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신선들이 하늘개를 발견한 곳은 제천 두학동 절터다.”
“두학동 절터라니. 하늘개가 말입니까? 거기서 무얼 하고 있었답니까?”
묵범이 어이가 없단 식으로 물었다. 두학동 절터는 이름 그대로 터만 남은 곳이지만, 고려와 조선 시대를 관통하는 중요 문화재다.
사고를 치고 도망 다니는 하늘개가 터만 남아 숨을 곳도 없어 보이는 절터에서 왜 발견이 되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땅굴이라도 파고 숨었나?’
도화는 떠돌다 산으로 들어온 개들이 자주 땅을 파던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하늘을 날아다니는 하늘개가 굳이 발에 흙을 묻혀 가며 땅을 팔 것 같진 않았다.
“죽은 상태더군.”
“아하, 죽어 있… 네…? 죽었다고요?”
청우의 말을 따라 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묵범이 반 박자 늦게 내용을 깨닫고 반문했다.
도화 역시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떴다. 조사 중 발견했던 하늘개의 털은 누군가에게 뜯긴 것처럼 엉망으로 뽑혀 여기저기에 흙과 섞여 있었다.
“싸우다 뽑힌 털처럼 보이긴 했는데… 털에는 피가 묻어 있지 않았었습니다.”
도화가 하늘개를 찾으러 덕유산에 갔을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묵범도 같은 기억을 떠올렸는지 하늘개가 죽었다 말에 크게 놀란 눈치였다.
“무엇에게 당한 겁니까?”
“천우인.”
“…천우인? 천우인이 제천에?”
도화는 재빨리 휴대폰으로 지난 토요일 제천 날씨를 검색했다. 천우인은 우박 형태로 내리니 제천 지역 일기 예보에 우박이 왔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천우인이라는 청우의 대답과 달리 제천의 날씨는 매우 화창했다. 우박은커녕 바람 한 점 불지 않던 날씨였다.
“희한하게도 천우인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고 땅속에 매복해 있다가 하늘개를 공격한 것 같더군.”
강림 도령이 불투명한 파일철에서 사진 몇 장을 꺼내 도화와 묵범의 앞에 내밀었다. 둘은 천우인이 땅에 땅속에 매복해 있었다는 말을 반신반의하며 사진을 살폈다.
“…진짜네?”
사진을 본 묵범이 중얼거렸다. 도화도 의심을 지우고 진지하게 사진을 유심히 관찰했다.
도화가 집어 든 사진은 천우인이 땅에 매복해 있었다는 증거 사진이었다. 한겨울이라 딱딱하게 얼어붙은 땅에 주먹만 한 크기의 구멍이 여기저기 숭숭 파여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얼어붙은 땅 위로 하늘개의 것으로 보이는 피가 흩뿌려져 있었다.
핏자국만 봐도 얼마나 처절하게 싸웠는지 예상이 갔다. 하지만, 다른 사진을 집어 든 도화는 방금의 생각을 바꿨다.
‘이건 싸웠다기보다…….’
일방적으로 당했다고 하는 게 맞았다. 두 번째로 집어 든 사진은 하늘개의 시신이 찍혀 있었다. 하늘개의 몸에 남아 있는 털은 거의 없었다. 불그스름한 털이 아주 짧게 잘려 있거나 살점째 물어뜯긴 자국투성이였다.
“천우인이 맞군.”
도화의 사진을 옆에서 같이 본 묵범이 말했다. 만약 천우인이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대체 무엇에게 물어뜯긴 걸까 미궁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범인이 천우인이라는 것을 알고 보니 물어뜯긴 크기며 잇자국이며 모두 천우인을 떠올리게 했다. 짧게 잘린 털은 날붙이에 잘려 나간 게 아니라 천우인의 이빨에 잘린 것이었다.
“하지만, 저희가 발견했던 하늘개의 털은 천우인에게 당한 게 아니었습니다. 분명… 손으로 쥐어뜯긴 모양이었어요.”
“그때는 다른 놈에게 당했던 것이겠지. 그것이 뭔진 모르지만, 그걸 피해서 도망치다 제천까지 갔고 거기서 천우인에게 당해 죽었다는 게 천계의 조사 결과다.”
