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면담과 회식이 끝난 추혼부에 다시 일상이 찾아왔다. 일상이라고 해 봤자 열심히 원귀와 악귀를 때려잡는 일이었지만, 위장을 알코올로 소독하고 고기로 기름칠을 해서 그런지 다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에 비해 도화는 죽상이었다. 회식에서 술도 안 마시고 고기는커녕 음식에 거의 손을 안 대긴 했지만,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제가 왜… 서류 업무까지 봐야 합니까?”
지금 도화는 국장실에서 강림 도령과 대치 중이었다. 현재 시각은 저녁 7시 20분. 묵범과 담마는 먼저 퇴근했고 도화만 홀로 국장실에서 본 업무 외의 업무를 강요받고 있었다.
“담마를 너네 부장한테 잠시 보내 놨는데 말이야. 혼자 일을 하다 보니까 할 일이 너무 많더라고. 그렇다고 다시 담마를 부를 수는 없고. 탯줄에 피도 안 마른 애기한테 야근을 시킬 순 없잖아?”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당연히 담마의 보호자인 네가 와서 날 도와야지. 안 그러냐?”
“ㅁ…….”
미쳤습니까? 라고 튀어나올 뻔한 말을 황급히 삼켰다.
‘저 자식은 내 상사다. 들이받으면 안 된다. 참자. 참아야 한다.’
속으로 참자고 중얼거리며 간신히 표정 관리를 했다.
“무슨 일을 하면 됩니까?”
그래도 담마를 부르지 않은 걸 다행이라 여기며 물었다. 안 그래도 추혼부 부장의 산더미 같은 서류 업무를 돕고 퇴근한 담마는 꽤 피곤해 보였다. 그런 녀석에게 야근까지 시킬 순 없었다.
“저기 서류 쌓인 거 보이지?”
“네.”
“부서별로 올라온 결재 서류인데 그냥 놓고 가라고 했더니 아주 엉망으로 섞어 놨지 뭐야. 별 건 없고 부서별로 분리만 해 줘. 아주 쉽지?”
“…….”
말은 쉽다. 분리만 하면 되니까.
‘부서별…….’
도화는 차사국 내에 부서가 몇 개가 있는지 머릿속으로 세어 보았다.
‘정보부, 감직부, 정화부, 치유부, 복상부, 무구부, 영업부, 경리부, 자재부… 거기에 추혼부까지하면.’
열 개나 된다. 도화는 주머니로 들어가려는 손을 힘주어 막았다. 기분대로 했다간 냅다 현천을 뽑아 강림 도령을 공격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오늘 다 끝내진 못할 테니 매일 두 시간씩만 투자해.”
“…….”
투자아? 수익이 있어야 투자를 하지. 이건 일방적인 노동력 착취다. 심기 불편한 도화의 눈썹이 꿈틀댔다. 하기 싫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 특별히 야근 수당을 세 배로 쳐 주지.”
“!!!”
도화는 그 즉시 의자를 끌고 와 서류 더미 앞에 앉았다. 꿈틀대던 눈썹도 온순하게 내려왔다. 두 배도 아니고 세 배! 도화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둔 사람처럼 침을 꿀꺽 삼켰다.
“서류 분류는 단순 작업이니까 하다 보면 손에 익어서 금방 끝날 거다.”
“아주 꼼꼼하게 확인해서 분류하겠습니다.”
하루라도 더 야근 수당을 받아 내야지. 신이 난 도화는 앞에 있는 서류부터 분류하기 시작했다.
방금까진 다 불사르고 싶던 종이 뭉치들이 지금은 금덩이로 보였다.
* * *
도화의 야근은 무난히 흘러갔다. 홀로 퇴근하기 싫다며 묵범이 찡얼거렸고 나는 사람도 아니냐며 담마가 발끈했지만, 정작 야근 당사자인 도화는 만족스러운 나날이었다.
생각 외로 강림 도령은 일을 할 때는 굉장히 진지하게 몰두하는 스타일이었다. 별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늘어놓는 묵범과 달리 강림 도령이 도화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오늘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 나흘째 저녁.
“홍 차사. 잠시 이리로 좀 들어와 볼까?”
