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어쩌면 좋지, 진짜?”
증거는 확실했다. 하지만, 아니라고 해도 대중은 안 믿을 것 같다.
애초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인터넷 세상에서 저 럽스타그램이나 다름없는 내용이 사실은 동생과 한 대화라는 걸 그 누가 얼마나 믿을까?
한별이 포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씨×…… 솔직히 내가 안티라고 해도, 동생이랑 사귄다는 말을 퍼뜨리겠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내용을 전국적으로 퍼뜨려서 사람 하나 조지는 건 21세기에선 손쉬운 일이었다.
“차라리 진짜 사랑을 하라고…….”
한별의 중얼거림에 고민하던 태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건 해명하기 쉽지 않을까? 진짜 연애보단 훨씬 나을 것 같은데?”
“어떤 방법으로? 막말로, 나랑 형이랑 이상하게 소문나면 그건 또 어떻게 해명해? 이번 건은 최유성이 누구랑 연애하지 않는 이상 무리잖아.”
“아니, 반대로.”
“반대?”
“꼭 유성이 형이 연애할 필요는 없잖아?”
“……뭐?”
“써먹자고, 그거.”
태하의 말에 한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 * *
“그래서 그렇게 됐다.”
“……진짜 미친놈인가?”
한별은 유성의 멱살을 잡았다.
“왜 내가 거기에 끌려 들어가야 하는 건데?”
“미안…….”
결론적으로 유성의 비공개 SNS는 유성의 치밀한 계획임이 드러났다. 물론, 전국적으로 드러난 건 아니고 한별과 태하만 알게 된 상황이었다.
“어쩔 수가 없었어. 물밑에서 꽤 시끄러웠거든.”
“하…….”
“게다가, 이런 식의 소문이면 가라앉히기도 꽤 좋으니까.”
미안.
유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건지 이젠 계산이 안 선다.
“단영이 형 쪽이 지금 문제라 어쩔 수가 없었어. 잠깐이라도 시선을 돌려놔야 해결하기 편하니까.”
한마디로 시간을 버는 용도였단다.
채널(Cha.N) 멤버들의 논란을 해결할 시간을 벌기 위해, 한별이 잠시 소속사에 들어갈 자세를 취했던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이번 일은 단영이 은퇴를 고려해야 할지도 모를 만큼 커다란 사건이었기에 유성은 자신의 이미지가 깎일 것을 무릅쓰고 이전부터 작업해 둔 것 중 하나를 터뜨렸다.
“솔직히 동생 바보 이미지 같은 거야, 조금 더 커져도 상관없으니까.”
“동생 바보가 아니라, 동생이랑 연애한다는 말이 나온다고, 이 인간아!”
“한별이 너만 평소랑 같으면 그 정도는 금방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했―.”
“뭐?”
“죄송합니다…….”
유성이 고개를 돌렸다.
물론, 유성의 입장은 이해가 됐다. 소속사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지금 시점에서 논란은 대응하기가 꽤 힘겨우니까.
심지어, 지금처럼…….
“가족 관련한 상황이면 더 그렇긴 하지.”
단영의 가족에 관한 빚투 논란이 물밑에서 태동했다. 한발 앞서 유성이 선수를 치고 들어가며 주변을 정리하려고 든 걸 봐선 단영에겐 전혀 잘못이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눈을 가린 거기도 해. 공개해야 할 서류 같은 게 좀 있어서.”
단영의 부모님이 이미 이혼한 상황이라는 관련 서류가 필요했다.
게다가 단영은 데뷔 전, 고등학생 때 이미 어머니의 성으로 바꾼 상황이었다. 아버지와는 연을 아예 끊어 버린 것이다.
“아, 그래?”
“응. 원래 곽 씨였대. 그래서 그거 관련해서 초본이랑 중학교 졸업 앨범도 준비 중이고.”
“그럼, 왜 여태 올라온 내용이 없었지?”
