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도화-137화 (138/146)

137화

카레는 맛있었다.

하지만, 라씨 아이스크림은 너무 달아서 도화 몫으로 나온 것도 모두 묵범의 차지가 되었다.

그리고 계산은 묵범이 했다.

“이 카페는 젤라또 아포가토가 유명합니다.”

“단 건 질색이야. 난 아메리카노.”

아무리 디저트에 문외한인 도화였지만, 아포가토에 아이스크림이 들어가는 것 정도는 안다. 그래서 평소 마시는 커피를 주문했다.

“아포가토 다섯… 아니, 열 잔에 에스프레소는 다 빼고 카라멜 마끼아또 가장 큰 사이즈로 두 잔이요.”

“……네?”

주문을 받던 카페 직원이 벙찐 얼굴로 반문했다. 아포가토 열 잔은 그렇다 치는데 에스프레소를 빼 달라니. 카라멜 마끼아또를 주문한 걸 보면 에소프레소 대신 부어 먹으려는 것 같았다.

“계산 안 합니까?”

“아, 아닙니다. 네, 네.”

당황한 직원이었지만, 오래된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재빨리 계산했다. 카드를 돌려받은 묵범은 흥얼거리며 계산대 옆에서 팔고 있는 쿠키를 구경했다.

잠시 뒤, 음료가 든 쟁반 위에는 쿠키가 종류별로 추가되어 있었다.

“역시. 단것에는 단 걸 같이 먹어줘야 힘이 난다니까.”

묵범은 보기만 해도 혀가 마비될 것 같은 괴이한 아포가토를 만들고 있었다. 카라멜 마끼아또에서 그치지 않고 모카 시럽과 초코 시럽, 거기다 꿀까지 받아와 둥그런 아이스크림 위에 마구 뿌려 댔다.

[저거, 저거 아무리 신선이라지만, 저 정도면 건강이 위험한 거 아니냐? 어휴. 단내가 여기까지 진동을 하네.]

도화의 목에 걸려 있던 현천이 질색을 했다. 현천은 도화와 달리 단맛을 적당히 즐기곤 했다. 예를 들면 막걸리에 설탕을 탄다거나 소주에 과일 아이스크림을 넣는 등으로 술에 단맛을 첨가하여 즐겼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쓴 술맛을 살짝 중화시킬 생각으로 만든 것이지 묵범처럼 극단적인 단맛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 묵범이 먹고 있는 괴이한 디저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

묵범이 먹는 모습을 쳐다보던 도화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뜨거운 커피가 든 머그컵을 들고 묵범과 같이 앉아 있던 테이블에서 멀리 떨어진 구석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왜 그럽니까?”

열심히 아이스크림을 입에 떠 넣던 묵범은 갑자기 자리를 바꾼 도화를 보고 의아해했다. 도화가 아무 대답 없이 커피를 마시자 그는 자신의 그릇을 들고 도화의 자리로 따라 이동했다.

“이 자리가 좋으면 이야기하지 그랬어요. 그랬다면 처음부터 여기에 앉았을 텐데.”

“너는 혈관에 피 대신 설탕물이 흘러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군.”

머리를 흔든 도화는 다시 자리를 바꾸기 위해 빈 테이블을 물색했지만, 안타깝게도 바로 옆자리 하나만 비었을 뿐 나머지 테이블은 모두 만석인 상태였다.

결국, 자리 옮기기는 포기한 도화는 먼저 카페를 나갈 생각으로 뜨거운 것을 참고 열심히 마셨다.

도화가 속도를 내어 마시자 숟가락을 놀리는 묵범의 손도 덩달아 빨라졌다. 순식간에 주문한 아포가토를 절반이나 해치울 속도였다.

그렇게 전투적으로 먹고 나왔는데도 시간은 아직 6시도 되지 않았다. 최소한 오후 9시부터 움직이기로 한 상태라 도화와 묵범은 약 3시간 동안 어디서 기다릴지 고민했다.

“아, 거기가 좋겠군요.”

“거기?”

“네. 어린이집 근처에 작은 공원이 하나 있습니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지금 가도 사람은 없을 겁니다. 갈까요?”

도화가 그러자고 끄덕거렸다. 그렇게 둘은 한적하다 못해 버림받은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공원으로 이동했다.

