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추혼부 부장의 갑작스러운 귀환으로 차사국 전체가 술렁였다. 청우가 워낙 얼굴 보기 힘든 사람이기도 했지만, 여러 의미로 명성이 자자한 추혼부의 책임자가 1년 만에 출근했기 때문이었다.
추혼부 부장 청우.
그를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사람은 1년 내내 산과 들을 헤집고 다닌다는 소문 때문에 우락부락, 험상궂은 남자일 것이라 예상했다.
사실, 청우는 강림 도령을 만나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차사국에 오곤 했었다. 소문이 안 난 이유는 출근 전이나 퇴근 후에 왔기 때문이었다. 와도 국장실에만 머물렀다 조용히 떠나니 타 부서 차사들은 청우를 보더라도 누구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어쨌든.
우락부락한 게 도깨비 같더라.
1년 내내 무시무시한 야래(夜來) 악귀만 잡는 사람이라 밤에만 활동한다더라.
사실 추혼부 부장은 업무 중 사망해서 공석이라더라— 등, 소문의 주인공인 청우의 등장에 추혼부는 아주 부산스러워졌다.
정확하게는 추혼부 안이 아니라 밖이 그랬다. 추혼부 부장을 구경하고 싶어서 괜히 복도를 돌아 추혼부 앞에 머물다 지나갔다.
추혼부 부장실은 서류 넘기는 소리와 간간이 사인하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대화 없이 적막했다.
“여기, 작년 3월부터 12월까지 분류해 뒀어요.”
적막을 깬 것은 담마였다. 강림 도령의 명령에 청우의 서류 작업을 도와주러 추혼부 부장실로 온 담마는 발 디딜 틈도 없이 쌓인 서류를 보고 질린 얼굴을 했다.
하지만, 금세 정신 차리고 월별로 서류 분류 작업에 착수했다. 추혼부가 다른 부서에 비해 업무량이 많은 것은 알고 있다. 업무량뿐인가? 임무 중 박살 낸 기물 복구 신청서도 어마어마했다.
“…작년 것은 다 해결하고 간 줄 알았는데.”
내내 조용히 일만 하던 청우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머릿속엔 밀린 업무를 깨끗하게 끝내고 고라니를 잡으러 간 기억이 분명히 있었다.
“밀린 업무 승인만 하고 가신 것 같더라고요. 기물 복구 신청서는 처리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네요.”
“…….”
“그리고 올해 건은 내일 와서 분류하겠습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요.”
담마의 말에 청우가 시간을 확인했다. 한 종류만이지만, 반나절 만에 1년 치 서류를 모두 분류하다니. 담마가 유능한 비서라는 강림 도령의 칭찬은 과장이 아니었다.
“퇴근해.”
“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서류에 파묻힌 청우에게 인사를 한 담마는 미련 없이 추혼부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도화에게 문자를 하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힘든 하루였어.’
일도 일이지만, 숨 막힐 것 같은 적막이 더 힘들었다. 국장실에 있을 때는 강림 도령의 실없는 농담에 대꾸하느라 적막이 내려앉을 틈이 없었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담마이지만, 처음 보는 무뚝뚝한 사람과 장시간 함께 적막 속에서 일하는 것은 곤욕이었다.
“웬일로 2번에서 나와?”
도화는 주차장 2번 통로에서 나오는 담마를 보고 의아해했다. 국장실에서 가까운 주차장 통로는 1번이다. 2번은 추혼부와 가까웠다.
“오늘부터 한동안 국장실이 아니라 추혼부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추혼부에서? 왜?”
차에 올라탄 담마는 한숨을 내쉬며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청우의 등장부터 강림 도령의 명령, 그리고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까지.
모든 것이 갑작스러웠다고 하소연했다.
“부장님의 일이 과하게 밀려 있긴 해.”
“아무리 국장님의 명령이라지만, 추혼부 일은 추혼부 차사들이 도와야 하는 거 아냐?”
