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형의 아이돌 생활을 위해 도움을 주셔야겠습니다-4화 (4/78)

4화

“스케줄은 밤에 끝나고, 밤부터 새벽까지 툭하면 연습에 잠도 몇 시간 못 자고 새벽같이 나가서 촬영하는 인간이 왜 공부를 하고 앉았어! 그러니, 몸 상태가……!”

삑삑삑삑삑―.

그때, 잔소리를 멈추라는 듯 꽤 긴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한별은 곧장 입을 다물었다. 거실에서 할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방에라도 들어가 있을걸!

하지만, 숙소에 찾아온 이상 방 안에 들어가 버티고 있는 것은 그다지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어? 안녕하세요……?”

“안, 녕하세요…….”

숙소 안으로 들어오던 단영이 눈을 끔뻑이며 인사하자, 한별이 급히 일어나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단영과 윤수가 먼저 들어오고, 뒤이어 다른 두 멤버까지 들어오니 숙소가 금세 시끌시끌해졌다.

“어? 얘가 동생이야? 그…… 한별이?”

“저번에 왔었다면서~ 얼굴은 처음 보네?”

“아, 네. 형이 집에 놓고 간 게 있어서…….”

아니요, 사실은 저번에 이어 두 번째인데요. 팔자에도 없는 거짓말을 하게 되었답니다. 이 형님 새끼 때문에요.

한별이 슬쩍 눈을 부라리자, 유성이 머쓱한 얼굴로 딴청을 피웠다.

4년간 채널(Cha.N)을 보았다. 물론, 한별이 일방적으로 본 것뿐이지만.

콘서트라든가 채널(Cha.N)이 1위를 한 이후 회식 자리, 혹은 새 앨범이 발매되었을 때 등 가족들이 볼 수 있는 일은 많았지만 한별은 굳이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형의 동료지 자신의 동료는 아닌 데다가 간혹 길을 걷다 한별이 받는 캐스팅 매니저 명함만 하더라도 꽤 많았다. 유명인의 동생이라면 더 시끄러우면 시끄러웠지, 조용할 리는 없었다.

하여 한별은 그간 유성에게 심각한 얼굴로 동생이 있다는 정도만 이야기하고, 디테일하게는 말하지 말아 달라고 두 손을 모아 빌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망할.

“자주 얼굴 봐도 좋았을 텐데요~.”

제게 말을 걸었다, 형네 리더가.

자신의 페로몬이 (사실은 유성의 페로몬이) 취향이라던 단영이 말을 걸자, 한별은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그, 말 놓으셔도 돼요. 저 열아홉 살이에요.”

“아……. 생각보다 진짜 어리구나……. 아닌가? 생각해 보면 어린 편이 아닌지도…….”

한별은 심각한 표정으로 바뀐 단영에게서 애써 시선을 돌렸다.

“어? 그럼, 나도 말 놔도 돼?”

“예…….”

“자주 와~ 자주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한별이 엄청 긴장했네~.”

“낯가리는 건가?”

“아직 열아홉이래…… 10대야. 귀여워…….”

거짓말한 거 들킬까 봐 그럽니다, 들킬까 봐. 감추는 것만 없었어도 유명인이 지인이라는 것에 신났을 텐데!

감추는 것이 많아 속을 끙끙 앓는 자신과는 반대로 형의 동료들은 한별을 굉장히 친밀하게 대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들은 전원 동생이 없었다. 유성을 제외하면 전부 집안에서 막내거나 외동인 탓에, 한별의 어색함과는 별개로 처음 만나는 동료의 친동생을 예뻐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별에겐 그저 무거운 짐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내가! 왜! 어쩌다!

“한별아. 이번에 K대 원서 넣을 거라며?”

한별이 다시 움찔했다.

“아…… 네.”

“오~ 들어가면 윤수 후배가 되네. 예전에 공모전 상 받은 걸로 특별 전형 준비하는 거야? 유성이가 너 공모전 수상한 적도 있다고 했는데.”

