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61)

#4

애초에 회귀를 선택한 이유도 그래서가 아니었던가. 아이돌로 실패를 해 봤기 때문에. 성공하기 위해서.

적당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라면 자극제가 됐을 테지만 이건 아니었다. 대상이라니. B the 1은 어지간한 망돌이 아니었다. B the 1이 발매한 싱글 중 음원 사이트에서 유의미한 순위권 안에 들어가 노래는 단 한 곡도 없었다. 쪽팔리지만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 차트 1000위 안에 들어가 본 적도 없다는 의미였다. 그런 그룹이 1년 안에 대상 수상이라니.

이건 그냥 꿈도 꾸지 말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후우.”

심은찬은 어지러운 속을 가다듬으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빠르게 정리해 나갔다. 사실 정리랄 것도 없었다. 테스트받는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아쉬운 입장에서 까라면 까야지 뭘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해야 했다. 성공해야 했다.

이전 생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줬다 뺏기는 너무하지 않나.”

지금 상태에서 뭐 다른 어드밴티지라도 주든가. 항의를 하고 싶었지만 알림 창은 잠잠했다. 심은찬 쪽에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결국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사실 수긍이고 뭐고 회귀를 한 것만으로도 어디인가 싶었다. 놀이공원에 상시 마련되어 있는 체험 존 같은 것도 아니고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기회를 다시 가질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차고 넘치게 충분한 거 아닌가.

그렇다면 돌아갈 땐 돌아가더라도 최선을 다해 봐야 했다.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뼈가 부서질 때까지 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투덜거리며 불평불만을 토로할 수는 없었다.

이젠 정말 더 확인해야 할 건 없는 것 같았다.

딩동.

또 한 번의 경쾌한 알림음이 들렸다.

……진짜 장난하나.

미간을 찌푸리는 심은찬은 개의치 않는 듯 멋대로 알림 창이 떠올랐다.

[회귀자 퀘스트 연계 미션-<함께 사는 세상 혼자만 잘 살면 재미가 없죠.>

대상: 동료들

성공 시 미션 상대의 능력치 1랭크 즉시 업.

미션 올 클리어 시 능력치 선택 후 등급 업이 가능합니다.(0/5)

포인트를 모아 능력치 상승을 노립시다.

실패 시 페널티 발동.]

골드 카드에 걸맞게 이번에도 좋아 보였는데 뭔가 좀 이상했다. 카운트하는 횟수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았다.

멤버별로 미션이 주어지는 것 같았는데 안내창을 보아 하니 미션 횟수는 총 5번으로 보였다. 바로 그게 이상했다. 탈퇴한 이해민과 저 자신을 제외한 멤버는 4명이 아닌가. 그렇다는 건 미션이 멤버들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란 뜻일까.

이것도 실수인가.

“…….”

잠자코 기다렸지만 수정되지 않았다.

그럼 대체 누구에게 시도하란 거야.

심은찬의 미간이 좁아졌다.

미션 성공 시마다 각 멤버들의 능력치도 상승하고, 5회의 미션을 모두 성공하면 심은찬이 원하는 능력치를 올릴 수 있었다. 연계 미션치고는 상당히 보상이 좋았다.

대상에게 무슨 미션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보상이 좋은 걸로 봐서는 엄청 어려울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심지어 실패 시 페널티까지 있다.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이젠 진짜 없겠지, 싶어서 허공을 노려보던 심은찬은 제 방의 천장을 새삼스럽게 올려다보았다. 그는 가슴이 부풀도록 숨을 들이마셨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필이면 왜 이런 시기로 회귀를 했나 싶은 의문 또한 차라리 지금이라 다행이라는 수긍 쪽으로 기울었다.

이해민이 탈퇴하기 전? 이해민이 언제부터 팀 탈퇴를 염두에 뒀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팀에서 마음이 뜬 멤버를 억지로 붙잡아 둔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데뷔 초? 미래를 알고 있다 한들 혼자 뭘 어떻게 한다고 해서 일이 잘 풀릴 정도로 쉬운 세계가 아니다. 여차하면 그 개고생을 또 한 번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았다. 생각하기도 싫었다.

아예 데뷔 전으로 돌아간다면? 대형 기획사 들어가는 게 장난도 아니고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연습생으로 들어가는 것만도 어려운데 또 그 안에서 연습생 타이틀을 달고 몇 년이나 경쟁을 해야 할지 몰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이 없었다.

심은찬이 포텐하이에서 연습생이었던 기간은 3년이다.

이대로 괜찮을까. 데뷔는 할 수 있을까. 데뷔는 언제쯤 할 수 있을까. 데뷔하고 나서는 괜찮을까. 차라리 지금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상념으로 몸보다 마음이 힘들었던 연습생 시절을 또 한 번 반복하는 건 정말이지 사양이었다.

특히나 능력치가 멘털 쪽으로 붙은 지금 상태로 다른 연습생을 상대로 경쟁력을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심은찬은 지금 시점의 제 상태를 점검했다.

그가 소속된 기획사 포텐하이에 소속된 아이돌은 B the 1이 유일했다. 대형 기획사에서 데뷔하는 신인에게 있는 내리사랑 역시 바랄 수 없었고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맨바닥에 헤딩해 가며 연예계를 헤쳐 나가야만 했다.

