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한별은 태하를 잠시 보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방송에선 상승세인 너튜브를 같이 끼워 넣고 싶을 수밖에 없거든.”
당연한 사실이었다.
어지간히 유명한 사람이 너튜브를 시작한 게 아닌 이상, 대부분 1만이라는 숫자를 모으기까지 몇 달 혹은 연 단위로도 부족했다. 그래서 한별 역시 이게 맞나 싶어서 당황했던 것이고.
게다가 최근 너튜버들의 방송 진출만 하더라도 그 수가 엄청났다. 먹방 유튜버와 함께 돌아다니는 식도락 프로그램이라든가, 지식 정보 유튜버가 패널로 나오는 순위 정보 프로그램이라든가.
그러니만큼 방송사 입장에선 연예인 동생이 시작한 너튜브 채널이라는 것도 있지만, 혹여나 나중에 이름을 알리게 되어 자료 화면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거나 자신들의 프로그램에 너튜버 패널로 데려올 확률도 있으니 선점해 두려는 것이다.
“사실 방송에 나온다고 전부 뜨는 것도 아니고,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아니지만…….”
비교하자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리고 투자는 한 군데에만 하는 거 아니라고 했다.
한별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최대한 막아 줘.”
“그래도 방송 올라가면 구독자 더 빨리 늘 텐데?”
그건 사실이었다. 블루 라임에 적을 올릴 것인지도 정하지 않았고, 아직 생각한 회사도 없었다. 그러니 더 빠르게 늘릴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문제가 있어서 안 돼.”
“뭐가 문젠데?”
“우리 얼굴 공개 안 했어. 아직 할 생각 없고. 지금은 알려져도 실력 위주로 알려지는 게 맞아.”
“그야 그렇지만…….”
얼굴은 나중 일이었다. 한별은 자신의 외모는 대충 넘어가더라도 태하의 얼굴이 벌써 밝혀지는 건 원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더 궁금해하고 안달 낼 때 공개하는 것이 가장 좋은 홍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지금은 더 참기로 했다.
“그래도 방송 나오면 다 알게 될 텐데?”
“태하 버릇 때문에요?”
“응.”
단영의 말에 한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그 정도는.”
씩 올라간 입꼬리에 태하와 유성, 단영이 한별을 빤히 바라보다 잠시 헛기침했다.
“……? 다들 왜 그래요. 물 필요해요?”
“……아냐.”
왜 이런담?
한별은 어깨를 으쓱였다.
* * *
단영의 물음은 당연했다.
스캔들 해결을 위해 최대한 빠르게 촬영한 방송이었다. 이후 방송이 나가자마자 ‘싱 코스모’의 홍보와 관련된 것은 전혀 없었음에도 커뮤니티나 SNS가 꽤 시끌시끌했다.
[New!] 제목: 코스모=칠성이 아니라니까
작성자: ㅇㅇ
너튜브 각 잡은 애들이 방송 탔는데 자기 채널 홍보 안 했겠냐고
내가 작가여도 너튜브 운영 중이라고 자막으로 박으면 나중에 너튜브 클립에 어그로 쌉가능인데
[New!] 제목: 코스모=최행성 아니라는 녀석들 봐라
작성자: ㅇㅇ
1. 씽=행성 친구인 거 버릇으로 확실하다는 의견
2. 행성 친구와 행성인 오랜 친구
3. 씽이랑 코스모도 소개에 ‘함께 음악하는 친구’라고 함
4. 코스모 사진이 행성이랑 너무도 닮음
ㅇㅈ?
+ 댓글 쌈판났네
내글에서 싸우지말고 ㄹㅇㅋㅋ만 치라고 좀
글도 글이었지만, 첫 영상엔 주접 댓글이 가득했던 분위기와 다르게 두 번째 영상은 온갖 이야기로 난리였다.
최유성여친
한별아, 진짜 한별이니?
ㅇㅇ
데뷔한다더니 안하고 여기있네 성공할 것 같았나ㅋㅋㅋㅋㅋㅋ
ㅗㅗㅗ
형 코인 ㅅㄱ
Signal_USA_Fan
Wow! Cha.N Bring me here!
가관이었다.
계속해서 올라오는 댓글을 보던 한별과 태하는 핸드폰의 알람을 껐다. 구독자 수 역시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었다.
“장난 아니네……. 그래도 생각한 대로 해도 될까?”
“당연하지.”
한별의 말에 태하가 미소 지으며 끄덕였다.
대응은 간단했다. 작년 말, 시끄러웠을 때와 똑같이 행동하기로. 다음 영상을 올릴 때까지 철저하게 무대응으로 일관하기로 한 것이다.
한별이 정말 유성의 이름값을 빌려 너튜브를 운영하려 했다면 채널(Cha.N)의 프로그램 촬영 때도 얼굴을 들이밀었을 것이다.
아이돌 자컨 중에서도 너튜버들이 출연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때 슬쩍 이름을 내밀어도 됐다. 도움을 받아 너튜브를 빠르게 키울 생각이었다면 지금 이 시끄러움을 기회로 여겨 얼굴을 밝히고, 여기저기 출현하기도 했겠지.
하지만, 그건 한별이 바라는 게 아니었다.
“다음 곡은 대놓고 채널 노래를 해 볼까?”
“댓글 창 더 시끄러워질 텐데?”
“뭐, 어때.”
