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속으로 한 질문이니 누군가 답을 해 줄 리 없지만, 도화의 마음은 이미 한쪽으로 답이 기운 상태였다. 강민진의 가족이 원래는 화목했다고 한들 이쯤 되면 그런 건 다 부질없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어 버렸다.
답을 내고 나니 강민진이 했던 말이 완전히 다른 의미로 들렸다.
내 가족이 나처럼 망가지게 그 그림을 가져가 달라.
숙였던 머리는 붉게 물든 눈과 웃느라 벌어진 입을 숨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바보는 나였구나. 도화는 자신이 자꾸만 담마를 떠올리며 원귀를 상대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원귀는 원귀다. 담마는 정말 특이한 경우였고 강림 도령의 말로는 제정신으로 돌아온 담마도 아직 위험 요소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밑에서 교육을 빙자한 노동력 착취를 당하고 있는 중이고.
어쨌든, 그림은 이 집에 있다.
1층에 없다면 2층에 있을 터. 1층에 있을 묵범이 올라오지 않는 걸 보면 아직 못 찾은 것 같다. 도화는 경계를 올리고 복도 끝으로 향했다. 원한이나 귀물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혹시 일어날 위험한 상황에 대비하는 것은 당연했다.
꺾인 복도의 끝은 예상대로 방이 있었다. 당연히 이 방의 문에도 부적이 붙어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문에 당도한 도화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장면을 목도했다.
[이건… 좀 심한데?]
현천이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온통 샛노랗고 새빨갛다. 문과 벽, 그리고 바닥의 경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적이 붙어 있었다. 손잡이 부분도 부적으로 덕지덕지 붙여서 보이지 않는다. 그 부분이 불룩 튀어나오지 않았다면 그냥 부적으로 도배를 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거 다 봉법부(封法符)잖아…?]
얼떨떨한 표정이 된 도화가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보통 원귀, 악귀, 귀물을 병이나 항아리 속에 잡아넣을 때 사용하는 부적인데 이렇게 방 전체를 밀봉하듯 막는 용도로 쓰인 것은 처음 본다.
[이건 꽤… 영험해 보이는걸?]
가까이서 부적을 살펴보던 현천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껏 붙인 형편없는 부적과 차원이 다른 부적이었다. 그렇다고 도화가 쓴 부적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 정도로 수 겹 도배를 해 놓았으니 꽤 강한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현천. 내려가서 묵범한테 위로 올라오라고 전해 줘.]
[알았다. 먼저 들어갈 생각일랑은 하지 마.]
도화의 부탁에 현천은 허튼짓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당부하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1층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방 전체를 이렇게 막아 버린 걸 보면 이 안에 그림이 있는 게 분명해.’
도화는 긴장으로 침을 꿀꺽 삼키고 손잡이로 추정되는 부분으로 손을 뻗었다.
파직-! 손잡이에서 스파크가 짧게 튀었다. 문을 열려는 도화의 손길을 거부하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도화가 힘을 주어 손잡이를 잡자 거부 반응은 더는 일어나지 않았다. 손잡이를 잡아 비틀자 스파크 대신 부적 위로 문의 형태를 따라 시커먼 선이 그어졌다. 마치 불에 그을린 듯한 모양이었다. 도화의 기운에 이 많은 부적의 힘이 죽어 버렸다는 의미였다.
떡칠한 부적 때문에 사라졌던 벽과 문의 경계가 생겼다. 문은 다른 방에 비해 작았다. 아마 사람이 머무는 용도가 아닌 창고 용도로 만들어진 방인 듯했다.
문을 밀기 전, 도화는 강민진의 가족이 이렇게까지 부적을 쓴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림을 남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그림 때문에 점점 가족이 이상해져서 더는 피해를 막기 위해 가둬 둔 것일까.
문득 바닥을 보니 말라비틀어진 핏자국이 보인다. 여기서 피가 흐를 정도로 위험한 일이 벌어졌다는 의미였다. 아마도 강민진의 친모가 여기서 살해당한 것 같다.
문득, 도화는 이 뒤틀린 곳에서 어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긴 정상이 아니다. 정상이었겠지만, 이 방 안의 그림 때문에 완전히 일그러졌다.
“왔습니다. 홍도화 씨. 그림을 찾은 겁니까?”
