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제대로 된 살잽이 꽃의 영향을 받았다면 기괴하게 변하진 않았을 거다. 좀 더 그럴싸한 사람 외형을 갖췄겠지. 얼굴에 이목구비가 생긴다거나.”
“얼굴은 민둥 얼굴 그대로였습니다.”
“아마 저 화단 속에 들어 있는 건 살살이 꽃과 피살이 꽃이 전부겠군.”
“아~ 이제 알겠습니다.”
강림 도령의 설명을 들은 묵범이 드디어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뼈는 원래 없으니 살살이 꽃과 피살이 꽃의 영향으로만 그렇게 비대해진 것이군요.”
“그렇지. 숨살이 꽃, 혼살이 꽃까지 있었다면 저 화단 주변은 좀비 같은 곤충이나 설치류로 난리 났을 거야.”
“그래도 돌연변이 동정귀보다는 나을 것 같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도화가 불쑥 끼어들었다. 지금 도화에겐 그 어떤 흉측한 몰골의 악귀보다 골목길에서 본 돌연변이 동정귀가 더 흉측할 게 분명했다.
“뭘 얼마나 흉측한 걸 봤길래 반응이 저러냐…?”
강림 도령이 눈살을 찌푸리며 묵범에게 물었다. 아까부터 도화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아 보였다.
“세상에는 알아서 해가 되는 것도 있습니다.”
“……?”
묵범마저 자세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자 강림 도령은 더 이상 알려 하지 않았다. 둘 다 이러는 것을 보니 괜히 알았다가는 꿈자리가 뒤숭숭할 것 같았다.
“우선 화단 좀 엎어 볼까?”
강림 도령의 말에 묵범이 옆으로 치워 둔 화단을 끌어왔다. 강림 도령은 국장실로 나가 신문 뭉치를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탁자에 재빨리 깔았다.
“쏟아.”
얼었던 게 녹아 축축해진 흙이 신문 위로 와르르 쏟아졌다. 어디서 찾아왔는지 도화가 장갑과 마스크를 내밀었다.
그냥 흙이라면 모를까. 음식물 쓰레기 썩는 냄새가 향기로울 정도인 심각한 악취를 조금이나마 막기 위해 셋은 중무장을 하고 살잽이 꽃씨 찾기에 돌입했다.
“그런데 씨앗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흙을 뒤적이던 도화가 강림 도령에게 물었다. 죽은 사람의 몸뿐 아니라 영혼까지 되살리는 꽃인데 그 씨앗이 평범하게 생기진 않을 것 같았다.
“나도 실물을 본 적은 없다만… 어떻게 생겼는지는 들어서 알고 있지.”
강림 도령은 냄새나는 흙을 만지기 싫어서 펜으로 흙을 들쑤시며 말했다.
“살잽이 꽃 안에 다섯 개의 꽃이 들어 있다고 아까 내가 말했었지?”
“네. 뼈, 살, 피, 숨, 혼을 살리는 꽃이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살잽이 꽃씨는 다섯 개의 씨앗을 담는 그릇이라고 하는 게 이해하기 쉽겠군.”
“그릇이요?”
도화의 질문에 강림 도령이 들고 있던 펜으로 흙이 닿지 않은 신문지 위에 그림 하나를 그렸다.
“살잽이 꽃씨는 이렇게 다섯 장의 꽃잎이 달린 연꽃처럼 생겼는데, 꽃잎 안에 다섯 가지 꽃씨가 모두 들어 있어야 완벽한 살잽이 꽃으로 필 수 있어.”
“하나라도 모자라면…….”
“살은 올랐는데 뼈가 없다거나, 뼈는 생겼는데 살이 없는 일이 생기겠지. 생전의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도 혼살이 씨앗이 없으면 혼수상태의 환자나 마찬가지일 테고.”
“굉장히…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겠군요.”
어쩌면 돌연변이 동정귀가 그나마 눈 뜨고 볼 수 있는 수준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국장님.”
“응? 뭐냐.”
강림 도령과 도화가 이야기하는 사이 열심히 흙을 뒤적거리고 있던 묵범이 손톱만 한 것을 내밀며 말했다.
“혹시 그게 이겁니까?”
묵범이 내민 것을 손바닥에 받아 든 강림 도령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묵범이 찾아낸 게 무엇인지 유심히 관찰했다.
묵범이 찾아낸 게 살잽이 꽃씨인지 궁금했던 도화는 강림 도령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 같이 구경했다.
꿈틀.
