못 하지만 좀 더 완성된 무대를 보여 주는 것으로 이 마음을 돌려주는 것이 심은찬의 방식이었다. 완벽한 건 아니라도 좀 더 발전한 모습으로 팬들을 만나고 싶었다.
심은찬의 능력치는 어느 하나 특출난 게 없었다. 외모가 A 랭크일 뿐 노래와 퍼포먼스는 B 랭크였다. 그렇다고 작사나 작곡이 특기인 것도 아니었다. 좋게 말하면 여러 면을 두루 하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장기가 없고 특색이 없었다.
그런 심은찬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대 연습뿐이었다.
한 번이라도 더 연습을 해야 했다.
심은찬은 코스모스에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팸팸들 첫방 어땠어요? 저는 멤버들이랑 함께 야식 먹으면서 1화 봤어요. 막상 방송 화면으로 보니까 좀 쑥스럽기도 하네요ㅎㅎ 2화도 기대해 주세요.]
메시지를 전송하고 팬들의 반응을 좀 더 살펴본 심은찬은 핸드폰 화면을 껐다.
정말 이게 꿈이 아닐까.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이전 생에 놓쳤던 드라마도 촬영하게 되고 컴백을 위해 연습도 할 수 있다. 모든 게 다 꿈만 같았다. 악몽이 아니라, 좋은 꿈. 내일을 기대하며 잠에 들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정말로 행복했다.
이런 믿기지 않는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야 했다.
연말 대상을 받아야 한다는 목표는 아직도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지만 그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다 해 볼 생각이었다.
천장을 보면서 누워 있던 심은찬은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확인했다. 정민유였다.
“형, 무슨 일이세요.”
“어. 아직 안 잤네.”
“네. 소화 좀 시키고 자려고요.”
그런 것치고는 누운 상태이긴 했지만 정민유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근데 보드게임 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잠깐 그냥 들어와 봤어.”
심은찬은 정민유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 일부러 방에까지 들어왔는데 정말로 ‘그냥’일 리 없을 테니까. 정민유가 심은찬에게 한 뼘 크기 정도의 무언가를 불쑥 내밀었다.
살펴보니 발포 비타민이었다.
“그거 부모님이 드셔 보시고 좋다고 하시면서 보내 주셨는데 먹어 보니 확실히 효과 있더라고.”
“네, 감사합니다.”
심은찬이 앉은 채로 꾸벅 인사했다.
“은찬이 너 고생했다. 정말.”
이어지는 말에 심은찬은 눈을 깜빡였다.
“그냥 아까 드라마 보는데 너 촬영 스케줄 소화하랴 우리 컴백 일정 소화하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어. 너무 힘들었을 텐데도 별 불만 없이 전부 다 따라 줘서 고맙다.”
정민유는 진지해 보였다.
“고맙긴요. 형들도 다 하셨던 거고 제가 해야 했을 일이잖아요.”
“그래도.”
정민유는 거기까지 말하고 심은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내일도 힘내자. 좀 쉬어.”
“네, 형.”
말을 마친 정민유는 방을 나섰다. 그는 심은찬에게 그걸 말하는 게 목적이었던 듯했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또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이번엔 문세별이었다.
“은찬이 자냐?”
“아직요.”
문세별은 이불 좋아 보인다, 방 벽지 예쁘네 같은 이상한 말을 하더니 무언가를 불쑥 내밀었다. 엉겁결에 받아 들고 보니 최근에 입소문이 나 인기가 많아져 구하기 힘들다던 크림빵이었다.
“이게 뭐예요?”
“너 해.”
“네?”
“먹고 싶다고 했잖아.”
제가요?
되물으려다가 퍼뜩 지난번에 지나가듯이 얘기했던 게 떠올랐다. 뭐길래 그렇게 인기가 많은 건지 궁금하다 정도로 얘기했던 것 같은데 기억해 주고 사다 준 게 고마웠다.
“요 앞에 편의점에 물건 들어올 때 기다렸다가 하나 사 놨어. 먹어.”
“어……. 감사합니다. 내일 같이 먹어요.”
“아니. 그냥 은찬이 너 혼자 먹어.”
“네?”
문세별이 헛기침을 한번 했다.
“요새 살 많이 빠진 것 같더라. 너는 또 스케줄도 많았었으니까 뭐라도 한 개 더 먹어. 알았지?”
심은찬은 빵 봉지를 든 채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문세별은 그런 심은찬의 팔을 툭툭 두드렸다.
“그럼 쉬어. 나간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나갈 때도 바람 같았다.
심은찬은 멍하게 두 사람이 주고 간 것들을 쳐다보았다. 그러고 얼마나 있었을까. 또다시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도준서라면 노크할 리는 없었다.
이번 방문객은 류서오였다.
“은찬이 깨 있었네.”
“어……. 네, 형.”
“……세별이 왔다 갔어?”
“아, 네에.”
류서오는 심은찬의 침대를 흘긋 보더니 “빠른 놈.”하고 중얼거렸다. 그는 심은찬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프로폴리스 스프레이.”
“네에…….”
형들이 다 약속이라도 했나 싶어서 얼떨떨하게 받아 든 심은찬은 뒤늦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류서오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곤 방을 나가려다가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거, 좋아.”
“앗. 네. 잘 쓸게요.”
“……그래, 그럼.”
입술을 한번 씰룩이던 류서오가 고개를 끄덕이곤 그제야 방 밖으로 나갔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툭툭 챙겨 주곤 하는 타입이었는데 설마 오늘 이럴 줄은 몰랐다. 심은찬은 제 앞에 놓여 있는 물건들을 내려다보았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오늘 저녁에 선물들을 건네주었다.
그러고 보면 이전 생에서도 심은찬이 비뚤게 엇나가서 마찰을 빚은 적은 있어도 딱히 문제를 일으킨 멤버들은 없었다. 그들이 준 물건들을 응시하며 가볍게 한숨을 쉬던 심은찬은 문이 열리는 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도준서였다.
평소와 다르게 심은찬의 얼굴을 살피는 기색이었다.
이거 설마…….
빠르게 도준서를 스캔해 보니 수상하게 뒤로 숨긴 손이 눈에 들어왔다.
“왔어? 형들은 이미 오셨다 가셨어.”
“헐.”
도준서는 한발 늦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뭔데, 다들. 왜 그래. 오늘 뭐 이벤트 해 준다고 말 맞춘 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 ……뭐 대충 그런 얘기가 나오긴 했지만 설마 다들 같은 날에 이렇게 주르륵 줄 줄은 몰랐지. 암튼 생각하는 건 다 똑같다.”
도준서가 심은찬에게 내민 물건은 영양제와 안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