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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화-135화 (136/146)

135화

“이 자식은 대체 뭐 하는 놈이야.”

강림 도령이 만첩의 몽타주를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투덜댔다. 도화도 알고 싶었다. 이 남자의 정체가 뭔지.

어렵게 세운 가설보다 더 늘어난 의문점에 다들 머리를 식히고 있을 때, 청우가 잊고 있던 문제를 상기시켰다.

“홍 차사의 스승에 대한 기억도 문제가 있던 거 아닌가?”

“아… 맞습니다.”

“홍 차사. 그림은 그릴 줄 아나?”

“그림…이요? 그건 왜 물으십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도화가 반문했다. 청우는 대답 대신 반문을 하는 도화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아름다운 얼굴에 슬쩍 짜증이 스치는 것을 본 도화는 재빨리 머리를 흔들었다.

“못 그립니다.”

“조금도?”

“네. 조금도.”

“어째서?”

“……?”

어째서? 라는 질문에 도화의 말문이 막혔다. 그림을 그릴 줄 모르니 못 그린다고 한 것인데 어째서라니.

“예술 쪽은 재능이 전혀 없습니다. 동그라미도 제대로 못 그립니다.”

도화는 자신의 말이 진실임을 보여 주기 위해 텀블러에 손가락을 넣어 물을 찍었다. 그리고 탁자 위에 동그라미를 슥 그렸다.

도화의 물 묻은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가 좀 더 짙은 색으로 변하며 흔적을 남겼다.

“흠…….”

“음…….”

강림 도령과 청우가 침음을 흘렸다.

“정말 재능이 없군요. 살다 살다 원을 이렇게까지 엉망으로 그린 사람은 처음입니다. 원이 아니라 바닥에 떨어진 찐감자 같아요.”

“너는 꼭 말을…….”

말을 해도 그따위로 하냐고 따지고 싶었으나 따지지 못했다. 도화의 눈에도 자신이 그린 원이 바닥에 떨어져 뭉그러진 찐감자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네 스승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군.”

찐감자의 충격에서 벗어난 청우가 아쉬워하며 말했다.

“제 스승은 산적 두목같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스승의 얼굴은 왜 궁금해하시는 겁니까?”

“그야 자네가 제대로 된 기억을 해내려고 스승을 떠올릴 때마다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프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었죠.”

“그게 수상해서 물어본 거다.”

“?”

도화가 이해하지 못한 반응을 보이자 청우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치며 말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은 통증.”

“……?”

청우의 행동에 도화는 더욱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스승이 죽던 기억에 왜곡이 있고 그 생각을 할 때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팠지만, 그것과 미해결 사건들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부장님. 말이 심하신 거 아닙니까? 홍도화 씨의 성정이 예민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라 두통이 있는 겁니다. 머리가 터져 죽은 피해자들과 같은 선상에서 홍도화 씨를 볼 순 없습니다.”

‘아… 그 의미였구나.’

뒤늦게 청우가 머리를 톡톡 두드린 의도를 이해한 도화의 얼굴에 불쾌함이 확 올라왔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도화 본인과 관련된 미해결 사건의 피해자들 모두 광증에 무차별 살인을 벌였고, 기괴한 두통으로 머리가 터져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청우는 도화의 두통을 미해결 사건 피해자들의 증상으로 보고 있던 것이었다.

“부장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도화가 정색하며 말했다. 하지만, 청우는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접지 않았다.

“그래? 내 눈에는 똑같아 보이는데.”

“제 머리는 안 터졌습니다만.”

“터지기 전일지도 모르지.”

“미치지도 않았습니다.”

“미친다는 기준은 무엇이지? 헛것을 보면 미쳤다고 하나? 왜곡된 기억을 그대로 믿고 공격해도 미쳤다고 하지 않을까? 홍 차사,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부장님은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군요.”

