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대낮이지만, 한겨울의 바닷바람은 살이 에일 정도로 날카로웠다. 짠 내 나는 바람이 소년의 전신을 할퀴고 지나갔으나 도포 자락만 어지러이 날릴 뿐 소년은 태연하게 어디론가 바삐 걸었다.
만물을 얼려 버릴 겨울은 이상하게도 소년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숨은 쉬고 있는데 코와 입에선 허연 김이 보이지 않았다.
만약 소년을 관찰하는 이가 있었다면 저것이 산 자인지 귀鬼인지 빤히 쳐다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근방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은 소년 하나뿐이었다.
전란은 산을 등진 해안 마을까지 죽음을 들이밀었다.
남자는 전쟁에 차출되고 여자와 아이, 노인만 남았을 마을은 처참히 부서졌다. 약탈은 비단 재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림은 잘 알고 있었다.
나라가 침략당한 것도 억울한데 목숨까지 빼앗겼다. 억울한 죽음을 애도해 줄 이도 모조리 죽어 얼어붙었다.
산 자도 폐부를 얼릴 만큼 추운 바람을 망자라 느끼지 못하니 그것 하나만큼은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두 눈을 부릅뜨고 죽은 시신과 눈이 마주친 강림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강림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래도 너무 피곤해서 잡생각이 범람하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오늘도 밀려드는 망자를 처리하느라 전날 한숨도 못 잔 상태였다. 잠을 못 잔 것이 어제 하루뿐이었다면 강림은 이렇게까지 피곤하지 않았을 것이다.
‘벌써 한 달이다. 한 달.’
지금 이승은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상황이었다. 10년 전에도 한바탕 시름을 앓던 이승의 피해가 채 아물기도 전에 터진 두 번째 침략 전쟁에 저승 또한 쑥대밭이 되었다.
이승과 저승은 저울과도 같다. 이승의 생명이 줄어든 만큼 저승의 망자는 늘어난다.
이승과 저승은 거울과도 같다. 이승에서 왕이 백성을 관리하듯 저승에서는 저승시왕이 망자를 관리한다.
이승에서 전쟁이나 전염병,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저승은 일 폭탄이 터졌다.
그리고 지금.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하는 통에 대규모 망자가 저승으로 쏟아지는 중이었다.
하지만, 강림이 밤을 새운 이유는 망자 때문이 아니었다. 망자는 강림의 휘하에 있는 저승 차사들이 알아서 저승으로 인도하고 죄질에 따라 분류해 저승시왕에게 보낸다.
강림은 변질된 망자 때문에 잠시 눈을 감을 틈도 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곱게 죽어도 미련이 강한 자는 순순히 저승 차사를 따르지 않는다. 처음에는 미련을 해결하고자 이승에 남지만, 육체가 사라진 혼은 얼마 가지 않아 원귀가 되어 버린다.
사람에게 육신이 있는 이유는 혼이 깨지거나 더럽혀지기 쉽기 때문이다. 육신은 혼을 지키는 방패이고 깨끗한 혼은 사람이 바른 행동을 하도록 인도한다.
갓 죽었다면 육신이 크게 훼손되거나 아예 없어졌다 한들 저승 차사가 도착할 때까지는 충분히 충분히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억울하게 죽은 이는 그러하지 못했다. 원망, 집념, 복수가 혼을 오염시켜 원귀로 만든다.
그러니 전쟁통에 대규모 원귀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당연해도 과로사를 할 순 없어.’
강림은 바닥에 쓰러진 시신을 피해 열심히 걸었다.
“여기 어디에 있을 텐데.”
부지런히 주변을 둘러보며 걷던 그는 마을 뒤쪽, 산으로 이어지는 곳에 다다랐다.
‘찾았다.’
평범한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길이 희미하게 산을 향해 나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귀물들의 흔적이었다.
강림은 빠른 걸음으로 희미한 흔적을 따라 산으로 들어갔다. 길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길 끝에는 강림의 키만 한 길쭉한 바위가 비스듬하게 세워져 있었다. 정말 특별할 것 없는, 흔하디흔한 바위였다.
하지만, 강림은 바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똑똑똑똑똑-.
정확하게 다섯 번. 손등으로 바위를 쳤다. 그러자 대낮에 갑자기 새카만 어둠이 내려앉았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하늘에 떠 있던 태양이 사라지고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진 나무들도 사라졌다.
방금까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불던 바람과 바다 냄새도 어둠에 먹힌 것 같았다. 형태가 있는 것만이 아니라 소리와 냄새까지 사라졌다. 남은 것은 방금 손으로 친 바위밖에 없었다.
어둠은 강림의 발까지 삼켰다. 하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바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강림의 손이 바위 안으로 쑤욱 빨려 들어갔다. 그것을 확인한 그는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성큼 발을 내디뎠다.
몇 걸음 가지 않아 어둠은 사라졌다. 대신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냄새와 소리까지 사라졌던 것이 거짓이었던 것처럼 왁자지껄한 소음이 쏟아졌다.
‘여기가 불래(不來)로군.’
주위를 둘러보니 크고 작은 상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상마다 술과 음식이 없는 곳이 없다. 귀가 얼얼할 정도로 왁자지껄했던 것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기 때문이었다.
강림은 빠르게 내부를 훑었다. 역시.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 이곳은 하계의 인간을 제외한 모든 존재가 들락일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니 당연했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저승의 실세가 어찌 여길 다 오셨지?”
누군가 강림의 어깨를 툭 치며 반갑게 말을 걸었다. 강림이 한참을 올려다봐야 할 만큼 키가 큰 남자였다. 키만 큰 게 아니라 덩치도 어마어마했다.
