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61)

#24

운 스탯이 상승한 지금이라면, 어떻게 잘하면 100점도 가능하지 않을까. 심은찬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희 민유 형 백업해요.”

“나가자.”

심은찬의 급작스러운 제안에 두 번 생각 않고 다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다행스럽게도 행사를 돌 때 커버 댄스를 했던 곡이었기에 안무를 외우고 있었다.

“아, 뭔가요. 리더를 응원 나온 건가요……!”

“좋네요. 저런 적극적인 자세!”

MC가 밝고 큰 소리로 호응했다.

정민유는 우르르 몰려나와 자신의 뒤에 선 멤버들에게 놀라긴 했지만 고마운 듯 눈을 휘며 웃었다.

-함께 서 있는 곳에서 우리 단둘이

노래를 시작한 정민유의 목소리가 힘차게 울렸다. 랭크 업 된 영향인지 알고 있던 그의 목소리보다 크고 울림이 좋았다. 바이브레이션과 호소력 역시 발군이었다. 댄스곡이었기에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돋보이기도 했다.

뜬금없는 락 발라드 선곡으로 죽어 가던 분위기에 심폐 소생기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올라가는 고음은 평소의 정민유가 처리하기 힘들어하던 영역이었다. 정민유의 눈짓에 도준서가 정민유의 바로 옆에 섰고 그도 마이크를 비스듬하게 중간으로 두었다. 메인 보컬인 도준서와 함께 부르려는 생각인 듯했다.

-지나왔던 날들은 추억으로 남겨 두고

음이 점점 고조되었다. 도준서와 정민유가 서로를 흘긋흘긋 쳐다보며 음을 조금씩 맞춰 가고 있었다.

-beat it! 잊었던 꿈 우리 함께 그 길을 걸어 봐!

두 사람의 깔끔하게 올라가는 고음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정민유도 도준서도 놀란 기색이었지만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도준서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정민유의 목소리는 맑고 청아해서 정반대의 매력을 뽐냈다.

고음을 무리 없이 소화하는 정민유의 목소리는 정말 듣기 좋았다. 이게 바로 A+가창력이구나.

정민유의 뒷모습을 보면서 춤을 추는 심은찬은 솟아오르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그때 큰 환호성 소리가 들렸다. 맥스어핀의 최원민이었다. 최원민이 호응하자 맥스어핀 관객석 쪽에서도 덩달아 환호성이 나왔다.

심은찬과 눈이 마주친 최원민이 양손으로 엄지를 치켜세우며 독려했다.

노래가 끝나고 점수가 나올 차례였다.

-100점! 굉장해요!

작은 화면에 떠오른 점수를 놀란 얼굴로 쳐다보았다.

100점이었다. 정민유도 이런 점수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크게 눈을 뜬 채로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워낙 반응이 좋았는지 멀찍이서 잡던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왔다.

이건 단독 샷 각이다.

멤버들과 몰려가 어깨동무를 하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노래방 기계 100점으로 많이 오버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방송에 나오려면 어느 정도의 과장은 필요한 법이었다. 다른 아이돌들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는지 환호와 함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방송에 쓸 수 있을 정도로 돌던 B the 1은 자리에 멈춰 서서 다 같이 박수를 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특전으로 온 것은 단독 촬영권 1회였다.

녹화에 참가한 아이돌 팀 수를 생각하면 정말 파격적이었다.

게다가 현장에서의 분위기도 좋았다. 워낙 우리 돌이 최고야 기조가 강한 팬들이었지만 듣는 귀가 솔직한 사람도 몇 있기 마련이었다. 정민유의 노래를 직접 들으며 술렁거리는 걸 심은찬은 분명히 보았다.

“형! 대박! 아올대 기받았어? 장난 아니더라.”

“모르겠어. 팸팸들 기를 받았나?”

기쁨을 숨기지 않는 문세별과 달리 류서오는 아무 말 없이 정민유를 보며 엄지를 들어 올렸다. 멤버들이라면 확연히 느꼈을 거다. 정민유의 가창력이 확실히 좋아진 걸. 그리고 방청을 온 다른 팬들 역시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있었냐고 여기겠지. 누군지 알아보면서 입덕을 한다면 좋을 거고 아니어도 이목을 잡아 끄는 데에는 성공했으니 여한이 없었다.

장본인인 정민유 역시도 운이 좋았다고 치부하고 있었지만 단순히 느낌만이 아니었다. 정민유와 연관이 되어 있는 심은찬의 운이 일시적으로 상승한 효과를 덩달아 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미션 성공 이후에 랭크 업 된 가창력 능력치를 제일 잘 사용하기 좋은 상황이 준비된 것처럼 찾아올 리 없었다.

이후에도 그 운빨을 잘 받길 기도하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심은찬이 참여한 개인전 종목은 60m 달리기였다. 드라마 촬영을 하느라 준비를 거의 못 했지만 그래도 이를 악물고 뛰어야 했다.

다행히 뛰는 것 자체에는 자신이 있었다.

