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그 뒤로 부장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모두 사소한 질문이었고 개인적인 내용들이었다.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면담을 대체 왜 하는 거지?’
만약 묵범에게 미리 언질을 받지 않았다면 표정 관리를 못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마음에 드는 여성 저승 차사는 있나?”
이따위 질문을 받는데 침착한 표정을 어떻게 유지하겠는가.
“남성 차사도 상관없다. 뭐가 되었든, 성적으로 끌리는 저승 차사가 있나?”
“……대체 왜 그런 것을 물어보시는 겁니까?”
결국, 도화는 참지 못하고 꾹 참고 있던 것을 묻고 말았다. 이런 질문은 개인적이다 못해 무례한 것 아닌가?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다는 생각에 참을 수 없었다.
도화의 날 선 반문에 부장은 눈 한 번 깜빡이지도 않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흠…. 정보 수집이라고 해 두지.”
‘해 두지?’
대답만 들어 보면 상대방에게 반문을 당할 거란 예상은 못 했던 것 같은데 태도는 전혀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그게 더 화가 났다.
‘더는 못 하겠다고 말하고 나가 버려?’
도화는 이 괴상한 면담 자리를 박차고 나설지, 미래의 돈을 위해서 참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답은 금방 나왔다.
‘언제 끝날진 모르지만, 하루 종일 하진 않겠지.’
저 부장이란 놈은 까치인지 까마귀인지 찾으러 곧 떠날 것이라 했다. 게다가 추혼부 임무 특성상 차사국 내에서 얼굴 마주할 일은 많지 않으니까.
결론은 오늘 하루만 잘 참자- 였다.
“양친 중 어느 쪽이 도깨비이지?”
“모릅니다.”
“모른다라. 반은 도깨비이고. 나머지 반은?”
“그것도 모릅니다.”
계속된 질문에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오자 부장의 한쪽 눈썹이 힐끔 위로 올라갔다.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부장의 그런 반응에 도화의 속은 초조해졌다. 묵범이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본인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대답을 하면 부장님 직속 비서가 되어야 하거든요.]
[부장님이 어딜 가든 붙어 다녀야 합니다.]
[직속 비서에 꼽히면 부장님과 단둘이, 까치를 찾으러, 찾을 때까지 붙어 다녀야 한 단 의미입니다.]
“…….”
끔찍하다. 아직 차사국에서 알아내야 할 정보를 단 하나도 얻지 못했는데. 아니, 어찌 얻어야 할지 감도 잡지 못하고 임무만 하고 있는데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부장과 단둘이 새 찾기를 할 순 없다.
‘어쩔 수 없어. 부장에게 찍히느니 그냥 다 털어놓는 수밖에.’
부장은 도화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계속 눈썹을 일그러트린 채 도화를 쳐다보고 있었다. 부장인 자신에게 반항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완전히 찍히기 전에 어서 오해를 풀어야 해.’
도화는 부장이 다음 질문을 하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려지는 바람에 정확한 나이도, 부모 중 어느 쪽이 도깨비인지, 나머지 반은 인간인지 귀물인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면 누구와 살았지?”
“스승님이 어린 절 거둬 주셨습니다.”
“인간?”
“좀 특이하긴 했지만, 인간이었습니다.”
사실 스승이 인간인지 아닌지는 도화도 확신할 수 없었다. 인간이라기엔 귀물을 상대하는 능력이 출중했으니까. 하지만, 그에게서 귀물의 기운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 시절엔 인간도 수련을 하면 도사가 될 수 있었으니까.’
인간의 수 배나 되는 긴 세월을 살았으니 아마 자신의 스승은 도사거나 도사가 되기 직전이었을 것이다.
“스승의 존함은?”
“모릅니다.”
“스승의 존함을 모른다?”
“그게…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도화의 대답에 부장은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그러졌던 미간이 펴진 것으로 보아 오해가 풀린 듯했다.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궁금하겠지.”
“……네.”
스승에 대해 끈질기게 물어볼 것 같았는데 예상치 못한 질문이 돌아왔다.
“자네는 신입이라 모르겠군.”
“?”
“추혼부 차사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원귀, 악귀, 타락한 귀물을 맞닥트린다.”
“네.”
부장은 당연한 것을 중요한 사안이라도 된 것처럼 진지하게 설명했다.
“원귀야 수백, 수천을 상대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악귀… 특히 야래夜來와 타락한 귀물을 오랜 시간 동안 수없이 접하다 보면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추혼부 차사라 한들 오염되기 마련이야.”
“아…….”
도화는 이제야 부장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했다.
“그래서 정화부가 있는 것 아닙니까?”
아직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지만, 악귀나 타락한 귀물의 기운에 오염되면 정화부에서 정화를 하면 된다고 들었다.
“정화부가 과연 만능일까?”
“?”
정화부는 만능이 아니라는 의미로 들리는 질문은 추혼부 차사인 도화에겐 소름 끼치게 들렸다. 정화부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부서는 추혼부였기 때문이었다. 우스갯소리로 정화부는 추혼부 전용 부서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홍도화. 들어온 지 1년도 안 된 신입인 네 눈에는 추혼부 차사들이 마냥 자신만만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겠지.”
부장의 말에 도화는 아는 것이 없어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부장의 말대로 그렇게 보이긴 했다. 다들 자신만만하고 동료애도 끈끈해 보였으며 어디 한 군데 아파 보이는 사람도 없었다.
“신입한테 겁주기 싫어서 다들 말하지 않았나 본데. 추혼부 차사는 1년에 한 번씩 정신 정화를 받는다.”
“정신 정화?”
