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두통과 광증?”
청우가 반문했다.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미해결 사건이 이렇게 많으니 제가 어디에 머물든 간에 몇 가지 이야기는 귀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도화는 야근을 하면 할수록 느꼈던 점을 천천히 풀어놓기 시작했다.
“저렇게 쌓일 정도로 많은 미해결 사건 중 제가 들었던 사건의 공통점은 두 가지였습니다.”
“방금 말했던 두통과 광증 말인가?”
“네. 두통을 호소하다 스스로 머리를 깨고 죽은 이도 있었고, 서서히 미치다 일가족을 살해한 자, 갑작스러운 광증에 사로잡혀 하룻밤 사이에 고을 사람을 모두 도륙한 자도 있었습니다.”
“흠. 그런 증상을 일으키는 원귀나 악귀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강림, 자네는 뭐 알고 있는 거 있나?”
청우가 강림 도령에게 물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그럴 순 있지. 왜 처자식을 다 잃고 머리가 다 세어 버렸다든가 정신 줄을 놨다든가. 그런 이야기 들어 본 적 있잖아?”
“저건 경우가 완전히 다른 것 같군. 아무리 스트레스가 심하다 한들 원귀나 악귀가 부리는 근본적인 능력은 아니지 않은가.”
“귀물 중에서는 없습니까?”
듣고 있던 도화가 청우에게 물었다. 청우의 말대로 원귀와 악귀의 능력은 아니다. 하지만, 귀물이라면?
도깨비의 나라-교맥국에서 살아 본 적이 없는 도화는 귀물이라면 당연히 배우는 귀계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다.
그래서 귀물이라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없어. 그보다 홍 차사.”
“네?”
“지금 자네가 말한 사건들. 모두 자네 주변에서 일어나 일인가?”
“아, 네…. 이상하게도 제 주변에 일어났던 미해결 사건들이 죄다 저렇더군요. 항상 쫓기며 사느라 한 군데에 오래 머물지도 않았는데. 옮겨 간 지역마다 두통과 광증에 대한 사건이 들리니 원귀와 악귀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 괴롭히는 줄 알았을 정도였습니다.”
“옮겨 간 지역마다라. 요즘도?”
“요즘은 잘 모르겠습니다. TV나 신문을 볼 틈도 없이 일만 해서……. 그래도 주변에 저런 큰일이 터졌다면 제 귀에 들어왔을 텐데 그런 적은 없던 것 같군요.”
“흠.”
청우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뒤죽박죽이던 머릿속이 꽤 수월하게 정리가 되어갔다.
“제 생각은 홍도화 씨와 좀 다릅니다.”
“?”
도화의 대답을 가만히 듣고 있던 묵범이 끼어들었다.
“다르다니? 뭐가?”
내가 그렇다고 하는데 왜 네가 나서? 도화의 속마음이 담긴 시선을 무시한 묵범은 강림 도령과 청우에게 제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유 없이 남을 해치는 범죄는 시대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고 그 속에 홍도화 씨가 느낀 두통과 광증에 얽힌 사건도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머리 아프다고 남을 죽였다는 기사는 본 적이 없는데?”
강림 도령이 묵범의 의견에 반문했다. 세상이 변하면서 다양한 이유를 근거로 사람을 죽이는 범죄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타당한 이유보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저지르는 범죄였다.
“요즘 두통 없이 사는 인간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맞는 말이군.”
“정신질환을 앓거나 심신미약인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자도 많습니다. 그리고 개중에—.”
“홍 차사가 들었던 옛 사건들과 같은 케이스가 있다. 이 말인가?”
청우가 묵범의 말을 끊고 반문했다. 묵범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덧붙였다.
“범인이 원귀, 악귀, 귀물 중 어디에 속한지는 모르지만, 그런 능력은 절대 흔한 것이 아니니 단독 범행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봐, 범 수석. 그 가설은 영 말이 되지 않아. 홍 차사가 말한 두통과 광증을 일으킨 미해결 사건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고 그러나? 백 년 단위가 아니라 천 년 단위라고.”
