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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화-87화 (88/146)

87화

무서워. 무서워…!

넋을 놓고 흔들리는 현관문을 쳐다보던 한동후의 귀에 절대 듣고 싶지 않았던 소리가 들렸다.

[처얼컥.]

문손잡이를 돌리는 소리를 입으로 내고 있었다.

그리고 현관문이 천천히 열렸다.

끼이이이-.

소름 끼치는 소리가 거실에 울리는 순간, 정신이 든 한동후가 용수철 튀듯 제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미친. 미친! 미친!!!’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방 안을 급히 둘러보았다. 숨을 곳을 찾아야 했다. 철로 된 현관문도 저렇게 열어 버렸는데, 방문은 장애물도 아닐 것이다.

[하나!]

[둘!]

[셋!]

[넷!]

방 밖에서 숫자를 세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거실까지 들어온 듯했다. 멘탈이 나갈 것 같은 한동후의 시야가 마구 떨렸다. 공포에 눈동자가 마구 떨려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우당탕.

거실에서 물건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어디 있니, 어디 있니. 깔깔 웃으며 한동후를 찾는 소리였다. 그는 저들이 왜 자신을 찾으려는진 모르지만,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창문으로 뛰어내릴까?’

한동후의 집은 아파트 2층. 떨어지면 어디 한 군데 부러지거나 다칠 테지만, 저것들한테 붙잡히는 것보다는 나았다.

다급히 커튼을 열어 본 그는 커튼을 젖힌 상태로 굳었다. 환한 아침에 잠이 들었지만, 여기는 꿈이니 밤이어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동후는 창문을 열 생각도 하지 않고 작게 중얼거렸다.

“없어.”

한동후가 창밖으로 뛰어내리지 못한 이유는 예상보다 높이가 높아서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안 보여.”

말 그대로 창밖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깊은 새벽이어도 건너편 아파트의 비상등이나 상가 건물의 간판 불빛, 산책로의 가로등 불빛이 보여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는 암흑이었다. 창문을 열지 않은 상태로 슬쩍 내려다본 밑은 땅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숨어야 하지?’

애초에 도망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꿈에서 깰 때까지 숨어 있을 곳을 찾아야 했다. 침대 밑과 옷장 중 한 군데를 고르려는데.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손톱 끝이 보인다.]

깔깔대며 거실을 난장판으로 만들던 소리는 뚝 그치고 다시 노래 부르기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노래는 미묘하게 가사가 달랐다.

[꼭꼭 숨어라. 숨소리가 들린다.]

[꼭꼭 숨어라. 심장 소리 들린다.]

한동후는 한 손으로는 입과 코를 틀어막고 옷장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문을 닫고 다급히 옷걸이에 걸어 두었던 외투를 마구 끌어당겼다. 후두둑 떨어진 두툼한 겨울옷들이 한동후를 숨겨 주었다.

숨소리, 심장 소리가 들린다고 했는데. 진짜 들은 걸까? 아니면 겁주려고 그런 걸까.

어느 쪽이든 간에 소름 끼치게 무서운 노래인 건 똑같았다. 그렇다고 숨도 안 쉬고 심장도 멈추게 할 순 없는 노릇. 최대한 쉬듯 안 쉬듯 아주 천천히 숨을 쉬며 꿈이 깨길 기다렸다. 아니면 저것들이 집에서 나가거나.

쾅-!!!

방문이 세게 열려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옷장 안에 숨어 있던 한동후의 몸이 깜짝 놀라 펄쩍 뛰어올랐다.

[다 숨었니?]

[찾아도 되니?]

웃음기 가득 담긴 목소리로 묻는 목소리는 아이의 것이지만, 악마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잘 숨었네. 머리카락 안 보여.]

[잘 숨었네. 손톱 끝도 안 보여.]

한동후의 방으로 들어온 아이들이 까르륵 웃으며 노래를 불렀다. 머리카락과 손톱 끝이 안 보인다는 걸 보면 아직 한동후가 어디 숨었는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이대로 여기서 버티자.’

