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야, 너 면상이 왜 그러냐?”
“어? 나? 왜?”
등교길에 만난 친구의 말에 한동후는 휴대폰 카메라로 얼굴을 확인했다.
“아, 미쳐 버리겠네.”
얼굴을 확인한 한동후는 한숨을 푹 쉬며 짜증을 냈다. 심각하게 드리운 다크서클을 가려 보겠다고 누나 화장품까지 찍어 발랐는데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누나와 피부 톤이 맞지 않아서 그런가 더 칙칙해졌다.
“뭐야. 무슨 일인데. 밤에 뭐 하냐?”
“야, 뭐 하겠냐. 밤새워서 게임이나 했겠지.”
“맞다. 너 길마라며. 고딩인 거 아직도 안 들켰냐?”
“그 게임 쌀먹 쏠쏠하다며? 나도 우리 형 계정으로 해 볼까.”
친구들이 낄낄대며 한동후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는 어색하게 한 번 웃어 주고는 빠르게 교문을 지나쳤다.
‘젠장. 한탕 크게 친 것까진 좋았는데.’
그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지갑을 확인했다. 일부러 5만 원 권으로 바꿔 넣었는데도 손에 잡히는 두께가 상당히 두툼했다.
‘이 정도면 넉넉하겠지.’
오늘, 한동후는 하교 후에 이 동네에서 가장 용하다는 무당집에 갈 생각으로 현금을 넉넉히 챙겨 온 상태였다.
교실에 도착할 때까지 그는 어디 아프냐는 말을 끊임없이 들었다. 그 정도로 내 상태가 안 좋은가? 그는 가방에 챙겨 온 누나의 화장품을 좀 더 바를까 고민했다.
그가 고민하는 사이 1교시를 알리는 수업 종이 울렸다. 1교시는 담임 시간이었다.
“한동훈이. 너 얼굴이 왜 그러냐?”
“네? 저, 저요?”
담임은 한동훈을 보자마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많이 아픈 것 같은데? 보건실 좀 다녀와 봐라.”
평소 무뚝뚝하던 담임마저 제 얼굴을 보고 걱정할 정도면 상태가 진짜 안 좋아 보이나 보구나 싶었다. 한동후는 담임의 말대로 보건실에 가서 조금만 쉬다 오기로 했다.
보건실에 도착하니 보건 교사도 한동후의 얼굴을 보고 심각하게 아픈 거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한동후는 그냥 불면증이 심해서 그런 거라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래? 그러면 저쪽 침대에 가서 한숨 푹 자고 가.”
보건 교사가 저기 가서 가라며 보건실 구석을 가리켰다.
“괜찮아요. 쌤. 그냥 피로회복제만 주세요.”
“너 그러다 젊은 나이에 골로 간다?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가서 누워.”
“……네.”
보건 교사의 박력에 눌린 한동후는 잔뜩 긴장한 상태로 보건실 침대로 향했다.
“피로회복제 달라고 했지?”
“아, 옙.”
“자, 여기.”
“감사합니다.”
한동후는 보건 교사가 건네준 약을 먹고 침대에 누운 그는 눈을 부릅뜨고 천장을 쳐다보았다.
‘자면 안 돼. 절대로.’
벌써 한 달째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잠이 들면 그는 끔찍한 악몽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금액이 큰 사기를 친 불안함이 꿈으로 표현된 건가 싶었다. 경찰이 집에 찾아온다든가, 부모님 앞에서 지금껏 저지른 사기 전적을 직접 읽는다든가.
그 꿈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악몽의 수위는 높아졌다. 소년법 개정으로 지금껏 쳤던 죄목에 가중 처벌이 붙는 꿈. 사기 전과 때문에 취업을 못 하고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다 고독사하는 꿈. 사기를 멈추지 못하고 계속 저지르며 감옥에 입소와 출소를 반복하는 꿈은 견딜 만했다.
자신에게 사기당한 사람이 집에 찾아와 가족에게 해를 입힌다거나, 도박에 빠져 집안이 망하기도 했다.
