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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24화 (24/78)

24화

태하가 몸을 떼어 냈다. 한별은 그사이 어두워진 길 아래, 가로등 불빛에 가려진 태하의 눈매를 제대로 보려 몸을 살짝 움직였다.

“한별이 너는 못 하는 게 있으면 어떻게든 해내야겠다고 승부욕을 보이는 편이잖아.”

표현은 덤덤하지만, 한번 목표로 하면 불도저같이 밀기도 했다. 그렇지, 하고 중얼거리는 한별에게 태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또, 다른 사람들을 잘 믿어 주고.”

“어……?”

“누군가를 잘 믿어 주는 거, 그거 엄청난 장점이야.”

“그게 왜?”

“상대에게 그보다 큰 선물은 없거든. 아마 형도 아실 거야.”

“유성이 형이?”

“응. 처음에 픽마돌 나갈 때, 한별이 너한테만 이야기했다며?”

그랬다. 유성은 프로그램 시작 당시 부모님께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친구들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로지 동생인 한별에게만 아이돌이 될 것이며, 프로그램이 방영될 쯤에야 프로그램 사이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가족에게 알렸다.

“당황했어도, 응원하고 믿어 줬잖아.”

“아니, 그야…… 가족이니까.”

“나도 한별이 네가 믿어 줬었고. 그러니까 알아. 무슨 느낌인지.”

어두운 가로등 아래, 태하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온갖 칭찬에 얼굴이 간지러워서, 한별은 고개를 슬쩍 돌렸다.

그리고 멀리서 한별과 태하를 주시하는 듯 보이던 인영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 * *

예찬의 논란은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세현의 갑질 논란 역시 빠르게 사그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대응할 방법을 마련해 뒀다는 양.

이에 한별은 자신이 보낸 녹음 파일이 이 사태에 그다지 큰 힘을 발휘하진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런 증거가 없다면 모를까, 놀랍게도 당시 무대 뒤에서 같이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스태프들이 나타나 증언해 주면서 여론이 뒤집혔다.

채널(Cha.N)이 무대에 올라가기 전, 같은 날 무대에 올라갔던 해당 지역 행사 팀에서 부상자가 나왔다는 것이 퍼졌기 때문이다. 이에 비난의 화살은 갑질 논란을 올린 스태프에게 향했다.

“와…….”

올라온 기사들이나 해명을 확인하던 한별은 눈을 끔뻑였다. 오해예요. 우리 녹음본 있어요, 하는 것보다 깔끔했다.

‘한별아. 너 이거 왜 녹음했던 거야? 물어봐도 될까?’

‘별 이유는 없는데요.’

이유는 정말 별것 없었다. 채널(Cha.N)을 향해 기묘한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냥 둘까 생각했지만, 매니저는 스태프들과 상황이나 끝난 후 내려왔을 때 팬들이 몰리는 것을 대비하기 위해 바빴고, 형들은 무대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곁다리로 함께한 한별만이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다.

한별이 주시한 사람은 세현과 충돌이 있던 스태프가 아니었다. 스태프인 척 들어온 것 같다는 의심이 들어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녹음을 했다.

야외 행사에선 당연하지만, 안전이 중요했다. 대기 장소까지 오는 데에도 최대한 조용히 왔지만. 벌써 알아채고 기웃거리는 팬들이 있지 않았던가.

‘그럼, 녹음한 이유가…….’

‘제대로 드나드는 사람 관리가 안 되면 그걸로 이것저것 요구할 수 있잖아요. 보상이라든가…….’

‘……아.’

‘일이 생기면 형한테 바로 보낼 생각으로 녹음했던 건데, 세현이 형 일이 녹음됐던 거예요.’

한마디로 얻어걸렸다.

상대는 당장이라도 한 대 칠 듯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반대로 세현은 처음부터 끝까지 침착한 목소리로 대응했다.

그 상황이 마무리될 때까지 한별은 녹음을 끄지 않았다. 잘라 내지 않은 녹음의 끝부분엔 ‘여러분이 기다리던 채널(Cha.N)을 무대로 모시겠다’며 외치는 사회자의 멘트까지 녹음됐으니 확실했다.

‘요즘 핸드폰 좋아서 녹음 진짜 잘돼요.’

‘아. 그, 그래……?’

너희는 형제가 무슨……. 작게 중얼거리던 단영이 포기한 듯 웃으며 나중에 보자, 하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사실 처음엔 녹음 파일을 형에게 보낼까 했는데, 연락이 되지 않아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어 단영에게 보냈다.

자신의 형이 아무리 수완이 좋아도, 이런 일은 팀의 리더한테 맡기는 편이 맞았다. 형보다 두 살이나 많은 리더가 있는데 뭣 하러 몸 안 좋은 형한테 보내나.

수능이 끝나고, 바스러진 멘탈을 열심히 추스르던 한별은 이제 하나둘 쌓이는 연락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회사 쪽에는 자신이 안심할 수 있게 일 처리를 보여 달라는 식으로 여지는 남겼지만, 한별은 여전히 연예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했다.

지금처럼 논란들이 가라앉은 상황은 더욱 신중해야 했다.

자신 하나로 인해 회사에서 하는 뒷공작이 없어지리란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줄어들긴 할 것이다. 적어도 채널(Cha.N) 멤버 중 한 명에겐 수를 쓸 수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한별은 일단 형만큼은 당장 이미지가 깎이지 않을 것이라는 데 안도했다.

