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61)

#32

“형.”

-응, 은찬아.

“지금 촬영 들어가야 하는 거 아냐?”

심은찬은 우선 김휴인이 전화를 할 수 있는 상태인지를 먼저 확인했다.

심은찬의 질문에 김휴인이 웃었다.

-그랬으면 전화를 안 받았을 거야. 은찬아, 보고 싶어. 너 없으니까 촬영장이 너무 허전하다.

갑작스럽게 치고 들어오는 멘트에 심은찬이 뭐라 답할지 잠깐 멈칫했다. 김휴인이 워낙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다 보니 이런 일이 심심찮게 일어났다.

김휴인 주변에서 또 시작이라며 야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긴 촬영장에서도 그는 심은찬은 유난히 챙기기도 했다. 촬영 스태프들조차도 김휴인에게 숨겨둔 형제가 아니냐며 농담을 건넸을 정도였다.

시끌벅적한 걸 들어 보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모양이었다. 준비가 늦어져서 잠깐 쉬고 있는지도 몰랐다. B the 1과 함께 있을 때와는 또 달랐던 그 느낌이 순간 그리워졌다.

다른 사람들의 안부를 묻자 김휴인은 직접 통화해 보라며 한 명씩 휴대폰을 대 주었다. 예정에도 없이 주·조연급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게 해 준 김휴인이 다시 핸드폰을 받은 듯 “여보세요. 다시 나야, 은찬아-”하는 말에 심은찬은 맥없이 웃었다.

“막촬 날이 언제야? 나도 그날 가야지.”

-아. 그거 확인해 보고 연락 줄게. 일정이 좀 변경될 것 같아.

“정말? 일정 정해지면 꼭 연락해 줘야 돼.”

다짐을 받으려는 심은찬의 말을 듣던 김휴인이 웃었다.

-알았어. 쉬는 사람한테 괜히 연락한 거 아닌가 했는데 다행이네. 이제 좀 쉬어. 그동안 고생했어.

“에이, 그건 아니지. 형 연락이면 언제나 환영이야. 형 이제 촬영 들어가야 하는 거 아냐?”

두어 마디 주거니 받거니 한 심은찬은 김휴인과의 통화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컴백 준비를 해야 했다.

몸은 지치고 피곤했지만 쉴 틈은 없었다. 쉴 틈이 없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적어도 할 일 없이 천장의 벽지 무늬를 세며 누워 있던 때보다는 몇 배는 나았다. 충실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윽.”

그래도 근육통에는 별수 없이 신음이 흘러나왔다. 팔을 주무르며 방 밖으로 나가려던 심은찬은 마침 안으로 들어오려면 도준서와 마주쳤다.

“어떻게 딱 일어났네. 깨우려고 들어왔는데. 밥 먹고 연습하러 가자.”

아침 식사를 마친 멤버들은 바로 연습실로 향했다.

한동안 단체 연습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던 심은찬을 위해 멤버들이 먼저 안무를 해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모두 딱딱 각이 잘 맞았다. 특히나 뒤늦게 합류한 현우영은 놀라울 정도로 안무 소화력이 뛰어났다.

똑같이 팔을 뻗고 스텝을 밟는데도 뭔가가 달랐다. 심은찬은 내심 감탄하며 현우영을 쳐다보던 시선을 문세별 쪽으로 돌렸다. 확실히 팀 내에서 춤을 제일 잘 추는 문세별과 비슷한 정도였긴 했지만 두 사람의 느낌이 달랐다. 문세별이 파워 넘치고 절도 있는 느낌이라면 현우영은 힘을 빼고 리듬을 탔다.

어느 쪽이나 매우 잘 춘다는 점만은 같았다.

완곡으로 춤을 춘 문세별이 다가올 때까지 심은찬은 홀린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문세별이 심은찬의 어깨를 쥐었다.

“그럼 이제 춤 한번 맞춰 볼까, 은찬아?”

빙그레 웃는 문세별의 미소가 곧이곧대로 안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니었다.

* * *

“은찬이 오늘 수고했어.”

문세별이 심은찬의 어깨를 두드렸다.

연습 시간 도중 지적했던 일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형도 수고했어요.”

심은찬이 웃으며 말하며 문세별도 웃으며 심은찬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됐다고 넘어가지 않고 그때마다 지적을 하는 일도 만만찮은 노력이 필요했다. 연습실에서 나와서 숙소로 가는 길에 소속사로 가려는 심은찬을 뒤에서 정민유가 불렀다.

“저 오늘 페이스 앱 한다고 말씀드리려고요.”

“알겠어. 말하고 와. 기다릴게.”

“아녜요. 피곤하실 텐데 먼저 가고 계세요. 금방 따라갈게요.”

멤버들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조심히 오라며 걸음을 옮겼다.

심은찬은 소속사로 가서 저녁을 먹은 이후에 페이스 앱을 할 거라고 하며 회사용 탭을 받아 들었다.

페이스 앱을 할 때 개인 핸드폰으로 하지 말고 반드시 회사 기기로 해야 한다는 얘기를 데뷔 초기부터 들었었다. 유명 그룹이야 해킹을 걱정해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B the 1은 그럴 걱정이 없는데 왜 그런 주의를 주었을까 궁금하긴 했지만 그렇게 불편한 것도 아니니 얌전히 따랐다.

매니저는 탭을 건넨 후에 심은찬에게 말을 걸었다.

“근데 뭘로 페이스 앱 하려고?”

“그냥 근황 보고 같은 거요. 드라마도 광고 시작한 것 같고요.”

“음, 그래. 그렇지. 은찬이가 알아서 잘하겠지.”