죄는 자신이 저질렀는데 가족이 고통받는 것은 꿈에서 깨고 나서도 감정의 후폭풍이 어마어마했다.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라 더욱 그랬다.
여기까지만 해도 참 힘들었는데. 더 큰 것은 그 이후에 찾아왔다. 이틀 전부터는 현실에선 절대 일어날 리 없는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자면 안 돼. 자면 안 돼.’
한동후는 손톱을 세워 허벅지며 팔뚝을 꼬집었다. 10분만? 안 된다. 1분 1초도 잠들 수 없었다. 잠들면 그것들이 찾아왔다. 그래서 한동후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도 곤욕스러웠다.
‘자면 안 되는데…….’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한 달을 제대로 자지 못했으니 잠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요 며칠은 아예 눈도 감지 못했다. 아니, 감긴 했지만 길어 봤자 20분 정도?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었고 지금은 채 5분도 자지 못했다. 그래도 스스로 몸에 상처를 내 가면서까지 자지 않고 버텼고, 조금 더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한동후는 아까 보건 교사가 주었던 약을 떠올렸다. 한숨 푹 자고 가라던 말도 같이 생각났다.
‘피로회복제가 아니라 수면유도제였나?’
어쩐지. 지금껏 억지로 막아 둔 수마가 댐이 터진 것처럼 밀려든다 했다. 한동후는 불가항력으로 감기는 눈꺼풀을 다시 들어 올리지 못했다. 그저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 뿐이었다.
부디 꿈을 꾸지 않기를.
그렇게 그의 의식이 끊어졌다.
* * *
[문지기 문지기 문 열어라.]
[열쇠 없어 못 열겠네.]
한동후의 의식이 멀리서 들리는 아이들의 낭랑한 목소리에 서서히 깨어났다.
[어떤 대문에 들어갈까.]
[동대문에 들어가.]
정신이 깨어난 순간, 아이들의 낭랑한 목소리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한동후는 두 손으로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방심했다. 보건 교사가 준 수면유도제 때문에 너무 빠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깨어나야 해!’
고통으로 잠에서 깨어나려고 입술과 혀를 깨물었지만, 너무 깊게 잠에 빠진 탓인지 잠에서 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떤 대문에 들어갈까.]
[한동후네 집에 들어가.]
제일 마지막. 자신의 이름을 들은 한동후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전신에 소름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솟구쳤다.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부디 공포에 질려 판단력이 흐려진 탓이라 여기고 싶었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자신의 방이었다. 꿈속이지만, 너무나도 생생해서 현실이라 해도 믿을 정도다. 하지만, 그는 방금까지 자신이 보건실 침대에 누워 있다 잠이 든 것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미칠 듯이 무서웠다.
…….
갑자기 밖이 조용하다. 한동후는 숨을 꾹 참고 방문을 살짝 열었다. 만약 이곳이 생판 모르는 공간이라면 문을 열어 볼 용기 따윈 없었을 것이다. 꿈이지만, 자신의 방이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소리 없이 열린 방문 틈으로 환하게 불이 켜진 거실이 보였다, 다행이다. 한숨이 절로 나오려는 걸 손으로 틀어막았다. 한숨 소리 들린다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귀에 맴돌기 때문이었다.
‘누가 날 좀 깨워 줬으면.’
한동후는 일주일 전부터 이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흉측한 귀신이 나타나 밑도 끝도 없이 쫓아오는 탓에 도망치다 깨길 반복했는데. 일주일 전부터는 거짓말처럼 귀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지금처럼 적막 속에서 아이들의 해맑은 목소리만 들렸다. 장소는 일주일 내내 자신의 집이었고, 집에 가족은 한 명도 없이 한동후 혼자 있는 꿈이었다.
첫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족이 저 때문에 고통받는 일도 없고 흉측한 귀신에 쫓기는 일도 생기지 않았다. 너무 조용한 게 신경 쓰였지만, 근 한 달 만에 악몽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첫날은 세 시간 정도 잠을 잤던 것 같다.
