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61)

#5

그렇게 활동을 하다 보니 나름대로 SNS에 팬 계정도 하나둘 생겼었다.

별 기대 없이 SNS에 검색했을 때 팀의 비주얼 멤버인 이해민을 부르며 앓는 글을 처음 발견한 심은찬은, 그 신기하고 벅차오르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얼굴을 쿠션에 박고 코 먹는 소리를 내며 웃었었다. 제 팬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그리고 정말 운 좋게도 그 팬은 소위 말하는 홈마 계정이었다. 덕분에 팬들이 붙는 속도가 조금씩 늘어났다.

심은찬에게도 개인 팬이 생겨났고 그러면서 좋은 일도 생겼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아마 심은찬의 인생 전체 운을 거기에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심은찬이 자체 콘텐츠 촬영용이었던 안경과 교복을 착용한 채로 팬들을 보며 손을 흔들고 웃는 사진이 찍혀 SNS에 올라갔다. 배경으로 나온 가로수가 햇빛을 받아 초록초록하게 찍혀 분위기가 확 살기도 했고 심은찬 본인이 봐도 인생 컷이다 했을 정도로 잘 나왔네 싶은, 청량한 사진이었다.

그 사진의 화질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건 누구나 인정할 만큼 잘 나왔다는 점이었다.

그리 좋지 않은 화질이었기에 더욱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킨 그 사진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지며 소소하게 화제가 되어 ‘학창 시절 첫사랑 기억 조작 사진’이라는 타이틀까지 붙기도 했다.

심은찬이라는 이름이나 B the 1이라는 그룹명은 몰라도 그 사진이라면 아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B the 1을 찾아 주는 케이블 프로그램도 있었으니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 케이블을 넘어 지상파 음악 방송에서도 섭외가 왔다.

처음 지상파 음악 방송에 출연을 하게 된 날 얼마나 기뻐했던가. 드라이 리허설을 하면서도 너무 떨려서 멤버들끼리 청심환 반 개씩을 사이좋게 씹어 먹었었다.

그 후로 싱글 6집을 낼 때까지 주기적으로 B the 1을 찾아 주는 프로그램도 생겼다.

대박까진 아니라도,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되겠구나 싶은 낙관적인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세상은 막연한 희망을 품어 꽃으로 피워 줄 만큼 녹록지 않았다.

희망이 보이긴 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한 해에 데뷔하는 남돌은 많았고 그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 이름을 알릴 기회는 B the 1에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멤버들끼리 다독인다고 해도 사람에게는 한계라는 게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 끝이 다가온다는 느낌이 막연하게 들기 시작했다.

바닥을 기는 음반 판매량에도 멤버들이 원하면 보컬 코칭부터 연기 학원까지 다니게 해 주며 투자를 아끼지 않고 싱글을 6집까지 내 준 포텐하이 사장의 뚝심이 놀라울 뿐이었다. 심지어 외국어를 배워 보는 건 어떠냐는 제의까지 먼저 해 와서, 멤버들끼리 은밀하게 어딘가의 재벌이 취미 삼아 소속사를 운영하는 게 아니냐고 수군거릴 정도였다.

소속사 사장도 (표면적으론) 그들을 포기하지 않았을 때, 팀 내에서 그나마 제일 인기가 많던 이해민이 가장 먼저 탈출했다.

그도 그럴 게, 이해민은 정말 잘생겼다.

아이돌의 제1 덕목은 무엇보다 비주얼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연습생이었던 이해민을 마주했을 때, 심은찬은 그렇게 잘생긴 사람은 처음 봤었다. 공들여 만든 컴퓨터 그래픽을 현실에 붙여 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

활동을 하면서 다른 아이돌도 종종 마주쳤지만 이해민보다 잘생긴 아이돌을 찾기는 힘들었다. 팀 멤버가 된 후에도 이해민이 너무 잘생겨 가끔씩 눈길을 빼앗길 때도 있었다.

살 부대끼며 연습하고 활동하는 같은 팀 멤버인 심은찬이 그럴진대 다른 사람들은 어떠랴.

실제로 B the 1은 그의 덕을 많이 보았다. 바닥에 붙어 있는 팀의 인지도를 그나마 이해민이 멱살을 잡고 끌고 갔다. 팬들끼리 반농담으로 팀의 소년 가장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울분을 담아서 이해민 좀 놔주라는 개인 팬 역시도 존재했다.

만약 포텐하이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푸시가 가능한, 다른 중소 기획사 소속이었다면 이해민은 진작에 뜨지 않았을까 싶었다. 안타깝게도 포텐하이는 중소도 되지 않는 소소소기획사였고 결과는 망돌의 비주얼 멤버였다. 아무리 잘생겼어도 노출이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다. 지상파나 케이블 음악 방송에 출연을 한다 하더라도 그 한계가 명확했다.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해민 정도라면 큰 기획사에서도 여럿 제의를 받았을 게 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대체 소속사 사장이 어떻게 데리고 왔는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이해민도 모르진 않을 터였다. 그러나 이해민은 전혀 젠체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맑게 웃으면서 힘내자고 하던 이해민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우리 팀에서 희망을 잃은 것 같았다.