도화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묵범에게 물었다. 추혼부 일은 추혼부에서 해결해야지, 왜 국장의 비서인 담마가 도와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일은 힘들지 않아요. 그분이 너무 과묵해서 적응이 좀 안 된달까…….”
“적응?’
“네. 국장님은 쉴 새 없이 떠드시거든요.”
담마의 대답에 도화와 묵범은 머리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쉴 새 없이 떠들고 술을 마시는 강림 도령과 종일 붙어 있다가 벗어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래도 일은 힘들지 않다니 다행이었다.
“홍도화 씨. 내일, 일정 있습니까?”
부드럽게 핸들을 돌리던 묵범이 도화에게 물었다.
“어.”
그리고 도화는 묵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답했다. 무슨 말을 하든 네 말은 듣지 않겠다는 강경한 의지가 담긴 대답이었다.
“일요일은?”
“있어.”
“흠. 어쩔 수 없군요.”
“왜?”
“부장님 면담에 대해 알려 드리려고 했습니다. 당장 다음 주 월요일에 면담해야 하는데 주의 사항 같은 정보를 드리려고 했죠.”
“아…….”
굉장히 매력적인 제안이다. 묵범은 도화가 제 설명을 들었으니 마음을 바꿔 만나자고 대답을 번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외로 도화는 안 된다고 대답했다.
“무슨 일정인데 주말 이틀이나 시간이 없다는 겁니까?”
“그럴 일이 있어. 더는 묻지 마.”
도화는 면담 정보를 얻고 싶은 마음을 접고 차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 계속 묵범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주말 약속을 잡아 버릴 것 같았다.
“어쩔 수 없군요. 그러면 주말 잘 지내고 월요일에 봅시다.”
묵범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제집으로 들어갔다. 부장의 면담 정보에 대해 미련이 잔뜩이다. 도화가 묵범의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몽식.’
오늘은 토요일.
몽식이 도화의 악몽을 포식하러 오는 날이었다.
몽식에게 악몽을 먹힌 자는 그 후유증이 최소 하루는 간다. 몽식의 말대로 토요일에 악몽을 먹히고 일요일 내내 푹 쉬고, 월요일에 출근하는 게 최선이다.
그런데 월요일에 부장과의 면담이 잡혀 버렸다.
‘면담 날짜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해 보여. 하지만, 그렇다고 몽식과의 약속을 뒤로 미룰 순 없어.’
몽식은 아주 오래된 옛 귀물이다. 오래 산 만큼 쌓은 지식은 어마어마했고 쌓는 속도도 빨랐으나 기본적인 예의범절은 정말 칼같이 지켰다. 그리고 본인도 지켰으니 상대방도 똑같이 지키길 바란다.
이것이 도화과 몽식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이유였다.
저녁 식사를 한 도화와 담마는 아직 9시가 되지 않았는데도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담마는 게임을 하러, 도화는 몽식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담마는 자신의 삼촌이 이른 시간부터 침실로 들어간 이유를 알고 있었다.
[괜찮아. 네가 신경 쓸 건 하나도 없어. 몽식이 왜 몽식이겠냐. 잠든 사람의 꿈을 먹으니까 몽식이지. 저 녀석도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끝날 일이야.]
걱정하지 말라며 호언장담하는 현천 덕분에 담마는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게임을 틀었다.
도화는 일부러 저녁을 평소보다 적게 먹었다. 원래도 많이 먹는 편은 아니지만, 담마가 그만큼 먹어도 괜찮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잘해.]
도화가 침대에 눕는 것을 본 현천은 짧은 격려의 말을 하고 방을 나갔다. 현실에 나타난 몽식은 같이 대화라도 할 수 있지만, 꿈에 나타난 몽식은 현천이 어찌 도와줄 방법이 없다. 오롯이 꿈의 주인인 도화가 감당해 낼 몫이었다.
