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하… 이래서 동정귀는 혼자 해결하려고 했던 건데.”
적막이 감도는 컴컴한 골목에 묵범의 탄식과도 같은 중얼거림이 들렸다.
쿵-!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소리가 묵범의 중얼거림에 덧씌워졌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도화와 묵범의 비명이 울렸다.
“이, 이, 이게 뭐지?!”
[무, 물컹했어. 물컹… 물컹…!!!]
“아니야. 좀 단단하기도 했어. 뭐지? 이 느낌… 이 감촉…….”
[에이. 설마. 아닐 거야. 아니겠지. 아니어야 해…….]
둘 중 좀 더 충격에 빠진 쪽은 직접 세 번째 다리를 튕겨 낸 현천이었다. 말이 검배로 튕겨 낸 것이지, 제삼자인 묵범의 눈에는 동정귀의 세 번째 다리를 있는 힘껏 후려친 것으로 보였다.
[그으어… 흐으… 켁, 힉! 흐아, 흐어.]
바닥에 쓰러진 동정귀의 입에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고통 어린 신음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몸을 바르작거리지도 못할 정도로 통증이 굉장히 심한 듯했다.
도화는 저 모습이 굉장히 익숙했다. 본인이 저래 본 적은 없으나 어디선가 본 적은 있었다. 저것은 마치.
‘남자가 다리 사이 급소를 가격당했을 때 보이는 모습인데…….’
도화는 검배가 동정귀의 세 번째 다리에 닿는 순간 현천을 통해 손바닥으로 전달되었던 감촉이 너무나 생생해서 하마터면 현천을 놓칠 뻔했다.
아는 감촉이다. 남자라면 절대 모를 리 없는 감촉.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거대해서 그런지 그 감촉 역시 비정상적으로 과장되어 느껴졌다.
‘저거 설마… 설마……?’
도화가 설마설마하며 묵범과 바닥에서 끙끙대고 있는 동정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도화의 눈동자는 꽤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야.”
“네.”
“이거 말이다.”
도화가 현천을 쥔 손으로 바닥의 동정귀를 가리키며 물었다. 차마 동정귀의 그것을 쳐다볼 순 없었는지 보지도 않고 가리켰다. 도화의 손에 잡힌 현천의 검신이 바르르 떨렸다.
[으으어. 흐으으어…….]
현천의 입에서도 기괴한 소리가 났다. 충격에 언어 회로가 고장 난 듯했다.
[도화야, 도화야. 내가 지금 뭘 친 것이냐. 으응? 굉장히 기분 나쁜 감촉이었는데……. 저게 과연 귀신이 맞는 게냐? 내 살다 살다 귀신한테 저런 감촉을 느껴 본 적은 없다. 도화야…….]
“기다려 봐. 나도 지금 저 자식한테 물어보는 중이니까.”
[저거 입은 없어도 말은 잘만 하던데. 저것한테 물어볼ㄲ—.]
“아니!”
[엥?]
도화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반드시 묵범에게 물어보겠다는 의지가 강력했다.
“이거. 내가 생각하는 그거냐…?”
“제가 아까 물어보지 않았습니까? 저게 뭔지는 알고 자르려고 하냐고 그랬는데 아주 잘~ 안다며 그래서 자른다고 했잖아요?”
“난 흉기인 줄 알았어.”
“흉기 맞습니다.”
“허어?”
묵범은 자기는 전혀 잘못이 없는 듯이 어깨까지 으쓱하며 대답했다.
“저, 저게 어떻게 흉기야?”
“흉기 맞다니까요?”
“?”
서로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가는데 해결되는 것은 전혀 없는 이 상황이 답답했는지 묵범은 긴 한숨을 쉬며 도화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왜 뒤로 도망갑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동정귀도 아니고. 같은 동료한테 그런 반응은 좀… 그렇군요.”
“무슨 말을 해도…….”
그런 끔찍한 말을 하냐고 따지려던 도화가 멈칫했다.
‘잠깐만. 저 자식이 동정귀가 되면… 쟤처럼 되는 건가?’
도화는 본인이 상상해 놓고 묵범을 아주 무서운 악귀 보듯 쳐다봤다.
“홍도화 씨. 지금 제가 동정귀가 된 모습을 상상한 거… 맞죠?”
