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61)

#22

“저희는 60m 달리기랑, 씨름이랑 400m 릴레이 달리기 나가죠?”

“네. 잘 아네요. 우리가 참가하는 것 중에 그렇게 위험한 건 없으니까 그렇게 심각해할 필요 없어요.”

현우영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는데 그 표정이 꽤 심각해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이러나 싶어 쳐다보던 심은찬에게 현우영이 말했다.

“은찬이 형. 무리겠다 싶으시면 바로 못 하겠다고 말씀하세요.”

“엥?”

심은찬이 눈썹을 위로 들어 올렸다.

“60m 달리기는 속력 줄이는 거 안 돼서 보호벽 설치하잖아요. 예선 포함해서 여러 번 하는데 그때 다치실 수도 있으니까요. 못 하겠다고 빠지면 욕먹는 건 순간이지만 부상당하면 그거랑 비교도 안 되게 오래가잖아요.”

“근데 어떻게 그건 알고 있네요?”

“예전에 방송을 봤었어요.”

“아, 방송.”

연습생도 알고 있을 법한 아이돌 올림픽 대회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어 보였는데 또 디테일한 걸 알고 있길래 물어봤던 심은찬은 약간 맥이 빠졌다.

“그런데 제 말에 대답 안 하셨어요.”

“아니. 어…….”

그야 그렇긴 하지만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데.

뭐 현우영의 입장에서는 좀 쓸데없는 일처럼 보이기도 하겠지만서도 여기 참가하는 아이돌들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물론 그중에 그저 운동을 좋아해서 열의를 보이는 타입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이돌 올림픽 대회에 참가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PD가 주는 불이익이 무서운 것도 있지만 방송을 보는 시청자, 혹은 녹화에 참가하는 팬들을 자기 팬으로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입덕은 이루어지기 마련이었다. 그 순간을 예측할 수 있는 아이돌은 거의 없다. 이 순간에 입덕하겠지 노린 것에 의외로 반응이 없기도 하다. 그런 반면 전혀 생각 못 한 포인트에서 팬이 되기도 한다. 아이돌 올림픽 대회는 그런 기회를 대폭 늘리는 일이기도 하다.

“아셨죠?”

대답을 요구하는 현우영에게 심은찬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딱히 지금 설명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자연스럽게 알게 될 부분이었다. 현우영의 의견도 어떤 시각에서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제 몸은 제가 챙기는 거니까.

결국 심은찬이 한 행동은 현우영의 등허리를 토닥거리며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는 거였다.

“앨범 준비하는 데 영향 안 가게 할 거니까 너무 걱정 말아요.”

심은찬이 덧붙이는 말에 현우영은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술을 달싹였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대기실로 돌아와 헤어와 메이크업을 점검하고서도 시간이 남았다. 앉아서 몸을 흔들거리던 심은찬의 눈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미션 발동

퀘스트 확인 Y/N]

언제 뜨나 했는데 이게 이제야 뜬다고?

심은찬은 잠시 시스템 창을 쳐다보았다. 무슨 퀘스트가 뜰지 몰랐기에 바로 예스를 선택하지 못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심은찬이 Y를 선택하자 창의 내용이 바뀌었다.

[퀘스트

대상: 정민유

머리 토닥거림받기.

※단, 한 번의 시도로 성공해야 함.

※절대로 직접적으로 말하면 안 됩니다.]

“……?”

심은찬은 제가 본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 몇 번이고 시스템 창을 읽어 보았다.

하지만 맞았다.

이렇게 쉽고 뻔하다고?

이걸 성공하면 정민유의 능력치가 바로 1랭크 업이 되고 심은찬의 미션 5회 중의 1회가 카운트된다. 너무나 파격적인 보상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퀘스트 자체의 난이도가 상당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쉽다니. 거의 거저먹기 수준이 아닌가.

아니, 하지만 상대가 정민유였다.

심은찬은 고개를 작게 좌우로 흔들었다. 팀의 맏형이긴 했지만, 좋게 말하면 살짝 독특한 구석이 있고 나쁘게 말하면 4차원적인 면모가 있었기 때문에 방심하면 안 됐다.

게다가 단 한 번의 시도. 직접적으로 말도 하지 말라고 하니 너무 쉽게 생각하다간 실패할 수도 있을 터였다.

심은찬은 시스템 창을 없애고 슬슬 정민유 쪽으로 접근했다.

정민유는 류서오와 이야기 중이었다. 정민유의 옆에 살짝 앉은 심은찬이 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응? 은찬아. 무슨 일이야?”

심은찬은 별다른 대꾸도 없이 그의 어깨에 고개를 슥슥 문질렀다.

류서오는 얘가 왜 이러나 싶은 얼굴을 한 채 쳐다보았고 정민유 역시 조금 어리둥절해 보였지만 이내 소리 내어 웃었다.

“우쭈쭈. 왜 그래, 은찬아. 혼자서 심심했어?”

