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5/61)

#35

“음, 그렇네요. 좀 가까이서 보니까 회색 맞네요.”

“……예.”

심은찬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옆에서 두 사람을 보던 류서오가 입을 열었다.

“은찬이가 배우들 만나더니 미모에 면역이 생긴 모양이야.”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꽤나 대단한 말을 한 류서오는 동의를 구하듯 문세별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문세별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류서오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러네. ……와. 무슨. 우영이 잘생긴 건 알았는데 와. 이 정도로 잘생겼을 줄은. 넋 놓고 봤네.”

“나도. 이야. 장난 아니다. 대박이다.”

도준서 역시 솔직하게 칭찬을 했다.

하긴 그만큼 현우영의 얼굴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역시 축캐긴 축캐다.

안무 맞출 때에도 그렇고 녹음할 때에도 정말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는데 외모까지 이 정도니. 이쯤이면 현우영에게는 세상이 얼마나 이지 모드일까 순수하게 궁금하기까지 했다.

이 정도의 얼굴이면 공중파 음악 방송 한 번 하고 나서 제법 많은 팬들이 유입되지 않을까 기대가 생겼다. 자신의 팬이 아니어도, 멤버 중 누구의 팬이건 심은찬은 솔직히 상관없었다. B the 1의 인지도가 올라가 대상만 받을 수 있다면 그게 누구 팬이건 뭐 어떠랴.

“……그 정도는 아니에요.”

결국 듣던 현우영이 한마디 했다.

눈앞에서 칭찬을 계속하니 아무래도 듣기 민망했던 모양이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해요. 렌즈 색을 좀 맞춰 보느라 시간이 걸렸어요.”

현우영은 주제를 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다.

“다른 색 렌즈랑 번갈아 가면서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

현우영을 계속 보고 있던 심은찬이 한마디 했다.

“그럴까요?”

“안 될 건 없죠. 그럼 저희 이제 촬영하러 가야죠. 민유 형, 매니저 형한테 연락드릴까요?”

“어, 아냐 은찬아. 내가 하지, 뭐.”

정민유가 그렇게 말하곤 핸드폰으로 어딘가 전화를 걸었다.

“형 전화할 동안 사진 좀 찍자. 나중에 올리든가 하게.”

문세별이 말하자 현우영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우영은 핸드폰을 응시하며 포즈를 취했는데 아직 좀 어색한 티가 났다. 잘생긴 사람은 절박함이 없다더니 현우영도 그런 과인가 싶었다.

두 사람을 보던 심은찬은 현우영의 사진을 찍는 문세별을 찍었다.

“어, 뭐야.”

셔터 음에 문세별이 반응했다.

“사진 찍었어요.”

“미리 얘기 좀 해 주지.”

“사진 찍으시는 거 자연스럽게 찍었는데 미리 얘기하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아니 뭐. 이런 자세도 있고 저런 자세도 있고.”

“사진 찍으면서 그런 자세를 하신다고요?”

우스꽝스럽게 포즈를 취하는 문세별을 보며 심은찬이 웃음을 터트렸다.

대충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이동하려는데 현우영이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신경 쓰였다. 뭐 할 말 있냐고 시선으로 묻자 현우영이 입을 열었다.

“피부가 원래 더 밝지 않으셨어요?”

“아.”

왜 저렇게 쳐다보나 했더니.

심은찬은 어깨를 으쓱했다.

“톤 다운 메이크업했어요. 이거 봐요.”

심은찬은 피부가 하얀 편이라 기본적으로 톤 다운 메이크업을 하는 편이었다. 얼굴과 목까지 보이는 곳만 메이크업을 추가로 해서 클렌징을 할 때 좀 번거로웠다. 가끔 피부 트러블이 나서 힘들기도 했기에 피부 태닝을 하려고도 해 봤지만 까매지지는 않고 빨개졌다가 다시 하얗게 돌아오길 반복해 포기했다.

혼자만 톤 다운 메이크업을 하려니 좀 억울하기도 했지만 별수 없었다. 톤 다운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청량 콘셉트일 때도 혼자 희멀건하게 붕붕 떠 보였는데 이번처럼 제복 콘셉트일 때는 필수였다.

심은찬은 한 부분과 안 한 부분의 차이를 보여 주려고 셔츠 깃을 벌려서 옷에 가렸던 부분을 보여 주었다. 현우영이 짧게 “아.”하는 소리를 냈다.

“그렇죠? 좀 다르죠?”

“예. 그렇네요.”

“제대로 좀 보고 대답해 줘요.”

“……봤어요.”

말은 잘한다.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으면서.

뭐라고 지적하려던 찰나였다.

“형들 다 내려가셨어요.”

“어, 정말이네.”

현우영이 말한 대로 이야기하는 사이 다른 멤버들은 먼저 내려가 버렸다. 한 층 아래의 카페에 가 있던 매니저와 연락이 되었는지 주차장으로 오라는 톡이 정민유에게 와 있었다. 빨리 따라가야 할 것 같아서 손짓하며 그를 재촉했다.

현우영과 심은찬이 조금 늦게 멤버들과 합류했고 자연스럽게 맨 뒤에 타게 되었다. 바로 촬영장으로 이동했다.

