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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화-103화 (104/146)

103화

[잘 뒈졌고만.]

탈주 망자의 추가 정보를 본 현천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잘 죽었다는 현천의 말은 맞는 말이었지만, 도화는 입장이 달랐다. 망할 놈이 죽었으면 순순히 감직 차사들에게 인도될 것이지. 뭐가 억울해서 탈주를 해?

“건물로 들어가 보죠.”

묵범이 먼저 앞장서며 말했다. 도화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열었다간 지독한 냄새가 입 안으로 들어올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강민진 때보다는 훨씬 낫지 않습니까? 숨은 쉴 만하잖아요.”

이렇게 말은 했지만, 묵범도 냄새가 역하긴 한지 살짝 인상을 쓰고 있었다.

냄새는 건물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심해졌다. 그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냄새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이야. 이거 구청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그냥 허름한 건물인 줄 알았는데. 내부를 보니 폐공장이었다. 구석에 망가지고 녹슨 정체 모를 기계가 몇 대 보였다.

냄새의 원인은 쓰레기 때문이었다. 폐자재부터 일반 쓰레기,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까지 어마어마했다. 겨울에 와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마 여름이었다면 마구 달려드는 파리까지 상대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김진규가 있는 게 맞아?”

“정보부에서는 김진규가 이 건물에 숨어 있다가 지박령이 되었다는군요.”

[지박령?]

“가지가지 한다.”

도화가 혀를 차며 비아냥댔다. 지명수배가 내린 상태로 도망치다 죽은 놈이 탈주까지 한 주제에 이제는 지박령이 되었다?

살아생전 죄질이 좋지 않은 혼이 지박령이 될 경우 백이면 백 원귀가 된다. 애초에 떡잎부터 썩어 문드러졌는데 죽어 영혼이 되었다 한들 새롭게 마음을 고쳐먹을 리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 지박령이 된 거지?”

“그야 찾아서 본인에게 물어보면 되겠지요?”

“여기서 김진규를 찾는다고?”

“지박령이니 당연히 이곳 어딘가에 있겠지요.”

묵범의 말에 도화는 질린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폐공장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외관은 2층 건물이었지만, 내부는 층 구분 없이 뻥 뚫린 단층이었다.

문제는 2층 높이의 천장에 닿을 기세로 쌓인 쓰레기였다. 폐자재나 일반 쓰레기도 문제였지만, 음식물 쓰레기가 최고의 걸림돌이었다.

도화는 목에 매달린 현천을 떼어 내며 말했다.

“현천.”

[응? 왜 불러?]

“크기 좀 키워 봐.”

[?]

현천은 도화의 부탁에 의아해하면서도 순순히 몸집을 키웠다. 한 뼘 길이의 단도에서 순식간에 장검으로 변했다.

“좋아. 실례 좀 할게.”

[으잉? 실례라니? 뭐 벨 거라도 있냐? 벌써 탈주 망잔지 뭐시긴 지를 찾은 게야?]

금방 끝낼 수 있겠는걸? 현천은 도화가 자신을 들고 쓰레기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자 기뻐했다. 하지만, 이내 불안함에 몸을 떨었다.

[뭐, 뭐야. 왜 거기로 가?]

“왜긴. 일하러 가는 거지.”

[너, 설마……?]

당황한 현천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래도 설마, 아니겠지. 감히 나를 저기에 쑤셔 박겠냐는 현천의 생각은 썩어 버린 나무판자와 함께 처참하게 꿰뚫렸다.

[으아악! 뭐 하는 짓이야!! 이 망할 반도깨비!!]

“뭐 하는 짓이긴. 빨리 찾고 쉬려고 한다.”

도화는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현천으로 찔러 옮기는 방식으로 쓰레기를 헤집고 있었다.

[아이고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현천상제가 윤회할 때 같이 따를 것을! 아이고오!]

“시끄러워.”

현천의 신세 한탄에도 도화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번에는 음식물 쓰레기가 담긴 봉투를 푹 찔렀다.

[으으…. 으으으……..]

폐자재와 일반 쓰레기를 찌를 때는 시끄럽게 신세 한탄을 하던 현천이었지만,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박히자 급격히 말수가 줄었다. 힘없이 신음만 흘렸다.

