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화 (34/61)

#34

“저희 이번 콘셉트는 제복 어떨까요?”

“제복?”

“네. 정장은 다른 그룹이랑 겹칠 확률도 높고요.”

확률이 높은 게 아니라 겹친다. 그래서 장렬하게 묻혔다.

“근데 우리 이전 착장이랑 콘셉트가 좀 겹치지 않을까?”

류서오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처음 냈던 싱글부터 계속 청량 콘셉트로 가다가 바로 이전 싱글에서 노선을 바꾸었다. 가장 반응이 좋았던 from.S였다. 노래의 모티브가 셜록 홈스였기 때문에 그런 느낌으로 착장을 하긴 했었다.

“그렇긴 한데요, 그때는 영국 신사에 탐정을 섞은 느낌이라면 이번엔 아예 제복 느낌으로 확 노선을 잡고 가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저희가 마침 곡 주제가 야망, 꿈이니까 경찰이나 뭐 그런 쪽으로 잡아도 될 것 같고요. 사실 그런 건 나중에 의미를 부여해도 되는 거잖아요.”

“아, 그런 제복으로……. 아니, 나는 다른 느낌 제복 생각했었거든.”

문세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것도 좋아 보이는데요. 멤버마다 좀 특색 있는 액세서리 같은 걸 착용해도 좋을 것 같아요.”

가만히 듣고 있던 현우영이 한마디 거들었다. 이쯤 되니 모두의 의견이 대충 제복 쪽으로 기울어졌다. “제복…….” 작게 중얼거리며 뭔가를 적는 코디의 얼굴색이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거무죽죽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향을 돌릴 수는 없었다. 나중에 뭐라도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세한 사항까지 일사천리로 정해졌다. 심은찬은 제복으로 정해진 시점에서 다른 그룹들과 겹치지 않는 쪽으로 정해지도록 두어 마디 할 뿐이었다.

멤버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의견을 내서 콘셉트가 수월하게 정해지자 매니저는 감회가 새로운 표정을 지으며 뿌듯하게 보고 있었다.

“그래. 너희들 하고 싶은 거 다 말해. 내가 최대한 다 맞춰 줄게.”

코디는 여전히 좋지 않은 안색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을 다잡은 듯 열의를 불태웠다.

“그러면 헤어스타일은 어떻게 할까. 이왕 이렇게 된 거 헤어에도 힘줘야지. 우리가 대충 잡아 본 콘셉트는 이런데 이게 제복으로 가게 되면 살짝 부족한 느낌이 나서.”

코디 김은채가 탭을 내려놓으며 보여 주었다. 확실히 어딘가 살짝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정장에 맞추면 괜찮지만 제복에 코디하게 되면 어딘가 조금 어긋난 느낌이랄까.

“희망하는 헤어 컬러만 정해 주면 또 생각해 볼게. 제복이니까 아예 튀는 느낌으로 색을 넣어도 좋고 아니면 어두운 계통으로 강렬하게 가도 좋아.”

확실히 그렇긴 하다. 하지만 머리 색까지 너무 튀면 투 머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었던 그룹들의 머리 색들을 곰곰이 떠올려 봤다. 형광 핑크와 새파란 색, 연두색에 파스텔 핑크색까지. 호화 찬란한 머리 색을 한 그룹들이 많았다. 거기에서 어떤 색으로 염색을 한다고 해도 인상에 남긴 어려울 터였다.

“저는 좀 가라앉는 느낌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은찬이는 그러니? 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을 하긴 했어. 제복에 염색까지 하면 너무 과하게 느껴질 것도 같아서.”

김은채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결국 멤버들은 거의 자연모에 가까운 색으로 헤어를 하는 걸로 결정이 되었다. 단 한 사람, 현우영만 빼고.

현우영의 머리 색은 백금발로 결정됐다.

코디는 그렇게 말했다.

“우영이는 처음 데뷔하는 건데 아무것도 안 하기 아깝잖아. 그렇지?”

하지만 심은찬은 알고 있었다. 이건 사심이다. 딱히 현우영과 뭘 어떻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 저 얼굴에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두기가 아까워서다. 심은찬도 그 심정을 백분 이해했다. 가만히 있으면 무슨 사연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는 현우영에게 뭐든 하고 싶은 코디 본연의 기질이 발동한 거였다. 현우영도 염색에는 딱히 거부감이 없는지 하겠다고 받아들였다.

자기만의 색이 강하거나 고집이 있는 경우 코디가 권해도 거부하는 상황이 종종 있는데 그런 쪽으로 생각해 보자면 다행이었다.

다음날 새벽같이 숍으로 출근한 멤버들 사이에서 심은찬은 홀로 세팅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색 계열로 염색하는 멤버들 사이에서 심은찬 혼자만 자연모 그대로 가기로 결정된 덕분에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아니에요. 은찬 씨가 너무 잘생겨서 메이크업하는 보람이 있었어요. 이번 콘셉트도 너무 잘 어울려요.”

“아하하. 감사합니다.”

대답을 하며 심은찬은 거울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았다.

제복 콘셉트에 맞춰 심은찬의 메이크업은 눈매를 강조하는 강한 느낌으로 결정되었다.

