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61)

#26

심은찬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가 이내 자리를 살짝 비켜 주어 최원민이 가운데로 올 수 있게 했다.

“팸팸 님들 그리고 우리 맥시멈들. 안녕하세요. 맥스어핀 원민입니다.”

최원민은 미리 알아보고 온 건지 B the 1의 팬들 애칭을 불러 주었다.

“B the 1 후배님들 아올대 경기하시느라 수고하셨어요.”

“아, 선배님들도 고생하셨습니다.”

“가요 프로그램에서도 이 정도 규모로 모이는 일은 정말 드물다고 하죠? 아올대는 아이돌 행사 중에서도 정말 큰 행사인데요, 팬 여러분들을 위해서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재미있게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최원민은 정말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이 무난한 멘트를 했다. 쉬워 보이지만 무난하기란 생각보다도 어려운 일이다. 역시 그동안 연예계에서 활동한 시간이 허튼 게 아니었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아 이게 이제, 저희가 아직 20대 후반이긴 한데요. 몸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힘들어요.”

최원민이 표정을 늘어뜨리며 과장된 몸짓으로 지친 제스처를 취했다. 너무 넉살 좋게 말을 해서 보고 있던 멤버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선배님. 혹시 팬분들께 말씀해 주실 오늘의 TMI 있을까요?”

문세별의 질문에 최원민이 “음…….” 하고 잠깐 고민하는 듯하다가 곧 입을 열었다.

“제가 원래 아침에 아아를 먹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딸기 프라푸치노를 먹었습니다.”

문세별과 심은찬은 작게 박수를 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최원민이 심은찬의 어깨를 살짝 안듯이 하며 입을 열었다.

“B the 1 멤버분들도 오늘의 TMI 말씀해 주세요.”

“저부터 말씀드릴게요.”

심은찬이 손을 들고 먼저 나섰다.

“저는 오늘 멤버들이 저만 남기고 숍에 올라갔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문세별이 펄쩍 뛰었고 류서오도 눈을 가늘게 떴다.

“야, 그건 아니지. 이건 좀 표현이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팩트가 그렇죠. 아하하. 농담이고요. 근데 사실은 저희 스태프분이랑 함께 차에 있었어요. 요새 제가 수면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좀 더 자게 배려해 준 거예요. 멤버들 덕분에 푹 잤습니다.”

문세별이 그런 심은찬을 지그시 쳐다보다가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 TMI는 오늘 아침에 머리 감을 때 새 샴푸를 썼습니다. 원래 쓰던 거에서 한번 바꿔 봤는데 향이 아주 좋았어요.”

“제 순서죠? 저는 오늘 점심으로 저희 리더 정민유 형이 만든 삼겹살 김밥을 먹었습니다. 민유 형 어머님께서 들깨를 듬뿍 넣어서 만드신 쌈장이 들어 있었거든요. 정말 예술이었어요.”

문세별은 말하다가 생각난 듯 아련하게 허공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맛있긴 했다. 심은찬도 공감했다.

“와. 직접요?”

“예. 민유 형이 저희 숙소 요리 담당이라서요.”

“와아. 직접 만든 삼겹살 김밥. ……맛있었겠어요. 다 드셨죠?”

최원민이 예의상 그냥 하는 말인가 했는데 눈빛이, 진심이었다.

“저희가 아쉽게 맥스어핀 선배님들과 활동 기간이 겹친 적이 없는데 가요 프로그램에 같이 출연하게 되면 한번 대접하겠습니다.”

“정말요? 기대할게요.”

먹을 거에 진심이구나.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졌다.

이 정도면 대충 분량을 뽑았다고 생각했는지 최원민이 카메라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저희 맥스어핀도 많이 사랑해 주시고 우리 B the 1 후배님들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

마무리 멘트를 들은 심은찬은 한 톤 높은 목소리로 “안녕.”하고 인사를 하는 것으로 영상 촬영을 마무리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저희 팸팸들이나 맥시멈분들도 무척 좋아하실 거예요.”

문세별의 인사에 최원민이 웃었다. 그럼 남은 녹화도 힘내라는 말과 나중에 또 봤으면 좋겠다는 덕담을 나누었다. 이제 맥스어핀의 자리로 돌아가려나 싶었는데 최원민이 심은찬에게로 다가왔다.

“폰 번호가 어떻게 돼요?”

“네, 선배님. 제 폰 번호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심은찬은 어리둥절했지만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바로 핸드폰을 꺼냈다.

맥스어핀은 이후로도 몇 년 동안이나 건재한 그룹이고 심은찬이 알고 있는 한 별다른 잡음도 없었으니 알아 두면 좋은 인맥이었다. 심은찬으로서는 감사하면 감사했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중에 식사 한번 해요. 진짜로.”

