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72화 (72/78)

72화

모회사의 지원으로 블루 라임의 건물이 된 이곳은 외부 인원은 들어오기 어려웠고, 내부 직원도 쉬이 들어오기 힘들 정도로 보안이 철저했다. 하지만 한별은 채널(Cha.N) 멤버의 동생이자 자컨 스태프를 했다는 이력 때문인지 수월하게 통과됐다.

공사는 끝났지만 기기가 전부 갖춰지지 않았다는 작업실은 작곡을 전공하는 한별이 보기엔 꿈의 공간이었다.

“와, 미친. 뭐야, 진짜 2,000만 원 스피커네?”

“그거, 단영이 형이 갖다 놨어.”

한별이 눈을 크게 뜬 채 기기들을 둘러보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유성이 입을 열었다.

“가끔 작업하러 오는 거 어때?”

“아니, 그건 아냐.”

유성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별이 무표정하게 변했다.

“왜에―?”

‘역시 형 새끼가 나를 ×되게 만들 생각이 맞나 보다.’

정색한 한별의 표정을 보고서도 유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은색으로 염색한 머리칼이 찰랑거렸다.

동생한테 ‘전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표정 짓지 마라. 한별이 미간을 좁히자, 유성이 표정을 평소대로 바꾸었다.

“내 동생은 너무 차가워…….”

“시끄러워. 오메가를 소속사에 들여서 어쩌자는 거야.”

“한별이 네가 오메가라서 부르는 게 아닌 거 알잖아.”

“블루 라임에 들어올 생각 없어.”

한동안 고민했던 소속과 관련된 문제였다. 유성은 싱 코스모 너튜브 채널의 소속을 블루 라임에 올리고 싶어 했지만, 한별은 원치 않았다.

또다시 제가 생각한 계획이 어그러졌는지 유성의 표정이 묘해졌다.

“왜?”

유성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한별에게 물었다.

“가장 좋은 위치라고 생각했는데.”

“형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한별이 구경하던 녹음실의 문을 닫으며 되물었다. 어차피 지나다니거나 대화를 듣는 사람은 없었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유성이나 멤버들도 모르는 사람이 주변에 있을 때면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녹음하는 경우가 꽤 잦았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한별의 행동을 빤히 바라보던 유성이 입을 열었다.

“자리가 꽤 좋잖아? 대기업 소속이 되는 것도 있고, 법적 문제가 생겼을 때 대응하기도 좋고.”

“대기업 직계니까?”

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레이블은 참 무서운 곳이었다. 지금 소속사는 회사의 대표가 전부 결정할 권한이 없었다. 소속사의 모기업은 한 소속사에만 투자하지 않았다. 꽤 여러 곳에 투자하는 거대 기업이었다.

그 탓에 모기업은 투자를 받은 소속사들끼리의 관계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돈 잘 벌어 오는 소속사라면 충분히 투자하고, 아니면 투자를 줄인다는 간단한 시장 논리로 임했다.

하지만 StarV는 Vnet의 산하이기 때문에 모기업에서 Vnet으로, 그리고 소속사로 내려오는 케이스였다. 모기업과 Vnet까지 이중으로 신경 써야 했다.

모기업에서 곧장 투자 받은 여타 소속사들과는 달리, starV는 어엿한 소속사라기 보단 Vnet이 가진 하나의 레이블로 취급 받은 것이다.

하지만 블루 라임은 위치로만 따지면 StarV가 아니라 모기업에게 직접 투자 받은 Vnet과 동급이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구워삶았는진 모르겠지만, 자본이 채널(Cha.N)에게 첫 번째로 투자되는 구조였다.

그런 회사에 싱 코스모가 합류하면 한별과 태하는 좋다. 아주 당연히…….

하지만, 한별은 그 ‘당연히’라는 단어가 주는 안도감과 동시에 피어오르는 약간의 거리낌에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위치인 건 나도 알아.”

“그런데 왜?”

“……근데 그 좋은 위치, 내가 원했던 위치던가?”

한별이 문에 등을 기대고 삐딱한 표정으로 물었다. 유성은 작업실 의자에 앉아 그런 한별과 시선을 맞췄다.

유성의 표정은 평소와 같았으나, 눈빛만큼은 평소보다 더 깊은 빛을 띠고 있었다. 생각이 복잡해진 모습이었다.

한별 역시 그런 유성의 눈을 피하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내가 그런 말을 형한테 했었어?”

“……아니.”

“형은 내가 원하는 걸 하라고 했지?”

“응.”

한별이 미소를 지었다. 곧 한별이 어떤 말을 할지 알아챈 듯 유성이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유성이 눈을 뜰 때까지 기다린 한별이 말했다.

“도와줘서 고마워, 형.”

단호하지만 확실한 거절이었다. 유성은 잠시 눈을 굴리는 듯하다 포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한별아.”

“응.”

“혹시 채널 멤버들이랑 같이 일하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건 안 들어?”

유성의 말에 한별은 어깨를 으쓱였다.

“언젠가는 하고 싶겠지. 내가 프로 작곡가가 되면.”

“왜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해?”

“솔직히 말할게. 나도 아마추어 치곤 나름 실력이 준수하다곤 생각해.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마추어 선에서지 프로는 아니야. 난 단영이 형이랑 예찬이 형의 노래를 이길 수가 없어.”