강림 도령이 천계의 조사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하늘개를 죽인 게 천우인인 것은 확실하더라도 조사를 종결하기에는 아직 조사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 뭔지 모르는 범인은 찾지 않는 겁니까?”
“하늘개가 죽었으니 일단 사건은 종료하겠다는군.”
“다른 피해자가 나오면 어쩌려고…….”
“그러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 되겠지.”
묵범도 어이가 없는지 혀를 차며 말하자 청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외양간을 못 고칠 수도 있다.”
“못 고친다고요?”
“천우인도 잡질 못했는데 단서도 잡지 못한 놈을 어떻게 잡아? 그놈이 다른 범행을 저질러도 동일인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거다.”
청우의 말에 강림 도령이 ‘하여튼 천계 놈들이란.’ 하고 투덜댔다. 이번에는 묵범도 조용히 있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았나 보다.
“그러면 하늘개 사건은 완전히 끝난 겁니까? 홍선의 행방은 찾았답니까?”
도화의 질문을 받은 강림 도령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치며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그것도 문제야. 홍선의 행방도 몰라, 처음 공격한 범인도 몰라, 천우인도 못 잡아. 그냥 하늘개가 죽었으니 골치 아픈 사건, 더는 질질 끌기 싫어서 끝내려는 속셈이 너무 훤히 보여.”
으아아!
결국, 강림 도령은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트렸다. 답답할 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차사국이 쭉 맡겠다고 할걸. 아, 그냥 팀 하나 꾸려서 자체 조사를 해 볼까?”
“그거 좋은 생ㄱ—.”
“사건이 천계로 넘어갔으니 여기서 우리가 끼어들면 월권이다. 강림.”
“젠장. 털을 천계로 가져가는 게 아니었는데.”
“나중에 따로 조사해. 지금은 손을 떼는 게 좋겠어.”
도화는 분개하는 강림 도령이 이상했다.
하계에 벌어진 연쇄 방화 사건을 악귀의 소행으로 보고 차사국에서 조사하던 중 하늘개가 연루된 것이 확인되었다. 하늘개는 천계의 영수이니 사건은 천계로 넘어가는 게 맞았다.
안 그래도 일이 넘쳐나는 강림 도령이다. 귀찮은 것도 싫어서 넘쳐나는 일을 쌓아 두기까지 한다. 그런 사람이 굳이 하늘개 사건을 차사국이 맡질 못해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늘개 사건을 꼭 차사국이 맡아야 하는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강림 도령과 청우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도화가 슬며시 끼어들어 물었다.
“이유? 보고도 몰… 아, 이 사진을 안 줬군.”
도화를 타박하려던 것을 멈춘 강림 도령은 품에서 새로운 사진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별로 다를 건 없어 보이는 사진인데…?’
천우인의 흔적, 핏자국, 하늘개의 시신.
방금 본 사진들에도 찍힌 것들이었다. 도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자 청우가 손을 뻗어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여기.”
“?”
청우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하늘개의 머리 부분이었다. 하늘개의 시신이 워낙 피로 물든 탓에 ‘머리는 왜?’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뭔가 이유가 있겠거니 사진에 집중했다.
‘어? 머리가?’
죽은 하늘개의 머리 모양이 뭔가 이상한 게 눈에 들어왔다. 부용삭도 끊어 버리는 천우인의 절삭력이니 머리뼈가 온전할 린 없다.
하지만, 하늘개의 머리는 물어뜯긴 모양이 아니었다. 이것은 마치…….
“터졌다?”
의문형이었지만, 입에서 나온 순간 그것이 정답임을 깨달았다.
“설마… 하늘개의 사망 원인이 천우인이 아니라?”
“그래. 천우인이 아니라 머리가 터져 죽은 것이야.”
“…….”
그제야 도화는 강림 도령이 왜 이렇게 하늘개 사건을 다시 가져오고 싶어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들의 뉴스에는 잔인한 동물 학대범의 소행으로 나오고 있는 모양인데. 저건 어딜 봐도 광증에 의해 머리가 터진 거야. 그리고 이것.”
청우가 도포 소매에서 꺼내 탁자에 올려 두었다. 금색 실로 된 매듭에 홍옥이 장식된 선추(扇錘)였다. 굉장히 아름다운 장식이었지만, 군데군데 피가 튀어 있었다.