강림 도령의 손바닥에 올려진 것이 미세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와 동시에 그것에 집중하던 강림 도령과 도화의 몸도 움찔했다.
“야, 이 새끼야.”
“네? 왜 그러십니까?”
강림 도령이 손에 있는 것을 냅다 묵범에게 집어 던졌다. 묵범은 머리를 옆으로 살짝 움직여 날아든 것을 피했다.
“이게 지렁이 대가리지 어딜 봐서 씨앗이냐!”
“아, 안 속네.”
강림 도령이 버럭 화를 냈다. 묵범은 낄낄대며 다시 흙을 뒤적거렸다. 진지했던 분위기가 묵범 때문에 확 풀려 버렸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잘린 지렁이 머리를 줄 수 있는 거지? 도화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이지. 저거 가면 갈수록 또라이네.]
얌전히 도화의 목에 걸려 있던 현천이 쯧쯧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당연히 도화의 귀에만 들리는 중얼거림이었다.
[보통 또라이가 아니야.]
[빨리 살잽이 꽃씨나 찾고 퇴근해야겠어.]
꽃씨를 찾으면 집에 갈 수 있겠지.
도화는 옆에서 강림 도령이 묵범에게 삿대질을 하며 화를 내는 것을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보내며 열심히 씨앗을 찾기 시작했다.
“너, 입 벌리고 기다려. 어엉? 내가 지렁이 몸뚱이를 찾아서 네 입에 쑤셔 넣어 줄 테니까! 알았냐!”
“임앙욜곤뒈요?”
“뭐라고? 똑바로 말 못 해?!”
“임앙욜고롸구요.”
묵범이 입술을 작게 오므리고 웅얼거렸다. 그 모습을 본 강림 도령이 억! 소리를 내며 뒷목을 붙잡았다. 아무래도 묵범 때문에 혈압이 오르는 듯했다.
“내가 살다 살다 인간이나 오르는 혈압 상승을 경험할 줄이야.”
강림 도령은 묵범의 만행을 지적할 의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의자에 늘어져 앉았다. 홍도화를 옆에 붙여 놨더니 한동안은 일을 잘하길래 방심한 내가 잘못이지. 내 잘못이야. 중얼중얼 신세 한탄을 하다 강림이 다시 펜을 집어 들었다.
“씨앗만 찾고 당장 꺼져.”
“듣던 중 반가운 소립니다.”
꺼지라는 말에 묵범이 활짝 웃었다. 도화는 속으로 웃었다. 씨앗을 찾는 손이 분주해졌다.
‘어? 이건가?’
손으로 흙을 살살 걷어 내며 찾던 도화의 눈에 강림 도령의 설명과 비슷한 것이 들어왔다. 색도 진한 갈색에 크기도 수박 씨앗만 해서 퇴근을 위한 집념이 아니었다면 못 보고 지나칠 뻔했다.
“국장님. 이거.”
“찾았나? 지렁이 몸통?”
“예? 아니, 그건 아닙니다.”
강림 도령도 열심히 흙을 뒤적거리길래 어서 묵범을 보낼 생각이구나 싶었는데. 씨앗이 아니라 묵범에게 먹일 지렁이 몸통을 찾는 중이었다.
“살잽이 꽃씨인 것 같아서요.”
“그래?”
도화에게 건네받은 것을 살펴본 강림 도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류 선반으로 갔다. 뜬금없이 술을 꺼내러 간 건가 싶었는데, 강림 도령이 가져온 것은 전에 보았던 보안 상자였다.
“살잽이 꽃씨가 맞군. 안에 살살이 꽃씨만 들어 있어.”
“아…….”
그래서 동정귀가 그따위 모습이었구나.
살살이 꽃씨만 들어 있었다는 말에 도화는 동정귀의 기괴한 모습이 어찌 만들어진 것인지 파악했다.
“그런데 이상하군.”
“뭐가 말입니까?”
강림 도령 몰래 지렁이 몸통을 찾아 뒤로 휙 던진 묵범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물었다.
“제대로 된 씨앗은 살살이 꽃씨 하나밖에 없는데… 나머지 네 군데의 홈에 이상한 것이 박혀 있어.”
“이상한 것?”
“이게 뭔지는 나도 모르겠군. 우선은 누가 눈치채지 못하게 보관해 놨다가 꽃감관이 오면 보여 줘야겠다.”
강림 도령은 도화가 찾아낸 씨앗을 보안 상자에 담았다. 그리고 펜으로 뚜껑에 X 표시를 남겼다.