2층으로 올라온 묵범은 도화가 마주하고 있는 문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눈에도 좋아 보이진 않아서였다.
“그거 그렇게 잡고 있어도 되는 겁니까?”
부적에 대한 것은 잘 몰라도 부적에 적힌 한자가 무얼 뜻하는지 파악한 묵범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쩌겠어. 이 안에 있는 것 같으니 들어가 봐야지.”
“만약 그림만 있는 것이라면 차라리 국장님을 부르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오창석의 혼만 회수하면 되니까요.”
“우선 연다.”
도화는 묵범의 말은 한 귀로 흘려 버리고 통보하듯 말하며 잡고 있던 손잡이를 안으로 밀었다. 끼익- 경첩에서 뻑뻑한 소리가 났다. 방금 전까지 열었던 문은 부드럽게 열렸던 걸 보면 이 방은 문을 열지 않은 지 오래된 듯했다.
“조심.”
[조심해라.]
경첩 소리가 나자마자 묵범과 현천이 도화에게 경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주 살짝 문을 연 것뿐인데 방 안에서 진득한 음기가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손잡이를 잡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열자마자 흘러나온 걸 보니, 이 방의 문에 붙인 부적이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구나 싶었다.
방 내부는 컴컴했다. 밖은 대낮인데 방만 밤이 찾아온 것처럼 어두웠다. 도화는 이 집에 들어오기 전 전체적으로 눈에 담았던 전체적인 외관을 떠올리며 지금 이 방이 2층의 어느 부근인지 생각했다.
‘지붕 아래인 것 같은데.’
천장이 비스듬한 이유는 방이 세모난 지붕 한쪽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작은 창이 있던 것도 떠올렸다. 하지만, 이 방은 창이 없었다. 아무래도 창문을 안에서 막아 버린 것 같았다.
먼저 방으로 들어간 묵범이 휴대폰 손전등으로 방 내부를 살폈다. 예상했던 대로 벽은 벽지 대신 부적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어디 보자. 그림이…… 저건가?”
그림을 찾는 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딱 봐도 굉장히 중요하거나 위험한 것을 넣어 둔 듯한 상자가 방 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문에 붙여 둔 것과 똑같은 봉법부로 뒤덮인 상자. 그리고 온통 시뻘겋게 물든 바닥.
묵범이 손가락으로 붉은 바닥을 슥 훑어 확인했다. 붉디붉어서 처음엔 피인 줄 알았지만, 비릿한 냄새도 없고 완전히 말랐는데도 붉은색인 것을 보면 피는 아니었다.
“경면주사군.”
똑같이 바닥을 확인한 도화가 작게 말했다. 부적을 붙이다 아예 상자와 닿은 바닥을 경면주사 분말을 개어 칠한 것이었다.
“경면주사를 이 정도로 발랐는데 그래도 음기가 강한 것을 보면, 상자 안에 있는 것은 절대 금섬은 아닐 겁니다.”
“국장님 말대로 타락한 업신이 맞는 건가.”
일개 두꺼비 귀물인 금섬이라면 절대 뿜어낼 수 없는 음기다.
“이걸 어떻게 가져가지?”
“부용삭으로 감아서 가져가면 될 겁니다. 아, 홍도화 씨의 부용삭은 요즘 말을 잘 듣습니까?”
“음… 그럭저럭?”
그럭저럭이란 말에 묵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의 부용삭을 풀었다. 아무래도 그럭저럭이란 대답이 영 믿음직스럽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런 묵범의 태도에 도화는 사람 무시하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본인도 자신의 부용삭이 못 미더웠기에 분해도 입을 다물었다.
묵범의 부용삭이 상자를 칭칭 감았다. 부용삭이 상자에 닿을 때마다 콰직, 콰직 하는 소리가 방을 울렸다. 그때마다 상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마도 상자 안의 힘과 부용삭의 힘이 충돌하며 나는 소리인 듯했다.
묵범의 손짓에 부용삭이 감긴 상자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바닥에서 떨어질 때 쩍! 하고 단단히 붙었던 게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흠. 생각보다 수월하군요. 애 좀 먹일 줄 알았는데.”
도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공에 뜬 상자를 살폈다. 묵범의 말대로 수월했다. 생각보다가 아니라 대놓고 수상할 정도로.