“아뇨, 일반 전형으로 내기로 했어요.”

“어려운 선택 아냐? 거기, 힘들 텐데?”

“그…… K대는 특별 전형이 현직 종사자 아니면 내신 관련 전형이어서요. 전 내신은 무리고, 종사자도 아니어서…….”

“아, 그렇구나. 고3이라 피곤한 일 많지?”

다행히 대화의 흐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페로몬과 관련된 이야기도 없고, 취향이 어쩌고 하는 내용도 없다. 그저 사랑하는 멤버의 동생 미래를 궁금해하고, 걱정해 주는 아주 이상적인 리더였다.

유성이 했던 말 탓에 긴장했던 한별은 걱정 담긴 단영의 말에 조금씩 힘을 풀었다.

어쩌면 윤수가 슬쩍 다가와 앞에 놓아 준 과자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별의 취향인 달콤한 먹을거리들이 눈앞에 하나둘 놓였다.

아니, 하나둘을 넘어 쌓이기 시작했다.

“윤수 형, 그만!”

“윤수야! 많아!”

유성과 단영이 윤수를 막자, 그는 부엌의 찬장을 열다가 조금 시무룩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걸어와 앞에 앉았다.

“형, 나랑 예찬이 다 씻어서 욕실 둘 다 비었어.”

“그래? 그럼 나 먼저 씻어야겠다.”

“아냐, 단영이 형 말고 최유성 너 먼저 씻어. 너 한별이 온다고 먼저 신나게 나가더니 씻지도 않고 있었네. 숙소 도착하자마자 택배 기다리는 것처럼 있었을 거 아냐.”

“넌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 이제 그만 사라져 줘야겠다.”

“무서워용……!”

유성과 세현이 키득거리고, 그룹의 막내인 예찬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한별은 왜 형이 지금껏 자리를 지키다 멤버들이 모인 이제야 자리를 비우는지 잘 알았다. 지금 한별에겐 유성의 페로몬이 아주 소량 묻어 있었다. 제 페로몬인 척하라는 뜻이겠지. 형을 죽일 것이다.

욕실로 향하는 유성의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는 한별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단영이 웃으며 한별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미 옅게 묻어 있는 페로몬을 확인한 것인지, 단영의 눈은 굉장히 온화해져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유성이가 얘기했어. 힘들었을 텐데, 잘 버텨 줘서 다행이야.”

“……예, 예?”

“요즘 몸도 안 좋다며. 부모님도 자주 집 비우셔서 어떡하냐고 걱정 많이 하더라고.”

어라?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간 건가?

일전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던 유성의 호언장담을 떠올린 한별은 일단은 수긍했다.

“아…… 네.”

“물론, 우리도 곧 컴백이라 많이 챙겨 주지는 못해. 미안해.”

“아뇨, 아뇨! 괜찮아요.”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스케줄은 최대한 바꿨거든. 유성이가 픽마돌 끝나자마자 채널 데뷔 초에 스케줄 뺑뺑이로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 정도도 못 해 주겠어?”

“저…… 그러면, 유성이 형은 지금…….”

“응. 유성이가 꼭 나가야 하는 것만 제외하면 다른 스케줄은 전부 우리만으로 돌린 상태야.”

최유성…… 진짜 머리 좋네. 한별은 형님의 커다란 계획에 입을 꾹 다물었다.

이 계획엔 진실과 구라가 적절히 섞여 있었다. 기실 몸이 좋지 않은 건 유성이지만, 한별 역시 고3인 탓에 스트레스가 있는 것은 맞다. 또한 출장이 잦아 부모님의 케어가 덜 닿는 것 역시 맞았다.

“저번에 갔을 때, 부엌 찬장에 라면 가득한 거 봤다더라. 유성이가 속상해했어.”

“아…….”

그 역시 사실이었다. 하지만, 집에 라면이 많은 이유는 전적으로 유성의 탓이었다.

