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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화-83화 (84/146)

83화

도화는 늦은 아침이 되도록 방에서 나오지 않는 담마가 걱정이 되었다.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도통 말을 하지 않으니 도와줄 수가 없어 답답했다.

‘무슨 일인지 말하라고 강요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태어난 지 몇 달도 안 된 담마이지만, 외관상 고등학생으로 보일 정도로 성장했다. 정신도 아마 비슷하게 성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춘기인가?’

담마의 방 앞에서 서성거리던 도화는 차마 문을 두드리진 못하고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눕듯 앉은 그는 휴대폰으로 사춘기를 검색했다. 온갖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았지만,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과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몇 마디 나눠 본 것 외에는 마주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정보가 필요했다.

우선 사춘기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부터 파악해야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란 도화의 생각이었다.

‘사춘기. 신체가 성장함에 따라 성적 기능이 활발… 이차성징이…….’

검색된 내용을 읽던 도화의 눈이 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

‘담마가… 그렇다고?’

담마의 방을 쳐다보는 도화의 시선이 아까와 달리 매우 조심스러워졌다. 지금까지 담마에게 사춘기가 왔다는 느낌은 전혀 받질 못했는데. 갑자기 저러는 건 뭔가 계기가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차사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담마의 하루 루틴은 매우 단조로웠다. 도화와 함께 차사국으로 출근하고. 국장실에서 국장인 강림 도령의 일을 돕다가 도화와 함께 퇴근하기.

담마가 차사국에서 여러 차사들과 만나는 일을 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도화가 알기로 담마는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국장실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담마가 만나는 이성은 자신과 묵범을 제외하면 강림 도령이 전부일 텐데….

‘설마… 국장님을?’

담마의 방문을 쳐다보던 도화의 눈빛이 혼란에 휩싸였다. 외모만 놓고 보면 강림 도령은 어디에 내놓아도 찬사를 받을 만큼 준수한 외모이긴 했다. 얼굴만 보면 혹할 사람이 한 트럭이겠으나, 문제는 그의 성격이었다. 아니, 성격뿐인가? 틈만 나면 술을 마시는 것도 그렇고, 나이는 도화보다 훨씬 많다. 이제 갓 태어난 담마가 마음에 담을 만한 인물은 절대 아니었다.

“진짜면 정말 큰 일인데…….”

도화는 심각해진 얼굴로 고민에 빠졌다. 사춘기에 대해 알아보려다 담마가 강림 도령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으로 튀었다. 그나마 도화가 상상력이 빈약해서 망정이지. 만약 현천이었다면 지금껏 섭렵한 드라마를 떠올리며 담마가 강림 도령의 손을 잡고 ‘우리 사이 허락해 주세요!’를 외치는 모습을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도화가 이런 걱정을 하는 줄도 모르고 담마는 눈에 불을 켜고 아이템 거래소 게시물을 훑고 또 훑었다.

* * *

뜬눈으로 밤을 새운 도화는 간단하게 만든 아침 식사를 들고 담마의 방문을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안에서 느릿한 대답이 들렸다. 안으로 들어가니 컴퓨터 모니터 두 대를 바삐 확인하는 담마가 있었다.

“어제부터 계속 안 잔 거냐?”

“찾아야 할 게 있거든요.”

“뭘 찾는데? 도와줄까?”

“…아니요. 이건 제가 해결해야 해요.”

도화는 음식이 담긴 쟁반을 책상 빈 곳에 올려놓으며 슬쩍 모니터를 훑었다. 어제 식사를 가져다줄 때는 보지 못하게 미리 다른 화면으로 바꾸더니 지금은 감출 정신도 없는 것인지 모니터에 집중했다. 덕분에 도화는 담마가 무얼 그리 열심히 확인하는지 엿볼 수 있었다.

‘…아이템 매매? 골드?’

도화는 담마가 쌀먹이라는 것을 하려나 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방에서 나왔다. 쌀먹이 게임 속 재화를 현금을 받고 팔아서 쌀을 사 먹는 의미라는 걸 안다.