참가한 선수들 모두 준비 선에 맞춰 섰다. 장내가 조용해졌다. 출발 신호가 들리자 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제대로 잠도 못 잤던 것의 여파가 좀 있었지만 그래도 간신히 예선 2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6명씩 4조로 나누어 예선전을 치른 후 내림차순으로 기록을 매겨 상위 6명만 결승전에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심은찬은 4등으로 결승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렇게 어렵게 결승전에 진출해도 이름 호명은커녕 카메라에 한 번 제대로 나오지 않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예선 탈락이 아닌 이상 카메라 원샷의 가능성이 0%는 아니었다.

오직 그 한 번의 기회라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차렷.”

따악-!

출발을 알리는 소리가 났다.

심은찬은 빠르게 반응하며 앞으로 튀어 나갔지만 그보다 먼저 출발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를 악물고 달리다가 어느 순간 자신만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결승선을 지나쳤다.

쿠웅.

준비된 스펀지 벽에 부딪치며 가까스로 멈출 수 있었던 심은찬은 뒤를 돌아보았다.

다들 출발선 근처에 서 있는 게 보였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지금 뭐죠. 무슨 장치가 제대로 작동을 안 했나 본데요?”

“네. 그렇습니다. 이런 일이 정말 드문데 여기에서 일어나네요. 아. 심은찬 선수. 경기가 중단된 걸 모르고 끝까지 달렸는데요. 안타깝습니다. 정말 잘 달렸는데요.”

MC석에서 장탄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 보니 기록을 재는 기구가 오작동을 한 것 같았다.

결과는 재경기였다.

허탈하다는 말로는 설명을 다 할 수가 없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심은찬은 가쁘게 터져 나오는 숨을 가까스로 참으며 터덜터덜 출발선으로 향했다. 하라면 해야지. 이 상태로 봐서는 좋은 성적을 내기는 힘들어 보였다. 달리기를 전력으로 한 직후에 실력이 좋은 사람들을 상대로 뛰어 좋은 성적을 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차렷.”

심은찬은 결승점을 쳐다보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따악-!

다시 한번 시작된 경기.

결과는 6등.

심은찬이 제일 마지막에 들어왔다.

승부욕이 강하다곤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까운 건 아까운 거였다. 시합이 제대로 진행이 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자리 잡았다. 마지막에 들어갈 때 엎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몸을 날렸으면 이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던 심은찬이 숨을 헐떡이며 돌아와 자리에 앉아 있는데 도준서가 와서 어깨를 주물렀다.

“야, 고생했다. 힘들지. 잠깐 짬 있을 것 같은데 저쪽 가서 편하게 앉아 있어.”

“으응. 그래야겠다.”

서툰 위로보다 차라리 없는 일한 셈 치는 게 도리어 고마웠다. 심은찬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이동했다.

멀찍이서 보면 무슨 파워 레인저 모임 같겠다. 파랗고 빨갛고 알록달록.

모여 앉아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져 플라스틱의 등받이도 없는 의자에 앉아서 대충 쉬고 있으려니 전신이 시커먼 남자가 다가왔다. 현우영이었다.

키가 큰 편인 현우영이 까만 패딩을 입었으면 무슨 그림자 한 덩이가 움직이는 것 같았을 텐데 다행히 패딩은 벗어서 그렇게까지 커다래 보이진 않았다. 워싱 진과 차분한 맨투맨 티를 입고 있긴 했는데 워낙 라인이 좋아 눈에 띄었다.

스태프 목걸이를 하고 있긴 했는데 이 정도면 오고 가면서 사진 찍히진 않았으려나.

가까워지는 현우영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그가 음료수를 내밀 때까지 멍해져 있었다.

“아까웠어요.”

심은찬은 정신을 차리고 현우영이 건네는 음료수를 받아 들었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하세요……?”

심은찬은 현우영을 한번 봤다. 시비조로 물어보는 게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사실 시비를 걸기 위해 물어본 거였다고 해도 지금은 썩 화나지 않았다. 좀 이상하고 설명은 할 수 없었지만 그랬다. 궁금할 수 있는 문제였다.

아올대에 참석을 하더라도 시합에 몸소 참가하는 아이돌이 아니면 이 감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멤버가 있다고 듣기도 들었다.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차이도 있긴 하지만 이런 건 직접 체험해 보지 않으면 어떤 느낌인지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하물며 현우영은 함께 오기는 했으나 본인이 참가를 하는 게 아니고 어디까지나 부외자였으니 더 그렇기도 할 거다.

옆에서 보기에는 사실 대단한 것도 아닌 거에 너무 진심으로 달려든다고 볼 수도 있었다. 심은찬은 음료수로 목을 축이며 말했다.

“원래 열심히 해야 하는 거예요. 우리 보려고 여기 와 주신 팸팸도 있는데 설렁설렁 할 수는 없잖아요.”

누가 들으면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라고 여길 수도 있을 테지만 심은찬은 진심이었다.

특별하게 친분이 있는 사이도 아니고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감금되다시피 하는 녹화 방송에 와서 십몇 시간이고 앉아 있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리미리 시간 맞춰 신청을 하고 또 공지된 스케줄에 맞춰서 현장까지 와 주는 자체가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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