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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화-102화 (103/146)

102화

하지만, 무고한 사람을 죽이거나 죽도록 유도한 것은 아니었다. 의뢰를 받고 잡으러 간 원귀가 참회의 기미를 보이길래 기회를 줬더니 악귀로 진화한 경우가 전부였다. 물론, 악귀가 되어 피해가 더 커지긴 했지만, 어차피 원귀나 악귀를 잡는 것은 도화가 아니라 저승 차사가 해야 할 일이니 손쓰지 않아도 도화가 책임질 일은 아니긴 했다.

“자네. 지금 ‘왜 이게 내 탓이지?’라고 생각했지?”

“…….”

강림 도령이 던진 말에 도화가 흠칫했다. 뭐지? 독심술이라도 하는 건가?

“하하. 남의 속을 들여다보는 능력 따윈 없어. 자네 얼굴에 속마음이 다 드러나서 그런 거야.”

“그…렇군요.”

도화는 괜히 머쓱해서 마른세수를 했다.

“뭐, 따지고 보면 자네 탓은 아니지. 하지만, 자네가 끼어들면서 원귀가 참회해 버리는 바람에 뒤늦게 해결하러 간 저승 차사가 빈손으로 온 경우도 여기 어딘가에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해도 제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음… 지금 내가 설명하기는 좀 곤란하군.”

“?”

도화는 저도 모르게 서류를 들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조용한 술 창고에 종이 구겨지는 소리가 작게 퍼졌다.

“말로 설명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말이야. 자네가 직접 미해결 사건들을 훑어보면 이유를 알 수 있을 거다.”

강림 도령의 알쏭달쏭한 설명에 도화는 긴 한숨을 쉬고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손가락을 쫙 펴며 말했다.

“다섯 배.”

“뭐? 안 돼!”

“여섯 배.”

“이야, 이런 날강도를 봤나!”

“일곱 배. 싫으면 담마한테 시키시든가요.”

“허어?”

도화는 계속해서 야근 수당을 높였다. 설명을 듣다 보니 강림 도령은 애초에 이 일을 제게 맡길 생각으로 부른 게 분명했다. 그래서 배짱으로 나갔다.

“여덟—.”

“아, 잠깐. 잠깐!”

예상대로 강림 도령이 급히 도화의 말을 끊었다.

“왜 그러십니까?”

“좋아. 다섯 배.”

“싫습니다.”

“여, 여섯…….”

강림 도령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아, 좀 봐줘라. 어? 내가 개인적으로 자네한테 맡기는 일이라 야근 수당도 내 사비로 주는 거라고…….”

“그렇습니까? 돈 많으신 분이니 좀 더 쓰셔도 되겠네요.”

“으으…….”

강림 도령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도화는 의자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여섯 배. 하겠습니다.”

“정말? 정말이지? 와하하! 다행이다. 고맙다. 고마워.”

“뭘요.”

강림 도령은 도화의 손을 잡고 고맙다고 꾸벅 인사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본 현천이 작게 중얼거렸다.

[이건 뭐… 바보도 아니고.]

도화가 서류를 분류하기 시작하자 강림 도령은 국장실로 나갔다. 이제 도화는 술 창고에서 따로 일을 해야 하니 국장실의 서류는 오롯이 강림 도령의 몫이었다.

하루치를 해치우면 또 하루치가 쌓인다. 이 속도라면 서류 작업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아~ 퇴직하고 싶다!”

강림 도령의 진심 어린 외침이 국장실 밖 복도까지 울렸다.

* * *

오전 스케쥴은 가볍게 탈주 망자 다섯을 잡는 일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잡는 시간보다 이동하는 시간이 몇 배는 더 길었다.

“요즘 많이 피곤해 보입니다.”

다음 목표 장소로 이동하던 묵범은 잠시 신호 대기에 걸린 사이에 도화에게 물었다.

“어? 아… 뭐, 한 달 넘게 야근 중이니까.”

“아직 멀었습니까?”

“아직 절반도 못 했어.”

아직 멀었다는 말을 하는 도화의 얼굴엔 묵범의 말대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강림 도령의 술 창고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야근을 한 지 벌써 한 달이나 지났다. 처음에는 최소 한 달이면 되겠거니 했는데 한 달은 무슨. 두 달이 지나도 끝이 날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매일 자정 넘게까지 일하는 건 문제군요. 제가 국장님께 말해 줄까요? 야근 시간을 좀 줄이든가, 추가 인력을 붙이든가.”