어제부터 이어진 심각한 분위기는 사춘기가 아니라 쌀먹이 뭔가 잘 안 되어서 그런 듯했다.

“다행이다.”

도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커피를 내렸다. 밤새 담마의 사춘기와 강림 도령 때문에 걱정했던 게 단번에 해결되어 묵은 체기가 쑥 내려갔다.

“이제 나도 일 좀 해야겠군.”

큰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잠시 미뤄두었던 관상 일을 할 차례다. 도화는 커다란 텀블러에 뜨거운 물을 받아 서재로 들어갔다. 에어컨 대신 난방과 히터를 켰다. 이마에서 송골송골 땀이 맺혔지만, 이제 곧 추워질 테니 상관없었다.

“어디 보자. 오늘은 두 명만 보면 되니까 금방 끝나겠네.”

내일 출근을 위해서 가믄장 아기님의 흔적을 깊게 엿볼 생각은 없다. 오창석의 관상을 본 후유증이 자꾸만 떠올라 깊게 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시신으로 보는 관상이 아니면 괜찮지만, 그 일을 겪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라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일을 재개한 이상 안 할 수 없는 노릇. 도화는 가격을 내리더라도 가볍게 보고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 * *

- 삼최 님. 찾았어요!!!!

“!!!!”

그저 게임상에서 귓속말이 온 것뿐인데 깜짝 놀란 담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서 손으로 입을 꾹 막았다.

‘찾았다고!? 진짠가?’

벌떡 일어서느라 뒤로 밀린 의자를 끌고 와 다시 앉은 담마는 심호흡을 하고 진짜인지 물었다.

- 어디래요?

- 최대한 직접 만나서 거래하자고 유도하고 있어요. 이야기 더 진행되면 알려드릴게요.

- 네. 기다리겠습니다.

심호흡을 하며 날뛰는 심장 박동을 억누르려는데 보고 있던 거래소 화면에서 쪽지가 왔다는 알림창이 떴다.

‘설마?’

간신히 진정되려던 심장이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길마 놈의 정보가 전혀 없는 담마였지만,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건 해 보고 있었다. 사기당한 아이템을 최고 거래가의 1.5배로 구매한다는 글을 올려 두고 길마 놈이 미끼를 물길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한탕

깨비 님 혹시 S9급 성검 사셨나요? 올리신 글을 제가 늦게 봐서…^^;; 아직 못 구하셨으면 팔고 싶습니다.

라는 쪽지가 왔다. 담마는 그 즉시 방금 대화를 나눈 예전 길드원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 혹시 거래소 닉네임이 ‘한탕’인가요?

- 어?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 그냥 의심 가는 판매글이 있어서요.

맞았다. 이 자식이 그 길마 놈이 확실했다. S9급 성검 판매글이 올라오지 않길래 놈이 게시판에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구매글을 남기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다른 피해자들도 구매글을 남겨서 낚았을 것이다.

깨비

PC방에서 거래할까요? 워낙 가격이 쎈 템이라 서로 얼굴 보고 거래하는 게 안전할 것 같아서요. 사는 지역이 어디신지요.

한탕

직접 거래를 원하시는군요. 제가 강원도 산골 오지에 살아서 시내로 나가는 것도 좀 힘듭니다.

깨비

그러시군요. 괜찮습니다. 제가 거기까지 가겠습니다. 지금 출발하면 저녁때쯤 도착할 것 같은데.

한탕

헉. 오늘이요? 아, 어쩌죠? 제가 오늘은 가족 여행으로 제주도에 와 있거든요. 제가 뭐 사기꾼도 아니고. 보증인도 세울 수 있으니까 한번 믿고 거래하시죠.

“…….”

담마는 직감했다. 이 새끼. 또 사기 치려고 하는구나.

- 삼최 님. 이 새끼, 절대 오프 거래는 안 하려고 하네요. 어쩌죠?

- 저는 제 방식대로 해 보겠습니다.

- 네? 삼최 님?

- 나중에 들어올게요.

담마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미는 것을 꾹 참으며 게임을 종료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이 자식을 오프라인에서 만날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렸다.