[내가 죽거든… 저 반도깨비 때문이라고 전해 줘…….]

아마도 묵범에게 남기는 듯한 말을 하고는 완전히 입을 다물었다. 쓰레기를 만질 생각에 손에 장갑을 끼고 있던 묵범은 그런 도화와 현천을 보고 소리 없이 웃었다.

저렇게 서로 티격태격하고 있지만, 묵범의 눈에는 친형제끼리 툭탁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귀물이 아무리 오랜 시간을 산다지만, 살며 느끼는 감정은 인간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현재 홍도화의 성격이 저리 무뚝뚝하고 까칠한 것은 천성이 아니라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고 온갖 핍박과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자란 탓일 것이다.

그럼에도 악한 귀물이 되지 않은 것은 홍도화를 거두고 가르친 스승이란 자와 항상 옆에 붙어서 저리 툭탁거리는 현천의 영향일 터.

‘조금은 내 영향도 있는 것 같지만.’

묵범은 자신을 만나기 전의 도화가 어땠는지 정확하게는 모른다. 차사국으로 끌어들이기 전에 몇 번 만났던 것을 바탕으로 유추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도화가 저로 인해 크게 변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변한 건 나도 마찬가지인가.’

그는 큼지막한 폐자재를 옆으로 치우며 피식 웃었다. 홍도화의 변화가 크다지만, 자신도 만만치 않았다.

겉으로는 그대로인 것 같지만, 속은 온통 뒤죽박죽이다. 홍도화를 만나고 초반에 겪었던 지독한 갈증은 많이 나아진 상태이지만, 그렇다고 멀쩡하다곤 할 수 없었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온종일 붙어 있어서 그나마 눈이 돌아 버릴 지경까진 막을 수 있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가끔 홍도화의 돌발 행동도 도움이 되었다. 비록 의식이 없는 사람의 몸을 만지는 게 다였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최근에는 몽식과 얽히는 바람에 긴 잠에 빠진 도화를 실컷 만지고 구경했다. 양심상 얼굴과 손을 만지작거리는 게 전부였으나 그게 어딘가.

어쨌든, 홍도화는 묵범의 갈증을 유발함과 동시에 해소할 수 있는 존재였다. 첫 만남부터 그랬다.

저승 차사를 방해하는 반도깨비. 절반의 출신을 알 수 없는 귀물. 도방이라 불리는 자가 있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묵범은 자신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라 여겼다.

묵범은 임무 중 도방을 마주친다 해도 일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무시할 생각이었다. 저승 차사가 되었다지만, 본업이 아닌 파견직이라 직업 정신 따위 그에게 있을 리 없었다.

‘귀찮은 일은 절대 끼어들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아마 묵범을 아는 천계의 사람이라면 지금 묵범이 감직부가 아니라 추혼부, 그것도 수석이 되었다고 하면 믿지 않을 것이다.

묵범은 귀찮은 것이라면 천지왕이 와서 멱살을 쥐고 흔든다 해도 귓등으로도 들어먹지 않는 인물이다. 천성이 그러했다.

귀찮음이 하늘을 찌름에도 자진해서 차사국으로 내려온 것은 천계가 너무 무료했기 때문이었다. 설렁설렁해도 눈치 보지 않고 재미는 재미대로 있으면서 돈도 벌 심산으로 내려왔다.

물론, 묵범의 계획은 절반은 성공했고 절반은 실패했다. 실패의 원인은 차사국 국장인 강림 도령 때문이었다.

감직부에 배치된 묵범이 일을 너무 안 하기로 악명이 자자하니 추혼부에 강제로 박아 버린 것이다. 감직부와 추혼부 두 군데서 일을 하게 되니 적당히 일을 하는 것은 실패했다. 하지만, 원귀와 악귀를 때려잡는 추혼부의 일이 의외로 적성에 맞았다.

그렇다고 해서 수석 자리까지 오를 생각은 절대 없었다. 그저 감직부 임무로 스트레스가 쌓이면 추혼부에 가서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수석은 휘하의 차사들을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는 위치라 묵범의 성격에 절대 맞지 않았다.