“동창이랑 친구들 사이에서도 친부가 쓰레기라는 소문은 꽤 파다했나 봐. 단영이 형이 이야기하는 거 좋아하지 않으니까, 주변에선 최대한 쉬쉬하면서 덮어 준 거지.”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최대한 스무스하게 넘어가야 좋았다. 부모님의 이혼이나 친부의 쓰레기 같은 행동 등이 조명되면 안정적인 궤도를 달리는 아이돌 입장에선 이미지가 이상해져 버리기 십상이니까.
“솔직히 픽마돌 시절에 터진 거였으면 순위권 경쟁에 도움이라도 됐을 텐데.”
“아…….”
이미 데뷔한 지금 터져 봐야 여태까지 쌓아 놓은 ‘채널(Cha.N) 리더 단영’의 이미지가 훼손만 된다. 남는 것이 아예 없었다.
거기다 레이블 설립 이후, 만들어 갈 이미지 역시 지금보다 더 전문적이고 능력 있는 프로듀서 겸 아티스트 적인 모습일 텐데. 그 논란은 지금껏 단영이 쌓아 올린 이미지를 현실적이고 안타까운 모습으로 끌어당기게 될 테다.
원래 대중의 관심은 보통 아이돌 가족에 대한 일보단 아이돌 본인에 대한 스캔들에 더 집중되기 마련이었다.
“안 그래도 단영이 형이 좀 많이 미안해하고 있어.”
“멤버들도 아는 사실인 거야?”
“일단 슬쩍 흘리면서 이야기는 해 둔 상태야.”
한별은 일단 안도했다.
“형은 그럼 그 이미지 어쩌려고 그랬어?”
“그냥 동생 바보 이미지 굳혀 버리려고 했지.”
“당신 이미지 현실감 Max 찍는 건 상관없었나 봐?”
“형이 그런 건 잘 케어 하잖아.”
웃는 모습을 보아하니, 정말 머리 좋은 또라이 이미지로 굳혀 버리려고 했나 보다.
“그래서 말인데…….”
아니,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한별이 희번덕 노려보자 유성이 무릎을 꿇었다.
“이 형 새끼, 나한테 무릎 꿇은 게 이번이 두 번째지?”
처음 꿇은 건 당연히 한별에게 페로몬을 묻혀도 되겠냐며 빌 때였다.
“죄, 죄송합니다.”
“아, 진짜! 또 뭐 하려고!”
“바, 방송 출연…… 얼굴 한 번 나오자…….”
“……태하야. 나 좀 놔줄래? 내가 저 인간이랑 같이 논개 하려니까.”
“차, 참아, 한별아…….”
형을 진짜 죽여야겠다.
태하는 한별을 말리느라 한참이나 진땀을 뺐다.
* * *
태하와 한별의 너튜브 채널 이름은 Seein’ Cosmo. 싱 코스모로 해 놨고, 노래하는 싱과 노래를 만드는 코스모라고 설명까지 덧붙여 뒀다.
우주를 본다는 뜻과 노래한다는 발음을 비슷하게 겹쳐 만든 이름이기도 했지만, 그보단 태하와 한별의 이름 뜻과 발음을 꼬아 만든 말장난이었다.
“……벌써 구독자 1만?”
미쳤네.
한별은 너튜브 채널의 구독자 수를 확인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일주일 아냐?”
“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나 봐.”
“우리, 얼굴도 안 나오지 않아?”
“응. 사진만 있고, 나도 뒷모습만 촬영했으니까.”
“근데, 왜 댓글이 이 모양이지?”
영상 아래에 달린 댓글을 확인하며 한별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가뤄쥐
저 작은 머리통이 말하고 있다. 이건 절대 존잘의 기운이다.
해탈
와 목소리 오졌다... 거기 목소리 개쩌는 오빠 제발 고개 돌려주지 않을래요..?
망개떡
ㅁㅊ 이건 락이다. 극락도 락이니까... 오늘부터 락페 준비합니다^^
무지무지단무지
난 저런 목소리랑 저런 뒤통수 가진 인물들 전부 UM엔터 지하실에 들어가 있는 줄 알았는데...