깨비

가족 여행은 언제 끝납니까? 비행기를 타고 오시는 거면 공항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한탕

제가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러 온 거라서요.

깨비

그러면 제가 제주도로 갈까요?

한탕

잠시만요. 다른 분이 더 비싼 가격을 불러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와장창!

분을 못 이긴 담마가 키보드를 들어 벽으로 집어 던졌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키보드가 산산조각 나 회생 불가가 되어 버렸다.

‘무슨 소리지?’

욕조에서 뜨거운 물에 얼어붙은 몸을 녹이던 도화는 희미하게 들리는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신의 힘을 엿본 부작용에 환청까지 추가가 된 건가? 그럴 리는 없지만, 그렇다고 집에서 물건 부수는 소리가 날 일도 없었다.

현천이 실수로 컵을 깨트렸다면 모를까. 하지만, 방금 그 소리는 컵 깨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빠르게 몸을 닦고 옷을 입은 도화는 거실로 나왔다. 제일 먼저 현천의 방으로 갔으나 현천은 방에 없었다. 거실에도 주방에도 없다.

“?”

아까보다 좀 더 선명하게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도화는 한쪽 눈을 일그러트리며 담마의 방으로 향했다.

“뭐 해.”

담마의 방문 앞에는 현천이 있었다. 현천도 도화가 욕실에서 들은 소리를 듣고 나온 듯했다.

[담마가 뭔가 되게 빡쳤나 본데?]

“……?”

항상 침착하고 조용한 녀석이 화가 나서 물건을 던지는 모습이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 떠오른 생각은 사춘기.

“진짜 사춘기인가.”

[에엥? 사춘기? 한 살도 안 된 녀석이?]

현천이 기가 차단 듯이 물었지만, 도화는 대답 대신 담마의 방문을 두들겼다.

“담마. 문 열어.”

“…삼촌?”

“그래. 삼촌이다.”

“자, 잠깐만요. 방이 엉망이라-.”

“엉망인 거 아니까 그냥 열어.”

“네…….”

어질러진 방을 수습하고 문을 열려던 담마는 도화의 단호한 명령에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었다.

[세상에. 새 키보드가 갖고 싶었으면 사면 되지. 뭐하러 이렇게 박살을 냈담?]

먼저 방에 들어간 현천이 감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닥엔 완전히 박살 난 키보드 잔해로 발 디딜 틈이 없기 때문이었다. 여분의 키보드까지 모조리 집어 던졌는지 책상 위는 깨끗했다. 의자도 구석에 나동그라진 것으로 보아 의자도 던진 듯했다. 그나마 두 대의 모니터는 멀쩡했다. 모니터를 던지기엔 비싸서 그랬나? 그게 아니면.

‘계속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

도화는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서 있는 담마를 지나쳐 모니터에 띄워진 창을 확인했다. 한 대는 게임 로그인 화면, 나머지 한 대는 거래소 게시판이었다.

‘깨비? 한탕? 깨비가 담마인가?’

도화는 담마가 대화를 나눈 쪽지를 쭉 읽었다. 하지만, 대화 내용만 봐서는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담마가 집기를 박살 낼 정도로 화가 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방은 나중에 치우고 나와서 이야기 좀 하자.”

도화가 먼저 방을 나왔다. 현천이 뒤따르고 담마는 제일 마지막에 느릿한 걸음으로 따랐다.

주방 식탁에 담마를 앉힌 도화는 코코아를 탄 우유를 내밀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화를 나누자는 의미였다.

“무슨 일인데.”

차마 ‘너 사춘기냐?’라고 묻진 못했다. 좀 더 알아보니 사춘기의 증상이 다양하단 것을 알게 되었다. 이성에 눈을 뜨는 것뿐 아니라 부모나 어른에게 반항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다고 하니 무턱대고 혼을 낼 순 없었다.

다행히도 담마는 순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 제가 게임에서 사기를 당해서요…….”

“…뭐? 사기?”

사기란 말에 도화의 눈이 희번덕, 크게 벌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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