강림 도령의 반박에 묵범은 침음을 흘렸다. 청우와 도화도 묵범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여겼지만, 강림 도령의 반박 또한 맞는 말이라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그럴싸한 증거가 잡힐 것 같으면서도 잡히질 않으니 짜증이 나는 듯했다. 둘의 그 모습을 보던 강림 도령이 푸훗- 이상한 소리를 냈다. 웃음을 참다 터진 소리였다.
“왜 웃나?”
“왜 웃습니까?”
“푸하하!”
청우와 도화가 동시에 묻자 이번에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거하게 터지고 말았다. 강림 도령의 갑작스러운 폭소에 둘은 물론이고 묵범까지 이상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잠시 잠이 들었는지 간이침대에 누워 있던 현천도 벌떡 일어났다.
[뭐, 뭐냐? TV에서 뭐 재미있는 거라도 하냐?]
잠이 덜 깬 건지 현천이 웅얼거리며 도화에게 날아왔다. 헛소리 그만하고 잠이나 깨란 뜻으로 도화는 현천에게 주먹을 선사했다.
[으윽. 나 죽네.]
현천의 엄살을 묵살한 도화는 기분 나빠하며 다시 강림 도령에게 물었다.
“왜 웃으시는 겁니까?”
“왜 웃냐고.”
이번에도 도화와 청우가 동시에 물었다. 이쯤 되니 둘도 어이가 없어서 서로 동그래진 눈으로 쳐다봤다. 그걸 본 강림 도령은 터지는 웃음을 참느라 끅끅댔다.
“강림…. 당장 닥치지 않으면 벌집으로 만들어 버리는 수가 있어.”
한참을 웃던 강림 도령은 청우의 살벌한 경고에 웃음을 멈췄다.
“흠, 흠. 아니, 둘이 하는 짓이 너무 똑 닮아서 안 웃을 수가 있나.”
“닮았다고? 어디가? 벌써 노안이라도 온 거냐?”
“어디가요? 국장님, 안경 쓰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거 보라고. 안 그래? 범 수석?”
묵범은 뜬금없이 날아온 질문에 잘근잘근 씹던 빨대를 뱉고 어색하게 웃었다. 사실 그도 강림 도령처럼 웃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도화의 분노를 피할 길이 없기에 빨대를 씹으며 올라오는 웃음을 참던 중이었다.
“같은 추혼부인데 닮은 부분이 있어도 이상할 건 없지요.”
그 나름대로 강림 도령의 편을 들면서 도화와 청우의 사이도 어색하게 만들지 않는 답안을 선택했다. 다행히 그의 답안은 셋에게 고루 먹혔는지 날 선 시선이 날아들진 않았다.
문제는.
[아주 미간 찡그러트리는 것까지 판박이야, 판박이.]
현천의 분위기 파악 능력이 제로에 수렴한다는 것이었다.
[거기 추혼부 부장 씨. 어릴 적 잃어버린 아들 하나 없나? 묘하게 닮았는데.]
묵범은 현천의 평가를 정정했다. 제로에 수렴이 아니라 마이너스 무한대다. 현천의 입을 막은 것은 도화의 주먹이었다. 그는 현천의 날에 손에 다칠 것이란 생각은 머릿속에 아예 없는 것인지 거칠게 현천에게 주먹을 날렸다.
챙!
날카로운 금속음이 나며 현천이 술 창고 저 멀리, 구석으로 날아가 모습을 감췄다.
헛소리 메이커가 사라지고 강림 도령의 웃음도 멈추자 도화는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바꾸고자 입을 열었다.
“국장님은 이 사건들 중 일부가 저와 관련되었기에 맡긴 것이라 했고 말로 설명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으니 제가 직접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고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읽다 보니 확실히… 저와 관련이 있는 게 맞더군요.”
“그게 왜?”
강림 도령이 귀찮단 표정을 짓고 물었다. 전에 했던 이야기를 왜 또 하냐는 의미였다.
“저야 제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이니 옛 기억이 떠올랐다 치지만, 국장님께선… 그 사건들이 저와 관련된 것이란 걸 어찌 아셨던 겁니까?”