“동정귀가 여기서 나온다면 전혀 이상할 게 없겠는데.”

공원 내부에 있는 돌계단에 엉덩이를 걸쳐 앉은 도화는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하는 시간대의 공원 내부를 둘러보았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어디 모여들 데가 없어서 양기 충만한 어린이집으로 모여드는지, 원.”

묵범도 도화의 말에 동의했다.

현천은 도화의 목걸이에서 빠져나와 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고 돌아왔다.

[여기 공원은 어떻게 된 게 잡귀도 안 보이냐.]

인적이 드문 공원처럼 귀신이 많은 곳은 찾기 어렵다. 특히 이곳처럼 근처에 산이 있고 물이 있으면 귀신이 많이 꼬이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공원에 심어 둔 나무의 수가 상당해서 벌건 대낮에도 공원은 빽빽한 나무 그늘에 양지바른 곳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게. 공원인데 동정귀는커녕 잡귀도 안 보이네.”

현천의 말에 공원을 빠르게 스캔한 도화는 이 공원뿐 아니라 동네 자치가 이상하단 느낌을 받았다.

“맞습니다. 보통은 이런 공원에 잡귀가 모이기 마련인데 이상하게 아까 그 어린이집 근처에 모이더군요.”

“이유는? 찾아봤어?”

“제 생각은 어린이집 어딘가에… 동정귀를 포함한 잡귀를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귀를 끌어당기는 무언가라…….”

도화는 묵범의 대답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무언가’가 감이 잡히지 않아서가 아니라 짐작 가는 게 너무 많아서였다.

하지만, 짐작 가는 것의 대부분은 어린이집이라는 공간에서는 오래 버티기 힘든 그런 것들인 게 문제였다.

“잡귀는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제가 일주일간 지켜보니 저들보다 강한 동정귀가 자꾸 어린이집에 나타나니까 부스러기라도 주워 먹을 게 있나 싶어서 모여드는 것이더군요.”

“부스러기라도 먹으려고 모여든다는 건 부스러기를 떨구는 본체는 꽤 괜찮다는 의미잖아.”

“하지만, 꽤 괜찮은 것이라면 동정귀가 아니라 다른 것들이 먼저 선점했을 겁니다. 그런 것에 관심 있는 것은 귀신뿐 아니라 귀물도 있으니까요.”

“흠. 그렇긴 하네.”

도화와 묵범은 공원 의자에 앉아 대체 어린이집에 무엇이 있을지 한참을 고민했다. 찬 바람이 휘잉 둘 사이 공간을 스치고 지나갔다. 도화는 팔에 걸치고 있던 도포를 슬쩍 몸에 둘렀다. 추운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 바람이면 묵범이 ‘추우시죠?’라면서 어깨에 그의 도포를 덮어 줄 것 같아서였다.

“엇…….”

도화가 도포를 입자 묵범의 입에서 아쉬운 탄식이 흘렀다. 아무래도 도화가 예상했던 게 맞은 듯싶었다.

“몇 시지?”

“이제 8시 20분입니다. 슬슬 움직여 볼까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선 도화는 흑립을 쓰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아직 9시는 되지 않았지만, 건물 근처를 살피다 보면 문 닫을 시간이 될 것이다.

“선생님. 늦은 시간까지 우리 애를 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은 좀 일찍 오려고 했는데… 또 마지막이네요.”

피곤에 절어 보이는 남자가 어린이집 교사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와 사과의 인사를 했다. 남자의 손을 붙잡고 있는 남자아이의 아버지인 듯했다. 아이는 제 아버지와 선생님을 멀뚱히 쳐다보다 아버지를 따라 꾸벅 인사했다.

“괜찮습니다. 어서 들어가세요.”

“네에. 네.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한 번 더 교사에게 인사를 한 뒤,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을 떠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층을 제외한 나머지 층에 불이 꺼졌다.

“퇴근 안 하나?”

9시가 되었으니 홀로 남은 교사도 퇴근할 줄 알았던 도화는 투명한 유리창으로 보이는 교사의 행동에 쯧, 혀를 찼다. 교하는 퇴근 준비가 아니라 잔업을 하고 있었다.

아이와 학부모에게 인사할 때는 생글생글 잘만 웃더니 혼자가 되자 아주 피곤에 절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표정이 되어 열심히 종이를 자르고 붙이길 반복했다.

