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61)

#8

“…….”

하지만 그래서 문제였다.

심은찬은 눈앞의 이 남자를 본 기억이 없다.

물론 지금 처음 만난 거긴 한데 그런 의미가 아니라, 이전 생에서, 방송에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 정도의 피지컬을 가진 연습생이라면 알음알음 소문이 났을 텐데 정말 처음 봤다.

대체 뭐지 싶은 의문이 들었다.

설마 심은찬이 회귀해서 했던 걸 안 함으로써 이전 생이랑은 다른 힘이 작용한 걸까. 마치 나비 효과처럼 말이다.

설마. ……에이, 설마.

그래. 설마.

심은찬은 태풍이 몰아치기 시작하는 속내와는 다르게 겉으로는 평온을 유지했다. 솔직히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은 스스로가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심은찬은 다시 한번 현우영의 상태 창을 봤다.

무슨 수치가 이 모양인지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모든 등급이 S와 A였다. 뭔가 잘못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이런 인재라면 충분히 아이돌 5대 기획사라고 하는 대형 기획사로 갈 수 있을 텐데 왜 포텐하이 같은 소소소기획사에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기획사 보는 눈이 없나? 대체 무슨 생각이지?

뭘 잘 몰라서 이상한 계약서 같은 걸 쓴 게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의문이 도리어 타당하게 느껴질 정도의 능력치였다. 그리고 굳이 능력치를 보지 않아도 저 얼굴만으로 오디션은 자동 프리 패스할 수 있을 터였다.

그건 그렇고 자신의 특성인 인간 캣닙 효과가 적용 중인지 아닌지는 상태 창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정말 적용이 되는 건 맞는 거겠지.

어쩔 수 없는 의구심이 솟아났다.

“은찬아?”

“……네?”

“무슨 생각하니?”

이현종의 자상한 목소리에 심은찬이 정신을 차렸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현우영의 머리 위를 쳐다보고 있는 걸로 보였을 터였다. 게다가 지금 상황상 단순히 허공을 응시한다고만 여겨지지 않았을 거다. 아마 현우영이 마음에 들지 않아 노려봤다고 여기는 게 분명했다.

알림 창 보는 거에 정신 팔려서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꽈배기 꼬이듯 어색해진 공기를 그제야 인지했다.

음. 무슨 말이든 해야겠는데.

심은찬이 웃는 얼굴로 눈을 굴렸다. 결국 그보다 이현종이 한발 먼저 큰 소리로 웃었는데 그 웃음소리가 참으로 인위적이었다. 하기야 그 역시도 이런 식으로 새 멤버를 소개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가 현우영의 상태 창이 사라진 걸 확인하는 심은찬에게 다시 한번 말을 걸었다.

“은찬아. 이제 숙소로 가야지? 선주 씨가 데려다줄 테니 차 타고 가.”

얼른 가라는 뜻을 내포한 말에 심은찬은 눈을 크게 뜬 뒤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어차피 걸어왔는데요. 그냥 걸어가면 돼요.”

“어허, 아니야. 타고 가, 타고 가. 여기 팬들이라도 마주치면 어쩌려고.”

“아하하.”

심은찬이 발랄하게 웃었다.

팬들이 기획사나 숙소 앞으로 찾아올 정도로 많지도 않았고 그런 극성팬이 있지도 않았다. 데뷔 1년 차까지만 해도 참가 인원 100명 제한으로 팬 사인회를 열었을 때 응모한 사람 수가 78명이었다. 그 팬 사인회는 결국 전원 당첨이라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로 끝났다. 팬사컷이라는 게 없는 수준이었다.

지금은 그 정도까진 아니고 제한 인원을 간당간당하게 채우는 정도이긴 하지만 말이다.

팀장인 이현종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런 상황에서 기획사 앞을 찾아올 팬을 걱정한다는 건 그 의도가 너무나 빤하게 보였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 여기 이 친구랑 숙소까지 함께 가도 될까요?”

심은찬은 거울 앞에서 몇십 번이고 연습했던 아이돌용 미소를 천연덕스럽게 지어 보였다. 지금 이건 드라마 촬영이고 나는 연기를 하는 중이라고 되뇌니 행동에 망설임이 줄어들었다.

“어, 으응?”

“뭐?”

자연스럽게 묻는 질문에 이현종은 물론 옆에서 듣고 있던 김선주까지 뒤집어진 목소리를 냈다. 현우영도 눈을 크게 뜨고 심은찬을 쳐다보았다.

“멤버들한테 소개, 해야죠.”

왜 그런 반응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자 두 사람이 빠르게 시선을 교환하는 게 보였다.

“지금 저희 숙소에서 파트 분배랑 안무 동선 다시 짜고 있거든요. 할 때 한 번에 해야죠.”

심은찬의 체감상 6년 전에 겪었던 일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언뜻 이해민의 탈퇴로 멤버들이 정신없는 와중 너무 가혹한 게 아닌가 싶긴 했지만 겪어야 할 일이라면 빠르게, 정신없이 넘어가는 게 낫다. 충격을 받아들이고 좀 괜찮아질 즈음에 다시 한번 뒤흔드는 일이 벌어지는 것보다는 말이다.

파괴와 재생은 빠르게 이루어지는 게 여러모로 좋다.