“됐어. 말해도 내가 해. 네가 무슨 내 보호자냐?”

“보호자 시켜 주면 안 됩니까?”

“……?”

[600살 넘은 반도깨비 보호자가 흑호라니.]

듣고 있던 현천이 껄껄 웃었다.

“됐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도화는 아예 묵범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피곤해 죽겠는데 저 자식과 입씨름을 했다간 정신이 피폐해질 것 같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정 힘들면 때려치우세요.”

“아니야. 해야 해.”

“제 도움도, 담마의 도움도 싫다면 믿을 만한 사람을 붙여 드리겠습니다.”

“현천이 알아서 잘 도와주고 있으니까 필요 없어.”

“현천이?”

묵범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도화의 가슴을 쳐다보았다. 목걸이 형태로 도화의 목에 걸려 있는 현천이 묵범의 시선을 느끼고 꿈틀댔다.

[어허. 내가 팔다리는 없어도 두 눈 멀쩡히… 아니, 눈도 없구나. 어쨌든, 시력은 끝내 주거든? 무엄한 시선 거두지 못할까?]

“그렇다고 칩시다.”

[뭐? 이런 호랑말코 같은 놈이 있나!]

현천이 도화의 가슴팍에 매달려 부들부들 떨었다.

“시끄러우니까 둘 다 닥쳐.”

도화의 나지막한 경고에 차 안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창문에 머리를 기댄 도화는 멍하니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도움을 받을까?’

앞으로 최소 두 달은 서류 더미에서 고생을 해야 한다. 혼자 하라면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담마가 문제였다.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라고 누누이 말했으나 말을 들을 담마가 아니었다. 말이 자정이 넘어 퇴근이지 집에 들어오면 새벽 2시가 되었다.

‘누굴 닮아서 고집이 그리 센 건지.’

도화의 피로가 쌓여 갈수록 담마의 눈 밑도 조금씩 퀭해지고 있는 중이다. 겉보기엔 다 큰 것 같지만, 성체가 아닌지라 잘 먹고 잘 자야 하는 시기였다.

‘결국… 저 자식밖에 없는 건가?’

애초에 강림 도령은 묵범을 붙여 준다고 했었다. 하지만, 야근까지 묵범과 붙어 있긴 싫었기에 꾸역꾸역 혼자 했었는데 아무래도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현천이 도와준다고 해도 입으로만 조잘거리는 게 전부니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국장은 국장대로 일을 하고 있어서 도화를 도와줄 틈이 없었다.

‘젠장.’

질끈 눈을 감은 도화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묵범을 불렀다.

“저기.”

“저기가 누굽니까?”

아, 씨-.

튀어나오려는 욕을 꾹 참았다. 잘 참았다. 홍도화. 스스로 다독이고는 다시 제대로 불렀다.

“묵범.”

“네. 홍도화 씨.”

이름을 부르자 즉답했다. 자길 불렀다는 걸 알면서도 능청스럽게 모르는 척하는 그가 얄미웠으나 부탁하는 입장이니 화는 누르기로 했다.

“도와줘.”

“무얼요?’

“야근.”

“보수는요?”

“…….”

말문이 막혔다. 보수를 달라고 할 줄은 몰랐다.

“왜요. 제가 그냥 도와줄 줄 알았습니까?”

이번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말하자니 너무 염치없었고 준다고 하자니 묵범이 무얼 보수로 달라 할지 두려웠다.

“듣자 하니 야근 수당을 여섯 배나 올렸다면서요?”

“그래서. 돈 달라고?”

야근 수당이란 말이 나오자 도화가 까칠하게 반응했다. 묵범은 그럴 줄 알았다며 피식 웃었다.

“돈은 저도 많습니다. 가만히 숨만 쉬어도 제 통장 잔고는 불어나고 있으니 굳이 당신한테 돈을 받을 필요는 없고……. 무얼 받으면 좋을까.”

신이 난 묵범은 흥얼흥얼 노래까지 하며 운전을 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도화는 울화통이 터져서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숨만 쉬어도 돈이 불어난다고? 얄미운 새끼!’

