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액셀을 밟는 묵범의 발놀림이 살짝 거칠었다.
살짝 거친 운전이었지만, 차체는 꽤 크게 흔들렸다. 안전방지턱에 걸린 탓이었다. 엉덩이가 들썩하더니 도화의 머리가 자동차 천장에 쿵! 부딪혔다.
“너… 운전 제대로 안 해?”
“미안합니다.”
도화의 핀잔을 들은 묵범은 부드럽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공용 주차장에 정차했다. 차에서 내린 도화는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여기야? 동정귀가 끊임없이 튀어나온다는 곳이?”
“그렇습니다.”
흔하디흔한 한국의 주택가였다. 빌라와 주택이 섞여 있고 좀 멀리 떨어진 곳에는 아파트 단지가 병풍처럼 길게 세워져 있었다.
근처 건물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주차장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알록달록한 5층 건물에서 나고 있었다. 거리가 꽤 있는데도 소리가 또렷하게 들릴 정도였다.
알록달록한 건물 바로 옆의 또 다른 건물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종류는 달랐지만, 소리를 내는 주체는 비슷했다.
건물 벽에 달린 간판을 본 도화는 이상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귀가 왔다가도 도망갈 정도로 양기가 강한 곳인데?”
“그렇죠? 그런데 무슨 동정귀를 끌어들이는 자석이라도 있는 것처럼 자꾸 저기로 들어가려고 해서 아주 골치 아픕니다.”
묵범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물은 도화가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물이었다.
‘신비 어린이집’.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린아이들이 가득 찬 곳.
모두 하원한 뒤에도 아이들의 흔적이 남아 귀는 얼씬도 못하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동정귀가 계속 몰려들고 있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었다.
“홍도화 씨가 복귀하기 전에 끝내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묵범이 주먹 쥔 손을 부들거리며 분하단 듯이 어린이집을 노려보았다. 그의 분노에 찬 시선에 지나가던 잡귀들이 단말마도 지르지 못하고 팍팍 터져 사라졌다.
[쟤는 뭔 눈빛으로 사람을… 아니, 귀신을 죽인다냐?]
[그러게.]
잡귀 여러 마리를 죽이고도 기분이 나아지질 않는지 묵범은 바닥에 버려진 빈 캔을 발로 뻥 쳤다.
[켁!]
숨죽이며 조용히 지나가던 지박령이 날아든 캔을 맞고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그 광경을 본 근처의 잡귀와 지박령들이 쏜살같이 모습을 감췄다.
‘대체 동정귀가 어떻길래 저렇게까지 나한테 보여 주기 싫어하는 거지?’
도화는 묵범의 태도가 과하다고 생각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도화의 머리 위에 흑립이 툭, 하고 떨어졌다. 전보다 저승차사의 능력을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묵범도 흑립을 꺼내 썼다. 그리고 아직 동정귀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부용삭을 꺼내 들었다.
“최소 백 년은 동정귀가 얼씬도 못 하도록 해 버려야겠습니다.”
누가 보면 동정귀에게 아주 심한 꼴을 당한 줄 알 정도로 묵범은 살벌했다. 그가 그럴수록 도화는 동정귀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시끌거리던 아이들의 소리는 서서히 잦아들더니 어느새 조용해졌다.
[뭐지? 왜 조용해졌지?]
어린이집 앞에 도착한 현천은 멀리서도 들렸던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지 않자 당황했다. 도화도 마찬가지였다. 건물 입구까지 왔으니 아이들 소리가 더 크게 들려야 했는데. 이상했다.
“안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 아냐?”
걱정이 된 도화가 묵범에게 물었다. 저 안에 있는 인간이 다 큰 성인이라면 별 신경을 안 썼을 테지만, 아이들이라 걱정이 되었다.
아이와 동물은 도화에겐 지켜야 할 존재였다.
“들어가 봐야겠-.”
“괜찮습니다. 낮잠 시간이라 조용해진 거니까요.”
“낮잠…?”
“잘 들어 보면 안 자는 애들 소리도 들릴 겁니다.
귀를 기울이자 잠에 들지 않은 아이들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를 낮춘 교사들의 말소리도 들렸다. 묵범의 말대로 낮잠 시간이 맞는 듯했다.
“양기가 이렇게 가득한데 무슨 배짱으로 동정귀가 자꾸 모여든다는 거지?”