문제는 유성의 몸 상태였다. 꾸준히 약을 먹고는 있지만, 계속 지켜봐야 하는 상황으로 유의미한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페로몬과 관련된 기능을 약으로 조절하는 상황인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유성은 히트 사이클 주기가 멈춘 상태였다.

하지만 예정된 컴백 준비는 계속 진행해야 했고, 연말 공연을 위한 준비도 해야 했다.

“몸 나빠지면 아주 그냥 때려치우라지.”

―야, 야아…….

약간의 울분을 담아 타박하던 한별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억울한 목소리에 한숨을 내쉬었다. 컨디션 난조로 인한 페로몬 문제이니만큼 지금 유성은 제대로 된 관리가 필요했다.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형이 그간 번 돈으로 엉뚱한 사업을 하겠다고 설치지만 않으면 남은 인생을 백수로 살아도 될 정도였다.

부모님의 벌이도 좋은 편이니, 유성이 당장 일을 그만두고 쉬겠다고 해도 한별은 수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몸이 안 좋으니 당장 쉬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목표가 확실한 이들에겐 그런 말이 들리지 않곤 하니까.

한별 역시 욕심이 많은 편이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숙소에 드나들면서도 형에게 수능 과외를 받고, 형의 동료들을 작·편곡 선생님으로 알차게 이용해 먹었으니까.

그러니 기왕 시작한 일이니만큼, 유성의 몸 상태는 누구에게도 들켜선 안 된다.

“내일 병원 가는 거 잊지 말고.”

―응, 알았어. 한별아, 쉬어~ 내일 보자.

“형이나 쉬어, 형이나.”

한별을 데리고 병원에 간다는 핑계로 유성이 올 예정이었다. 수능이 끝난 후, 학교에선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단축 수업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한별은 예외였다.

“형 찬스가 좋긴 좋네.”

지태하

그럼 내일 일찍 가는 거야?

그렇지. 사실, 내일만이 아니긴 하지만. 한별은 태하의 메시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별이 우성 오메가인 것도 있고, 학교에 형질을 가진 학생이 손에 꼽는다는 이유까지 들어 형이 전화로 열심히 구워삶은 듯 보였다.

하필 수능 직전에 사이클 기간이 틀어져 결석하기까지 했으니, 안전하게 학생들을 졸업시키고 싶은 선생님의 입장에선 가족인 유성이 요청한 현장 학습이 내심 반가웠을 것이다.

수능 끝나고 실기 준비한다고 조퇴하는 애들도 많으니까.

지태하

한별이 너도 실기 준비해야 하지 않아?

형 놈만 아니었어도...

지태하

^^;;;

학원 시간은 빼 준다고 했으니까 괜찮아.

메시지에서마저도 유성의 몸 상태와 관련된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는 태하를 보며, 한별은 편안하게 안정을 취했다.

한별은 채널(Cha.N)의 일정 중 몇 개만 따라붙기로 했다. 형의 일정을 조금 따라다니다 보면 아이돌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며, 무려 회사에서 제시한 거였다.

형의 상태가 상태인지라 한별 입장에선 아주 감사합니다! 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자신을 채널(Cha.N)의 일정에 같이 끼워 넣는 것인진 의문이었다.

그리고 이 상황을 확인하면 당연히 반대할 것으로 생각한 유성은 무슨 생각인지 순순히 수긍했다.

지태하

한별아, 괜찮겠어?

태하가 걱정하는 이유를 잘 아는 한별로선 이 일을 만든 형보다 태하가 더욱 빛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지태하

너 멀미 어떡하려고.

뭘 어떡해.

……걍 뒈져야지.

* * *

“괜찮아, 멀리는 안 가.”

“듣던 중 다행이네.”

약을 챙긴 한별이 그걸 곱게 접어 유성에게 내밀었다.

병원에서 호명된 이름은 ‘최한별’이었다. 물론 진료할 때만 보호자인 한별의 이름이 불리고, 진료 기록은 유성에게 남겨지지만, 혹시 모르는 일에 대비하는 중이었다.

약의 조제까지 끝내고 밴에 오른 한별은 미리 먹어 둔 약의 효과가 확실하길 바라며 시선을 최대한 멀리 두었다.

“……형이 미안.”

“미안하면 맛있는 거나 보내. 고기 이하 안 받아.”

한별의 단호한 목소리에 유성이 푸흐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한별인 왜 이렇게 멀미가 심해?”

한별의 옆자리에 앉은 단영이 질문하자 유성과 한별은 입을 다물었다.

멀지 않은 거리인데, 신호가 계속해서 걸리니 시간은 계속 늘어졌다. 빨간불이 잦은 건 한별의 입장에선 다행이었지만, 매니저의 입장에선 아닌 듯 그가 작게 욕을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르겠어요.”

“응?”

“갑자기 그런 거라서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없었다. 차에 타기 전부터 시작되는 식은땀은 자신이 얼마나 차에 타기를 싫어하는 것인지를 확실하게 알려 주었다.

기실 30분 정도는 차를 탈 수 있고, 30분이 넘어가면 심하게 멀미한다는 말도 사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한별은 차에 타야 하면 타기 전부터 컨디션이 나빠졌고, 어지러웠다. 버티고 버티다 보면 구역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사실은 차에 타기 전부터 멀미가 오는 것이다.

그걸 알기에 유성은 입을 다물었다. 제 일정에 한별을 끼워 넣는 기행을 벌이는 회사를 감수하면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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