“네. 알겠습니다.”

“번호 교환 기념으로 인증 샷 한번 찍죠. 이거 제 개인 계정에 업로드해도 괜찮아요?”

이것 역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좋다고 하는 심은찬과 함께 최원민은 자신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최원민이 찍은 사진도 그렇고 지금 촬영한 영상을 업로드하면 맥스어핀의 인지도 자체만으로도 화제성을 모으기에 충분하다.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자진해서 같이 촬영해 주다니. 생각도 못 한 행운이었다.

* * *

드디어 녹화 막바지에 다다라 400m 릴레이 경기 순서가 되었다.

사전에 1등 특전으로 받았던 단독 촬영권을 사용한 B the 1은 400m 릴레이 경기의 역사와 룰 설명을 하는 장면을 촬영할 수 있었다. 다행히 암기에 자신 있던 심은찬과 문세별의 활약으로 투 테이크 만에 종료할 수 있었다.

400m 릴레이 경기의 계주는 정민유, 류서오, 도준서, 심은찬 순서였다.

류서오의 요청으로 심은찬이 가장 마지막 주자로 뛰게 되었다. 각 팀의 첫 번째 주자가 출발선상에 섰다. 응원석에서 각자 팀을 응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팬석에서 공통으로 외치는 말 중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은 바로 이거였다.

‘열심히 안 해도 되니까 다치지만 마.’

팬들의 공통적인 마음이 아닐까.

예전에는 잘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 응원 문구가 얼마나 사랑스럽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어느 정도로 사람을 좋아해야 이런 응원을 할 수 있는 걸까.

괜히 코가 시큰해지는 것 같아서 심은찬은 고개를 숙이고 눈을 깜빡였다.

“차렷!”

장내를 울리는 소리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정민유를 보았다. 따악, 하는 총소리가 들리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정민유는 출발도 빨리했고 제일 먼저 치고 나갔지만 베리튼즈 멤버가 워낙 빨랐기에 아슬아슬하게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다음 차례인 류서오가 출발선에 서서 정민유의 바통 받을 준비를 했다. 손바닥에 바통이 닿은 순간 류서오가 힘껏 움켜쥐고 내달렸다. 류서오가 이를 악물고 달렸지만 코너에서 그만 주룩 미끄러지고 말았다.

“……!”

팬들의 비명 소리와 탄식이 들렸다.

시트지로 레인을 만들 때부터 조마조마했는데. ……아니, 근데 운 스탯 올려 준다며? 이게 운이 좋아진 거냐.

원망스러운 마음에 심은찬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류서오는 곧장 다시 일어나 달렸지만 뒤에서 따라오던 베리튼즈와 에이 메이츠에게 추월을 허용하고 말았다. 결국 3등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바통 터치가 이루어졌다. 류서오가 숨을 헐떡이면서 아랫입술을 깨물며 이동했다. 심은찬은 대기열로 들어오는 그에게 다가갔다.

“형, 괜찮아요?”

“그냥 미끄러진 거라 아픈 데 없어.”

다친 곳이 없다니 천만다행이었다.

그 와중 도준서가 힘껏 달려 2등과의 격차를 줄이는 게 보였다.

류서오는 출발선에 서기 위해 이동하는 심은찬의 팔을 툭 건드렸다.

“미안하다.”

“……아뇨-.”

류서오는 심은찬이 뭐라고 하기 전 자리를 떠났다. 바로 계주 준비를 해야 했기에 류서오를 따라갈 수 없던 심은찬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응원석에 앉아 있는 문세별의 표정도 안타까움으로 물들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보이는 것 같았다. 문세별도 류서오도, 그리고 도준서 역시 자책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 상태로 경기를 끝내게 된다면 아마 더욱 미안하게 생각하겠지. 자기 실수로 자기만 잘못되는 건 상관이 없는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쳤다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이 얼마나 힘든지 심은찬은 잘 알고 있다.

“후우…….”

이제는 심은찬의 몫이었다. 어떻게든 잘 해내야 했다.

심은찬은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쳤다.

커브 구간에 들어서는 도준서를 바라보았다.

제발 넘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는데 다행히도 무사히 커브를 돌았다. 1위로 들어온 에이 메이츠가 같은 팀 멤버에게 바통을 넘기려 했으나 실수를 했는지 바통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 광경을 계속 볼 틈은 없었다. 그 사이 2위인 베리튼즈 멤버와 도준서가 차례로 들어왔다.

심은찬의 머릿속에 [일시적으로 운 스탯 상승을 적용합니다.]라는 시스템 창의 문구가 다시 한번 떠올랐다. 도준서에게서 바통을 넘겨받은 심은찬이 어금니를 사리물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에이 메이츠의 멤버가 떨어진 바통을 주워 들고 달린 것도 그때였다.