일반 조명 아래에서 보면 메이크업이 너무 진한가 싶었지만 촬영 조명을 받으면 지금 상태에서 절반이 날아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이전 앨범들보다 훨씬 과하게 한 눈 메이크업 덕분에 눈이 평소보다 커 보였다. 머리를 반 정도 뒤로 넘기는 바람에 예전처럼 머리카락으로 눈을 가리거나 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눈에 좀 힘을 주고 싶긴 했는데 이 정도까지 해도 괜찮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심란해진 심은찬이 거울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욜-. 심은찬 장난 아니다.”

심은찬은 거울을 보느라 살짝 기울어져 있던 고개를 바로 했다.

문세별도 스타일링을 마친 듯했다. 애쉬 레드 브라운으로 염색한 머리를 한쪽으로 빗어 넘겨 고정한 헤어스타일링이 문세별과 매우 잘 어울렸다. 메이크업은 심은찬만큼 진하지는 않았지만 문세별이 가진 특유의 날카로운 느낌을 살려 놓았다.

“네에. 형도 진짜 장난 아니에요.”

문세별의 말에 심은찬이 못 말리겠다는 듯 농담으로 반응하자 그가 진지한 얼굴로 바뀌었다.

“땡큐. 나 이런 헤어는 또 처음인데 괜찮아 보이더라. 아니, 근데 장난 아니라는 말 정말로 진짜라니까. 은찬이 이런 콘셉트가 잘 맞네.”

“이 정도까지 진한 메이크업은 처음이라 좀 어색해요.”

“전혀 전혀. 완전 잘 어울려. 내 안목 믿지?”

요란하게 말하는 문세별을 한 번 쳐다보았다. 춤출 때는 엄격하지만 이외의 일에는 허허거리며 넘어가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얘기해 주는데 못 믿겠다는 반응을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네. 믿어요.”

“……영혼이 안 담겨 있는데.”

“진짜예요.”

“두 사람 뭐 재미있어 보인다?”

류서오도 세팅을 마쳤는지 두 사람에게 걸어 나왔다.

옴브레 카키로 염색한 류서오는 스프레이로 고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흔들리는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는데 예민미가 돋보여 그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뒤이어 나오는 도준서는 밝은 갈색, 정민유 역시도 어두운 갈색으로 그리 튀는 색은 아니었다. 하지만 헤어스타일이 정말 찰떡처럼 잘 어울렸다. 메이크업 역시도 절묘하게 잘 어울렸는데 심은찬의 주장으로 새로운 숍으로 바꾼 게 정답이었는지 여태까지 소화했던 어떤 헤메코보다도 더 멋졌다. 도준서는 특히나 컬러 렌즈까지 착용하고 있었는지 약간 이질감이 들었지만 그만큼 더 돋보였다.

이번에 바꾼 숍은 새로 들어온 직원의 실력이 좋아 이후에 아이돌의 단골 숍으로 거론될 곳이었다. 지금 시점에는 입소문이 나기 전이어서 그런지 예약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명성이 자자했던 게 빈 소문은 아니었던 건지 확실히 같은 메이크업을 하는데도 각자의 장점을 살려 눈에 확 띄게 해 주었다.

“우영이는 제일 늦네.”

“시작도 제일 먼저 하지 않았어?”

“그러게.”

“그랬어요?”

“어. 근데 아까 보니까 거의 다 끝나 가는 것처럼 보이긴 했는데……. 아직인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안쪽에서 작은 소란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살펴보니 현우영이 준비를 다 마친 건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다 되셨어요. 너무 잘 어울리세요.”

현우영보다 먼저 나온 직원은 뿌듯한 미소를 숨길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직원 뒤를 따라 멤버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 나오는 현우영을 보며 모두 감탄했다. 그중에는 물론 심은찬도 끼어 있었다. 숍 직원들도 너무 잘됐다고 한마디씩 하는데 영혼이 듬뿍 담겨 있었다.

심은찬은 현우영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쳐다보았다.

정말, 와. 이건. 얼굴이 다했다.

한국인, 아니 동양인이 이렇게 백금발이 잘 어울리기도 힘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메이크업까지 마친 현우영은, 낯간지럽지만 남신이라는 단어 그 자체였다.

“형들 다 끝내셨어요?”

“……오와…….”

“대박.”

“허얼.”

“…….”

“와.”

멤버들 누구 하나 빠짐없이 현우영을 쳐다보았다.

심지어 문세별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지 찰칵하는 소리가 났다.

메인 의상을 입고 있는 상태였는데 정말 무시무시했다.

이게, 이렇게까지 잘 어울릴 일인가.

현우영은 허리가 높은 곳에 있고 팔다리가 워낙에 길쭉길쭉해 움직이는 것도 시원시원해 보였다. 그런 몸에 딱 핏 되는 제복까지 입혀 놓으니 그야말로 움직이는 화보 같았다. 거기에 더해 머리까지 백금발로 쫙 염색한 데다가 무슨 마법을 부린 건지 푸석해 보이던 머리카락에 엔젤링이 떠 있었다. 찰랑찰랑한 머리카락은 절묘하게 컷이 되어 복슬복슬했고 움직일 때마다 보드랍게 물결쳤다.

“렌즈 꼈어요?”

그 중 심은찬이 제일 먼저 말문을 열어 질문했다.

“예. 회색으로요.”

“회색? 파란색 아니고요? ”

현우영이 다가오며 대답하는 걸 들은 심은찬은 눈매를 찡그리며 그의 눈을 좀 더 지그시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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