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11화 (11/78)

11화

전체적으로 색소 옅은 한별의 얼굴이 반짝반짝하는 것을 보며 말을 잃었던 단영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한별의 머리를 느리게 쓰다듬었다.

“그래서 또 다른 이유는, 한별아?”

한별은 어쩐지 단영의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쓰다듬은 대체 무슨 뜻일까. 제대로 된 이유를 내놓지 않으면 내 머리를 이 손으로 두 동강 내 버리겠다는 뜻인가?

어째선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더 할 거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뜻이 가득 느껴지는 손길에 한별은 어물어물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노래랑 춤을 못 해요. 진짜 재능이 없어요.”

제 입으로 말하긴 창피한 이야기였지만,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두 가지가 아이돌에겐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한별은 대체 팔과 다리의 근육을 어떻게 움직여야 저런 춤을 출 수 있는 것인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또, 성대에 어떻게 힘을 주면 음이 움직이는 것인지도 이해되지 않았다.

단영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자신이 했던 행동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빛나는 움직임이었다.

‘그래, 아이돌은 이런 사람이 해야지.’

한별은 자신의 형에게는 까다롭지만, 형의 멤버들에게는 관대한 편이었다.

“그래도 연습하면…….”

“아뇨, 안 됩니다. 그리고 전 작곡가가 될 거예요.”

한별은 편곡도 꽤 할 수 있었다.

물론 프로들에게 들려준 적은 없고 학원에서만 깔짝거리는 정도고, 목표는 자신의 노래를 프로들에게 보여 데뷔하는 것이지만, 우선 지금 가장 가까운 목표는…… 대학이다.

“그럼…….”

단영이 말끝을 흐렸다. 한별의 눈과 귀가 그에게 집중됐다.

그렇지, 아이돌은 이렇게 막 사람을 끌어모으는 사람이 하는 거지. 한별이 집중하는 모습을 보던 단영이 돌연 환히 웃었다.

“테스트부터 해 보자. 나는 한별이 네가 정말 좋은 재목이라고 생각하거든.”

아닐 건데.

진짜, 아닐 텐데…….

* * *

결론적으로 말하면 연습실에 온 한별을 보고 가장 반긴 것은 역시나 형인 유성이었고, 그다음은 다른 멤버들이었다.

다음 정규 앨범의 수록곡 녹음을 위해 멤버들 전원 회사에 모여 있는 상황이었다. 정규 앨범 활동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레이블 설립을 위한 절차를 밟아야 하기에 더 정신이 없는 와중이었다.

“내 동생!”

그렇게 반길 때가 아닐 텐데, 이 형님 새끼야. 한별이 눈을 부라리자, 유성이 머쓱한 얼굴로 끄덕였다.

한별이 단영의 엉뚱한 아이돌 제안을 적당히 상대하며 온 것은 애초에 이 사고뭉치 형 때문이었다.

작전명, 「이 향은 연습실에 방문한 탓에 묻은 것뿐이에요!」

한별과 유성이 함께 있는 사이에 유성이 살짝 페로몬을 흘려, 한별의 향인 것처럼 각인시키자는 취지였다.

단영이 레이블 내 확고한 프로듀서 위치를 노리고자 한별에게 뜬금없이 아이돌 제안을 했다지만, 본래의 목표를 잊을 수는 없다.

한별이 총총 걸어 유성에게 가까이 가자, 유성이 한별을 끌어안고 도닥였다.

확실히 유성은 키가 컸다. 하지만, 한별 역시 대한민국 남자 평균 키를 놓고 보면 큰 편이었다. 오메가는 작고 여리다는 편견과 다르게 말이다.

“역시…… 형질 유전자보다는 집안 내력이 더 크다니까.”

예찬이 아련한 눈으로 유성과 한별의 키를 가늠했다.

“확실히, 오메가치곤 큰 편이네.”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은 세현이 다가와 한별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근데 형, 앨범 스포는 안 두려워? 우리 한별이 아주 쿨하게 데려오네?”

한별은 유성이 자신을 더 끌어안아 품에 가두는 것을 느끼며 이를 으득 물었다.

이러는 이유는 알고 있었다. 아주 살짝, 정말 아주 살짝 한별에게 직접 페로몬을 묻히려는 것이다.

죽일 것이다.

그놈의 페로몬, 혹여라도 강하게 묻히면 진짜로 죽여 버릴 것이다. 한별의 시선이 느껴진 것인지 유성의 팔에 힘이 더 들어갔다.

“들키겠다고, 동생님…….”

들키면 네가 변명하십시오. 한별은 착한 동생을 연기하기 위해 형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인데. 여기서 숨기는 것까지 도와야 해?”

“아니욥…….”

이를 악문 한별의 말에 유성은 침착하게 예쁜 동생의 등을 도닥였다.

“여전히 유성이는 동생이랑 사이좋네~.”

좋죠. 아주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한별의 작은 목소리를 들었는지 유성이 움찔거렸다.

“내가 궁금한 건 딱 하나야. 한별이의 실력.”

“……단영이 형, 그거 진짜 안 되는데.”

“뭐야, 유성이 넌 데뷔해 놓고 동생은 못 나서게 가두는 거야?”