“지금은 멀쩡해 보인다만, 언제 광증이 도질지는 홍 차사나 나나 모르는 일 아닌가? 아직 칼부림을 하지 않았을 뿐, 어쩌면 이미 미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어.”

[저거저거, 완전히 미쳤는데?]

참다못한 현천이 끼어들었다.

[네가 뭐라고 우리 도화를 미쳤다고 하냐? 도화 상사라서 참고 있었는데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현천의 역정에도 청우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현천에게 되물었다.

“현천, 그대도 내가 한 말이 이상하오? 아무리 홍 차사와 오랜 시간을 함께 지냈다지만, 냉정하게 판단해 보시오.”

[흠…….]

“뭐야, 현천.”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당장 아니라고 대답할 줄 알았던 도화는 현천의 침음에 입이 벌어졌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도화…. 하지만, 저 남자 말대로 냉정하게 생각하면 비슷하긴 해.]

[배신자. 고철 덩어리.]

[뭐? 배신자? 홍도화, 그 말을 네가 할 입장은 아닌 것 같은데?]

도화의 비난에 현천이 발끈했다. 현무를 그리워하는 제게 현무별저에 갔었다는 사실을 감추고 있었으면서. 그런 주제에 누가 누구한테 배신자라고 비난하는 것이냐고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고 싶었으나 손이 없어서 포기했다. 대신.

“윽.”

검 자루로 도화의 명치를 푹 찔렀다. 부지불식간에 명치를 들이받힌 도화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흘렀다.

평소라면 이 고철 덩어리가 정신 나갔냐며 혼쭐을 냈을 테지만, 오늘은 현천에게 잘못한 게 있어서 통증을 감내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면 청우의 말도 일리는 있어.]

[…네가 보기에도 그래?]

[그렇다고 네가 미친놈이라는 것은 아니야. 단지, 저 말을 들으니 네가 걱정이 되어서 그런다. 고민 좀 하고 신경도 써 보자.]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는데 현천이 이렇게 말하니 청우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기가 어려워졌다. 현천에게 고개를 끄덕인 도화는 묵범과 강림 도령을 쳐다보았다. 청우의 말을 어찌 생각하느냐는 눈빛이었다.

“신경 써서 나쁠 건 없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두통이 심했습니까? 걱정이군요.”

둘 다 청우의 의견에 동의했다. 도화가 미쳤다는 게 아니라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자는 의미였다.

하지만, 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는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 누구도 알지 못했다.

정말 청우의 말대로 도화의 두통이 미해결 사건 피해자들의 두통과 같은 증상이라면 두통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을 테니까.

“현무께서는 제 머리에 주술이 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주술? 저 남자가 걸었다는 건가?”

주술이란 단어에 강림 도령이 맹숭맹숭한 남자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을 가리키며 물었다.

“네. 그러니 치유부와 정화부에서 검사를 받아 봐도 될까요?”

“당연하지. 내가 직접 말해 둘 테니 내일 두 군데 다 돌고 결과 나오면 보고해.”

“네.”

강림 도령이 흔쾌히 허락했다. 도화는 부디 내일 검사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기를 바랐다. 머리에 아무 이상이 없길 바라면서도 이상이 있다면 주술을 건 자의 단서를 찾았으면 싶다.

‘그런데 정말 아무 이상이 없으면 어쩌지?’

머리에 주술이 걸린 흔적이 없다면 청우의 주장은 맞지 않는 게 된다. 광증이 도지거나 머리가 터져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기억 왜곡을 해결할 아무런 단서를 얻지 못하게 된다. 사실 도화는 어머니의 태내에서부터 만첩홍도 군락지를 떠나던 순간까지의 기억 중 아주 작은 조각 하나도 떠올리지 못했다.

‘만첩의 기억이 있으니 뭐라도 생각날 줄 알았는데.’

그래서 기대 반 걱정 반이다. 과연 내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강림 도령은 한숨을 푹 내쉬며 도화에게 말했다.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가 너무 많은 것 같군. 자네 눈이라든가 어머니라든가.”