빠드득. 도화의 턱에서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부럽고도 얄밉다. 나도 알아서 저절로 잔고가 늘어나는 통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도화의 속은 묵범이 제게 무얼 요구할지에 대한 걱정이 아닌 잔고가 불어나는 통장에 대한 부러움으로 가득 찼다.

[이거, 이거 또. 돈에 핀트가 나갔구먼.]

현천이 쯧쯔, 혀를 찼다. 도화와 함께한 세월이 긴 그는 지금 도화가 왜 이를 가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홍도화 씨. 정했습니다.”

신이 나 속도까지 올리며 운전하던 묵범이 도화를 불렀다.

“정했다고? 뭐, 뭘?”

놀란 도화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어찌나 놀랐는지 목소리가 떨리기까지 했다.

“하루 한 번, 10분씩 안아 주기.”

“……?”

이건 무슨 개소리지?

“지금 개소리라고 생각했죠?”

“알면 때려치워.”

“도움 안 필요한가 보네?”

“야- 이- 씨- 픕-!?”

된소리 욕이 튀어나오는 도화의 입술에 묵범의 손가락이 닿았다. 그리고 욕을 채 완성시키기 전에 꾹 눌러 저지했다.

‘이 자식이?’

입을 막으니 눈으로 욕을 하는 도화였지만, 묵범은 운전을 하느라 앞만 보고 있었다.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잖아요? 돈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몸이 힘든 것도 아니고.”

“정신이 힘들어.”

“그냥 커다란 곰 인형 끌어안는다고 생각해요.”

“곰 인형은 딱딱하지 않아.”

“흠…. 운동을 좋아하는 곰 인형이라고 칩시다.”

묵범은 자신이 한 말이 웃긴지 키득거렸다. 도화는 입술을 누르고 있는 묵범의 손가락을 거칠게 뜯어내고는 잔뜩 인상을 썼다.

‘도움을 받긴 받아야 해. 받아야 하는데. 그런데…….’

저 자식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그것도 10분이나?

도화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추워요?”

“춥겠냐?”

“아쉽네. 예행 연습으로 안아 주려고 했는데.”

도화는 더 이상 묵범의 말에 대꾸하길 포기했다. 반박하면 또 헛소리를 지껄일 테니까.

“도착하려면 멀었어?”

“여깁니다.”

“?”

여기라는 말에 정신 차리고 창밖을 보니 잡초가 무성한 공터에 허름한 2층 건물이 있는 장소였다. 묵범한테 정신 팔린 사이 서울 근교로 나온 듯했다.

평소에는 그날의 임무 정보를 세세하게 확인하는 도화였지만, 지속된 야근으로 인한 피로 때문에 정보 확인은 묵범에게 맡기고 있었다.

공터 구석에 주차한 묵범이 흑립을 쓰며 말했다.

“내리죠.”

“여기 맞아?”

“네.”

장소를 확인한 도화도 흑립을 챙겨 썼다. CCTV에 차는 찍힐지라도 저승 차사는 찍히지 않는 게 좋았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역한 냄새가 코를 스쳤다. 도화가 인상을 쓰고 휴대폰으로 잡으러 온 탈주 망자 정보를 확인했다.

이름 : 김진규

성별 : 남

1978년 2월 19일생

20ㅇㅇ년 11월 02일 수. AM 3시 22분 12초 사망

사망 원인 : 아사, 동사

“사흘 전에 죽었네? 그런데… 아사에 동사?”

[에엥? 옛날이라면 모를까. 뭐 하는 인간인데 요즘 세상에 굶어 죽고 얼어 죽어?]

도화와 현천이 의문을 표했다. 겨울이 되면 버스 정류장 의자에서 따뜻한 바람이 나오고 노숙자 쉼터에서 하루 한 끼지만, 식사도 주는 세상이다.

얼어 죽고 굶어 죽었다고 하면 뉴스에 나오는 세상인 것이다.

‘뭔가 더 있나?’

도화는 휴대폰 화면을 넘겨 추가 정보를 확인했다.

지명수배자(살인, 강도 사기).

사람들의 눈을 피해 폐공장에 숨어 지내다 배고픔과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사망.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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