아이들의 안전을 확인한 도화는 어린이집 건물을 한 바퀴 돌며 수상한 점이 있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겉만 봐서 그런지 이렇다 할 것은 보이지 않았다.
“특별한 것은 없을 겁니다. 홍도화 씨가 없는 일주일간 쥐잡듯 뒤졌었으니까요.”
“건물 안도?”
“당연하지요. 그것 때문에 야근까지 했습니다.”
“야근? 어린이집 조사를 하는데 야근까지 할 필요가 있나?”
도화는 묵범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야근 수당을 탐낼 놈도 아닌데 뭐 하러 야근을 한 거지?
도화의 시선을 느낀 묵범이 어린이집 창가로 다가가 손짓으로 도화를 불렀다. 그리고 자신이 왜 야근을 해야 했는지 내부를 보며 설명했다.
“여기 어린이집은 저녁이 훌쩍 넘은 시간에도 애들이 남아 있어서요. 마음 놓고 내부를 탐색하려면 9시 이후에 와야 했습니다.”
“강제 야근이었군.”
그럼 그렇지. 자발적으로 야근을 할 묵범이 아니었다.
‘그런데 9시 이후? 지금 몇 시지?’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PM 2:15.
오후 9시가 되려면 한참이나 남았다.
“설마 이대로 9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니겠지.”
“어디 방 하나 잡고 좀 쉬다 올까요?”
“…방?”
“점심도 안 먹었잖습니까? 아니면 아예 집에 들렀다 다시 올까요?”
아까는 동정귀가 나오기만 하면 다 때려죽일 기세더니. 묵범은 그새 일하기 싫은 티를 내고 있었다.
“됐어. 요즘 기름값이 얼만데. 쓸데없이 기름 낭비하지 말고 건물 외부부터 다시 탐색해. 눈이 둘이니 미처 못 본 게 보일지도 몰라.”
“흠. 귀찮은데.”
“귀찮으면 차에 가 처박혀 있든가. 옆에서 쨍알대지 말고.”
혼자라도 주변을 탐색한다는 도화의 말에 묵범이 기겁해서 언성을 높였다.
“그러다 동정귀가 튀어나오면 어쩌려고요?”
“……?”
이 자식,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지? 동정귀가 뭐라고?
도화는 묵범의 이런 반응이 도통 이해 가지 않았다. 동정귀는 잡귀보다 살짝 더 귀찮은 수준의 원귀로 취급한다.
보통 원귀는 적당히 원한을 풀어 주면 알아서 성불하여 순순히 저승차사를 따라 저승으로 간다. 하지만, 동정귀는 사정이 달랐다. 그들이 원귀가 된 이유가 이유인 만큼 원한을 풀어 주려면 ‘그것’을 필수적으로 하게 해 줘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아, 몰라. 난 저기 뒤쪽부터 살펴볼 거야.”
도화는 묵범을 내버려 두고 성큼성큼 어린이집 뒤쪽에 있는 작은 야외 놀이터로 향했다. 묵범이 황급히 도화의 뒤를 쫓았다.
“손각시도 찾아왔었다며. 지금도 찾아와?”
현무별저에 있었을 때 묵범이 보낸 메시지 중 ‘요즘 손각시가 자꾸 앞에 알짱댑니다.’라는 내용이 있던 게 생각나 물었다.
“아, 맞다. 손각시.”
“담마의 친아버지 일 같다면서. 제대로 알아봤어?”
“곧 당신이 휴가에서 복귀한다고 하니 알았다고 하고 가 버렸습니다. 슬슬 나타나지 않을까요?”
“오면 물어봐야겠군.”
부디 심각한 일은 아니길 바라며 도화는 어린이집 놀이터 울타리를 훌쩍 넘었다. 낮은 울타리 안에는 거친 인조 잔디가 깔려 있었다.
[이런 데 뭐가 있을 것 같진 않은데.]
놀이터 구실을 할 만한 최소한의 놀이기구만 배치했지만, 공간 자체가 워낙 좁아서 도화가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여기저기 툭툭 닿았다.
짜증이 치민 도화가 발로 시소를 밀었다. 그러자 종이가 바람에 날아가듯 힘없이 뒤로 밀려났다. 걸리적거리는 다른 놀이기구도 발로 밀어내려는데 놀이터와 이어진 어린이집 뒷문이 벌컥 열렸다.
“어머. 놀이터가 왜 이래?”
