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심은찬은 천천히 눈을 떴다.
순간적으로 어떠한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떤 소리도 없이 조용한 공간이었다. 뇌에서 모든 기억을 지운 것 같은 멍한 감각에 눈을 깜빡깜빡 감았다가 뜨던 심은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몸에 덮여 있는 이불을 움켜잡았다.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보면서 심은찬의 미간에 천천히 주름이 잡혔다.
스스로가 뭘 하던 사람이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머릿속이 새하얬다. 방 모서리에서 시작해 천장, 그리고 자신이 누워 있는 침대를 본 심은찬은 자신이 있는 곳이 이전 B the 1의 숙소였던 방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게 뭐야?”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아무 생각이 없던 심은찬의 머릿속에 잠들기 이전의 기억이 솜뭉치에 물이 스며들듯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래. 분명히 마지막 기억이 여기가 끝이 아니었는데. 분명히. ……그래, 분명히 심은찬은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지방으로 내려갔었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술이라도 마시자고 생각해서 돈을 탈탈 털어 소주를 샀던 것도 기억났다.
싸구려 모텔의 침대에서 꿉꿉한 냄새가 나던 것도 떠올랐다.
그런데 지금 심은찬이 있는 장소는 B the 1으로 활동할 때 사용하던 숙소의 제 방이었다.
“……꿈꾸나?”
심은찬이 대체 뭐지, 싶어서 중얼거리며 인상을 찡그릴 때였다.
“은찬아, 일어나.”
“……어?”
세 번 노크 후에 열린 문으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이 심은찬의 이름을 부르며 들어왔다.
같은 그룹의 맏형이자 리더였던 정민유였다.
“……형?!”
진짜 꿈이라도 꾸는 건가 싶었다. 그게 아니면 미친 걸까? 그것도 아니면 대체 설명이 되지 않았다. 정민유는 분명히 군 입대를 이유로 팀을 탈퇴했고 그 뒤로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있지?
마치 귀신을 보는 것 같이 변한 심은찬의 표정에 정민유가 순식간에 진지해졌다.
“은찬이 너 괜찮아? 표정이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뇨, 괜찮아요. ……근데, 형 맞아요? 형이 왜 여기 있어요?”
심은찬의 질문이 어이없는지 어리둥절해하던 정민유는 그가 장난치는 게 아니라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안색을 굳히고 재차 괜찮냐는 질문을 해 왔다.
마지막에 봤던 그 알림 창이 심은찬의 뇌리를 스쳤다.
그게 진짜였어?
그 순간을 기점으로 뻑뻑해서 돌아가지 않던 톱니바퀴에 기름칠을 한 것처럼 제대로 된 사고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은찬아? 너 병원 가 봐야 하는 거 아냐?”
“아……, 아뇨. 아뇨. 아뇨아뇨. 괜찮아요. 정신이 없어서, 괜찮아요. 저 잠깐만요.”
몇 번이나 아니라는 단어를 반복하는 심은찬에게 정민유는 다시 한번 확인하듯 정말이냐고 물었다. 심은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거울. 거울을 확인해 봐야 했다.
어지러운 책상의 한 귀퉁이에 있는 탁상 거울을 찾은 심은찬은 모든 움직임을 멈추었다. 손끝이 차가워지고 심장 소리가 온몸을 채우듯이 소리를 키워 갔다. 호흡을 멈춘 심은찬은 눈을 꼭 감은 채 어금니를 사리물고 거울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허.”
입술 끝이 떨렸다.
성형을 하기 전의 얼굴이 거울에 비치고 있었다.
심은찬은 거울을 보면서 제 얼굴을 더듬어 보았다. 자신의 기억 속에 있던, 그렇게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수술 전의 얼굴이었다. 코끝이 매워져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은찬아?”
정민유의 미심쩍어하는 목소리에 심은찬은 정신을 차리고 거울을 내려놓았다.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것처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정민유가 어색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어, 그래. 우리 은찬이가. 그렇지. 잘생겼지.”
아이고, 맙소사.
다른 사람의 눈에는 지금 자신의 행동이 어떻게 보였을지를 생각하니 귓가가 화끈 달아올랐다. 그런 쪽팔림도 쪽팔림이었지만 그것보다 정민유를 다시 봤다는 반가움이 그 감정을 서서히 압도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형. ……보고 싶었어요.”
와락 끌어안는 심은찬을 정민유는 밀어내지 않았다.
“……응, 그래. 밤사이에 못 봐서 나도 보고 싶었어.”
정민유는 얼떨떨해하는 기색이 완연하긴 했지만 노 자각 유죄 멘트를 하며 등허리를 토닥토닥해 주었다. 충동적으로 한 말이긴 하지만 진심이었다.
회사 사람들이나 다른 멤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연락처를 바꿔 버린 정민유를 처음에는 원망스럽게도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원망은 그리움으로 변했다.
리더이자 맏형인 정민유에게 많이 기대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자각했다. 지금 정민유의 나이는 23이다. 사회에 나가면 아직 막내 취급받을 나이라는 당연한 현실을 이 시기의 심은찬은 알지 못했다. 그 사실을 나중에 심은찬이 정민유의 나이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 후로 좀 더 짐을 나눠 들지 못했던 일을 많이 후회했었다.