한별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화제성은 이럴 때 써먹어야지.”
대응은 하지 않지만, 화제성은 이용하겠다는 말에 태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형 이름, 안 쓰려는 거 아니었어?”
“응.”
“근데, 왜…….”
“우리 너튜브 채널이 나랑 네 이름으로 되어 있지 않으니까.”
사적으론 친형이자 형의 멤버들이다. 하지만 채널(Cha.N)은 대한민국의 대표 아이돌이기에 커버 영상으로 꽤 많은 유입을 얻을 수 있는 소재였다. 언젠가는 채널(Cha.N)의 노래 역시 커버할 생각이기도 했고.
‘한별과 태하의 너튜브 채널’에는 채널(Cha.N)의 이름값이 필요하지 않지만, ‘싱 코스모의 활동’에는 이용할 수 있다는 논지였다.
무엇보다 한별은 태하를 믿었다. ‘코스모’인 한별이 형의 노래를 부른다는 내용이 아니라, 화제성 높은 곡을 소화해 낸 ‘싱 코스모’의 이야기가 더 흘러나오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잠시 생각하듯 눈을 감았던 한별이 태하를 빤히 바라보았다.
“태하야. 너, 아직 춤 잘 추지?”
“응?
한별이 눈을 반짝이는 걸 바라보던 태하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첫 곡은 아이돌 노래를 편곡했고, 이번에 올린 곡은 유명 팝송을 편곡했다. 한국어 버전도 있는 유명 애니메이션 OST였는데, 태하의 영어 발음이 좋다는 이유로 선정되었다.
두 번째 영상이 올라가자, 역시나 노래에 대한 화제성보다 방송에 나왔던 한별과 태하에 관련된 반응들만 가득했다.
구태여 관련 댓글들을 삭제하진 않았다. 유명인 동생이고, 너튜브 채널을 운영하곤 있으나 어쨌든 이름 없는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두 사람이었다. 기실 해명이나 설명이 필요할 만큼 이름값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첫 영상을 보고 채널 구독을 눌러 다음 영상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두 번째 영상이 올라오자 축포를 터뜨렸다.
그리고 첫 영상과 마찬가지로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섬네일 역시 저번처럼 뒤에서 찍었다는 점에서 주접을 떨기 좋은 판이 벌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커버 영상은 원곡의 분위기에 맞춰 입은 옷이 잘 어울린다는 것, 그리고 노래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실뱌
우리 씽, 오늘도 너의 목소리가 있어 설탕이 필요가 없구나...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온갖 어그로성 댓글과 욕, 루머 등이 혼재되었고 이때 첫 영상으로 유입되었던 사람들의 진가가 발휘됐다.
무지무지단무지
씨× 우리가 알아서 노래 잘 듣고 있는데 왜 분탕질이야?
그렇다.
구독자가 적은, 소위 ‘하꼬’ 너튜버를 찾아와 구독을 누르는 이들은 ‘신인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과 진배없었다.
팬이 적기에 댓글 분위기를 만들고, 너튜버가 영상 제작에 힘쓰도록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는 점이 같았다.
태하와 한별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미 싱 코스모의 오픈 채팅 방까지 만들어 열심히 영업을 시작한 무리도 있었다.
물론 아이돌 팬과 완벽히 일치하진 않지만, 덕질의 대상을 위해 전투력이 불탄다는 것은 다르지 않았다.
싱 코스모를 지키기 위해 키보드에 손을 올리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낡고헤진 휴지
유성 동생이고 뭐고 씨× 뭔 상관인데? 씽이 노래로 니들한테 욕을 했냐? 코스모가 편곡으로 니들 돈 떼먹었어?
특히, 첫 번째 영상과 두 번째 영상의 분위기 차이가 극명했다.
첫 영상은 어떻게든 원래의 분위기를 이어 가기 위해 주접 댓글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마치, 욕이나 시끄러운 댓글을 싱과 코스모에게 보여 주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 영상은 사방에서 싸움이 터졌다. 댓글 아래 대댓글 역시 최소 10개, 많게는 300개가 넘어갔다.
이쯤 됐을 때, 한별은 이 싸움이 오래가지 못하리라는 걸 알아챘다.
원래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욕먹는 당사자가 과하게 반응해야 즐거움을 얻는 것이 악플러 아니던가.
욕한 상대가 힘들어하는 반응을 보이면 그들에겐 업계 포상이고, 법적 대응한다고 하면 빠르게 삭제 각을 잡는다.
하지만 너튜브 채널 주인들은 시간이 지나도 조용하고, 댓글만 시끄러우니 악플러들이 오히려 힘이 풀리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반박에 재반박을 하다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예민해지고 날카로운 말, 그리고 심한 말들이 오가기 마련이었다.
그쯤 되면 서로가 서로에게 법적 대응이 가능해지니, 조금 격해지기 시작하면 욕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댓글을 삭제해야 했다.
하여 한별과 태하는 댓글을 막지 않고 1주 후에 세 번째 영상을 올렸다. 2주 텀이었던 전과는 다르게 말이다.
소희
헐 미쳤네
뱌늬뱌늬
뭐야 이런 곡도 커버해 줘?ㅠㅠ 편곡도 청량 위주로 해 주는 줄 알았지!
니나노
아ㅠㅠ 미쳤다ㅠㅠㅠㅠㅠㅠ 목소리 긁는 거 개미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