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이쯤 되니 소속사에서 이름이 알려지는 부담감에 일반인인 한별이 실수라도 하길 바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본인이 아닌, 가족에 대한 논란이어도 이미지 하락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 아이돌이니까.
하지만, 한별은 사고를 친 적이 없었다. 사업을 하는 어머니, 교수인 아버지를 둔 덕에 경제적으론 여유로웠지만 그만큼 두 분은 심히 바쁘셨다.
중2병 탓이라고는 해도, 나름 철이 일찍 든 형을 따라 한별 역시 일찍이 현실을 마주했다.
연습생으로 들어간 태하를 옆에서 지켜본 탓도 있었지만, 한별의 중2력이 싹을 틔우기도 전에 데뷔한 형 덕분에 입 밖으로 험한 말을 잘 내지 않게 되기도 했다.
그러니 오랫동안 쌓아 온 이미지 관리의 효과는 자신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아무 대응 안 할 거야. 대신, 상황을 이용해 먹는 건 형이 알아서 해.”
자신은 평범하지만, 형은 머리가 좋으니 답을 찾을 것이다. 형을 향한 한별의 믿음은 확고했다.
그런데 동생의 말에 유성은 오히려 땀을 삐질 흘렸다.
“형께서 생각해 둔 게 있으신 거 아니에요?”
이에 태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성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뭐라 답하지 못하는 채였고, 한별 역시 그런 유성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한숨을 푹 내쉰 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 형 성격에 엎었으면 엎었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잖아.”
“한별아……. 형 그렇게 막 성격 독하진 않아.”
독한데. 충분히 독한데. 성격도 겁나 더러운데. 데뷔 후로 형이 한 행동들을 되짚어 본 한별이 눈매를 좁혔다.
“그래, 뭐…… 그렇다고 하자.”
“한별아. 형은 그냥 일개 아이돌일 뿐이야.”
일개 아이돌이 레이블 설립하는 와중에 법적으로 헤집고 다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한별은 억지로 수긍했다.
차에서 내리던 태하를 빤히 보던 유성이 태하에게 말을 걸었다.
“핸드폰 번호 좀 받아도 될까?”
“아이돌이 왜 일반인 번호를 따?”
“아이돌이라 따는 게 아니고, 동생 친구의 번호를 받아 가는 거야……. 그리고, 형은 미성년자한테 관심 없어…….”
“우리, 곧 성인인데?”
제발 형을 쓰레기로 만들지 말아 줘. 유성의 우는 듯한 목소리에 한별은 머쓱한 듯 시선을 돌렸다.
태하의 번호를 받은 유성이 한별에게 했던 장난스러운 행동과 목소리와는 다르게 차분하게 말했다.
“장래 희망이 아이돌이라고 들었어. 최근 회사에서 나왔다는 것도 들었고.”
“아…… 네.”
“연락 줄게.”
유성의 말에 한별이 눈을 크게 뜨고 작게 박수를 쳤다.
오, 연습생 지태하 컴백인가?
* * *
한별은 프로그램 가득 찍어 둔 미디를 매만지다,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계속 액정이 빛나던 핸드폰은 이내 힘을 잃고 시들었다. 조금 조용해질 만하면 불타는 것이 아무래도 누군가 수를 쓰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회사, 진짜 일 못 하네.”
성공이라 생각하면 눈앞의 가시밭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한별도 알아차린 것을 회사의 홍보 팀이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라는 걸 도저히 믿기 어려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맡기겠다고 말한 한별 덕에 유성은 오히려 회사의 상황이 더 어그러지길 기다리는 눈치였다. 다급함에 일을 그르치고, 사고를 만들면 당연히 채널(Cha.N) 멤버들에게 유리한 상황이 된다.
소속사는 곧 레이블로 빠져나갈 준비하는 채널(Cha.N)의 멤버들을 붙잡을 수 없기에 있을 때 써먹을 수 있는 건 전부 써먹으려는 것이다.
특히나 붙잡지 못했을 때 홍보에 채널(Cha.N)의 이름을 사용할 수 없기 전에 신인 그룹을 선보여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전날, 집에 돌아온 한별은 태하에게 전화를 걸어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후배 그룹 관련해선 진짜 기사로만 추측한 거야?”
연습생 출신이라 해도 타 회사와 관련된 일을 잘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심지어 오디션 공고가 올라온 것도 최근의 일이었다.
한별로서는 어떻게 생각해도 신인 그룹이 당장 데뷔할 것이라고 이어지지 않았다.
그저 잠깐의 화제성을 이용해 아이돌의 가족을 향한 약간의 논란을 일어날 정도만 되면 그 무마 조건 등을 걸어 형을 협박하는 게 아닐까…… 하고, 한별은 이어지는 상상을 했다.
언제나 현실은 상상보다 더 무서운 법이지만, 조금 과한 상상은 아닐까 생각했다. 나름대로 일리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형이 대응을 못 하는 게 아닐까 했는데…….
“아니, 형네 회사 연습생 뽑는 거 최근 일이었잖아. 난 그래서 이제 막 연습생 만들어서 투자하나 했는데…….”