그러면 안 돼~ 동생도 꿈을 펼치게 해 줘야지! 채널의 멤버들이 장난스레 유성을 타박했다. 동생을 너무 아끼는 탓에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에 유성은 당황한 얼굴로 한별을 보았다.

“한별아. 너 혹시 아이돌 하고 싶어?”

“아니.”

“근데, 왜 여기까지 온 거야…….”

“응~ 형 보려고.”

내가 누구 때문에 여기까지 왔을까? 왜 모르는 척하실까? 한별이 웃으며 눈을 마주했다.

“진짜 사이좋다니까~.”

“원래 형제들이 저렇게 지내는 게 가능하든가?”

“유성이랑 한별이가 특이한 거긴 하지.”

“하긴, 나도 형이랑 싸운 기억밖에 없어.”

좋아 보인다고요? 하하하, 그건 잔상입니다만.

유성은 열 받은 한별의 눈빛을 들키지 않기 위해 가리느라 바빴고, 한별은 유성에게 말없이 욕을 하기 바빴다.

원래 같았으면 절대 따라오지 않았을 것이다. 유성의 페로몬이 한별의 것처럼 느껴지게 하기 위해 일부러 왔을 뿐이다. 그놈의 아이돌, 할 생각 없다고!

“진짜 아이돌 할 생각 없어? 난 그냥 오길래 내심 기대했는데…….”

“저 진짜로 노래랑 춤이 안 돼서요.”

“에이.”

진짠데.

단영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난 내 눈으로 보기 전엔 안 믿어.”

“아니, 단영이 형. 우리 한별이 거짓말 안 하는데.”

“보통 형이 잘하면 동생도 잘해. 유전자라는 게 있잖아. 보고 배우는 건 보통 형제가 같이 배워. 위에 누나, 형이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면 동생들도 무의식중에 따라 배우거든. 난 우리 형도 그렇지만, 내 사촌 동생들도 노래 잘해.”

그거 편견입니다. 한별과 유성이 눈을 마주쳤다.

‘이게 다 형, 네놈 때문이거든요.’

‘죄송합니다.’

한별은 자신의 몸에 살짝 묻어 있는 유성의 페로몬을 느끼곤 이를 으득 물었다. 내가! 왜! 이 귀찮은 짓을!

“저…… 그럼, 잠시만 나갔다 와도 될까요?”

한별이 조심스레 묻자, 그를 보던 단영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떨어져 있었던 윤수도 페로몬을 느꼈는지 숨을 들이마셨다.

“어, 어! 다녀와. 어차피 이것저것 준비도 해야 하고!”

단영이 급히 말하며 손짓하자, 윤수가 걸어가 연습실 문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움직인 한별이 유성의 칼라 뒤쪽을 잡아당겼다. 나, 얼른 화장실 위치 알려 줘. 소곤거리는 목소리였지만, 연습실 안이 조용했기에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형, 나도 한별이랑 같이 갔다가 올게!”

단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두 사람이 향한 곳은 화장실이 아니고, 환기가 아주 잘되는 회사 옥상 정원이었다.

손으로 자신의 몸을 만져 보던 한별은 유성을 째려보았다. 이걸 죽여 살려? 마치 한별의 생각을 들은 듯이 유성이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내가 뭘 어떻게 해 주면 될까?”

한별의 목소리는 서늘했다. 지엄하신 동생의 목소리에 두 손을 모아 가지런히 선 유성이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난 노래도 못 하고 춤도 못 추는데?”

“그, 단영이 형이 너무 기대에 차 있어서 말이지…….”

“형의 동생은 지금 수험생이라 수능을 준비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제가 몸이 좋지 않아 죄송합니다.”

“하아…….”

아픈 사람한테 뭐라 말할 수도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소속사가 엉망이라 레이블을 설립할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 탓에 일이 과중해진 것도, 소속사와의 계약의 이행을 위해 스케줄을 계속해 나가야 하는 것도 유성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아이돌 제안을 거절할 생각임에도 회사로 오는 내내 장황한 단영의 말을 그래도 들어 준 이유는 형을 위해, 회사에 잠시라도 발을 들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너무 오래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한별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붙잡았다.

“지금 우리 회사엔 다 픽마돌 출신뿐이잖아. 연습생으로 들어와서 데뷔한 후배 그룹도 없고…….”

연습생부터 차근차근 준비하여 세계관을 만들어 나가는 그룹에 대한 원대한 목표가 있는 것은 한별이 보더라도 알겠다. 그런 만큼 그 꿈에 자신이 낄 자리는 없다는 것 역시 알 수 있었다.

“작곡가면 모를까…….”

“너, 스펙 없어서 안 돼.”

“누가 지금 지원한대?”

“아니요……. 아무튼, 내려가면 노래나 댄스 좀 보자고 할 거야…….”

형이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말려야지! 한별이 기겁하자, 유성이 머쓱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그냥, 일단 한번 보자.”

“…….”

“아마 금방 포기할 테니까…….”

내 쪽팔림은 누가 보상하는데! 하지만, 단박에 거절하자니 이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었다.

유성의 말에, 한별은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연습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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