야무지게 방의 불까지 끄고 나간 현천 덕분에 도화는 바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평소보다 잠을 일찍 청하는 것은 그만큼 악몽에서 빨리 깨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후우…….”
그래도 마음이 심란한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도화는 자꾸만 새어 나오는 한숨을 다 삼키지 못했다.
몽식. 이름 그대로 꿈이 주식이고 힘인 귀물이다. 꿈은 의식이 있는 생명이라면 반드시 꾸게 되니 몽식이 굶거나 힘이 없어서 죽을 일은 없다.
그래서 절대 죽일 수 없다는 이름을 붙여 불가살不可殺이라 불렸다. 그게 와전되어 불가살이 또는 불가사리가 된 것이 몽식이다.
꿈의 주인은 꾸는 자라지만, 몽식이 개입하면 주인은커녕 최하위 피식자가 된다. 다행인 것은 몽식이 그저 꿈을 삼키는 것 외엔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목적을 갖고 꿈에 방문한다면 자는 사이 아무도 모르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담마에게 사기를 쳤던 한동후가 그 예였다.
죽진 않았지만, 죽기 직전까지 몰렸었다. 한동후의 꿈에 나왔던 거꿀 귀신들은 모두 몽식이 포식한 악몽이다. 가끔 별미로 길몽도 먹곤 하는데 몽식이 선사하는 길몽은 천지왕도 탐내는 극상의 희열을 맛볼 수 있다고 전해졌다.
어쨌든, 오늘 몽식이 포식할 꿈은 도화의 악몽이다. 도화는 오지 않는 잠에 빠지기 위해 양을 세기 시작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가끔 흑립을 쓴 묵범이 양 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오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씩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어떤 악몽을 꾸려나.’
몽식이 대놓고 가져간다 했으니 도화의 머릿속에 내재된 기억 중, 가장 두려운 기억이 악몽으로 펼쳐질 것이다.
악몽은 과거 겪었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할 수도 있고 도화의 상상이 섞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니 지금부터 꾸게 되는 악몽은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 된다.
그렇게 다짐하며, 도화의 의식은 완전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 * *
탁!
책상 위에 검은색 펜을 내려놓은 청우는 마른세수를 했다. 당장 이 서류 지옥에서 벗어나 희작(喜鵲)을 찾으러 가고 싶었다.
방금까지 눈알이 빠지도록 들여다보고 있던 서류를 옆으로 밀어 둔 그는 꺼 둔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느릿한 타자로 성산 일출봉을 검색했다.
성산 일출봉│
“희작이 여기에 있단 말이지.”
바다 위에 우뚝 솟은 성산 일출봉의 모습은 마치 굳건한 성채처럼 보였다. 어찌 보면 오목하게 파인 그릇 같기도 했다.
[머리를 진탕으로 만드는 놈? 그런 놈이 있긴 있었지. 하지만, 죽었다고 들었는데?]
비무장지대까지 가서 찾은 고라니에게선 이렇다 할 정보를 얻지 못했다. 그나마 건진 것은 제주도 성산 일출봉 어딘가에 산다는 희작-오래 산 까치가 그것의 행방을 알 수도 있다는 것뿐.
[겨울, 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 가끔 나타난다고 하더군. 날 추워지면 한번 내려가 봐.]
제주도 항공권을 미리 사 둘까.
항공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려던 청우는 위잉- 울리는 휴대폰 진동음에 멈칫했다.
“강림?”
확인해 보니 국장실로 와서 한잔하자는 강림 도령의 문자였다.
“술에 미쳐서는. 쯧.”
청우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혀를 찼다. 하지만, 보던 인터넷 창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담마가 서류 분류를 야무지게 해 놓아서 작년 치 업무는 진척이 많이 된 상황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쉬어도 되겠지. 청우는 조금은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부장실을 나섰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 차사국의 복도는 적막만 감돌았다. 텅 빈 복도를 지나 국장실에 도착한 청우는 노크도 없이 문을 열었다.
“여~ 왔나?”
강림 도령이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들어 인사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