―연습생이 없었던 건 맞아. 최근 들어서 연습생 뽑은 것도 맞고.”
“근데, 왜…….”
―타 소속사 데뷔 조였던 연습생이면 바로 데려와서 데뷔 준비시키기 좋거든. 아마 넘어간 사람 꽤 있을 거야.
태하는 데뷔를 앞뒀던 연습생이었지만, 최근 회사를 나왔다. 그런 만큼 채널(Cha.N)의 소속사에서 타 기획사의 데뷔 조였던 연습생들을 받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돌연 목소리가 뚝 끊기자, 한별의 생각을 알아챈 태하가 미소를 흘린 듯 숨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울렸다.
“형 회사에서 연락 왔었어?”
―응. 늦어도 내년 초, 빠른 데뷔 조건으로. 거절은 했지만.
“왜?”
―아무리 연습생이라 아는 게 적다고 해도, 보고 들은 게 있으니까…….
태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아꼈다. 그 회사 뭐 같은 거 너도 잘 알고는 있구나. 이번 일만 해도 일 처리하는 꼴을 보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앞서 말했듯, 현실은 상상보다 더 어이가 없는 법이었다.
회사의 행동을 전부 형과 채널(Cha.N) 멤버들을 중심으로 맞추고 있었던 한별은, 아직 유성과 태하에게도 말하지 못한 회사의 제안이 떠오른 탓에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말이 안 되는데요. 전 연습생을 한 적도 없고요.’
‘제가 보기엔 한별 군도 충분히 가능성이…….’
‘저 지금 굉장히 부담스러운 상황이고, 무서워요. 저 지금도 제 정보 퍼지는 것 때문에 힘들거든요.’
‘하, 한별 군! 저희가 최대한 막아 드리기 위해선 계약이 필요해요. 한별 군이 소속사에 들어오기만 하면 바로 데뷔 일정과 관련된 사항을……!’
자신더러 회사에 들어올 생각 없냐며 묻던 그 회사 신인 개발 팀 직원의 연락 탓이었다. 한별의 실력과 관련된 이야기는 회사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일 처리 참 주먹구구식이다.
이러니 눈에 안 차지.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이미 소속사의 아이돌 그룹들은 자체 제작돌이라는 타이틀을 하나씩 거머쥔 상태였다.
열악한 채널(Cha.N)의 상황을 팬들 역시 확인한 탓인지 [Pick, My dol!]의 시즌2 이후로 데뷔한 그룹엔 아예 프로듀싱이 가능한 멤버가 3위 안에 꼭 들어 있었다.
대기업의 자본은 도대체 어디를 간 건지.
슬슬 채널(Cha.N)의 이름을 달고 슬쩍 홍보하는 상황이라면 이미 명단은 완성이 된 상태일 텐데, 연습생 경력 0초에 빛나는 자신을 당장 데려와 데뷔 조에 합류시키겠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온 걸까?
‘겉만 번지르르하지, 내실은 구멍가게나 다름없는 회사’. 그것이 채널(Cha.N) 및 [Pick, My Dol!]의 다른 시즌으로 데뷔한 그룹들이 소속된 StarV의 현실이었다.
덕분에 한별은 같은 부분을 계속해서 재생했다. 오늘따라 작업이 더뎠다.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막막할 정도로 생각이 꼬였다.
아이돌을 할 생각은 없지만, 주변이 시끄러우니 아무리 차분하려 해도 마음이 복잡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회사가 이대로 가만히 있을 리는 없다. 그것이 한별의 생각이었다. 자신의 일로 끝날 것이라는 확신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머지않아 현실로 나타났다.
강재휘
기사 확인할 최한별 구함.
http://www.starstorynewsch.kr/...
http://www.starstorynewsch.kr/...
도은한
뭐 이런 걸 들고 왔냐;;
강재휘
얘기 들은 거 있음?
친구의 메시지 아래 박힌 뉴스 기사에 한별은 동태눈이 되어 창을 내렸다.
―채널(Cha.N) 예찬, ‘학교 폭력’. 논란의 진실은?
―채널(Cha.N)의 멤버, 예찬을 향한 소문의 진실 공방 이어져……,
눈앞의 이득에 눈이 멀어 헛짓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널리고 널렸다.
지금껏 채널(Cha.N)은 큰 논란이 없었다.
물론 악마의 편집이 강했던 프로그램 탓에 만들어진 이미지가 1년 넘게 따라다니긴 했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자 채널(Cha.N) 자체로만 봐주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예능 출연이 적은 막내 멤버, 예찬의 경우는 그때의 이미지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
한별은 소문보다 자신이 직접 본 예찬의 모습을 믿었다. 학교 폭력……? 반대로 본인이 당했으면 모를까.
한별은 자신이 투표했던 채널(Cha.N) 멤버들을 믿었다. 그리고, 형을 믿었다.
“그래, 뭣보다 최유성 씨 그 성격에 정신 나간 인간을 그룹에 둘 리가 없지…….”
한별의 중얼거림이 방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