불안하게도 강림 도령이 술 창고로 도화를 불렀다.
“거긴 왜 부르십니까?”
“그야 한 잔 짠~ 하자고 부르는 거지. 다 알면서 왜 그래?”
“저는 술 안 마십니다.”
“아, 좀!”
도화의 반응이 답답했던지 강림 도령이 언성을 높이며 혀를 쯧, 찼다. 그제야 도화는 그의 목적이 술이 아닌 다른 것에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알겠습니다.”
뭐지? 여기서 하면 안 되는 일인가?
문득, 도화는 강림 도령이 술 창고 어딘가에 오창석의 혼을 담은 보안 상자를 보관하고 있다는 걸 떠올렸다.
‘역천하려는 자가 있다고 했었지. 불의사망자 목록을 전 세계 주류 백과라는 웃기지도 않은 이름으로 바꿔 놓질 않나.’
누가 보면 안 되는 정보인 것은 맞지만 너무 과하게 꽁꽁 숨겨 두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오창석의 망가진 혼이 담긴 보안 상자도 그렇고.
‘마치 차사국에 스파이라도 있는 것같이 행동한단 말이야.’
술 창고로 들어가니 밖의 국장실에 쌓여 있는 서류와 비슷한 양의 서류가 탁자와 바닥에 쌓여 있었다. 그걸 본 도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거까지 하려면 최소 한 달은 잡아야 할 것 같았다.
“이런, 이런. 벌써부터 질리면 안 되지.”
“대체 이건 또 뭡니까? 국장실에 있는 것도 모자라서…….”
“이게 진짜다.”
“…진짜라니요?”
그러면 국장실에 있는 것은 가짜란 말인가?
하지만, 사흘간 훑어본 서류는 모두 각 부서에서 올린 결재 서류들이 맞았다. 묵범과 자신이 부숴 먹은 주택의 담장 처리 서류도 확인했으니 말이다.
“내가 자네에게 확인을 부탁할 서류는 국장실에 있는 결재 서류가 아니라 여기 술 창고에 있는 서류란 말이다.”
“……?”
강림 도령의 말만 들어서는 술 창고의 이 서류들이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없던 도화는 우선 가까이에 있는 서류 하나를 집어 들었다.
“1250년. 9월. 천구성(天狗星)?”
함평 어느 마을에서 한날한시에 같은 꿈을 꾼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하늘이 벌건 대낮처럼 밝아지더니 시뻘겋게 불이 붙은 거대한 바위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꿈이었다.
겉면에 적힌 제목을 읽은 도화는 그 밑의 것도 확인했다.
“1452년. 1월. 시체병(時體病).”
추운 겨울, 황해도부터 돌림병이 시작되니 걸리면 사흘도 되지 않아 모두 머리가 터져 죽었더라. 사람들은 두억신의 저주라 하여 검은 천으로 머리를 감싸고 다녔으나 소용이 없었다.
“1635년. 8월. 교인(鮫人)의 떼죽음.”
흡곡현 바닷가에 교인의 시체 열댓 마리가 밀려왔는데 하나같이 머리가 터져 죽었다. 근처에 부딪힐 바위도 없어 기이하게 여겼으나 교인 사체 덕분에 그해 기름은 풍족하였다.
[아니… 이게 다 뭐다냐?]
바지 주머니 속에서 얌전히 있던 현천이 도화가 읽는 것을 듣고는 튀어나왔다.
[뭐, 아는 거라도 있어?]
[있다마다. 잘은 아니지만, 풍문으로 들었던 흉흉한 소문들이다.]
“호오. 현천이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니 뭐 아는 거라도 있나 보네?”
강림 도령이 서류 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현천을 보고는 흥미를 보였다. 그러자 현천이 강림 도령에도 들리게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 천구성이 떨어지는 꿈을 꾸고 나서는 그 마을 사람들이 모두 미쳐 날뛰다 죽었다고 들었다.]
“그렇군. 그러면 시체병은?”