“당신이 여강진인가?”
“오… 제 이름까지 아십니까?”
여강진은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고 강림을 쳐다봤다. 과장된 몸짓에 강림은 눈살을 찌푸렸다.
‘불래의 주인이 경박하다는 말은 듣긴 했지만…….’
실제로 보니 더 가벼워 보였다. 우람한 덩치와 행동이 어울리지 않아 거부감도 살짝 들었다. 하지만, 거부감은 이어진 여강진의 질문에 사라졌다.
“제 명성이 저승까지 닿은 건 아닐 테고…. 무슨 일로 불래에 오신 겁니까? 저승은 지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 아닌지요.”
“그건…….”
대답을 하려던 강림은 벌렸던 입을 다물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귀물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는 그대로였으나 시선은 모두 강림과 여강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수십 쌍의 눈은 불래에 찾아온 강림에 대한 호기심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인간이나 귀물이나 그게 그거군. 쯧.’
이승이 개판이면 필연적으로 저승도 개판이 된다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저승의 최고 관리자인 입장에서 저런 시선은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아, 제가 생각이 짧았군요. 보안이 되는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이리로.”
여강진이 손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강림을 안내했다. 그를 따라 2층 계단을 오르던 그는 불래 안으로 새로이 들어온 기운을 느끼고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도깨비?’
도깨비도 귀물이니 불래에 드나드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강림이 돌아본 이유는 불래에 들어온 사람에게서 도깨비 기운 외의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불래에 막 들어온 소년은 옷은 물론이고 온몸이 만신창이였다. 전쟁통에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라 해도 충분할 만큼의 엉망인 몰골이었다.
강림은 굳어 버린 것처럼 가만히 서 있는 소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귀물의 종류는 많고 교류도 활발하니 다른 귀물끼리 혼약이 성사되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도깨비는 아니었다.
도깨비는 특이하다 못해 지독하단 말을 들을 정도로 폐쇄적인 종족. 신이라면 모를까. 그 어떤 타 종족과 피를 섞는 일은 금지했다.
그래도 사람의 마음이란 게 어디서 샐지 모르니 아주 드물게 혼혈이 생기긴 했지만, 끈질기게 추적해 세상에서 흔적을 지워 버렸다.
그런데 불래에 반도깨비가 나타난 것이다. 불래에 있던 귀물들의 관심은 순식간에 강림에게서 반도깨비 소년에게로 옮겨 갔다.
“용케도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했군요.”
계단을 오르려던 여강진도 멈춰 서서 소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반도깨비 소년이 저 정도 성장할 때까지 살아남은 건 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뭐랑 섞인 거지?”
신기해하던 여강진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소년을 유심히 살폈다. 강림도 여강진과 마찬가지로 소년에게 집중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아무리 기운을 느껴 보려고 해도 저 반도깨비 소년을 구성한 나머지 절반의 기운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뭐야. 저 꼬마는. 어떻게 반도깨비가 살아 있을 수 있는 거지?”
“반도깨비 맞지? 내 코가 망가졌나 했네.”
“뭐랑 섞인 거지? 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인간인가?”
“아니야. 인간 냄새는 나지 않아.”
“한번 가서 물어볼까?”
귀물들이 하나둘 소년에게 다가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여강진이 강림에게 양해를 구하고 소년에게 재빨리 다가갔다.
“여~ 어디서 뭐 하다 이제 왔냐!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
여강진은 마치 소년을 전부터 잘 알고 지냈던 것처럼 덥석 들어 한 팔로 안았다.
반도깨비 소년은 누가 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여강진은 그런 소년의 등을 툭툭 치며 다정한 어른처럼 말했다.
“으이구. 꼬라지 하고는. 어서 방에 가서 씻어. 구석구석 빡빡. 알았지?”
“아, 그, 저…….”
“뽀득뽀득 소리 날 때까지다?”
“…….”
소년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려고 여강진에게 말을 걸려 했으나 여강진은 아주 유쾌하게 소년의 말을 흘려넘겼다.
지금 네가 하는 말은 절대 듣지 않을 것이란 의지가 너무 단호해서 소년은 그를 부르는 것을 포기하고 입을 다물었다.
“뭐야. 여각주랑 아는 꼬마였어?”
“그럼 그렇지. 반도깨비가 어떻게 멀쩡히 살아 있겠어. 도깨비들이 당장 죽이겠다고 추격할 텐데.”
“아무래도 내 후각이 맛이 간 것 같군.”
“어이~ 여각주. 여기 코에 잘 듣는 약 좀 줘!”
소년에게 살가운 여강진의 태도에 일어섰던 귀물들이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제대로 맡은 도깨비 냄새도 후각 이상이라 여겼다.
‘의외군. 귀물들에게 굉장한 신뢰를 얻고 있잖아?’
불래를 단순히 귀물들의 쉼터로 여겼던 강림은 누가 봐도 도깨비 냄새를 풀풀 풍기는 소년에게서 다들 관심을 거두는 게 신기했다.
여강진은 소년을 안은 채로 강림을 2층 제일 끝 방으로 안내했다.
“이 녀석 좀 다른 방에 넣어 두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알았다.”
강림의 대답에 소년이 흠칫, 몸을 떠는 게 보였다. 굉장히 예민한 녀석이구나. 강림은 여강진에게 안겨 근처 다른 방으로 들어가는 소년의 까만 머리통을 보며 생각했다.
‘하긴. 도깨비가 추격을 하지 않아도 이 전쟁통에 홀로 목숨 부지하기는 힘든 일이지.’
강림은 푹신한 보료에 앉아 여강진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