“호오… 그걸 이제 물어보다니. 홍 차사, 너무 둔한 거 아냐? 한 달이나 지났는데.”
“물어볼 틈이 있어야 묻지요.”
저 의문이 든 것은 술 창고에서의 야근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산월관에서 면접을 본 그날이 강림 도령과의 첫 만남이라고 여겼었는데. 강림 도령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어.’
생각해 보면 단순히 원귀와 악귀를 잡아 본 적 있다는 이유 하나로 자신을 채용한 것도 수상쩍었다. 저승 차사가 되고 수석인 묵범과 파트너가 되고, 담마까지 차사국으로 끌어들였다. 그것도 본인의 비서로.
‘나를 감시라도 하는 건가……?’
점점 강림 도령에 대한 의심의 싹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래서 물어보려고 했다. 우선은 자신을 언제부터 알고 있던 것인지부터 물어보려 했으나 한 달이 넘게 술 창고에서 야근을 하는 동안 강림 도령의 얼굴을 본 적은 손에 꼽았다. 그 손에 꼽은 횟수도 술 가지러 잠깐 술 창고에 들린 게 전부였다.
국장실에서 마시나 하고 나가 봤지만, 서류로 엉망인 책상만 있을 뿐 강림 도령은 항상 자리를 비웠다. 일부러 그러는 건가? 싶을 정도로 도화와 마주치질 않았다.
“아하하. 내가 좀 바빠서 말이야.”
“술 마시느라 그러시겠죠. 대체 근무 중에 누구와 그렇게 술을 마신 겁니까?”
“나다.”
“……?”
대답은 청우의 입에서 나왔다. 도화가 어이가 없어서 청우와 강림 도령을 번갈아 쳐다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화도 안 난다. 역시 강림 도령이군. 싶었다. 청우는 의외였지만.
“어쨌든. 국장님이 절 언제부터 알고 계셨는지. 혹시 절 감시를 한 것인지. 알아야겠습니다.”
더는 우스갯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듯이 진지하게 말하자 강림 도령도 건들거리던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것 참. 저 자식 때문에 계획이 다 엉망이 되어 버렸잖아.”
“?”
진지하게 대답을 할 줄 알았던 강림 도령이 묵범에게 삿대질을 하며 짜증을 냈다.
“제가 뭘 어쨌다고 그럽니까?”
묵범은 뜬금없이 당한 힐책에 쥐고 있던 컵을 우그러트렸다.
“네놈이 뜬금없이 도방을 끌고 오는 바람에 엉망이 되어 버렸다 이 말이다.”
“아니, 언제는 저더러 잘 데려왔다고 했으면서 이제 와서 이렇게 제 탓을 한다고요?”
“원래는 한 십 년 후에 추혼부에 자리 좀 만들어 두고 영입하려고 했거늘……. 다 네 탓이다!”
진지함은 고작 5분도 유지되지 못했다. 힐책과 반박이 교차하는 가운데, 도화가 벌떡 일어났다.
“국장님. 방금 그 말, 무슨 의미죠?”
십 년 후에 추혼부에 자리를 만들고 영입할 생각이었다고? 도화가 당장이라도 강림 도령의 멱살을 쥘 기세로 몸을 들이밀었다.
강림 도령은 도화의 어깨를 밀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반도깨비 홍도화. 나는 네가 불래에 드나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눈여겨보고 있었어.”
“불래……?”
도화는 자신이 언제부터 불래에 다니기 시작했는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언제였지? 스승님을 보내고 한참 뒤였던 것 같은데. 언제였더라?’
갑자기 기억해 내려고 하니 정확한 날짜와 연도는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청나라의 침입으로 나라가 온통 난리였던 기억은 난다.
“나도 정확하게 언제인진 기억이 안 나지만… 한 400년 전쯤이려나? 한참 전쟁통에 이승도 저승도 아주 생난리였었지. 넘쳐나는 망자만으로도 힘든데 대부분 억울하게 죽은 혼이라 툭하면 원귀와 악귀가 되어 버려서 잠깐 불래에 손 좀 빌리러 갔다가 홍도화, 자넬 본 거야.”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