“하늘개의 홍선에 달려 있던 선추인 것 같다.”
“너는 이걸 어디서 찾았냐? 그리고 왜 지금 보여 줘?”
강림 도령이 기가 차서 청우에게 따지듯 물었다. 청우는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덤덤하게 대답했다.
“어제. 신선들이 하늘로 돌아가고 나서 뭐 없나 하고 가 봤다가 주웠다.”
“하여간. 신선들이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강림 도령의 분노에 도화는 슬쩍 묵범을 살폈다. 아까처럼 천계 혐오 발언이니 뭐니 해서 강림 도령의 화를 더 북돋을 것 같았다.
“저는 좀 빼 주시죠.”
“알아서 생각해.”
“그러면 빼도록 하겠습니다.”
둘 다 이상한 대화를 주고받긴 했지만, 다행히 언성이 높아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천우인은 홍선으로 뭘 할 만한 지능은 없어. 누군가 천우인을 부린 것 같군.”
청우가 이야기를 다시 원래 궤도로 돌려놓았다.
“어쩌면 덕계산에서 하늘개를 공격한 놈이 천우인을 부린 자일 수도 있겠어.”
“그게 아니라면 둘 다 누군가의 명령을 받았을 수도 있고.”
“어쨌든 하늘개 일은 좀 더 기다려 보는 게 좋겠어. 아무리 천계의 일 처리가 개판이라 해도 하늘개가 저리 죽고 홍선까지 사라진 마당에 언제까지 계속 개판 칠 순 없겠지.”
청우의 말에 강림 도령은 분개하던 것을 가라앉혔다. 청우의 입에서 개판이란 말이 두 번이나 나왔지만, 묵범은 마치 자신은 천계의 신선이 아닌 것처럼 딴청을 피웠다.
새로 꺼낸 술로 목을 축인 강림 도령이 현장 사진들을 정리하며 도화에게 물었다.
“자, 하늘개의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홍 차사. 이제 자네 이야기를 들어 봐야겠어. 그래, 현무별저에서 잘 지냈나?”
“잘… 지냈다고는 할 순 없지만, 소득은 있었습니다.”
현무에게 대강의 이야기는 들었다고 하니 도화는 어떻게 현무별저에 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생략했다. 뛰어넘고 이야기를 진행하려고 했는데.
[뭐……? 현무?]
‘아차. 현천을 잊고 있었어.’
워낙 조용해서 현천이 함께 있다는 것을 잊고 말았다.
‘젠장. 국장님 입단속을 했어야 했는데.’
그럴 틈이 없었다. 그 말을 하려면 현천을 몸에서 떼어 놔야 했고, 그랬다간 현천이 자기만 빼고 무슨 말을 했냐고 꼬치꼬치 캐물었을 게 뻔했다.
[도화야, 도화야.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 현무별저? 현천상제가 살아 있다는 게냐? 윤회의 굴레에 들었을 현천상제가?]
[어, 그게. 그러니까.]
[설마 주인 없는 현무별저에 너 혼자 들어가 일주일이나 휴가를 보내고 나온 것은 아닐 테고.]
[나중에 다 설명해 주면 안 될까? 지금은 회의 중이잖아.]
도화는 좀 봐 달라는 듯이 현천에게 부탁했다. 흔치 않은 도화의 부탁이었지만, 현천은 현무가 멀쩡히 현무별저에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목걸이에 걸린 현천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술 마시고 싶은 거 다 고르게 해 줄게.]
[…….]
[내 피 좀 타 줄까?]
[흠…….]
술은 참았는데 피는 못 참겠나 보다. 떨리던 검신이 점차 잦아들었다.
[오늘 집에 가면 하나도 빠짐없이 다 털어놔. 어떻게 현무별저에 갔고, 현천상제는 지금 무얼 하고 있으며.]
[알았어.]
[영귀, 그 자식은 여전히 현무별저에 있는지.]
[엇, 어. 응.]
[됐어. 하던 회의나 해.]
여전히 충격은 가시지 않은 현천이었지만, 지금은 도화의 휴가 보고를 하는 시간이니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