“아, 아니거든?”
“말 더듬는 거 보니까 맞는데?”
동정귀의 가운데 다리가 그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누군가가 ‘내가 동정귀도 아니고~’라고 하면 당연히 동정귀가 된 모습을 상상하지 않을까.
—라고 해명하고 싶었으나 할 수 없었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묵범은.
“흐음. 무슨 상상 했어요? 저도 쟤처럼 이~만~하~게~ 커지는 상상?”
팔까지 활짝 벌리고 이러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마 해명을 들었다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달라부터 왜 그런 상상을 했는지, 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싶냐는 질문까지 해 댈 게 뻔했다.
[미친 게 분명해.]
도화의 속마음을 현천이 정확하게 표현했다. 이제 도화는 묵범에게 ‘미쳤다.’는 말을 하는 것도 입이 아플 지경이 되었다.
“저게 왜 흉기냐면 너무 크니까 흉기라는 겁니다. 커도 적당히 커야지. 저걸 누가 좋아해요?”
“그렇긴 한데…….”
“동정귀들이 워낙 그런 쪽으로 욕망이 강해서 원귀가 될 때 좀 커지는 경향이 있긴 한데… 절대 저 정도로는 안 커지거든요.”
“그건 나도 알아.”
[으, 도화야. 저거 꿈틀댄다. 어쩌냐?]
“뭐?”
현천의 부름에 동정귀를 확인한 도화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뒤로 크게 물러났다.
“이거 왜 이래…….”
묵범과의 대화에 집중한 사이 동정귀가 열심히 꿈틀대며 도화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원귀와 악귀, 사악한 귀물의 기운을 억누르고 고통을 주는 부용삭에 묶였는데도 지치긴커녕 아주 팔팔하게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본 묵범이 흥미롭다는 듯이 동정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부용삭에 묶였는데도 홍도화 씨를 포기하지 않고 다가가려는 걸 보면 한을 풀려는 의지가 엄청난 동정귀로군요.”
“잠깐만. 날 포기하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뜻이지?”
“동정귀가 무엇 때문에 동정귀가 된 건지 잘 아시는 분이 그런 걸 물어봅니까?”
“그걸 누가 몰라? 지금 내가 묻는 건 이것이 왜 나한테 이러는지잖아!”
“편견을 가지면 안 된다니까요? 대부분의 동정귀는 여자를 좋아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동정귀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지금 그 말은… 저 동정귀는 남자를 좋아하고, 한을 풀 상대로 나를… 나를……?”
“빙고!”
묵범이 경쾌하게 빙고를 외쳤다. 도화는 들고 있는 현천으로 묵범의 머리를 경쾌하게 후려치고 싶어졌다.
[하자아. 하자! 나랑? 응? 죽여 줄게. 죽여 줄게!]
“…….”
도화가 너무 멀리 뒷걸음질 치자 동정귀가 갑자기 발작하듯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외치기 시작했다.
[히힉! 잘해 줄게에! 잘 죽여 줄게에!]
도화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저걸 어떻게 죽여야 할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흉측한 악귀라 해도 현천과 함께라면 망설임 없이 베어 버렸을 텐데.
‘저건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싫다.’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보는 엄청난 혐오감에 도화는 냉철함을 잃어버렸다. 애초에 그의 냉철함은 묵범을 만나던 순간부터 사라지긴 했지만, 지금 이 상황은 냉철함을 넘어서 정상적인 사고 체계가 완전히 곤죽이 되어 버린 상황이었다.
‘얼이 나갔군.’
묵범은 석상처럼 굳어 버린 도화를 보고 혀를 쳤다. 사실 묵범도 동정귀가 이렇게까지 혐오스러울 줄은 몰랐다. 일주일 내내 때려잡은 것들을 합해도 지금 이놈만큼은 아닐 듯싶었다.
[묵범, 자네……. 나한테 달제가주를 준다고 한 이유가 이것 때문인 게냐?]
현천이 쇳소리를 내며 물었다.
“현천 당신은 알고 제 제안을 수락한 거 아니었습니까?”
[내가 알면 수락했겠냐!!]