“평소에도 심신에 이상이 있으면 정화를 받지만, 그것 외에 주기적으로 받는다는 말이다. 악념(惡念)이란 것이 보통 교묘한 게 아니거든.”
부장의 말에 동의한 도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산 자를 홀리려면 보통 교묘해선 안 된다. 그런데 평범한 사람이 아닌 추혼부 저승 차사를 홀린다? 그러려면 뱀의 혓바닥보다 더 교활해야 할 터.
“홍도화. 임무를 수행하다 스스로 본인이 이상해졌다고 느껴 본 적이 있나? 아니면 주변에서 네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다던가.”
“없었습니다.”
“그럴 테지. 추혼부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증상이 나타나면 당장 묵범에게 말해. 악념은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물 먹은 공기에 젖어 드는 것처럼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잠식당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하셨던 질문과 관계가 있는 겁니까?”
“그러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
부장은 도화의 개인 정보 서류를 덮어 책상 옆으로 치워 버렸다. 슬슬 면담을 끝내려는 걸까?
“내가 개인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도 섞어서 질문한 건데. 불만 있나?”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알아야 할 정보라는 게 대체 뭐지? 도화는 부장이 지금껏 했던 질문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하지만, 무엇 하나 부장이 알아야 할 정보성 질문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벌써 40분이 지났어.’
정말 쓸데없는 질문으로 시간 낭비만 했단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묻지.”
‘드디어 마지막!’
도화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서류를 옆으로 치운 것은 면담을 끝낼 신호가 맞았던 것 같다.
“깨질 것 같은 두통을 느껴 본 적이 있나?”
“두통이요?”
갑자기 웬 두통?
두통이야 스트레스를 받거나 신경 쓸 일이 생기면 종종 발생하곤 한다. 하지만, 지금 부장이 묻는 두통은 그런 평범한 두통이 아닌 것 같았다.
부장은 도화가 좀 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을 붙여 재차 물었다.
“누군가를 만나거나 특정 장소에 갔을 때 뇌가 진탕이 될 것 같은 끔찍한 통증을 느껴본 적이 있나?”
“없습니다.”
“그렇군.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바로 내게 연락하도록.”
“네.”
“이만 면담을 마치도록 하지. 수고했다.”
길고도 난감했던 면담이 드디어 끝이 났다. 부장은 도화에게 나가 보라고 짧게 손짓하고는 도화의 서류에 마지막 답변을 메모했다.
부장실에서 나가려던 도화는 문손잡이를 돌리려다 멈췄다. 그리고 다음 면담자의 서류를 훑어보고 있는 부장에게 물었다.
“마지막에 하신 질문은 부장님이 개인적으로 모으시는 정보입니까?”
자신도 모르게 한 질문이었다. 면담 내내 찍히면 안 된다고 다짐했으면서도 충동적으로 물었다.
도화의 질문에 부장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도화의 질문이 의외라는 듯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왜 궁금하지? 알면 뭐가 달라지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질문은 부장님의 개인적인 질문 같아서 그렇습니다.”
“흠…….”
찍힐 각오를 한 대답이었는데. 부장의 반응은 부정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도화를 쳐다보는 눈매가 살짝 가늘어진 것이… 웃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서 애송이를 신입으로 데려온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감이 좋은 것 같군.”
“그 말씀은 제 임의대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좋을 대로 생각하고. 어서 나가서 일이나 해. 추혼부가 쉴 틈이 어디 있어.”
“네.”
부장의 부드러운 축객령에 밀려 부장실을 나온 도화는 문 앞에 장승처럼 서 있는 묵범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뭐, 뭐야? 여기서 뭐 해?”
“뭐 하긴요. 면담하러 들어간 사람이 한 시간이 되도록 나오질 않으니 걱정이 돼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좀 평범하게 기다리면 안 되냐?”
저리 비키라고 도화가 묵범을 밀어냈다. 하지만, 얼마나 다리에 힘을 주고 서 있는지 밀어도 도통 밀려나질 않았다.
“당장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은 걸 꾹 참고 있었습니다. 칭찬은 못 해 줄망정 너무 냉정한 것 아닙니까? 안 그러니, 담마야?”
“!”
한 걸음 떨어져서 조용히 도화와 묵범을 지켜보고 있던 담마는 갑자기 제게 날아든 부름에 당황했다.
묵범이 담마를 끌어들이자 가만히 있을 도화가 아니었다. 득달같이 담마에게 물었다.
“너 같은 변태 자식한텐 냉정도 후해. 안 그러냐. 담마야?”
“…….”
예전 같았으면 당연히 도화의 편을 들었을 담마였다. 그러나 지난 밤, 도화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을 때. 묵범이 어찌했는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기에 매정하게 대할 수 없었다.
“담마야…?”
도화는 머뭇거리는 담마를 보고 충격에 빠졌다. 어제 하루만 좀 이상했던 게 아니었나? 왜 내 눈치를 보며 묵범에게 미안해하는 거지?
이쯤 되니 도화의 화는 묵범의 헛소리 때문이 아니라 묵범 때문에 담마가 변해 버렸다는 쪽으로 번졌다. 그리고 분노는 당연히 전자보다 후자가 더 거셌다.
“너. 대체 담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짓이라니요? 저는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만?”
“그러면 멀쩡하던 애가 갑자기 왜 저래?”
“음?”
묵범은 도화의 뜬금없는 시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역시 담마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갑자기 바뀌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유는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저야말로 궁금하군요. 담마가 왜 갑자기 제게 호의적이 되었는지 말입니다.”
“네가 협박이라도 한 거 아냐?”
“하하. 제가요? 저는 그런 비열한 짓은 절대 안 합니다. 그리고 담마가 약점 잡힐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사기당한 것 말곤 없잖아요?”
“!!!”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