“저도 제게 문제가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대답하는 도화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보였다. 휴가 내내 혼자서 난생처음 접하는 문제들을 맞닥트린 데다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점심시간이 지날 때까지 쉬지 않고 말을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게. 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뭔가.”

홍도화가 미해결 사건과 연관이 있단 것은 오래전에 알고 있었지만, 본인만의 문제도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단순히 개인 문제라면 상관없겠지만… 그게 아닌 것 같단 말이지.’

내일 검사를 하면 뭐든 한 가지는 답이 나올 것이다.

시간을 확인한 강림 도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여기까지. 홍 차사의 검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다시 모이기로 하지.”

따라 일어선 묵범이 강림 도령의 옆구리를 슬쩍 찌르며 물었다.

“이대로 퇴근 가능합니까?”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너야말로 광증이 온 거냐?”

“쳇.”

해산 분위기에 슬쩍 탑승해서 퇴근 기회를 노리던 묵범은 쯧, 혀를 찼다.

“아직 동정귀 임무를 끝맺지 못했다던데. 홍 차사도 복귀했으니 같이 가서 마무리 지어.”

점심시간에 맞춰서 집에 돌아가 도화에게 밥을 먹이려던 계획은 나중을 기약해야 했다.

맹숭맹숭한 남자 그림을 챙긴 도화는 묵범과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둘이 술 창고를 나가자 강림 도령은 내내 궁금했던 점을 청우에게 털어놓았다.

“홍 차사 말이야. 네가 부모가 누군지 알아봐 줄 수 있는 거 아냐?”

“내가? 왜?”

“그야 자네라면 도깨비들이 알아서 정보를 착착 가져다줄 테니까.”

“싫다.”

팔짱을 끼고 강림 도령을 쳐다보던 청우의 입에서 단호한 거절의 말이 나왔다.

“왜?”

“내가 그래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네 부하잖아.”

“상사가 부하의 부모 찾기를 도와야 할 의무는 없어.”

“이야~ 매정하다. 매정해.”

강림 도령은 혀까지 차며 청우를 매정하다고 비난했다. 도화의 굴곡 많은 인생사를 들었으면 불쌍한 마음이 손톱만큼이라도 생겼을 줄 알았는데.

“이유나 의무 때문이 아니라 자네보다 행복한 것 같아서 도와주기 싫은 거 아니야?”

“행복?”

행복이란 단어에 청우가 날 선 목소리로 반문했다.

“지금 내 앞에서 그딴 단어를 꺼내다니.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보군. 강림.”

청우가 이를 갈며 강림 도령에게 가시 돋친 기운을 내뿜었다. 항상 고여 있는 듯한 느낌을 주던 평소의 청우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급변화였다.

그는 행복이란 단어가 역린이라도 된 것처럼 굴었다. 강림 도령은 그런 청우를 애잔한 눈으로 응시했다. 청우는 자신을 그런 눈으로 보는 강림 도령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간이야 항상 내놓고 다니는 사람이라 그 정도 협박은 간에 기별도 안 간다네. 내 간은 겁도 없이 부풀기만 해서 겁을 먹으려면 하늘이 두 쪽 나고 갈라진 땅에서 용암이 솟구치는 정도는 되어야 아차 할걸?”

“하… 됐다. 말을 섞는 내가 반편이가 된 기분이군.”

더는 강림 도령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난 청우는 간다는 말도 없이 술 창고를 나갔다.

“성격 하고는.”

강림 도령은 남은 술을 탈탈 털어 넘기고 피식 웃었다. 누굴 닮은 것인진 모르나 성격 한번 대차게 더럽다.

‘저런 놈이 애를 낳으면 성격도 따라간단 말이야. 혼인을 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저런 성격의 사람이 둘이나 근처에 있으면 인생 참 고달플 것 같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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