“……이길 수도 있잖아. 잘하니까.”

“정말? 아니, 이길 수 있다고 하자. 근데, 내가 굳이?”

이긴다 해도 메리트가 없었다. 한별에게도 없었지만, 채널(Cha.N)에겐 더욱 없었다.

‘자체 프로듀싱 그룹’이라는 이름값은 프로듀싱을 하는 멤버들이 존재하고 계속해서 작업할 때 비로소 빛이 난다. 그런데, 그 프로듀싱을 한별이 빼앗아 갈 순 없지 않은가.

물론, 곡 작업에 참여하는 건 가능하다. 한 사람이 한 곡을 책임져 만들고 가수에게 주던 옛날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요즘은 대부분 한 곡에 여러 사람이 참여했다.

공동 작곡, 편곡이 대세이니만큼 채널(Cha.N)의 곡 역시 공동 작곡, 편곡자로 올라간 사람이 꽤 있었다.

곡의 뼈대를 만들고 분위기를 세우는 것은 주로 단영과 예찬이지만, 그 외에도 참여하는 작곡가들이 있단 뜻이다.

“형. 내가 블루 라임에 들어온다고 치자.”

너튜버로서 회사에 들어간다면 당장은 지금처럼 원하는 곡을 편곡하고, 만들고, 업로드 하는 것만 해도 될 것이다.

“근데, 그걸로 끝일까? 지금처럼 내가 태하랑 기성곡 편곡해서 올리고, 내 곡을 작업해서 올려. 그걸로 끝이냐고.”

“…….”

“레이블 안에 신인은 아니더라도 작곡가가 있는데 작업을 도와달라, 혹은 참여할 생각 없냐, 하고 묻지 않을 자신이 있어?”

한별은 잠시 단영을 떠올렸다.

올해 초, 단영은 한별에게 굉장한 관심을 보였다. 유성과 형제이니만큼 한별도 노래를 잘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고, 설립할 레이블의 신인 그룹으로 넣기 위해서.

하지만 이는 한별의 처참한 실력이 드러나며 완전히 무산됐는데, 이후 단영은 또 새로운 모습을 보였다. 또다시 한별에게 공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노래 실력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런 눈빛을 보내는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단영은 지금 새로운 피를 원하는 것이다.

한별은 작곡가로서 꽤 오랜 기간 공부했기에 나이에 비해서 탄탄한 실력과 기본기를 가지고 있다. 입시를 위해서지만 한차례 한별과 같이 작업해 본 경험도 있고. 그때 단영의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았다.

“형이 그럴 마음 없다고 해도 단영이 형이나 예찬이 형이 안 그럴 거라는 보장은? 내가 계약했을 때, 내게 작곡과 편곡 작업을 제안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넣는 게 가능할까?”

잠시 생각하던 유성이 고개를 저었다.

한별의 친형이 아니라 채널(Cha.N)의 멤버이자 설립 절차가 거의 마무리된 블루 라임의 대주주 중 하나가 될 유성의 입장이었다. 실력 있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요청하지 않을 가능성은 0퍼센트에 수렴했다.

“형.”

“……응.”

“나는 내 자리에서 열심히 해 볼게. 내가 해 보고 싶은 대로 해 볼게.”

유성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뿐이었다.

한별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는 유성을 확인한 후, 작업실의 문을 열었다.

열었던 문을 닫고 나오진 않았다. 아직 유성이 팔에 힘을 과하게 주어서는 안 되니까.

* * *

“형한텐 그렇게 말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영상에 가사 자막을 넣던 한별이 중얼거리자, 영상을 같이 검수하던 태하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준비된 곳은 꺼려진다며?”

“응.”

묘한 거스러미는 갈수록 크기를 키웠다.

유성의 언행, 그리고 펼쳐지는 상황에서 한별은 그 거스러미의 실체를 확인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제안을 거절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럼,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자. 지금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들어갈 수도 있지.”

“그거야…….”

“아몬드TV나 마인박스에 평생 계약 조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계약 종료 후에 다른 곳으로 이적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괜찮아. 당장 들어가지 않아도 되니까, 천천히 생각하자.”

한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손을 움직였다. 타닥거리는 키보드 소리와 함께 영상에 가사가 한두 줄씩 적혔다.

이전 커버 영상들엔 굳이 가사를 넣지 않았다. 노래 실력과 태하의 얼굴이 보일 듯 말 듯 찍힌 영상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영상은 한별의 자작곡이었기 때문에 가사 작업이 필요했다. 또한 4번째 영상은 기성곡으로 올라간 상태였다.

모리

모르는 곡인데 씽이 내게 엄청난 곡을 선물해 줬다... 나 오늘도 씽 목소리에 천국감

한국에선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곡이었다.

유명하거나 나름 알려진 곡의 너튜브 조회 수는 대부분이 몇백만 단위를 넘어 몇천만, 억 단위인 데 비해 이 곡은 막 80만 조회 수를 간신히 넘긴 곡이었다.

너튜브의 알고리즘에게 배신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걱정하고 불안해하기엔 노래가 너무 잘 나왔다.

한별은 자신의 편곡과 태하의 실력, 그리고 아주 살짝 얼굴을 보여 주듯 조금 더 방향을 틀어 찍은 영상을 믿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태하의 외모가 주는 위력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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