아예 처음부터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면 깨끗하게 포기를 하고 다른 곳으로 갔을 거다. 그러나 그 약간 보이는 희망에 사람은 매달리게 되고 그 미련은 결국 다른 형태로 목을 조여들어 온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아쉽게 놓치는 것이 반복될 때, 사람은 무너지고 현실과 타협하게 된다.

아닌 사람도 있을 테지만 적어도 이해민은 그러했다.

심은찬 역시 다른 기획사에서 제의가 왔을 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으리라고 자신하지 못했다. 그건 어려운 일이다. 해내는 게 대단한 일이지 못 했다고 손가락질받을 일은 아니었다.

이해민에게 B the 1이 함께하는 동료가 아닌, 붙잡고 늘어지는 짐으로 바뀌는 데에는 3년 조금 모자란 시간이 걸렸다.

이해민이 굳은 표정으로 그의 부모님과 변호사를 대동한 채 나타났고 사장까지 참가하는 회의가 열렸다. 그리고 긴 회의 끝의 결말은 이해민과 포텐하이의 계약 종료였다.

이해민은 그를 붙잡는 정민유나 도준서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기획사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와 연락해서 대화라도 해 보려 했지만 없는 번호라는 안내음만 들릴 뿐이었다.

그건 그냥 핸드폰 번호가 아니었다.

팀 내 제일 막내였던 이해민이 성인이 되는 날, 현대인의 필수 물품인 핸드폰 없이는 더 이상 못 살겠다며 멤버들 모두 한꺼번에 매장으로 가 개통했을 때 골랐던 바로 그 번호였다.

나중이 돼서라도 이 번호는 바꾸지 말자며 이야기했었다. 그런 번호를 없앴다. 번호 하나에 너무 깊이 의미 부여하는 건지는 몰라도, 이해민과 연결되어 있던 인연이 끊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건 비단 심은찬 혼자서만 생각한 게 아닌 듯했다. 밤늦도록 이어진 술판에서 류서오가 코를 훌쩍이며 ‘걔는 어떻게 그 번호를 쉽게 없애냐.’ 하면서 중얼거렸던 걸 떠올렸다.

심은찬에게는 벌써 6년이나 전의 일이었는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바로 어제 있던 일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것도 알림 창을 띄운 존재가 뭘 어떻게 해 준 걸까.

심은찬은 슬쩍 허공을 쳐다보았다.

“…….”

알림 창은 잠잠했다.

더 이상 새 알림 창이 뜰 것 같지 않았다.

이해민은 팀 탈퇴 후 대형 기획사로 들어가 두 달 뒤 5인조 D.knight의 핵심 멤버로 데뷔한다. 계약 해지 후 동종 업계에 근무하지 못하게 하는 계약 조항 같은 건 어떻게 했는지 알 길은 없었다. 어쨌든 가능했으니 다른 팀으로 데뷔를 한 것이리라.

D.knight으로 재데뷔를 한 같은 해, 이해민이 속한 팀은 공중파 1위를 하는 기염을 토했다. 순풍만범.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B the 1의 이해민이 아니라 D.knight의 이해민만 존재했다. 정말로 날개를 단 것처럼 잘나갔다.

하지만 그 후로 2년 뒤, 이해민은 음주 운전으로 물의를 일으킨다.

당시의 심은찬은 본인 한 몸 챙기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나쁜 일로 새삼스럽게 연락하는 것도 뭐했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까지는 자세하게 알지 못했다. 애초에 이해민의 바뀐 연락처조차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

이러나저러나 다 변명이다. 그래도 당시에는 아직 방송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알려고 하면 얼마든지 이해민의 연락처를 알아낼 방법은 있었다. 단지, 이해민을 볼 자신이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과 왜 그런 짓을 저지른 거냐고 힐책하는 마음, 그리고 팀 버리고 가서 결국 그렇게 됐구나 하는 못된 마음이 들었던 것이 꺼림칙해 차마 연락을 시도할 생각조차 못 했다.

기껏 대형 기획사로 옮겼으면 더 잘나갔어야지 왜 음주 운전을 해선.

심은찬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차라리 지금이라 다행이야.”

데뷔 전이 아니고, 이해민이 탈퇴를 하기 전도 아닌, 지금이어서 오히려 다행이다.

이제 생각은 그만하자. 목표는 대상이다. 지금은 다른 멤버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우선 밖으로 나가자.

찰칵.

문고리를 아래로 당기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숨을 들이마시며 방 밖으로 나가자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멤버들이 보였다. 그리운 얼굴들이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채 심은찬 쪽을 향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제일 늦게 나온 모양이었다.

등을 돌리고 앉아 있던 동갑인 도준서가 심은찬 쪽을 돌아보았다.

“나왔냐.”

지금 시점에선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심은찬의 기억 속에는 그와 다투었던 일이 분명히 있다. 과거이지만 미래이기도 한, 묘한 기억. 또 속이 울렁거렸다.

심은찬은 빨리 씻고 오겠다고 하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는 동안 울렁거림이 사라졌다. SS급 멘털이 됐는데도 이상하게 동요하게 됐다. 말랑한 강철이라는 이상한 단어가 적혀 있는 게 이래서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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