“그림은 이 안에 있을 테고. 오창석의 영혼이 문제네요.”
“집 안에 없으면 주변에 있으려나.”
“흑립을 쓰고 왔으니 우리가 오는 건 못 봤을 텐데. 흐음.”
“원귀가 되지 않았다면 감직 차사들이 데려갔을 수도 있으니 확인해 보도록 하죠.”
묵범은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 방을 나왔다. 도화도 그를 뒤따랐다. 1초라도 이 방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 도화 본인도 부적을 만들고 사용하지만,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부적을 붙인 곳에 들어와 있자니 기분이 나빴다.
좋은 의미의 부적도 아니고 봉법부라니. 마치 자신이 이 공간에 갇혀 버릴 것 같았다.
[기분 나쁘니 어서 집에 돌아가고 싶군.]
현천도 도화에게 뒤처질세라 앞서 날았다. 1층으로 내려오니 숨통이 좀 트이는 기분이다. 묵범은 정보부에 전화를 걸며 주차된 차로 향했다. 현관을 빠져나오려던 도화는 희미한 기척이 제 뒤로 지나가는 느낌이 들어 멈칫했다.
‘오창석? 아니면 강민진의 친모?’
뒤를 돌아보니 아무것도 없다. 기척이 향한 곳은 집의 뒤쪽이었다. 묵범을 쳐다보니 뭔가 중요한 정보가 들어왔는지 통화에 열중이었다.
‘뭐, 괜찮겠지.’
위험한 상자는 묵범이 가지고 있고 원귀 정도면 손쉽게 제압할 수 있다. 강해진 악귀라면 좀 곤란하지만, 묵범이 저기 있으니 큰 걱정은 들지 않았다. 도화는 현천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하고는 기척이 사라진 곳으로 달렸다.
집의 뒤쪽에는 방치된 지 오래된 화단이 있었다. 여기도 처음엔 꽃이나 채소를 심었겠지. 마른 흙을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그리고 어서 이 집에서 벗어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누가 봐도 이곳은 기분 나쁜 집이었지만, 특히나 도화에겐 안 좋은 생각만 들게 했다.
괜히 기억에도 없는 제 부모도 이랬을까 싶었다. 전에는 온갖 패륜 범죄를 접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정신 상태가 좋지 못했다.
‘누가 일부러 뒤흔드는 느낌이야.’
정체불명의 손이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뒤흔드는 것 같다. 아니, 머리카락이 아니라 뇌를 쥐락펴락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실제로 그래 본 적은 없지만, 지금 느끼는 더러운 기분을 표현하기에 알맞았다.
도화는 자꾸만 엉망이 되려는 정신을 유지하려고 혀를 씹었다. 화끈한 고통이 혀를 가르며 피 맛이 돌았다. 입에 고인 피를 뱉으려다 혹여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피 냄새를 맡고 도망이라도 칠지 모른단 생각에 비릿한 것을 꿀꺽 삼켰다.
[뭐냐. 혀 씹었냐?]
[참나. 개코냐?]
입술을 꼭 다물고 있었는데 현천이 피 냄새를 맡고 킁킁댔다. 개코도 너만큼은 아니겠다. 도화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길래 아침에 빵 쪼가리라도 먹고 나올 것이지. 배고프다고 혀를 씹냐.]
[배 안 고프거든? 닥치고 조용히 있어.]
현천의 시답지 않은 소리를 반격한 도화는 가만히 벽에 기대어 숨을 죽였다. 그리고 손목에 감아 둔 부용삭에게 마음속으로 말을 걸었다.
‘이번엔 말 좀 잘 들어라. 응?’
부용삭이 대답할 린 없지만, 그래도 잘 부탁한다는 마음을 담아 쓰다듬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본 현천이 낄낄댔다.
그때였다. 망가진 화단 위로 희미하게 일렁이는 것이 나타났다.
그림…. 그림을 찾아 없애야 해…….
‘망자?’
자아가 많이 붕괴되었는지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목소리도 웅웅댔다. 죽은 자의 영혼인 것은 맞는데 누구인진 알 수 없었다.
내가 민진이를 죽인 거야. 내가 그림을 주지 않았다면….
그러나 이어진 중얼거림은 희뿌연 혼이 오창석임을 알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