교사인 듯한 중년 여성이 놀이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상하네. 오늘 놀이터를 쓴 반은 없는데.”
도화는 괜히 움직였다가 놀이기구에 부딪힐까 봐 숨소리도 죽이고 가만히 멈춰 섰다.
“에휴. 좀 이따가 치워야지. 어흐, 너무 추워.”
다행히 여자는 놀이터 상태만 확인하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가 사라지자 도화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
“안 되겠죠?”
묵범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는 아예 놀이터 울타리 밖에서 도화를 구경하고 있었다.
“놀이터는 제가 잔디까지 싹 들어서 찾아봤었는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잔디까지?”
“물론 새벽에 했지요. 미끄럼틀과 시소가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보여 줄 순 없으니까요.”
맞는 말이다. 방금 도화가 한 지시도 주변에 누가 지나가질 않아서 다행이었지 누가 봤다면 귀신이다, 유령이다, 폴터가이스트다! 등등 시끄러워질 게 뻔했다.
저승차사의 능력으로 목격자의 기억을 소거하면 되지만, 애초에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이다.
“동정귀가 계속 나오긴 해도 제가 어느 정도는 다 없애 놨으니 지금 당장 나오진 않을 겁니다. 나오더라도 밤늦게 나타날 테니 우선 근처에서 식사나 하죠. 우리 점심 안 먹었잖아요?”
“흠.”
식사란 말에 도화는 손으로 자신의 배를 꾹 눌렀다. 배가 고픈 건 아닌데 뭔가 먹고 싶긴 했다. 아무래도 일주일 내내 현무별저에서 시리얼과 국수만 먹다가 묵범의 음식을 먹은 탓인 듯했다.
“저기 건널목 하나만 건너면 끝내 주게 맛있는 후식이 나오는 카레 전문점이 있는데 거기로 가죠.”
“…후식?”
보통은 후식이 아니라 본식이 맛있는 곳을 가지 않나?
“라씨 아이스크림이 끝내 주거든요.”
“카레를 먹으러 가는 게 아니라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는 건가?”
“그럼요. 매콤한 카레는 제 취향이 아니지만, 거기 아이스크림이 정말이지 하루 종일 먹으라 해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맛있습니다. 따로 아이스림 매장을 내주면 좋겠는데…….”
묵범이 단 것을 좋아한다는 건 지나가던 개도 안다. 하지만, 저렇게 맛있다고 찬사를 보내는 건 처음 본다.
‘그 정도로 맛있나? 라씨 아이스크림이라는 게?’
한 번 더 배를 꾹 눌러 본 도화가 작게 중얼거렸다.
“매운 카레는 안 먹어 봤는데.”
“그러면 이번 기회에 한번 맛보시지요. 매운맛 조절도 가능하니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묵범은 어서 먹으러 가자며 도화에게 손을 내밀었다. 놀이터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은 도화는 제게 내밀어진 묵범의 손을 탁! 쳐 버렸다.
기분 나쁠 법도 한데 묵범은 싱글벙글 웃으며 앞서 걷는 도화를 따라갔다. 도화가 제 의견을 순순히 따라 줘서 기분이 좋은 듯했다.
‘하는 짓은 참 쌀쌀맞은데 속이 훤히 보여서 귀엽단 말이야.’
카레를 먹으러 가자는 말에 두 번이나 배를 꾹 누른 것은 배가 얼마나 고픈지 확인차 누른 것일 것이다.
매운 카레는 안 먹어 봤다고 한 것도 너무 심하게 매운맛일까 봐 걱정하는 것일 테고.
‘내 손을 친 것은 트집 잡을 게 없으니까 머쓱해서 그런 것이겠지.’
묵범은 도화에게 트집이 잡혀도 괜찮았다. 어차피 이 근방에 후식이 맛있는 음식점 리스트는 모두 꿰고 있으니까. 카레가 퇴짜맞았다면 설렁탕집을 추천할 생각이었다. 그 집은 후식으로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젤라또 아이스크림이 일품이었다.
“빨리 안 오고 뭐 해?”
앞서 걷던 도화가 우뚝 멈춰서 묵범에게 어서 오라고 타박했다.
“네네. 갑니다. 가요.”
묵범은 긴 다리로 단번에 도화를 따라잡았다. 팔짱을 끼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카레를 먹은 다음 카페는 어느 곳으로 갈지 고민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