제발, 보건 선생님. 저 좀 깨워 주세요.

한동후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옷장 밖에서 콩콩, 쿵쿵 소리가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최대한 무시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한동후의 노력은 별 효과가 없었다. 쿵쿵, 콩콩 소리가 정확하게 옷장 앞에서 멈췄기 때문이었다.

옷장 앞에서 소리가 멈추고 적막이 찾아왔다. 꿀꺽. 한동후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똑. 똑. 똑.

“!!!!!!”

옷장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려고 노크한 것일지도 몰라. 한동후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으나 그것 역시 이어진 속삭임에 실패했다.

[여기에 있구나. 숨소리가 들려.]

[여기에 있구나. 심장 소리가 들려.]

한동후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벌컥!! 옷장 문이 열렸다. 지금 그를 지켜 주는 것은 방어력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겨울 패딩과 코트가 전부였다.

몸이 사시나무 떨듯 마구 떨렸다. 입술을 깨물고 숨을 참았지만, 터질 것처럼 뛰는 심장은 어찌 막을 방법이 없었다.

[잡아도 되니?]

[먹어도 되니?]

“으아아아악!!!!!”

한동후는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옷장에서 튀어나갔다. 집 밖은 아무것도 없는 암흑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것들에게 잡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사실 이성을 집어삼킨 공포 때문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집 밖으로 도망치겠다는 결심은 옷장에서 탈출한 지 몇 초도 되지 않아 무산되었다.

발이 꼬여 바닥에 그대로 처박힌 한동후는 제 눈에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잠시 이해하지 못했다.

‘저게 뭐지?’

바닥에 넘어진 상태니 상대가 무엇이든 간에 발이 보여야 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눈에 보이는 것은 발과 다리가 아니라 머리였다. 사람의 머리. 그리고 시뻘겋게 물든 눈과 찢어질 것처럼 입꼬리를 올리고 웃고 있는 입. 벌어진 입술 사이로 보이는 것은 사람의 이가 아니라 톱날을 잔뜩 겹쳐 놓은 것 같았다.

‘쿵쿵거리던 소리가…….’

이제야 왜 그런 소리가 났는지 이해가 됐다. 이것들은 발로 걸어 다닌 게 아니라 물구나무를 선 것처럼 거꾸로 뒤집혀서 머리로 바닥을 찧으며 다녔기 때문이었다.

[놀부보다 더한 것이 여기 있네?]

[놀부보단 김선달이지.]

[어쨌든 악귀도 아닌 생자(生者)가 악귀 같은 짓을 하니 혼 좀 내야 하지 않겠어?]

[잡아먹을까?]

‘일어나야 하는데.’

넘어진 자세 그대로 몸이 굳어 버린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기괴한 것.

분명 목소리는 천진난만한 아이 목소리인데 얼굴은 성인이었다. 몸에 달린 팔, 다리는 갓 뽑아낸 가래떡처럼 흐물흐물, 축 늘어졌다.

모든 것이 기괴했지만, 한동후가 바지에 소변을 지릴 정도로 무서워한 것은 얼굴이었다. 새빨갛게 충혈된 눈과 귀밑까지 입꼬리가 찢어진 것처럼 뾰족하게 올라간 웃는 입이 너무나도 끔찍했다. 그래서 눈이라도 감고 싶은데, 문제는 눈도 감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누가 눈꺼풀을 붙들어 위로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한동후는 강제로 절대 사람일 리 없는 기괴한 것들과 눈을 마주해야 했다.

“자, 잘… 잘못했어요…!!”

뭔진 몰라도 자신이 무언가 크게 잘못했다고 확신한 한동후는 냅다 잘못했다고 외쳤다. 한동후의 사과에 기괴한 것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그래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서운 얼굴인데 머리로 땅을 딛고 서서 갸웃거리니 위로 솟구친 몸이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흔들렸다. 그때마다 몸을 지탱하고 있는 목에서 우드득- 소리가 났다.

