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별들의 세계에서 살아 본 적이 있는가.
반짝거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던 연예계.
심은찬은 바로 그 일원 중의 하나였다.
일원이라고 하기에도 겸연쩍을 정도였고 그나마도 이제는 과거형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아.”
길게 내쉰 숨이 1월의 추운 밤공기에 섞여 들어갔다.
오늘은 1월 1일이다.
정확히 9년 전 바로 오늘은, 심은찬이 B the 1이라는 팀 이름의 6인조 아이돌로 데뷔를 한 날이었다.
* * *
익숙하지 않은 소금기를 머금은 공기를 다시 한번 들이마셨다. 오늘 새벽차를 타고 내려와 질리도록 바다만 쳐다봤다. 새로운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드는 모습에 마치 정신을 빼앗긴 듯 하염없이 쳐다봤다.
부모님에게는 따로 연락도 못 드렸다는 게 떠올랐다. 하기야 연락을 해서 또 뭐라고 할까. 마음이나 약해지지.
제대로 된 효도도 못 하고 결국 이렇게 됐다. 아이돌 하겠다고 말했을 때부터 그렇게 믿고 밀어주셨는데. 죄송스러움과 깊은 회한이 밀려왔다. 이제 와서 뭘 어떻게 고칠 수도 없었다. 형들은 아직 어린 나이라고, 그러니까 뭐든 다시 시작해 보자고 말해 주었지만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연습생으로 들어가 오로지 데뷔만 보고 달려왔으니까 말이다.
인생이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그냥 쓰레기도 아니고 재활용조차 불가능한 쓰레기.
손에 들린 비닐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걸음을 재촉하는 것처럼 심은찬의 등을 밀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심은찬의 얼굴을 보더니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심은찬은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고 몸을 움츠러뜨렸다. 설마 얼굴을 알아본 걸까 싶었던 탓이다. 그러나 그런 심은찬의 생각은 숙소로 돌아와 벽에 걸린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보며 곧바로 사라졌다.
면도를 하지 않아 비죽비죽 솟은 수염은 심은찬을 수상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 사람이 소리를 지르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국이었다.
이 얼굴에도 익숙해져야 할 텐데 그게 좀처럼 쉽지 않다고 생각한 심은찬은 제 얼굴을 손으로 문질렀다. 손끝에 거칠거칠한 수염이 만져졌다.
면도를 얼마나 안 했더라.
더듬어 떠올려 보려던 심은찬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고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그게 뭐가 중요하랴 싶었던 탓이다.
예전에는 솜털 하나도 잘 관리하려고 했었는데. 그런 자조 섞인 감상만이 나왔다.
싸구려 모텔 바닥에 앉아 사 온 소주를 꺼냈다.
그동안은 술을 먹는 것도 조심했었다. 혹시나 실수라도 하면 연예면이 아니라 사회면에 나올 테고 그런 건 절대 피해야 할 일이니까 말이다.
죽고 나면 연예면에 기사 한 줄이나 실릴까. 그 기사를 본 사람들은 ‘이 성형돌 죽었네. 불쌍하네.’ 하는 정도의 감상을 남기고 다른 페이지로 이동하겠지. 아니, 불쌍하다는 생각은 할까? 잘 죽었다는 악플이나 달리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한 심은찬의 입가에 조소가 떠올랐다.
비호감을 쌓는 것도 인지도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고 악플이라도 쓰는 건 더욱 노동이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심은찬은 그 정도로 유명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길 확률이 높았다. 리플도 별로 안 달릴 거다.
회의적으로 생각하며 냅다 술만 벌컥 마셨다. 술은 쓰다고 하던데 생각보다 물처럼 꿀떡꿀떡 잘 넘어간다 싶을 때였다. 소주도 별거 아니다 싶었는데 입을 떼자마자 목구멍에서 넘어오는 알코올 맛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으어어, 하고 입에서 소리가 나오는 건 덤이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왜 그렇게 술을 마시고 ‘캬’ 소리를 내나 싶었는데 이래서였구나 깨달음을 얻었다.
오만상을 찌푸리고 소주병을 내려다봤다. 배 속이 뜨끈해지고 열기가 솟아오르며 시야가 가물거리기 시작했다. 심은찬은 느릿한 움직임으로 소주를 내려다보았다. 아무튼 사 왔으니 다 마시긴 해야 할 텐데 더 이상 마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앞으로 두 병이 더 남았는데 어떡하지.
그리고 때를 맞춰 배에서 시끄럽게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음 정리를 하고 이곳으로 내려오면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사실이 떠올랐다. 그걸 깨닫고 나니 뇌가 달려 있지 않은 위장이 한층 더 격렬하게 배고픔을 호소했다.
무시를 하고 그냥 술이나 먹을까 싶었지만 그러기엔 너무나 너무나 배가 고팠다.
……그래.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는데.
뭘 먹을까 고민하던 심은찬의 머릿속에 체중 관리하던 습관을 버리지 못해 잘 먹지 않았던 치킨이 떠올랐다. 생각을 하는 것보다 심은찬의 손이 멋대로 배달 어플을 켜는 게 빨랐다.
따끈따끈 갓 튀긴 치킨을 받는 데까지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냄새가 정말로 기가 막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치킨 반 마리를 해치운 뒤였다.
“……허.”
제 모습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밖에 안 나왔다.