“악취가 사라졌습니다.”
씨앗이 보안 상자에 담기자 마스크를 뚫고 콧속을 파고들던 악취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역시. 정상적인 씨앗은 절대 아니군. 이제 퇴근해.”
“아닙니다.”
“?”
퇴근하라는 강림 도령의 말에 일어나 갈 준비를 하려던 도화는 난데없는 묵범의 거절에 눈살을 찌푸렸다.
또 무슨 엉뚱한 짓을 벌이려고 퇴근을 거절하겠다는 건지 불안하기도 했다.
“저 씨앗이 언제 화단에 심어진 것인진 모릅니다만, 저희는 일주일 내내 저 씨앗의 기운과 악취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흠. 기운이 활성화되기까지 잠복기간이 있을 수 있다. 이건가?”
“네. 씨앗이 저거 하나라고 장담할 순 없으니까요.”
묵범이 강림 도령의 앞에 있는 보안 상자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나 걱정하던 도화는 다행히 정상적인 이유에 안도하며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리고 묵범을 향해 말했다.
“뭐 해? 빨리 찾지 않고.”
화단의 흙이 예상보다 꽤 많다. 꼼꼼히 다 살피려면 셋이 달라붙어도 최소 30분 이상은 걸릴 것 같았다.
“엇. 여기 하나 더 있네요.”
다시 흙을 뒤적거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묵범이 씨앗을 찾아냈다. 묵범이 찾아낸 살잽이 꽃씨의 홈엔 뼈살이 꽃씨만 제대로 들어 있을 뿐, 나머지는 정체 모를 시커먼 씨앗이 박혀 있었다.
그렇게 약 40분이 지나고 나서야 변질된 살잽이 꽃씨 찾기가 끝이 났다. 다행히 묵범이 추가로 찾아낸 한 개 외에는 더 나오지 않았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내일… 아니, 자정이 넘었으니 오늘이지. 오늘 출근은 둘 다 쉬어.”
“오… 그래도 됩니까?”
“무급입니까?”
얼굴에 화색이 도는 묵범과 달리 도화의 얼굴은 반가움 반 떨떠름 반이 섞였다. 쉬는 것은 좋은데 월급에서 하루 쉰 만큼 삭감되는 것은 싫은 듯했다.
“이 시간까지 일을 했는데 무급일 리가 있나. 왜? 출ㄱ—.”
“아닙니다. 잘 쉬겠습니다.”
무급이 아니라는 대답에 도화는 강림 도령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바로 탁자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나무 화단에 다시 흙을 담고 신문지를 치우고 바닥에 떨어진 흙까지 깨끗하게 쓸었다.
어서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의지가 너무나도 확고해서 강림 도령은 농담으로라도 출근하란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
“그러면 내일 뵙겠습니다.”
예의 바르게 허리 숙여 인사까지 한 도화는 뭐 하냐는 눈빛을 묵범에게 보냈다. 어서 차에 시동을 걸라는 의미였다.
“아, 맞다. 담마는 출근시켜.”
“담마를요?”
당연히 담마도 같이 쉬는 줄 알았던 도화는 예상외의 말에 반문했다.
“야근은 너희가 했지 담마가 했냐? 그리고 이제 곧 청우 일을 돕는 것도 끝나니까 담마는 그때 휴가를 주마.”
“알겠습니다.”
따로 휴가를 준다고 하니 문제 될 것은 없다. 도화와 묵범은 어서 가 보라는 강림 도령의 손짓에 고개를 끄덕이고 국장실을 나섰다.
술 창고에 혼자 남은 강림 도령은 한쪽에 비치된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절로 입에서 탄식 같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 정말 미치겠군.”
일이 계속 터지는데 무엇 하나 시원하게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홍 차사 덕분에 미해결 사건이 조금은 진전되나 싶었는데. 갑자기 살잽이 꽃씨라니. 그것도 괴이하게 비틀린…….”
아마도 두 개의 살잽이 씨앗이 사라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서천의 꽃밭이 드넓긴 하지만, 꽃감관 안락국의 손이 얼마나 빠르고 꼼꼼한지는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다.
고작 두 개의 씨앗, 그것도 제대로 된 살잽이 꽃씨가 아니라 버려 둔 것이겠지만, 절대 서천 밖으로는 나가서는 안 되는 난득지물(難得之物).
반 갈라진 씨앗 조각조차도 꽃감관의 삼엄한 관리하에 있다. 그러니 조만간 차사국에 올 안락국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