“1층은 제일 나중에 보기로 하고 5층부터 확인해 볼까요?”

“그러지.”

건물로 들어간 묵범이 먼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에도 CCTV가 달려 있었지만, 흑립을 쓴 저승차사가 화면에 잡힐 리 없었다.

꼭대기 층 반에 도착하자 바로 교실 문을 열려던 도화를 묵범이 저지했다.

“뭐야.”

“교실 안에도 CCTV가 있어서요. 우리 모습은 안 보이겠지만, 우리가 옮기는 물건은 찍힐 테니 미리 손을 써 두려고 합니다.”

“어떻게?”

“가짜 화면이 녹화되게 하는 것이지요. 저도 원리는 잘 모릅니다. 무구부가 만든 것이거든요.”

살짝 문을 연 묵범이 품에서 작은 부적을 꺼내 문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부적이 살아 있는 것처럼 날아가 CCTV에 찰싹 붙었다.

“효과는 세 시간 정도라고 하니 그 안에 다 확인해야 합니다.”

“세 시간이면 충분하겠지.”

나머지 두 군데의 CCTV에도 부적을 붙인 묵범은 이제 마음껏 뒤집어도 된다며 문을 활짝 열었다.

[정말 낮고 작군.]

난생처음으로 어린이집 교실에 들어와 본 현천이 중얼거렸다. 도화도 마찬가지였다.

저쪽에선 묵범이 장난감 바구니를 왕창 쏟아 놓고 뒤적거리는데 도화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거… 내가 만져도 안 망가지려나?”

도화는 자신의 손보다 한참 작은 헝겊 인형을 조심스럽게 집어 올리며 말했다. 작아도 너무 작아서 뭐 좀 찾아보겠다고 옷이라도 들췄다가 찢어질 것 같았다.

“망가지면 또 사라고 하면 되지요. 장난감이 망가져서 새로 사야 장난감 회사도 먹고 살죠. 애지중지 아끼기만 했다간 회사 망합니다.”

“…….”

묵범은 도화가 탐색에 소극적이자 궤변을 늘어놓으며 어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라고 재촉했다. 하지만, 장난감 바구니를 뒤적거리는 묵범도 그다지 꼼꼼하게 찾는 손길은 아니었다.

오히려 뒤에 있는 도화에게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

‘대충 찾는 시늉만 하고 집에 가자고 해야지. 홍도화 씨를 돌려보내고 나 혼자 다시 찾아보는 게 낫겠어. 동정귀 새끼들이 홍도화 씨를 보면 무슨 짓을 해 댈지…….’

뽀각.

묵범이 들고 있던 나무 장난감이 동강 나 버렸다. 조용한 교실에 장난감 부서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묵범은 어깨를 흠칫하며 도화를 돌아보았다. 분명 애들 장난감을 왜 망가트리냐고 한 소리를 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묵범의 귀에 들린 것은 도화의 타박이 아닌 ‘부욱-’이었다.

‘부욱?’

사람의 입에서 나올 만한 소리는 아니다. 묵범은 도화의 얼굴이 아닌 도화의 손을 쳐다보았다. 정확하게는 도화가 들고 있는 봉제 인형이었다.

부욱 소리의 정체는 인형이 입고 있는 옷이 찢어지며 난 것이었다.

“이거… 바느질로 다시 고칠 수 있겠지?”

눈살을 찌푸린 도화는 자신이 망가트린 인형을 묵범에게 보여 주며 물었다.

“요즘 인간들도 바느질을 잘할지 모르겠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반짇고리를 가져오는 건데.”

“홍도화 씨… 바느질도 할 줄 압니까?”

묵범은 자신이 망가트린 장난감을 슬쩍 다른 장난감 바구니에 넣어 숨기며 도화에게 다가갔다.

“뭐, 그럭저럭.”

[이미 망가트린 거 그냥 인형 속도 파 보지 그래?]

“현천의 말대로 한번 갈라 보지요. 부적이나 저주물(詛呪物)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현철이 검 끝으로 볼록 솟은 인형의 배를 쿡쿡 찌르며 물었다. 묵범도 현천의 의견에 동의했다.

하지만, 도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이 인형에선 아무것도 안 느껴져.”

망가진 인형을 제자리에 돌려놓은 도화는 본격적으로 교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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