몸을 뗀 심은찬을 보며 정민유가 쓰게 웃었다.
“어째 어제 술 마신 나보다 네가 더 상태가 안 좋냐. 정신 차리고 나와 봐. 애들이랑 씻고 얘기 좀 하자.”
그런 게 아니라고 정정하고 싶었으나 달리 설명할 길 역시 없었기에 심은찬은 잠자코 입을 다물고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은찬의 머리카락을 헤집듯이 슥슥 흐트러뜨린 정민유가 방 밖으로 나갔다. 달칵,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심은찬이 제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쥐며 침대에 털썩 앉았다.
그 기억이 정말이라니. 어이가 없고 당혹스러워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제 손으로 뺨을 후려친 심은찬의 입에서 다시 한번 ‘아이고’하는 신음이 흘렀다. 당연하지만, 아니 당연하다는 게 무섭게도, 아팠다.
“……뭐지, 진짜.”
한숨을 내쉬는 심은찬의 시야에 핸드폰이 들어왔다. 데뷔하고 한동안 핸드폰이 없이 지냈었다가 팀 막내인 이해민까지 성인이 되었을 때 매니저 모르게 멤버들끼리 단체로 가서 폰 개통을 했었다. 그렇다는 건…….
날짜를 확인한 심은찬은 미간을 찌푸렸다.
정민유가 술을 먹었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들었어야 했는데.
팀의 비주얼과 센터를 맡았던 이해민이 팀 탈퇴를 통보했던 바로 다음 날이었다.
B the 1의 팬 중 상당수가 이해민의 팬이었기에 그가 빠지는 건 타격이 컸다. 비단 커리어적인 면뿐만이 아니었다. 여태까지 동고동락하던 가족 같은 동료가 떠난 충격이 컸고 허탈감도 심했다. 그렇지만 심은찬은 자신이 아이돌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술을 마시는 멤버들 사이에서 그 유혹을 참고 버텼다. 혹여 무슨 실수라도 하면 구설수에 오르지 않을까 싶어 맨정신으로 멤버들을 챙길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유도 있었다.
이렇게까지 직업 정신이 투철했구나, 하는 감회가 새로워 헛웃음이 났다.
그런데 그건 그거고.
심은찬은 조금 전에 통증을 느꼈던 제 뺨을 문지르며 잠시간 이불을 노려보았다.
알림 창을 봤던 기억은 있다. 아이돌을 계속한다고 선택했던 것 역시도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되는데.”
진짜일 리가 없다. 다시 한번 살고 싶다고 아무리 바랐다고 해도 정말 과거로 돌아올 수 있을 리가 없다.
꿈을 꾼 게 아니고서야.
“……그래. 내가 꿈을 꿨나?”
심은찬의 눈이 답을 찾은 듯 크게 떠졌다. 제가 생각했지만 그럴싸했다. 그 모든 게 다 꿈이었던 거다. 성형이 망했던 것도 암울했던 나날들도 전부 다.
그러면 그 모든 게 설명이 가능했다. 심은찬 본인이 회귀를 했다는 것보다 그 모든 게 개꿈이라는 쪽이 훨씬 더 납득이 갔다.
그때였다.
빰빠밤!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심은찬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핸드폰 소리도 아니고 스피커에서 난 소리도 아니었다. 그러면 대체 어디에서 난 소리일……, 이게 뭐야.
눈앞에 선명하게 알림 창이 떠 있었다.
[다시 한번 아이돌로!
편한 길 놔두고 굳이 고생길을 고른 당신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같은 길을 반복하는 걸 선택한 회귀자. 어드밴티지 발동.
카드를 두 장 뽑아 주세요.
*꽝 없음.]
이게 무슨 가챠 돌리는 소리인가 하는 생각을 미처 다 끝내기도 전에 눈앞에 똑같은 무늬의 카드 열 장이 나타났다.
“……진짜라고?”
찢어질 듯 눈을 크게 뜬 심은찬은 다시 한번 제 뺨을 짝 소리가 나게 쳤다. 역시 아팠다.
이건 진짜다.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다.
아니, 그런데 왜 이 시점에? 회귀를 한다면 아이돌 데뷔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나? 적어도 이곳에 연습생으로 들어오기 전이라도. 왜 굳이 이 시기로?
하필이면 고르고 골라 이 시기로 회귀를 한다니. 말이 안 돼도 너무 안 됐다. 미래를 바꿀 가능성이 낮은 이때로 돌아올 이유는 대체 뭔가. 하다못해 이해민이 탈퇴하기 하루 전이라면 몰랐다. 탈퇴한 바로 다음 날이라니.
물밀듯이 밀려드는 타당하고 합리적인 의구심을 한쪽으로 치우며 허공에 뜬 알림 창을 쳐다보았다.
이걸 뽑아도 되는 건가, 의심스러웠다. 제 머리가 드디어 어떻게 된 게 아닐까. 이걸 뽑고 더 안 좋게 상황이 변하면 어떡하지 싶은 불안도 들었다.
상황 자체가 하도 말이 되지 않아 이해 가능한 범위를 넘어섰는지 멀미가 난 것처럼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세상 모든 일은 운으로 결정된다.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즐기는 사람은 운이 좋은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도 있잖은가. 그리고 심은찬은 운이 나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