베리튼즈와 심은찬, 그리고 에이 메이츠가 차례로 레인을 달렸다.

응원석에서는 각자 팀명을 연호하는 소리가 들렸고 중계석에서 흥분하는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는 게 어렴풋이 들렸다.

이상했다. 60m 달리기 개인전을 했을 때보다 몸이 더 가벼웠다. 에이 메이츠와 심은찬이 비슷하게 달리던 것에서 조금씩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심은찬이 앞으로 조금씩 튀어나왔다.

괜찮아. 난 할 수 있어.

그런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며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렸다.

등이 보이던 베리튼즈와 조금씩 가까워졌다.

“꺄아악! 심은찬!!”

“서우주! 힘내!”

마침내 심은찬이 1위로 올라섰다.

옆 레인을 볼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마지막 커브를 돌았다. 결승선의 흰 띠가 보였다. 조금만 더 가면 됐다. 마라톤은 가슴부터 들어가야 한다. 심은찬은 60m 달리기 때 후회했던 일을 떠올리며 최후의 힘을 쥐어짜 결승점을 통과했다.

삐익-!

헐떡거리며 천천히 달리기를 멈춘 심은찬의 시야에 현우영이 걸렸다.

또 레고처럼 서 있네.

웃음이 터졌다. 너무 멀어서 확신은 서지 않았지만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제대로 확인하기 전 심은찬은 자신에게 달려오는 멤버들을 보며 웃었다.

400m 릴레이 금메달은 B the 1이었다.

* * *

오늘 아올대 갔다 온 맥시멈 있냐? 후기 좀

└나 다녀옴. 맥스오빠들 이번 아올대에서도 완전 날아다님. 근데 무슨 돌 자콘을 원민이랑 같이 찍더라

└└?? 원민이가? 구라야?

└└└(사진)(사진)

└└└└=00???? 진짜라고?

└└└이거 나도 봄. 비더원인가 하는 애들이던데

└└└└이름도 첨 들어보는 듣보돌인데;; 원민이한테 업혀가려고 하나; 머임;

└└└└└원민이가 먼저 간 거임. 비더원이랑 언제부터 친했던 건지 모르겠다 이전 영상 뒤져봐도 뭐 없던데

원민이가 다른 돌 자콘 찍는데 참가했다는 거 진짜임? 나 진지함

└ㅇㅇ진짜임 심지어 원민이가 먼저 감

└└낯가림 심한 우리 아기토끼가ㅠㅠㅅㅂ 감도유ㅠㅠㅠ누구냐 그 돌이

└└└비더? 인가 그럴껄

└└└└비더원이래

비솓1팬들있냐 오늘 아올대 대박 마지막 릴레이 남자부 완전 대박이었음

└ 어땠길래 그럼.

└└말로 하면 감동이 떨어짐. 이건 꼭 본방사수 해야 함 오늘 갔다가 릴레이 보고 입덕함

└└└녹화 갔다온 애 친구인데 어글ㄴㄴ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함

└└└└2222 운이 좋아서 그런거지 별로 모르겠던데

└└└└베리튼즈 팬이면 그럴만함ㅋ

남돌 릴레이 우승팀 누군데?

└비더원이라고 난 첨 들어 봄

└└그런 돌도 있었냐

└└└망돌인가본데…… 첨으로 공중파 타고 좋았겠네

└└└└공중파에도 나온 애들임; 니가 못봤다고 안나온거 아니야

└└└└└뭔데 이렇게 예민해ㅋㅋㅋ 망돌 팬임?ㅋ

└└어차피 망돌이라 방송 분량도 잘 안나올 것 같음ㅋㅋ

└└└하긴 나라도 인기팀 분량을 챙겨줌ㅇㅇ

비더원 걔들 팬석 20팀이라는 거 ㄹㅇ?

돌은 최소가 30팀 아니었음?; 20팀 듣도 보도 못함;;

└망돌의 기적이네

└응 아니야 7석 받은 곳도 있음

└└7석? 뭔뎈ㅋㅋㅋㅋㅋ7석이면 ㄹㅇ듣보아님? 넌 뭔데 그런 걸 알고 있냐

└└└내가 7석 받은 애 팬이다

└└└└아……..미안

└└└└└ㅅㅂ 사과하지마

└이 악물고 연습했나 보던데. 노래자랑 1등해서 특전도 얻어감

근데 이번 아올대 키 큰 남자 스태프 본 사람? 존잘남이던데

└머임ㅋㅋㅋ거길 가서 눈 돌릴 정신이 있었냐?ㅋㅋㅋ

└(사진)

└└헐; 뭐임; 누구임; 연생인가? 어디 연생이지?

└또 다른 사진 없냐 일반인은 절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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