‘섞어 먹으면 맛있는 라면 조합을 한가득 보낸 게 형인데?’

심지어 한번 해 보라며 택배를 보낸 것 역시 유성이었다.

그 사실을 쏙 빼고 나니, 남은 것은 ‘주변의 관심이 절실한 고3 시기에 집에서 라면만 먹고 다니며 몸이 나빠진 한별’의 이미지만 남았다.

이러면 내가 뭐가 돼! 어쩐지 단영 형의 눈이 굉장히 안타까운 동생을 보는 눈이더라!

“학원 안 가는 날만 유성이가 과외를 해 줄까 고민하는 것도 그렇고. 학교 끝나고 가는 학원도 매일 가는 거 아니라며?”

“네에……. 화요일이랑 목요일만 가요.”

“그래. 숙소 출입할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어색해하지 않아도 돼. 늦으면 자고 가도 되고. 어차피 유성이가 있잖아.”

대체 거짓의 빌드업을 얼마나 치밀하게 한 건지. 다른 멤버들 역시 안쓰러운 얼굴로 한별을 바라보았다.

이에 한별은 쏟아지는 눈길에서 피하고자 조금 쉴 수 있냐고 물었고, 씻고 있는 유성 대신 윤수가 한별을 유성의 방으로 안내했다.

“저…… 형. 저, 진짜 여기 있어도 괜찮은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자신은 오메가이지 않나. 단영이야 자신이 알파이긴 해도 동생을 아끼는 멤버를 걱정하는 리더의 입장에서 수긍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 멤버인 윤수는 아닐 수 있었다. 심지어 그는 우성 알파지 않나. 한별이 긴장한 얼굴로 묻자, 윤수가 손을 들어 한별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푹 쉬어. 건강해야지.”

그러곤 한별의 품에 과자를 한가득 안겼다.

“많이 먹고. 내일 또 줄게.”

이 과자들 다 먹으면 이가 전부 썩을 텐데. 한별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한별이 내내 책상에 늘어져 있자, 태하가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한별의 주위를 돌아다녔다.

쉬는 시간마다 양호실에 갈 것인지, 아니면 병원에 갈 필요는 없는지 묻는 탓에 한별은 그저 피곤해서 그렇다며 손을 내저었다.

“……뭐? 형 숙소에서?”

“응. 주말 내내 있다가 온 참이야.”

형의 거짓말을 완성하기 위해 간 것이라곤 해도, 고3인 만큼 공부를 하지 않을 순 없었다.

한별은 기껏해야 수능이 한 달 정도 남은 수험생이었다. 수능 시간표에 맞춰 정확하게 과외 해 주는 유성 덕에 굉장히 힘든 주말을 보냈다.

“과외 받느라……?”

“그렇게 됐다.”

“그…… 위험한 거 아니야?”

태하가 눈을 크게 뜨고 계속해서 한별에게 물었다. 눈에 걱정이 가득 서린 탓에, 한별은 자신도 모르게 태하를 안심시키려 말을 꺼냈다.

“뭐, 매일 가는 것도 아니고 학원 안 가는 날만 형이 과외 해 주는 거라.”

“그래? 그래도…….”

“어차피 다른 형들은 스케줄 있어서 다 나가고, 형이랑 단둘이 있었는걸.”

“음……. 공부라면 나도 알려 줄 수 있는데…….”

“응? 태하, 넌 연습해야지.”

“어? 아니, 그…….”

매일 연습 가는 애가 과외는 무슨. 한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 보니 유성과 같은 사람이 여기 또 있다. 한별은 툭 하면 모든 시험 점수가 만점인 또 하나의 사기캐를 보자 기분이 싱숭생숭해졌다.

도대체 어떻게 시간 관리를 하고, 머리가 얼마나 좋으면 그 힘든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공부까지 잘하지? 거기에 키는 왜 크고, 노래랑 춤은 왜 또 잘하는데?

새삼 공평하지 못한 신의 피조물을 보며 한별은 눈을 흐렸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