턱 아래에 손을 넣어 가볍게 긁듯 만지려는 정민유의 반응에 심은찬은 낭패감을 느꼈다. 이대로는 실패한다. 이렇게 쉬운 미션을. 말이 되냐?

심은찬은 ‘한 번의 기회’라는 단어를 떠올려 내곤 절대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어 정민유의 손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재빠르게 허리를 숙여 그 손바닥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재빨리 시스템 창을 확인했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그렇다면 아직 한 번의 기회를 사용한 걸로 처리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모른다면 그건 정말 억울할 노릇이었다.

그의 손바닥 아래 있는 제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정민유가 조금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아유”하는 소리를 내며 심은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떠라, 알림 창. 성공했다고 알림 창 띄워.

그리고 심은찬의 부름에 응답하기라도 하듯 알림 창이 나타났다.

[퀘스트 성공.

보상을 확인하세요.]

됐다.

심은찬은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기대고 있던 몸을 벌떡 세워 앉았다.

“어으, 깜짝이야. 뭐야.”

“어, 아녜요. 그럼 말씀 나누세요.”

“은찬이, 갑자기 뭐야.”

“아녜요. 그냥. 볼일 끝났어요.”

상체를 숙이고 인사하며 멀어지는 심은찬은 자신을 바라보는 두 쌍의 눈동자에 손을 흔들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하게 쳐다보던 두 사람은 결국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다시 이야기를 재개했다.

심은찬은 의자를 들고 구석으로 가 앉았다.

심장이 기대감으로 두근두근했다.

보상 확인 창을 열어 보았다.

[퀘스트 성공.

대상 <정민유>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가창력 1랭크 업.]

가창력에 붙었구나.

보상을 확인한 심은찬은 입술을 말아 물었다.

이런 식으로 쉽게 실력을 높일 수 있을까 미심쩍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정말 적용이 된 건지 확인하고 싶어진 심은찬은 정민유의 상태 창을 확인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팀의 멤버가 아니라 같이 활동하는 멤버의 상태 창을 확인하려니 살짝 껄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능력을 수치화를 했다는 자체가 아무래도 좀 거부감이 들었던 거다. 하지만 그 기분을 누르고서라도 확인할 이유가 있었다.

심은찬은 정민유의 머리에 뜬 반투명한 상태 창을 읽었다.

[이름: 정민유

스타성: B

가창력: A

퍼포먼스: B

외모: B

멘털: A

특성: 튼튼한 바오밥나무(주변의 든든한 버팀목/B), 가득한 밥그릇(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정신력/A) 활성화/번득이는 ■■■(A) 비활성화.]

역시 같은 팀 멤버의 상태 창을 확인하는 건 썩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마치 본인도 모르는 성적표를 몰래 훔쳐보는 느낌이었다.

처음 본 정민유의 특성은 굉장했다. 그야말로 리더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감탄스러웠다.

특성 중에는 비활성화된 능력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는데 그게 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비활성화라면 활성화를 시킬 방법도 있는 걸까. 그러면 좋을 텐데. 무슨 능력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랭크도 좋은데 너무 아쉬웠다.

흘끔 알림 창이 뜨나 봤지만 별다른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속으로 몇 번 불러도 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굳이 알 필요 없는 걸 상태 창에 표시할 리는 없다. 나중에 때가 되면 퀘스트니 뭐니 해서 활성화시킬 방법을 알려 줄 거라고 짐작하며 더 이상 미련을 두지 말자고 결론 내렸다.

정민유의 능력치는 따져 본다면 중에서 중상 정도 같았다.

심은찬은 멤버들의 상태 창을 보고 이런저런 평가는 일절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을 막기는 어려웠다.

“……음……?”

한참 정민유의 상태 창을 살펴보던 심은찬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보정 전이 B+면 랭크 업을 했을 때 A+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니냐 이 양아치야.

심은찬이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그러자 정민유의 상태상에 있던 가창력이 A에서 A+로 변했다. 직접 보고도 두 눈을 의심할 일이었다. 심은찬은 잠시 숨을 멈췄다가 폭발적으로 분노를 뿜었다.

양아치냐. 내가 이의 제기를 안 했으면 그대로 A였을 거 아냐. 미친 거 아냐? 이걸 이렇게 주먹구구로 한다고?

속으로 욕을 하던 심은찬은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그만두자. 이런다고 뭐 알림 창이 새로 뜰 것도 아닌데, 라고 생각한 순간 바로 그 알림 창이 튀어 올랐다.

새로 뜬다고?!

당황한 심은찬이 빠르게 내용을 훑었다.

[ㅈㅅ]

……미친 거 아냐, 진짜?

수동이냐? 시스템이 자동이 아니라 수동이냐고. 추가 보상 내놔.

하지만 이번엔 상태 창이 잠잠했다. 심은찬은 숨을 차분하게 내쉬면서 기분을 가라앉혔다.

이런 요구를 들어줄 리 없다고 생각했을 때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시스템 오류 보상.

보상으로 오늘 밤 00시까지 일시적으로 운 스탯 상승을 적용합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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