“그저 그런 원귀를 처리하는 대가가 귀한 달제가주일 리가 없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현천의 분노가 급격히 꺾였다. 맞는 말이다. 원귀 중에서도 별 볼 일 없는 동정귀 하나를 베는 조건으로 그 귀한 달제가주, 그것도 한 병을 통째로 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다시 제안하지요. 저걸 베어 주시면 달제가주 한 병 드리겠습니다.”
[거절한다.]
단호한 거절에 묵범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죠. 홍도화 씨?”
“왜, 왜?”
“제가 해결해도 되겠습니까?”
“그걸 왜 묻지?”
“아까 제게 ‘저건 내가 해치운다.’라고 해서 물어봤습니다.”
“…….”
도화는 눈썹을 잔뜩 일그러트리고 바닥의 동정귀를 노려보았다. 히익, 힉! 신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괴상한 소리를 내며 도화를 향해 열심히 꿈틀꿈틀 다가오고 있었다. 달팽이보다 느린 속도였지만, 어쨌든 동정귀와 도화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는 중이었다.
“네가 해.”
“그러도록 하지요.”
도화의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묵범의 부용삭이 동정귀를 향해 날아들었다. 더는 도화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동정귀를 근처 전봇대에 묶어놨다.
[더 묶어 주는 거야? 세게? 꽉? 흐힛!]
[뭐라는 거냐…….]
달제가주가 날아가 버린 것에 크게 상심한 현천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으나 생전에 묶이는 것을 즐기는 놈이었던 듯했다.
“홍도화 씨. 여기. 받으세요.”
묵범이 들고 있던 도화의 흑립을 던졌다. 대신 동정귀를 처리해 주겠다는 묵범에게 잠시나마 고마움을 가졌던 도화는 지금 이 상황의 원흉 역시 묵범임을 깨달았다.
묵범이 흑립만 벗기지 않았어도 저 끔찍한 동정귀의 눈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참자. 괜히 여기서 따지고 들었다간 나더러 처리하라고 할지 몰라.’
치미는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며 도화는 재빨리 흑립을 썼다. 어서 동정귀의 시야에서 사라질 필요가 있었다.
[어어? 내 색시 어디 갔지? 색시야. 내 색시이!]
“씨…….”
색시라는 동정귀의 망언이 순간, 쌍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도화는 자신의 옆에 숨어 있던 현천을 움켜잡았다. 입이 보이지 않으니 입까지 포함해서 머리를 날려 버릴 작정이었다.
그러나 현천의 완강한 거부에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으아악! 싫다! 저딴 걸 벨 바에는 그냥 죽어 버릴 테다!]
“너도 색시라고 불려 보든가!”
[내가 왜! 이거 놔! 놔라!]
그렇게 도화와 현천은 막다른 골목에서 서로 힘겨루기를 했다. 그 모습을 보던 묵범이 피식 웃었다. 저 둘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심심할 틈이 없다.
묵범이 둘의 티격태격을 잠시 감상하는 틈을 타 동정귀가 목청 높여 외쳤다.
[다른 놈들이 내 색시를 훔쳐 갔구나! 가만두지 않을 거야아!! 내 색시 내놔라!! 내 색시! 내 색ㅅ- 쿠악!!!]
“더는 못 참아 주겠습니다.”
동정귀가 도화를 색시라고 부르는 게 마음에 안 든 묵범이 발로 동정귀의 목을 콱 밟았다. 말을 못 하게 만들려던 것인데 오히려 동정귀는 켁켁대면서도 좋다고 바르르 떨었다.
[켁! 케엑! 히히! 헥! 좋, 아!]
“으…….”
우득!
묵범의 다리에 힘이 들어가며 무언가 단단한 것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골목에 적막이 찾아왔다.
“진작에 이럴 것을.”
묵범은 미리 준비해 둔 경면주사 구슬을 축 늘어진 동정귀의 몸 위에 떨어트렸다. 그러자 동정귀의 몸이 흐물흐물하게 변하더니 구슬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죽은 동정귀를 빨아들인 구슬은 미동도 없었다. 묵범은 구두 코로 구슬을 살짝 건드려보고는 가차 없이 밟아 버렸다. 파삭, 소리와 함께 경면주사 구슬은 가루가 되었다.
발을 바닥에 탁탁 치며 가루를 털어 내자 구슬이었던 것이 붉게 반짝이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