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61)

#13

“네.”

“은찬이 형. 저녁 드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건 현우영이었다.

그가 팀에 합류하고서 일주일이 지났다.

현우영은 현재 숙소에 들어와 정민유와 같은 방을 쓰고 있었다.

본가가 경기도에 있긴 했으나 매일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길바닥에 버릴 바에야 차라리 숙소에서 함께 지내자고 한 제안을 선선히 받아들여 첫 만남 바로 다음 날 짐을 싸 들고 들어왔다.

다시 만날 때 어색하게 굴면 어쩌려나 살짝 걱정했지만 현우영은 그런 일은 없던 사람처럼 몹시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드러낼 정도로 분별이 없는 타입은 아니구나 싶어 심은찬도 그날의 일은 모른 척 넘겼다. 암묵적인 합의였다.

현우영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연스럽게 팀에 녹아들어 갔다.

워낙 실력도 좋았는데 거기에 더해 요령 부리지 않고 열심히 하는 현우영을 멤버들이 좋게 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예의 바른 모습을 가식적으로 구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일주일 동안 24시간 붙어 있는 내내 그걸 유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솔직히 첫인상이 썩 좋지는 않았던 심은찬 역시도 결국 이게 현우영의 모습이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현우영이 딱히 심은찬에게 날을 세우거나 특별한 어필을 하지 않았던 것도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도준서도 마찬가지였다. 부자연스러움과 어색한 태도가 상당히 많이 누그러들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음을 다행이라고 여겼다. 아무래도 멤버들 간의 합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멤버들의 미묘한 기류는 무대에서도 티가 나기 마련이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컴백 전까지는 아마 더욱 사이가 좋아질 거다.

지금도 이런 식으로 식사를 챙기지 않는가. 비록 심은찬은 저녁을 거르기로 했지만 말이다.

내일 스케줄 때문에 오늘 저녁은 안 먹는다고 했는데 그에겐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전부가 다 알아야만 하는 일은 아니긴 하다.

“아. 응. 고마워요.”

간단하게 인사를 건네며 읽고 있던 대본에 표시를 하고 덮었다.

저녁을 안 먹겠다고 하긴 했지만 인사를 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식사를 거른다고 제대로 인사도 안 하고 틀어박혀 있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나가죠.”

자리에 일어난 심은찬은 현우영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간단하게 인사하고 돌아와서 다시 대본을 읽으면 될 거다.

현우영이 심은찬에게 할 말이 있는 듯 쳐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아마 말 놓으라고 하고 싶은 거겠지. 현우영이 말 편하게 하라고 권유했던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직접적으로 입에 올린 건 아니지만 아마 첫날 그 일 이후에 심은찬이 거리를 두려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심은찬은 이게 편했다. 반말을 하면 말실수를 할까 봐 무섭다는 게 그 이유였다. 딱히 현우영만 특별 취급한 게 아니고 이전에 이해민에게도 존대를 했었다.

그나마 말을 놓는 건 연습생 시절 초반에 만났던 동갑인 도준서 하나였다.

각자 소속사 연습생으로 만나 친해지고 말을 놓은 이후에 태도 논란으로 계약 해지당한 선배를 보며 존대를 쓰자는 신조를 정했다. 그렇게 도준서에게도 존대를 했다가 그의 비웃음만 잔뜩 산 이후로 다시 원래대로 반말로 돌아갔다. 오직 도준서 한 명에게만이었다.

그 이후로 알게 된 사람 중 말을 놓은 사람은 없었다. 다른 멤버들은 그런 심은찬에게 서운한 기색을 보였지만 그게 결코 거리를 두려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인지 뭐라 불만을 표하진 않았다.

거실로 나가니 접이식 식탁을 펼치고 앉은 멤버들이 이미 식사를 시작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킁킁 냄새를 맡은 심은찬은 오늘 저녁 메뉴가 김치찌개와 목살 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삼겹살과 목살의 냄새 차이는 모른다. 단지 류서오가 삼겹살보다 목살을 선호했고 그 의견을 받아서 어지간하면 고기를 구울 때 그 부위를 사 온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는 게 사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포텐하이는 비활동기에는 B the 1이 먹고 싶어 하는 걸 다 먹을 수 있게 해 주었다. 활동 비용 중에 식비가 아마 절반 이상은 들어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돌이니 관리 때문에 일반적인 남자 또래 평균보다는 적게 먹긴 하지만 한창때의 남자가 6명이나 모여 있었다. 엔간한 액수가 아닐 텐데도 그걸로 눈치를 주는 일은 없었다.

그런 점이 바로 포텐하이 사장의 재벌설에 무게를 실어 주는 것이기도 했다.

심은찬은 옹기종기 모여 앉은 멤버들의 모습들이 마치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조그만 새송이 버섯들이 모여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새송이 버섯은 좀 너무한가.

심은찬이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생각했다. 한두 명은 소파에서 먹어도 될 텐데 굳이 굳이 좁은 4인용 식탁에 모여 앉아 있는 모습이 참 웃기면서도 복잡한 기분이 들게 했다. 먼저 식탁에 도착한 현우영이 바로 자리에 앉지 않기에 뭐 하나 싶어 쳐다보았다.

