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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76화 (76/78)

76화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상대방 동의 없이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은 범죄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요즘 카메라는 인터넷 해킹에 취약하기까지 했다.

―유성이 형 성격에 카메라를 설치하진 않았을 거야. 만약 인터넷 연결이 안 된 거라고 치자. 그럼 집에 자주 와서 메모리를 바꿔야 하잖아? 그래야 확인할 수 있으니까.

“그거야…….”

멘탈이 나가 우다다 쏟아 낸 한별의 말에도 태하는 차근차근 이유를 덧붙였다.

―어느 쪽이든 앞뒤가 안 맞아. 최근에 유성이 형이 집에 온 적 있어?

없다. 태하의 물음에 한별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한별이 찾아간 경우는 많았지만 유성은 지금 입원과 퇴원, 현 소속사의 마지막 앨범 컴백 준비로 한별에게 연락할 시간조차 없을 만큼 바빴다.

그런 상황에 몰래 집에 설치해 둔 카메라의 메모리를 교체해 가며 한별의 주변 상황을 감시한다? 어느 방향으로 생각해도 말이 안 됐다.

―뭣보다 집에 가장 많이 있는 건 한별이 너니까, 뭔가 달라진 게 있으면 가장 먼저 알아챘을 거야.

한별은 결국 태하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데뷔하기 전엔 집을 나갔고, 데뷔 후엔 바빠서 집에 들른 날이 손에 꼽는다. 무엇보다 미심쩍은 구석이 있을지언정 유성은 범죄와 가까운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한별은 생각을 정리한 후, 유성이 예전에 사용했던 교과서나 공책 같은 것들을 펼쳐 보고 확인한 것들은 다시 박스 안에 정리해 넣었다.

수많은 문제집은 끝까지 전부 풀려 있었다. 언제나 공부를 잘했던 유성이기에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이야…… 진짜 무섭다.”

―왜? 뭐가 무서운데?

“아니…… 형 문제집 보는데, 전부 동그라미네.”

―아…….

“이게 말이 되는 건가?”

한별이 허탈한 듯 중얼거렸다. 틀린 문제가 없어, 오히려 풀기 전보다 깔끔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지금 펼친 건 수학 문제집이었다. 답만 툭 적혀 있는 문제집이 이상해 주변을 보니 노트가 있었다. 문제는 노트에 풀고 문제집엔 답을 적은 것 같았다.

‘그래, 그냥 천재일 수는 없겠지.’

유성도 잘 풀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노트를 펼쳐 수많은 공식을 확인한 한별은 자신의 생각이 맞는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Pick, My Dol!] 출연 내내 잠은 무덤에서 충분히 잔다는 듯 밤새 연습하던 유성이었다. 이는 먼저 탈락하거나 데뷔 조에 들지 못했던 출연자들이 자신의 SNS나 인터뷰에서 여러 번 밝혀, 많이 알려진 사실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살이 빠지던 유성의 모습을 떠올린 한별이 한숨을 내쉬었다.

―뭐 있어?

“아니, 형이 푼 문제집이랑 노트를 보는데……. 하, 이래서 천재는 어려워. 연도 보니까 픽마돌 나가기 직전인 거 같은데, 수능 문제집을 풀었었네…….”

유성은 왜 가뜩이나 없는 시간을 내어 수능 공부를 했던 걸까?

유성이 노트에 푼 계산식을 보기만 해도 공부가 되었을 것 같았다. 쉬운 문제들은 따로 설명이 없지만, 어려운 문제는 최대한 쉽게 계산이 되어 있어서 픽 웃음이 나왔다.

“무슨 과외 준비하는 사람 노트 같아. 최대한 쉽게 풀어 보려고 한 문제를 여러 번 푼 흔적도 있고.”

―……여러 번?

노트에 적힌 유성의 글씨를 보며 웃던 한별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잠깐, 여러 번? 말하고 보니 어딘가 이상했다.

“…….”

한별은 시선을 내려 풀이 노트에 적힌 한 문제를 바라보았다.

문제집 89페이지, 19번 문제.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알리듯 문제집의 번호 위엔 별이 세 개나 붙어 있었다. 노트에도 문제가 적혀 있었다. OO 출판사, 문제집 이름과 페이지, 심지어 번호까지 적혔다.

여기까진 푼 문제집이 많으니 공부를 위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억지로 이해하려면 할 수는 있다. 그런데, 노트엔 이상할 정도로 한 문제당 풀이가 여러 개였다.

첫 번째 풀이는 한별이 보기에도 어떻게 이런 답이 나온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미 답을 알고, 그 답에 맞춰 풀이한 느낌이었다.

두 번째 풀이는 첫 번째보다 조금 쉬워졌지만, 여전히 저 공식이 왜 그 부분에서 적용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세 번째 풀이는 풀이법도 쉽고, 보면 이해할 수 있게 주석까지 달려 있었다.

“…….”

노트를 보면 볼수록 한별의 낯이 굳어 갔다.

이건 마치…… 누군가를 이해시키기 위해 공부한 흔적 같지 않은가.

* * *

한별에게 직접 페로몬을 씌운 것, 그리고 영상 증거와 태하라는 증인 덕에 선배는 학교에 나올 수 없었다.