[뭐를?]

“뭐… 뭐든요!”

[뭐든이라. 뭐든이면.]

[태어난 게 잘못이면 먹어 없애면 되겠네?]

[맛있겠다. 맛있겠다.]

[재밌겠다. 재밌겠다.]

이런 반응을 원한 게 아니었는데.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면 일말의 희망이라도 생길 줄 알았다. 하지만, 한동후에게 다가온 것은 용서가 아니라 날카로운 톱니 이빨이었다.

딱! 딱!

매섭게 맞물리는 이빨에서 나는 소리는 저기에 물렸다간 어디든 간에 가차 없이 절단될 것이란 걸 경고하는 듯했다.

[어떻게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어떻게 삼켜야 잘 삼켰다고 소문이 날까.]

네 개의 머리가 한동후를 가운데 두고 원을 그리듯 맴돌기 시작했다. 쿵쿵쿵쿵! 바닥을 울리는 진동이 쓰러져 있는 한동후의 몸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사기꾼은 맛있지.]

[거짓말쟁이는 맛있지.]

[나도 한 입.]

[너도 한 입.]

쿵! 쿵!

쿵! 쿵!

네 개의 머리는 점점 거리를 좁혀 왔다. 가까워질수록 찢어지게 웃는 입에서 나는 딱! 딱!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그와 동시에 한동후에게 전달되는 진동도 커졌다.

‘꿈에서 못 깨고 죽는 건가?’

어느새 붉게 충혈된 눈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눈이라도 감고 죽으면 좋으련만. 이대로 꼼짝없이 먹히겠구나 하는데.

야, 한동후.

어디선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기괴한 것들이 내는 쿵쿵 소리 사이로 희미하게 들렸다.

이 자식, 그냥 여기서 내일까지 잘 기센데?

‘우기호…?’

어디서 들어 본 목소리 같다 했는데. 반 친구의 목소리였다. 뒤이어 이번에는 혼을 내듯, 성난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소리가 꽤 컸다.

한동후! 언제까지 퍼질러 잘 거야! 일어나!

‘선생님?’

몸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괴한 것들이 머리를 찧는 충격 때문에 바닥이 울리긴 했지만,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일어나!

집에 가자! 한동후!

“헉!!!!!”

분명 눈을 못 감아서 괴로웠는데?

한동후는 자신이 한참 동안 감고 있다가 지금 번쩍 눈을 떴다는 것을 인지했다.

“야, 미친놈아. 밤새 게임 하더니 잠을 이렇게 몰아서 자냐?”

“우…기호?”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퍽! 소리 나게 쳤다. 괴이한 것들한테 먹히기 직전, 들렸던 목소리의 주인 우기호가 옆에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야. 아직 잠에서 덜 깼냐?”

“어, 아니. 깨, 깼어.”

“깨, 깼어? 깨, 깼으면 집에 가자.”

우기호는 말을 더듬는 한동후를 따라 하며 들고 있던 가방을 내밀었다. 자신의 가방을 챙겨 와 준 우기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한동후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학교를 빠져나왔다.

끔찍한 꿈속 장소가 자신의 집이라는 사실은 한동후의 귀갓길을 방해했다. 느릿한 한 걸음에 ‘PC방으로 갈까?’란 생각을 수십 번씩 했다.

그러다 악몽 때문에 완전히 잊고 있던 게 떠올랐다.

‘무당집!!!’

한동후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몸을 돌려 집이 아닌 무당집으로 향했다. 한 달이나 이어지는 악몽을 꾸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귀신이 붙었거나 누가 저주한 게 아닐까 싶었다. 용한 무당이라고 하니 해결해 주겠지.

‘돈은…….’

오늘 아침, 집에서 나설 때까지만 해도 부적이나 쓰고 말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돈이 얼마가 들어가든 다 할 생각이다. 굿이든 뭐든 간에.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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