물론 돌아오는 연말까지 대상을 타지 못하면 회귀 전으로 돌아간다는 퀘스트의 영향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절대로 회귀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지극히 당연하고도 타당한 의견에 이현종의 시선이 갈 곳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좌우로 흔들렸다. 저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다른 게 아니라 멤버들의 멘털에 영향을 줄까 봐 그렇다는 걸 심은찬은 알고 있다. 이전 생에서도 회사 사람들 중 가장 마지막까지 심은찬을 챙겨 주었던 사람이었다. 참 사람이 좋았다. 이전에는 그의 배려를 알아차리지도 못했고, 깨달았을 때에는 그 고마움을 표할 기회도 없었지만 말이다.

“걱정하시는 거 알아요. 그런데 어차피 알아야 할 거라면 빨리 아는 게 낫죠. 다른 멤버들도 아마 같은 생각할 거예요.”

“……허.”

심은찬의 당찬 목소리에 탄성을 낸 이현종이 감탄하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그렇긴 하지.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보다. 은찬이가 언제 이렇게 컸어.”

“저 원래 컸잖아요.”

“으이그. 선주 씨, 그럼 부탁 좀 하자.”

“네, 네!”

시답잖은 대답을 한 심은찬의 어깨를 툭툭 친 이현종이 말을 마치고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럼 갈까, 하고 말을 건네는 김선주를 따라 먼저 심은찬이 걸음을 옮겼고 그다음 현우영이 뒤를 따랐다. 흘끔 곁눈으로 보는데 시선이 마주쳤다.

정말 잘생기긴 잘생겼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진짜 이런 애가 어쩌다가 이런 소속사로 들어온 건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설마 사이비 포교하러 들어온 건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하고 난 후에야 망상을 멈출 수 있었다.

차까지 걸어가던 심은찬은 숙소에 있는 멤버들을 떠올리다가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말한 뒤 편의점에 다녀왔다. 심은찬의 손에는 캔 음료 몇 개를 담은 비닐봉지가 달랑이며 들려 있었다. 황혼 707. 숙취에 기가 막히게 잘 듣는다는 음료수였다.

건물 주차장 한구석에서 시동이 걸린 채 심은찬을 기다리고 있던 8인승 차에 몸을 실었다. 이 차도 정말 오랜만에 타 본다. 차 안에서 장난치느라 살짝 긁었던 시트 흔적을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살짝 요동치기 시작하던 감정은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괜찮아졌다.

“안전벨트 다 했지?”

“네.”

“예.”

확인 후에야 차가 움직였다.

6명이서 왁자지껄하게 타고 놀았던 기억을 더듬던 심은찬이 흘깃 현우영을 쳐다보았다.

“낯 많이 가려요?”

“아뇨. 그런 편은 아닌데요.”

“팀 멤버들이 엄청, 친화력이 좋은 편이긴 하거든요. 아, 류서오라고 22살인 형이 있는데 그 형은 좀 말수가 적은 편이긴 하지만 내향형이라 그런 거니까 오해하지 말아요. 좋은 형이거든요.”

현우영의 시선이 잠깐이라기엔 좀 오랫동안 심은찬에게 머물렀다. 눈도 큰 애가 무표정하게 쳐다보니까 너무 박력 있었다. 지금 경우에는 좀 안 좋은 쪽으로 느낄 수 있겠지만 나중에 같이 활동하려면 얘기를 해 줘야 하나. 실력이나 외모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카메라 앞에서 무표정으로 있다가 인성 문제라도 불거지면 곤란해진다. ‘지금 긴장 중’ 같은 토퍼를 계속 들고 있으라고 할 수도 없고 말이다.

여러 생각을 하며 심은찬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싶어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물어보았다.

“왜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뇨. 그건 아닌데요.”

선선히 고개를 내젓는 현우영 쪽으로 몸을 비스듬하게 돌리며 심은찬이 엄지와 검지를 접고 남은 세 손가락을 펴 보였다. 현우영의 얼굴에 바로 의아함이 떠올랐다. 심은찬의 얼굴과 그의 손을 번갈아 가며 보는 현우영에게 물어보았다.

“시력이 혹시 안 좋아요?”

“예? 아뇨. 좋지도 않지만, 그냥 보통요.”

“으응. 하도 빤히 보길래 물어봤어요. 저는 시력이 안 좋거든요. 혹시 우영이, 아, 앞으로 함께 활동할 텐데 그냥 이름으로 부를게요. 우영이도 그런가 하고요.”

“……. 잘 부탁드립니다.”

어쭈.

현우영의 말을 들은 심은찬은 눈에 힘을 주었다. 그냥 말하는 것만 들으면 단순히 인사를 했구나 여겼겠으나 억양이나 눈빛이 전혀 아니었다. 심은찬을 응시하는 현우영의 까만 눈동자가 반짝였다.

나쁘지 않았던 자세를 다시 한번 고쳐 앉는 현우영을 보며 심은찬도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혹시나 했는데 현우영의 반응으로 확신했다.

지금 쳐다본 건 일부러였다.

상태 창을 보느라 봤던 걸 제 얼굴을 빤히 봤다고 오해한 현우영이 심은찬에게 너도 한번 똑같은 일 경험해 봐라 하고 일단 던져 본 거다.

현우영은 보기엔 세상 더 없을 착하고 순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승부욕이 장난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그걸 굳이 숨길 생각도 안 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