죽겠다고 왔으면서 이렇게 배가 고프다고 치킨을 냅다 시킨 것도 웃기고 그 치킨이 맛있다고 정신없이 뜯어 먹은 것도 웃겼다. 제 모습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처럼 멋있는 모습이길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정말 참 구질구질했다.
“……흐, 씨…….”
벌컥, 물 대신 술을 마시는데 눈에서 눈물이 왈칵 터졌다. 눈물만 터진 것도 아니고 콧물까지 같이 흘렀다. 손등으로 코를 훔치는 심은찬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하려면 하나만 하지 참 추접스러웠다. 마치 지금 제 처지처럼 말이다.
9년 전에 데뷔를 했을 때만 해도 제 모습이 이렇게 될 거라는 상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데뷔가 끝이 아니라는 말은 있었지만 그래도 설마 그렇게까지 어려울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
지난 9년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단순한 한 문장이지만, 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9년 전 6인조 그룹으로 시작했던 B the 1은 데뷔 3년 차에 4인조가 되었다. 그래도 남은 멤버만이라도 꾸려서 어떻게든 활동을 하기 위해서 열심히 했지만 쉽지 않았다. 4인조로 낸 앨범은 대차게 말아먹었고 포기하지 않을 것 같던 소속사에서도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앨범을 내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결국 심은찬에게 남은 거라곤 성형돌이라는 딱지와 심각한 우울증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방송국에서는 더 이상 불러 주지도 않는 심은찬이었지만 누튜브에서는 간혹 볼 수 있었다. <성형해서 망한 남돌> 같은 이름의 동영상에서 말이다.
흐, 하고 억눌린 것 같은 웃음이 잇새로 흘러나왔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 인생은.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데 왜 내 인생만 이따위로 굴러온 걸까. 너무 서러웠다. 억울했다.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라는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이렇게 회생 불가능한 인생이 될 정도로 막 살진 않았다. 방송국에서 한 번 쓰고 버릴 소품 취급받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웃는 얼굴로 열심히 했는데.
심은찬은 얼굴이 축축하다는 느낌을 받고는 감았던 눈을 떴다. 저도 모르게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가 아직 내용물이 남은 소주병을 넘어뜨린 모양이었다.
끅, 끅 거리는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더 이상 살아서 뭐 하냐 싶어 독하게 마음먹고 바다까지 왔다. 그러나 결국 술에 취해서 제 몸도 못 가누고 바닥에서 빌빌대며 기고 있는 게 제 인생이 어떤 모습인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인생을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이 모든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정말 잘할 수 있을 텐데.
후회와 미련으로 점철된 생각은 좀처럼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연신 욕설을 내뱉던 심은찬의 시야가 어느 순간 어두워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까맣게 된 머릿속에 빠바밤 하는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홀로그램처럼 알림 창이 떠올랐다.
[회귀자로 선택받은 당신! 당신이 선택해야 할 시간!
▷아이돌을 계속한다.
▷로또를 산다.
▷주식에 투자한다.]
……이게 뭐야?
무슨 선택지가 나타났다.
이걸……, 선택하라고?
심은찬은 가물거리는 눈을 바로 뜨려 노력했다.
정말 술이 취하긴 했구나. 환각도 보고. 술 취한 뇌는 특유의 태평스러움으로 상황에 대응했다. 알림 창이 뜬다는 자체에 대한 놀라움은 오래가지 않고 관심은 다른 길로 빠져들었다.
로또나 주식을 하면 뭘 하나. 당첨 번호를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주식은 잘못하면 패가망신하는 거 아닌가. 밸런스가 너무 망가진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알림 창이 바뀌었다.
[회귀자로 선택받은 당신! 당신이 선택해야 할 시간!
▷아이돌을 계속한다.
▷로또를 산다.(1등 당첨 번호 안내)
▷주식에 투자한다.(2년치 주식 정보 안내)]
마치 심은찬의 생각에 반응하는 것 같았다. 꿈은 원래 말이 안 된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뭐가 이렇게 엉성한가 싶어 어이가 없었다.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심은찬은 달콤한 울림을 가진 말을 읊조리며 숨을 들이마셨다.
그런 가정을 안 해 본 게 아니다. 정말로 질릴 만큼 해 봤다.
그때 이랬으면. 저랬으면. 그랬더라면 뭔가 좀 달라졌을까. 그런 가정이 마음을 얼마나 황폐하게 하는지 알고 있음에도 멈출 수가 없었다. 심은찬의 육신은 현재를 살고 있었지만 마음은 항상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한번 삐끗하게 어긋난 각도는 두 번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심은찬의 삶은 어그러져 갔다.
심은찬은 알림 창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게 실제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로또 1등도, 주식 정보도 너무 탐났다. 일확천금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심은찬은 제게 남은 미련을 털어 버리기 어려웠다.
다시 한번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다면 좀 더 잘할 자신이 있었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있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어그러진 제 삶을 바로잡을 기회를 가지고 싶었다. 한번 자신이 되고자 했던 아이돌로서 성공해 보고 싶었다.
삼세번까지는 아니라도 단 한 번으로 끝이라니. 그건 너무했다.
그 한 번뿐인 인생을 이렇게 끝내기는 싫었다.
과거로 돌아가 다시 한번 인생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한다면? 그렇다면 그때는 어떤 결과가 난다고 해도 다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망설임 없이 ‘아이돌을 계속한다.’를 선택했다.
그러자 화려한 음악이 다시 한번 들려오며 알림 창은 픽셀이 깨지는 것처럼 천천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