매니저가 뭘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해민 탈퇴 때문이겠지. 신청을 받아 참가할 사람을 뽑았던 아이돌 올림픽 대회 녹화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아무나 채팅할 수 있는 페이스 앱이니 그 부분이 걱정스러운 거겠지. 그러나 어차피 한 번은 지나가야 할 일이다. 언제까지고 페이스 앱을 안 할 수도 없다.

“저희 팸팸들 착하잖아요. 걱정 크게 안 하셔도 괜찮을 거예요.”

태평하게 대답하는 심은찬을 보던 매니저가 결국 웃었다.

숙소로 돌아가니 샤워 대기 인원이 가득했다.

얼른 씻고 싶었지만 늦은 건 심은찬 개인 사정이니 얌전히 차례를 기다리기로 했다.

자꾸 눈이 감기긴 했지만 씻지 않고 잘 수는 없었기에 핸드폰을 꺼냈다. 누튜브를 켜서 고양이를 키우는 누튜버의 동영상을 틀었다. 깜장이가 새끼를 낳았다는 게 새로운 소식인가 보다. 털도 제대로 나지 않은 새끼 고양이의 모습을 한참 보던 심은찬은 묵묵히 먹기만 하는 걸로 유명한 먹방으로 채널을 옮겼다.

“은찬이 형 씻으세요.”

그즈음 현우영이 방으로 들어와 심은찬의 차례가 되었음을 알렸다.

심은찬이 알겠다고 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현우영이 물었다.

“뭐 보고 계셨어요?”

“그냥 이것저것요.”

“지금 보신 건요?”

“지금요? 먹방이요.”

현우영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왜 저러나 싶어서 쳐다보니 그가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듯한 표정 그대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잘 안 드시면서 먹방은 보시는구나 싶어서요.”

“보는 거랑 먹는 거랑은 또 다르죠.”

“…….”

현우영은 여전히 아리송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굳이 현우영을 이해시켜야 할 이유는 없었기에 심은찬은 씻으러 욕실로 직행했다.

땀이 난 몸을 씻고 머리를 감고 나오니 그나마 좀 살 것 같았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나온 심은찬은 저녁을 먹는 멤버들 사이에 껴서 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왔다.

“준서야. 나 페이스 앱 할 건데.”

“오늘? 난 오늘은 패스. 나 나가 있을까?”

“나는 상관없는데 아무래도 불편할 테니까. 그래, 그러면.”

“오케이.”

심은찬이 거실로 나가면 다른 멤버들 전체가 불편해지기에 도준서가 나가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심은찬은 페이스 앱을 하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이라는 감상에 잠시 젖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앱을 실행했다.

거울을 보면서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제목을 뭐라고 지을까 잠시 고민하던 심은찬은 [오랜만이죠? 은찬이에요]라고 짓고 방을 개설했다.

알림이 갔는지 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죠. 은찬입니다.”

심은찬이 화면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대박

누구야?

누구?

누구야

은찬이다

찬찬!

페앱 오랜만ㅠㅠㅠㅠ

은찬이다! 오랜만이야!♥♥♥♥

은찬아ㅠㅠㅠㅠㅠㅠ

ㅠㅠㅠㅠㅠ

채팅 창에는 오랜만이라 반가워하는 팬들이 다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대화창 사이사이 심은찬의 등장을 고깝게 보는 팬도 역시 있었다. ‘막내 보내고 똥줄안타냐ㅋㅋㅋ’하는 채팅을 반복적으로 보내고 있었다. 읽을 거라는 걸 알고 저렇게 반복적으로 채팅을 치는 거다.

예전에는 그런 채팅 하나하나가 신경 쓰여서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었다. 작은 가시가 되어 피부에 박히는 느낌이 들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그렇구나.’하고 넘길 수 있었다. 멘털이 SS급이기 때문일까. 정말 신기한 기분이었다.

그만하라는 팬도 있었고 아예 무시하고 자기 할 말만 치는 팬도 있었기에 채팅 창이 빠르게 올라갔다. 심은찬은 태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 팸팸 잘 지내셨죠? 저는 음, 지금 아마 편성 예고가 나갔다고 알고 있는데요. 감사하게도 좋은 기회가 되어서 ‘초승달 피는 여름밤 하늘 꽃’에 연운 역으로 참가하게 되어 촬영했습니다.”

채팅 창에 ‘헐’ ‘대박’하는 말로 도배가 되었다. 심은찬이 연기에 도전할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당연했다. 그동안 심은찬이 그런 기미를 보이지 않았었으니 말이다.

“굉장히 좋은 분들과 함께 연기를 하게 되어서 정말 영광이었어요. 정말 많이 배웠어요. 음……. 네? 연기돌 되는 거 미리 축하한다고요? 아하하. 감사합니다. 그러면 정말 좋겠어요. 진짜 열심히 했습니다. 꼭 한번 봐 주세요.”

심은찬은 그 뒤로는 소소하게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정도 페이스 앱을 시작하고 나자 방송 시청 인원수는 대략 천 명 조금 안 됐고 하트 수는 3천 정도였다. 다른 아이돌에 비하면 적은 숫자이긴 했지만 심은찬에겐 이전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인원이었다. 아무래도 이해민 탈퇴 이후 처음 하는 페이스 앱이라 더 그럴 수도 있었다.

“다른 멤버들요? 지금 연습하고 와서 각자 쉬고 있어요. 저는 제 방에 있습니다. 방에서 뭐 하냐고요? 하하. 팸팸들 만나고 있죠. 네. 다들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어요. 팸팸들도 식사는 꼭 챙겨 드셔야 해요.”

심은찬이 상대를 하지 않으니 욕하고 비꼬던 채팅을 올리던 사람들은 중간에 그만두거나 나간 듯했지만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반복 채팅을 올리는 사람 역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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