물론 상대는 한별이 먼저 저를 꼬드겼다느니, 그만큼 페로몬을 묻혔을 때 아무 말을 안 한 건 동의나 다름없다느니 하는 헛소리를 늘어놓았긴 했다.

하지만 그 변명은 한별이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학과 사무실에 미리 제출했었던 출석 인정 사유서와 ‘히트 사이클 시작 전 억제제 사용으로 인한 페로몬 둔감증’이라는 병원 진단서를 보내자마자 무산됐다.

문제는 스토킹으로 처벌하기엔 이렇다 할 증거가 없고, 상대가 열성 알파인 탓에 우성 오메가인 한별에겐 페로몬 영향이 적다는 이유로 상대 측에서 합의 요청이 계속 온다는 것이다.

“그런가요?”

“응……. 미안하다.”

“아닙니다.”

더 억울한 건 실제로 큰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해괴한 이유로 교에서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양쪽이 성인이었다. 상대가 유치장으로 끌려갔다거나 한별에게 접근 금지 처분이 내려졌다거나 하는 상황이 아니니, 학교에서도 어떻게 조치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한별은 합의할 생각이 조금도 없지만, 놀랍게도 확실한 피해가 없는 지금은 법적인 처벌이 쉽지 않기에 상대는 학교의 징계 사유에 들어가지 않았다.

가해자의 근신도, 정학도, 제적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한별은 간혹 상대를 학교에서 마주치기까지 했다.

물론, 이미 소문이 퍼져 이야기를 들은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상대를 해당 팀원을 제외시켰다.

눈이 동그래진 한별이 입을 열었다.

“……그 2학년 재즈 팀도?”

“응. 그냥 보컬 제외하고 무대 올라갈 거래.”

밴드에서 보컬은 그 팀의 얼굴이 된다. 무대의 한가운데,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곳에 서서 모든 시선을 받으니까.

그런 무대를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과 할 수 없다는 의견이 모아져, 그 선배는 무대와 관련된 수업 점수가 바닥을 칠 예정이었다.

“……곤란한데.”

“좀 그렇지?”

“조금이 아니고, 많이.”

문제는 이게 한별이 주도한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주변에 부탁한 것도 아니고, 그런 모습들을 원한 것도 아니다. 퍼진 이야기를 듣고 난색을 내비친 팀들이 해당 선배를 팀에서 제외한 것이지만, 결국 한별 때문이라는 이유가 붙어 버렸다.

피해를 입은 건 맞지만, 이건 한별과 그 선배 사이에 직접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성적이나 교우 관계 등에 영향을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가장 어려운 법이었다.

지금은 한별이 학생들 사이에서 ‘피해자’로 여겨지고 있으니 모두가 한별의 편인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소문이 조금만 와전되어도 되레 한별이 한순간에 나쁜 사람으로 전락하기 쉬웠다.

“가장 좋은 소문이 뭘까?”

“……한별아, 좋은 건 아니지.”

“그래. 나 매몰하기 가장 좋은 소문.”

“그런―.”

한별의 질문에 그런 건 없다고 말하고 싶었던 건지, 입을 달싹이던 태하가 말을 멈췄다. 차마 거짓을 말할 순 없다는 듯이.

매번 있었던 일이다. 처음 만난 때부터 지금까지 태하가 한별을 잘 알게 된 만큼, 한별 역시 태하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

태하에게 서글픈 것은 한별이 질문을 던진 순간부터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일엔 자신을 믿지 않아 줬으면 하는데.

태하는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나쁜 가정들이 맞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입 밖으로는 아니라며 내뱉을 말을 골랐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진 않아.”

“그럼 소수가 벌일 일을 한번 생각해 볼까?”

태하의 눈동자가 한별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우측 아래로 떨어졌다.

한별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그리고, 나쁜 상황은 미리 대비하는 편이 좋잖아?”

한별은 태하가 자신에게 약해서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차마 한숨도 내쉬지 못하던 태하는 결국 한별의 말 없는 보챔에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처음은 상대의 잘못이 아닌데, 과잉 반응을 했다는 식으로 갈 거야.”

하지만 그건 이미 증거가 남아 있다. 태하가 녹음이 아니라, 영상을 촬영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상대가 실습실을 채운 페로몬은 양이 제법 많았다. 눈엔 보이지 않지만, 카메라엔 약간의 일렁임이 담겼다. 증거가 있으니 이는 충분히 뒤집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다음은 쌍방으로 하겠지.”

문제는 카메라에 찍힌 일렁임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없는 점이었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은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말을 얹기 시작하고, 명백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선이 허물어질 확률이 생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한별을 매도하려 들지 않겠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다. 악한 소문에 흐름을 맡기는 사람들은 반드시 살을 붙인다. 그리고 피해자를 지치게 만드는 것은 그 살이 붙은 소문들이었다.

“예를 들면?”

“……원래는 사귀고 있었다든가, 네가 먼저 페로몬을 내서 유혹했다는 식으로.”

정황을 모르는 사람들이 살을 붙이기 딱 좋은 내용이었다. 꼭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남의 연애에 관심이 많으니까.

한별이 씩 미소를 짓자, 굳어 있던 태하가 의아한 듯 눈을 끔뻑였다.

“그런 소문은 괜찮네. 애초에 퍼지기 힘들고.”

“…….”

이어진 한별의 말에 눈을 마주쳤던 태하가 얼마 지나지 않아 뜻을 알아챈 듯 마주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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