둘째 날은 아주 먼 곳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놀이터에서 노는 목소리 같기도 했고 그보다 더 먼 곳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동동동대문을 열어라.]
[남남남대문을 열어라.]
[열두 시가 되면은 잡으러 간다.]
아이들이 요즘은 잘 부르지 않는 옛날 동요를 부르며 노는 게 좀 이상했다. 그리고 묘하게 가사도 달랐다. 처음에는 아이들끼리 재미있게 개사해서 부르는 줄 알았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공통된 단어가 귀에 들어왔다.
[앞니 빠진 중강새. 우물 곁에 가지 마라.]
[수귀에게 먹힌다. 수귀에게 먹힌다.]
[윗니 빠진 달강새. 골방 속에 가지 마라.]
[아귀에게 먹힌다. 아귀에게 먹힌다.]
한동후는 수귀와 아귀가 자신이 아는 그 의미가 맞는지 의심했다. 어린아이가 부르기엔 섬뜩한 내용이었다. 잡으러 간다는 귀엽기라도 하지. 귀신에게 먹힌다니.
노래는 날이 지날수록 내용이 험악해졌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과의 거리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노랫소리가 점점 커질수록 한동후의 불안은 극으로 치달았다.
간신히 꿈에서 깨어났다가 다시 잠들면 꿈은 직전 꾸었던 곳에서 이어졌다. 그러니까 한동후는 일주일 내내 자신의 집에서, 정체 모를 기이한 아이들의 괴이한 노래를 들으며 불안에 떨고 있는 중이었다.
‘차라리 귀신에게 쫓기는 게 낫겠어.’
섬뜩한 동요를 부르는 아이들은 5분이든 1분이든 꿈에 발을 담그기만 해도 거리를 좁혔다. 한동후가 절대 잠을 자지 않으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분명… 현관문 앞까지 온 것 같았는데.’
현관 앞에 도착한 것까진 확인했다. 직접 눈으로 보진 않았지만, 바로 문 앞에서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자신의 방으로 피했으니까.
그리고 이번 꿈 역시, 저번 꿈에서 깨기 직전과 이어지고 있었다.
한동후는 불안감에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현관을 쳐다봤다. 꿈을 꿀 때마다 점점 가까워지는 노랫소리. 저번엔 현관 앞이었으니 이번엔 집 안으로 들어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입 안이 긴장으로 바짝바짝 말랐다.
‘다시 방으로 들어갈까?’
고민하는 순간.
쿵!
육중한 것이 현관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헉!!!!”
깜짝 놀란 한동후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소리가 나도 노랫소리가 들릴 줄 알았는데. 갑작스러운 굉음에 펄쩍 뛰었다.
[문지기 문지기 문 열어라.]
[열쇠 없어 못 열겠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들리는 노래.
[열쇠 없어 못 열겠네.]
[열쇠 없어 못 열겠네.]
[열쇠 없어 못 열겠네.]
아이들은 못 열겠다는 부분만 반복해서 불렀다. 집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열쇠가 없어서 못 들어오는 듯했다.
‘다행인 건가…….’
안에서 열어 주지 않는 이상 밖에 있는 정체불명의 아이들이 들어올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한동후의 안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노래가 바뀌었다.
[똑똑똑.]
[누구십니까.]
‘이 노래는?’
익숙한 노래였다. 한동후는 저도 모르게 다음 가사를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현관 밖의 목소리도 똑같이 불렀다.
‘손님입니다.’
[손님입니다.]
‘들어오세요.’
[들어오세요.]
‘…….’
[…….]
밖의 아이들 목소리와 동시에 ‘들어오세요.’를 부른 한동후는 무언가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했다.
[깔깔깔!]
[깔깔깔!!]
[깔깔깔!!!]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웃음이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현관문이 뜯겨 나갈 것처럼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밖에서 아이들이 손잡이를 잡고 미친 듯이 흔들어 대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