하지만, 홍도화를 추혼부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수석이 되어 버렸다. 차사국의 방해꾼이었던 홍도화를 저승 차사로 데려오고 싶은 묵범과 그를 추혼부에 완전히 묶어 버리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강림 도령의 이해관계가 적당히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내가 이딴 쓰레기를 뒤지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묵범은 코를 찌르는 냄새를 무시하며 열심히 쓰레기를 헤집었다. 탈주 망자 김진규가 느껴지진 않지만, 근처 어딘가에 있는 것은 확실했다. 지박령인 이상 이 건물과 공터를 벗어날 순 없다.

[지박령인데… 그냥 망할 혼부터 찾으면 안 되는 거냐……?]

현천이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호소했다. 도화가 얼마나 음식물 쓰레기를 쑤셨는지 여기저기 정체불명의 찌꺼기가 붙어 있었다. 참으로 측은한 모습이었다.

“김진규의 시신을 찾는 게 더 빠를 겁니다.”

[그러냐……?]

체념한 대답을 끝으로 현천은 조용해졌다. 그 뒤로 한참 동안 쓰레기를 뒤집는 소리만 건물 내부에 울렸다.

그리고 얼마 뒤. 도화의 손끝에 탄력 없는 고깃덩어리가 꿰뚫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현천이 외쳤다.

[찾았다!!!]

썩은 돼지고기인 줄 알았지만, 현천이 저리 반응하는 것을 보면 찾고 있던 김진규의 시신인 것 같았다.

장갑을 낀 묵범이 현천이 꽂힌 곳을 파헤쳤다. 그러자 더럽고 너덜너덜한 모포가 드러났다. 모포를 들치니 그 안에 기름에 떡이 진 검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김진규의 시신이었다.

[우욱… 나 좀 씻고 오마…….]

현천은 토할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어디론가 날아 사라졌다.

묵범은 모포째로 김진규의 시신을 꺼냈다. 모포를 펼치니 솜이 다 빠진 허름한 롱패딩을 입은 중년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겨울이라 부패가 심하게 진행되진 않았다. 그래서 품에 소중히 안고 있는 비닐봉지 속 내용물도 멀쩡했다.

검은 비닐봉지 안에는 또 다른 비닐봉지가 들어 있었다. 그 안에는 여러 번 접힌 신문이 있었다.

신문에 뭔가 특별한 내용이라도 있는 건가 싶었으나, 펼쳐 보니 신문 안에는 손바닥만 한 작은 종이 한 장이 나왔다.

“복권?”

“복권이군요.”

“설마, 이거…. 혹시?”

도화는 복권에 적힌 회차 수를 휴대폰으로 검색했다. 그리고 복권 숫자를 빠르게 입력했다.

“…….”

검색 결과는 바로 나올 텐데. 도화는 말없이 휴대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복권을 쥔 손과 휴대폰을 쥔 손, 모두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묵범이 예상했단 듯이 물었다.

“당첨입니까?”

“어…. 그런 것 같아.”

“몇 등이죠?”

“1등.”

“역시. 그래서 탈주 망자에 지박령까지 된 것이군.”

안 봐도 뻔했다. 지명수배자 신분으로 당첨금을 수령하러 갔다간 그 자리에서 잡힐 게 뻔하니 해결 방법을 찾을 때까지 도주하던 중일 것이다.

수중에 돈은 없으니 배는 고프고. 지명수배 포스터 때문에 알아보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도착한 폐공장에서 결국 마지막을 맞이했다.

복권 1등에 당첨되었는데. 그 돈을 받아 보지도 못하고 죽었다. 복권에 대한 미련 때문에 탈주 망자가 되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복권 때문에 지박령이 되었다.

“이제 불러 볼까요?”

“어떻게?”

도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묵범에게 물었다. 시신은 찾았지만, 여전히 망자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부른다는 거지?

묵범은 말로 설명하는 대신 흑립을 벗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도화의 흑립도 벗기며 말했다.

“누가 1등 당첨된 복권을 버렸군요. 주인이 없으니 그 복권은 홍도화 씨, 당신 것입니다.”

“내 거라고?”

이거 진짜 내가 가져도 되는 거냐? 되물으려던 도화는 뒤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서늘한 기운에 흠칫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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