[아, 그것도 기억해. 전염병은 여름에 돌기 마련인데 희한하게 그건 한겨울에 돌았지. 사흘 만에 머리가 터져 죽었다는데 그 사흘 동안은 귀신 들린 것처럼 온갖 괴이한 행동을 했다더군. 숨은 붙어 있는데 몰골이 시체처럼 시퍼레서 시체병이라 그랬던 것 같다.]
“흐음.”
강림 도령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이게 다 무엇입니까?”
최근 서류일 줄 알았는데. 웬걸? 1250년이면 고려 시대다. 그렇다는 건 그 이전의 사건들도 있을 확률이 높았다.
“미해결 사건들이다.”
“미해결 사건이 이렇게 많습니까?”
“그래. 그때의 차사들은 지금의 절반 수준이었거든. 추혼부가 따로 있지도 않았고. 감재 차사와 직부 차사가 지금의 추혼부 일까지 하고 있다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다.”
설명만 들어도 끔찍하다. 감직부에서 일을 해 본 것은 아니지만, 그쪽도 업무 강도가 어마어마하다고 들었다.
명부에 적힌 사망 시간에 맞춰 현장에 도착해야 하는 것부터 까다로웠다. 제시간에 맞춰 도착해도 순순히 저승 차사를 따르는 망자는 소수였다. 대부분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 망자를 이해시켜야 하고 미련이 많은 망자는 원귀가 되지 않도록 구슬려야 하니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목숨이 위험하진 않으니까 추혼부보다는 낫다고 해야 하나.’
감직부와 추혼부. 둘 중 한 곳을 고르라고 한다면 열 중 열은 감직부를 고른다는 진담 섞인 농담도 있을 정도다.
“시간이 많이 흐른 사건도 있는데… 이거 다 해결 가능한 겁니까?”
“그야 나는 모르지?”
“……네?”
도화의 반문에 강림 도령이 그걸 왜 제게 물어보냐는 듯이 도화를 쳐다봤다.
“애초에 나는 추혼부였던 적이 없던 몸이거든. 이 서류들은 지금껏 내게 올라온 미해결 사건 서류들을 정리해 둔 것뿐이야.”
“그런데요…? 제게 이걸 보여 주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강림 도령에게 질문을 던지는 도화의 속에서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설마, 아니겠지.
‘지금 와서 이걸 해결하라고 들이민 건 절대 아닐 거야.’
도화의 불안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림 도령은 제 할 말을 열심히 이어 나갔다.
“우선은 분류부터 해 봐. 100년 단위로 나누고, 100년 내에서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혼자서는 못 합니다.”
“그래? 담마를 붙여 줄까?”
“아니, 그건 좀…….”
어린애한테 야근을 시킬 생각을 하다니. 강림 도령을 보는 도화의 눈빛이 파렴치한을 보는 것처럼 바뀌었다. 강림 도령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다른 대안을 내놓았다.
“그러면 범 수석?”
“싫습니다.”
단호하게 거절했다.
“다른 사람은 없습니까?”
“없어.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은 묵범과 청우. 둘뿐이야.”
“둘 뿐이라면서 왜 저한테 이런 일을 시키는 겁니까?”
“그야 이 사건들이 자네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
도화는 자신의 손에 들린 서류의 제목을 다시 읽어보았다. 1635년. 8월. 교인의 떼죽음.
‘이게 나와 관련이 있다고? 어딜 봐서?’
도화는 혹시 자신의 반쪽이 교인이었나? 의심했다. 반은 도깨비인 게 확실하지만, 나머지 반은 인간인지 귀물인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시체병에 걸린 인간이 반쪽?
그것도 아니라면 천구성을 타고 온 미지의 생명체라도 되는 걸까?
도화는 말도 안 되는 가설을 세우며 한껏 인상을 썼다. 장기 야근이 될 것 같은 상황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 일을 시키는 이유도 납득이 되지 않기도 했다.
“우선 분류는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들이 왜 저와 관련이 있다는 건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전부 다 자네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아니야.”
“그러면요?”
“자네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들의 의뢰를 해결했었지. 원귀나 악귀는 퇴치라든가, 퇴치해야 하는데 참회시켜 버린다거나. 또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도 했어.”
“그랬었죠.”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지금도 가끔 떠오르면 죄책감이 무겁게 느껴지는 일이 몇 개 생각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