구독자1만달성감사
벌써 얼굴 잘남 내가 봤음
한별이 댓글을 보다 태하의 얼굴을 보았다. 잘생기긴 했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hihipop
썸네일에 귀여운 두상도 얼굴 보여 주세요...
우앙
썸네일 갈색머리 오빠 얼굴은요ㅠㅠㅠㅠ
duswjd
갈색 머리님은요...? 파란 한복 찰떡이던데 제발 얼굴 조뮤ㅠㅠㅠㅠㅠ
쏘오보모
내 레이더가 말한다. 갈색 머리 외모는 분명 엄청날거임,,... 검머도 알겠는데 갈머 진짜 못 잃어...
꾸낑깅
염색인가요? 아니 모르겠고 일단 와꾸 내놔요..
chodeemo
씽이 검정 머리면 갈색 머리가 코스모? 거 우주님 얼굴 좀 보여 주세요 당신의 얼굴에 우주의 진리가 들어가 있을 것 같은데요
무섭다.
인터넷에 뒤통수 두 형제 같은 이상한 제목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는데, 사람들의 심리를 알 수가 없었다. 태하는 인정하겠는데 자신에게까지 이럴 줄은 몰랐다.
“내 사진은 그거 하나만 나왔지 않아?”
“응. 섬네일 하나.”
“너는 알겠는데, 나는 왜…….”
“한별이가 굉장히 잘생겨서?”
태하의 말에 한별이 흐린 눈을 했다.
네가 말하니까, 왜 놀리는 것 같지.
* * *
솔직히 너튜브 [싱 코스모]의 구독자 수는 순항이 맞았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제가 사실 유성의 동생인데요― 하고 말할 순 없었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기 전, 실력만으로 유의미한 구독자 수가 확실하게 되지 않으면 한별의 모습이 알려지자마자 채널(Cha.N)의 팬들이 몰려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구독자는 많지만 조회 수는 바닥인 기묘한 너튜브가 되고 만다.
물론 구독자 수 생각하지 말고 포트폴리오로 생각하자고 만든 것이지만, 상황이 좋으니 욕심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일주일 만에 만들어진 1만의 구독자가 다들 얼굴이 궁금해 온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중 태하의 노래 실력에 반한 사람들도 꽤 많았기 때문이다.
존잘을 보면 욕하는 개
진짜 목소리 오졋다 씨× 씽 좀만 기다려라 내가 당신의 인생에 나라는 오점을 남겨 줄 테니
다채원
우리 씽... 깨끗한 피부를 보아하니 이제 20대 초중반인 것 같은데 누나가 감히 널 오빠라고 불러도 되겠니...? ^^
창준
여기가 댓글 맛집인가요? 저도 함께하죠.
ㅇㅇ
씽이 있는 세상의 한글은 오늘부터 가나라마바아입니다. 내 ‘사.’랑 ‘다.’줬으니까...♥
콩떡
씽아 누나가 우체국에서 좀 싸웠다... 너를 향한 사랑을 담을 수 있는 크기의 박스가 없다지 뭐야..(^人^)
……약간 흐름에 편승한 주접 댓글 모음집이 되어 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좋은 의미일 것이라고 한별은 행복 회로를 돌리기로 했다.
“솔직히 얼굴을 안 밝힐 생각은 없었으니까, 사람들이 궁금해하면 좋지.”
“그렇지. 나중 일이지만.”
“근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더 밝히기 어려워졌어.”
“……응.”
한별은 지금 유성을 만나러 움직이고 있었다. 유성이 말한 스케줄에 참여하기 위해서.
연예인들이 가득한 스튜디오 같은 곳은 아니었다. 애초에 연기력도 꽝이고, 말실수라도 하면 큰일이니 유성이 한별에게 그런 스케줄을 이야기했을 확률은 없었다.
유성이 제안한 스케줄은 평범한 일상 관찰 예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