데뷔 초기에는 정말 학교 축제나 처음 들어 보는 지역 축제만 돌아다녔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 축제가 있는 줄 그때 처음 알았던 것 같다. 누가 우리나라에 행사가 없다고 하는가. 행사는 차고 넘칠 정도로 많다. 안 유명할 뿐이지. 복숭아 축제만 해도 전국에 5개는 있더라.

그나마도 무대가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이름 모를 축제라도 참가하려고 하는 아이돌 그룹이 없진 않았다.

춤을 출 수 있는 모든 무대가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같은 교과서적인 말을 처음부터 할 수 있지는 않았다. 솔직히 부끄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다. 조악한 음향으로 가끔씩 지직거리며 끊기는 환경에서 춤추는 게 민망했다. 데뷔 전 꿈꾸던 모습과 현실에서의 괴리가 어마어마했으니까 말이다.

아이돌이 되겠다고 희망하는 연습생들이 머릿속에 그리는 환상은 화려한 조명과 팬들의 함성이다. 물론 데뷔하면서부터 잘나갈 거라는 생각을, ……물론 조금은 했지만. 그래도 이런 냉소적인 시선을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무대에 서기란 쉬운 게 아니었다. 쉽지 않다가 아니라 어려웠다.

처음 행사에서 열악하기 그지없던 무대를 했던 날 멤버들은 전부 복잡한 심정이 되어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입을 꾹 닫고 창밖만 응시했었다. 이런 대접을 받아서 분하다는 마음조차 생기지 않을 정도로 참담했다. 팀의 막내였던 이해민은 훌쩍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음향도 안 좋고 무대라고 할 수 없는 곳에서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 행사를 수십 번 하고 난 후에 그래도 얻은 게 있었다. 동네 어르신들과 알음알음 축제에 찾아온 관광객들의 소가 닭 보는 듯한 시선들. 그런 시선에 강해지고 담대해졌다. 한마디로 무대 위에서는 얼굴에 철판을 까는 게 가능해졌다는 이야기였다.

행사장의 조악한 스피커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데뷔곡 ‘너랑? 나랑!’이라는 곡의 연습 기간은 총 1년이었다.

앨범 발매 한 달 전에는 합숙하며 하루에 3시간씩 자면서 연습했었다. 노래 제목은 좀 우스웠어도 칼 군무는 우습지 않았다. 혹독한 강행군으로 노래 아무 부분이나 틀어도 바로 대열을 갖춘 후 각을 맞춰 출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고생해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B the 1은 각종 지방 축제에 섰다.

그 축제 무대에서 열심히 하는 B the 1을 좋게 봤는지, 어느 날 중학교 축제에 초청을 받았다. 그게 기점이었다. 알음알음으로 소개가 되는 모양이었는지 다른 학교 축제나 초청 무대에 설 수 있었다.

학교 축제는 그래도 형편이 나았다. 비 오는 날 비 안 맞고 눈 오는 날 눈을 피할 수 있었으니까. 조잡하나마 조명도 있었고 학생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유명 아이돌 노래를 커버할 때에는 그야말로 열렬한 반응을 보여 주었다.

B the 1의 노래가 아니라 선배 그룹의 커버 무대를 연습하는 데 더 시간을 할애하는 날도 있었다.

허탈함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이것도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멤버들끼리 서로 다독이며 버텼다.

그런 시기를 지나고 처음으로 케이블 방송에 출연을 하게 된 건 데뷔했던 해 10월에 발매했던 싱글 3집부터였다. 아직도 그날 공기의 냄새까지도 기억이 생생했다.

원래는 오프였는데 갑작스럽게 스케줄이 생겼다는 말에 멤버들은 빠르게 준비를 마쳤다. 류서오는 아침도 못 먹었다고 투덜거리며 입에 토스트를 물고 차에 올랐고, 그런 그에게 시트에 빵가루 떨어진다며 문세별이 타박했다. 차에 올라탄 정민유가 오늘은 어디 축제냐고 물으며 안전벨트를 맸을 때였다.

매니저 형의 양 뺨이 씰룩거리고 입꼬리가 들썩거리는 게 백미러에 비쳤다.

‘쑈빅에서 섭외 연락 왔어. 지금 거기 가는 거야……!’

그때 차 안의 분위기가 순간적으로 뒤바뀌었다. 흥분과 긴장으로 팽팽해지던 그 느낌.

류서오는 입에 물고 있던 토스트를 바닥에 떨어트리기까지 했다.

쑈빅.

처음 해 보는, 정말 제대로 된 음악 프로그램이었다.

원래 참가하기로 했던 그룹의 멤버들이 방송 당일 식중독으로 입원해 잡게 된 기회였다. 뭐든 어떠랴. 땜빵이든 뭐든 사람들에게 B the 1을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절대 놓칠 수 없었다. 단순히 운이 좋아서 얻은 게 아니었다. 지금의 이 기회조차 처음부터 동고동락을 해 오던 매니저 형이 끈기 있게 방송국 PD들에게 인사하며 CD를 돌렸기에 얻을 수 있었다.

흙바닥 무대와 방송국 조명을 받는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건 정말 하늘과 땅 차이였다. 처음 올라간 방송국 무대는 심장이 맥동질하는 흥분과 고양감을 안겨 주었다. 여태까지 섰던 그 모든 무대와도 비교가 불가능했다. 그건 심은찬만 느낀 게 아닌 모양인지 다들 어느 한군데가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 방송 이후였다.

방송국이 B the 1을 찾아 주는 일이 조금씩 늘었던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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