차에 자리를 잡은 이후에도 심은찬은 현우영을 쳐다보았다. 정말 봐도 봐도 감탄스러운 얼굴이었다. 심은찬은 현우영이 혹시나 또 오해를 할까 봐 얼른 덧붙였다.

“너무 잘생겨서 보고 있는 거예요.”

“……예.”

현우영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앞자리에 앉은 도준서와 류서오는 무슨 이야기 중인지 뒤의 두 사람에게는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머리는 처음 해 봐요?”

“이렇게 밝은색으로는 처음요. 은찬이 형은 탈색 안 하세요?”

“으응. 저는 검은 머리가 제일 잘 어울려요. 실험적으로 다른 걸 할 바에야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렇긴 하죠.”

“그렇죠? 괜한 모험은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아요.”

선선히 수긍해 오는 것에 심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뇨. 제 말은 은찬이 형 검은 머리가 제일 잘 어울린다는 거에 드리는 얘기였어요.”

“어, 아. 그래요?”

“예.”

이렇게 선선하게 그렇다고 얘기해 주네. 생각도 못 한 답을 들어 조금 당황했지만 현우영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음. 그렇죠. 맞아요. 제가 검은 머리가 어울리죠. 기본적인 머리라서. 제 얼굴에 잘 어울리기도 하고. 제가 또 그렇게 은은하게 생긴 편이긴 해서요. 사람 잘 보네요.”

“아-. 은찬아…….”

앞자리에 앉아 있던 도준서가 소리를 내며 돌아봤다.

“앞에서 가만 들으려니까 너무한 거 아니냐. 완전 무슨. 와. 형들 들으셨어요?”

“준서야. 그런 얘기는 못 들은 척해야지.”

류서오가 조곤조곤 도준서를 타일렀다. 심은찬은 앞에 앉은 두 사람이 듣지 않고 있던 게 아니라 안 들리는 척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럴 때 왜 SS급 멘털은 작용을 안 하는 건데.

상태 창을 얼른 확인해 보니 활성화가 꺼지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은찬이 형은 검은 머리가 정말 어울리는데요.”

그만 좀 해.

옆에서 한마디 거들고 나서는 현우영의 목소리에 심은찬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차라리 뭐 하는 거냐며 면박을 주는 게 나았다. 그렇게 되면 차라리 태도를 정하기 쉬운데 편을 드니 되레 민망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심은찬도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었다.

“그렇죠, 우영아. 형들 우영이 좀 봐요. 진실만 말하잖아요.”

“와. 심은찬. 왜 이렇게 얼굴이 두꺼워졌어. 장난 아냐.”

야유하는 도준서와 흘끔 쳐다보더니 과장되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류서오까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은찬이가, 음. 그렇긴 하지.”

앞자리에 앉아 있던 정민유까지 긍정을 하고 나섰다.

망했다.

자신이 판 무덤에 누울 수도 없이 안절부절못하는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아, 민유 형. 민유 형도 그러시면 어떡해요.”

결국 심은찬이 백기를 들고 말았다. 여기서 더 버틸 수가 없었다. 차라리 항복을 하는 편이 상황 수습하는 게 나을 지경이었다. 심은찬의 원망스러운 목소리에 정민유가 당황했다.

“아니, 은찬아. 그렇잖아. 너 정도면 잘생겼지.”

“그만요. 죄송해요. 저 못 버티겠어요.”

심은찬이 아예 얼굴을 가려 버리며 앓는 소리를 내자 다들 참고 있던 웃음을 터트렸다.

한동안 숙소에서 심은찬의 별명이 ‘은은하게 생긴 은찬이’로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목적지는 시 외곽에 있는 600평 규모의 대형 베이커리 카페였다.

평수로만 들었을 때는 막연하게 넓다고만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입이 안 다물어졌다.

전화 통화를 할 때까지만 해도 공사 중이라고 들었는데 그동안 완성을 한 모양인지 외관으로 보기에는 멀끔했다. 이대로 개장을 해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차에서 내린 심은찬은 카페 입구에 서 있는 사람을 발견하곤 그가 김휴인의 사촌이자 이 카페를 빌려준다고 했던 정진욱임을 눈치챘다.

“안녕하세요. 심은찬이라고 합니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실제로 보니 정말 잘생기셨네요.”

전화 통화에서도 느꼈지만 정말 시원시원하고 좋은 느낌이 들었다.

“출입 키는 안쪽에 매니저분께 드렸어요. 추가로 얘기를 했는데 뒤쪽에 있는 별채도 마음껏 사용하셔도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뭘요. 그러면 촬영 잘 하시고요, 제가 일정이 있어서 이쯤에서 인사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인사를 마친 멤버들은 안으로 들어가며 저마다 감탄사를 내뱉었다.

심은찬 역시 다르지 않았다.

베이커리 카페라고 들었는데 무슨 식물원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사진으로 봤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천장이 높고 식물이 가득 있어서 공기도 맑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정진욱이 말했던 별채는 200평 규모로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며진 독특한 느낌의 장소였다. 본관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내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득을 본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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