“…….”

“……?”

둘이 멀뚱멀뚱 서서 서로의 얼굴만 의아하게 쳐다보던 중 현우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은찬이 형 앉으세요.”

“……아. 아뇨. 전 괜찮으니까 앉아요. 어차피 저 안 먹을 거라서.”

심은찬의 말에 현우영의 얼굴이 순간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어? 안 먹는다더니 왜 나왔냐?”

입에 고기를 넣으려다 말고 도준석이 돌아보며 물었다. 류서오 역시 고개를 들어 심은찬을 쳐다보았다.

“은찬아, 그러지 말고 나온 김에 조금이라도 먹어. 너 점심에도 제대로 안 먹지 않았어?”

“저 저녁 먹으면 얼굴 붓잖아요. 내일 첫인사드리는 자리인데 좀 잘 하고 나가고 싶기도 하고요.”

심은찬의 대답을 듣던 정민유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게 드시라고 말한 심은찬은 아직까지 서 있는 현우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후에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배가 안 고픈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버틸 만은 했다.

당장 내일이 첫 대본 리딩 날인데도 멘털 보정의 영향인지 손발이 차가워진다거나 심장이 너무 뛰어 가만히 있기 어렵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침대에 앉은 심은찬은 내려놓았던 대본을 다시 집어 들었다.

한 문장을 채 읽었을까.

“은찬 형.”

“어? 무슨 일이에요.”

시야에 어둑하게 그늘이 져 이상함을 느낀 심은찬이 고개를 들었다. 어느 틈에 들어온 건지 현우영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머뭇거리는 기색에 대본의 읽고 있던 부분에 손가락을 넣어 접은 후 무슨 일이냐고 다시 한번 물었다.

“일부러 말씀 안 해 주신 거예요?”

“뭐가요?”

“저녁 안 드신다는 거요.”

“아.”

심은찬은 가볍게 입을 벌렸다. 밥도 안 먹고 바로 들어온 것 같았다. 현우영은 나긋하고 사근사근해 보이는 분위기를 하고 있지만 가끔씩 불같은 성격이 튀어나올 때가 있었다. 첫 만남 때라든가, 지금이라든가.

그냥 별생각 없이 한 행동인데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또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제가 저녁 드시라고 말하러 왔을 때에라도 얘기해 주셨다면 나왔다가 도로 들어오는 수고를 안 하셨어도 됐을 텐데요.”

왜 이렇게 기분이 상해 있어.

현우영의 반응이 좀 너무 과한 거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사람마다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같은 일이라도 유난히 기분이 상하는 날. 현우영에겐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인 듯했다. 자기만 무시당했다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고 딱히 기분 나쁜 것도 아니었다. 그걸로 서열잡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기에 심은찬은 얼굴 근육을 풀고 적당히 붙임성 있는 미소를 얼굴에 띄웠다.

“에이. 너무 그러지 마요. 그래도 그 덕분에 이렇게 우영이랑 또 둘이서 얘기도 할 수 있게 됐잖아요.”

현우영의 입이 딱 다물렸다.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이내 다시 다물어졌다.

음. 이건 좀 너무 나갔나.

샤부샤부하는 것처럼 후회에 살짝 발을 걸쳤을 즈음 그가 입을 열었다.

“자주 이렇게 식사를 안 하세요?”

잠깐 텀을 두고 나온 목소리는 한풀 꺾인 상태였다.

“자주는 아니에요. 그냥 내일 일이 있으니까 그런 거죠.”

“일이 있는 거면 더 챙겨 드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너무 안 드시면 몸 상하세요.”

“버틸 만해요. ……아니, 농담이에요. 그 정도로 안 먹지는 않아요. 체중 관리 때문에 굶는 건 또 익숙해서 괜찮아요.”

한결 풀어진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심각해지는 현우영의 반응이 재미있어 심은찬은 눈매를 휘었다. 어느 모로 봐도 심은찬을 걱정해 주는 사람과의 대화가 아닌가.

“근데 우영이는 착하다. 형들은 저 먹이려고 제 눈앞에서 치킨도 흔들던 사람들인데.”

결국 안 먹었지만. 심상하게 말을 마친 심은찬을 보는 현우영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굶는 사람 눈앞에서요?”

“네. 제가 그렇게 강하게 컸죠.”

농담이라도 하듯 가볍게 대꾸했다. 지금이야 이렇게 말하지만 그때는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괴로웠다. 그러나 워낙 데뷔 초기에 있던 일이고 딱히 그걸로 억하심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심은찬이 좀 무식하게 굶었었다. 오죽하면 그걸 옆에서 보던 멤버들이 눈앞에서 갓 튀겨 나온 닭 다리를 맛있어 보이지 않느냐며 흔들기까지 했을까.

이제 와 떠올리면 그렇게 무식하게 다이어트하면 안 된다고 하며 웃을 수 있긴 하지만 당시에는 정말로 다른 멤버들이 심은찬의 건강을 좀 심각하게 걱정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말아요. ……참. 우영이도 아올대 같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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