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다들 아는 정도만 이야기하는 건 괜찮겠지.’
어차피 차사국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한 번쯤은 월아 차사에 대해 듣는다. 월아 차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자연스럽게 그녀의 활약상부터 안타까운 죽음까지 이어질 테니 그녀를 아끼던 이들이 지켜 주고 싶은 내용만 빼고 이야기하기로 했다.
“월아 차사는 악귀 추혼 중 무언가의 급습에 의해 절명했다. 그녀는 삼신과 가믄장 아기가 특별히 공들여 탄생시킨 차사였어.”
‘신이 공들여 탄생시킨 차사?’
도화는 강림 도령의 말을 곱씹었다. 월아라는 차사가 날 때부터 차사로 태어났다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저승 일손이 지금이랑은 비교도 안 될 만큼 모자랐던 시기였거든. 전쟁통에 생겨난 망자는 끊임없이 밀려오지, 억울하게 죽은 대량의 혼이 원귀와 악귀로 변한 것으로도 모자라 전란을 틈타 악한 귀물이 난리를 치니 차사국도 전쟁터나 다름없었어.”
그때를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진저리가 나는지 강림 도령이 머리를 흔들었다.
“대별왕은 과로로 쓰러졌는데 저승시왕도 더는 못 해 먹겠다고 열 명 모두 손을 놓아 버리니 저승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지. 보다 못한 하늘의 신들이 조금이라도 저승의 일을 덜어 주기 위해 선계의 인력을 파견해 주었는데, 삼신과 가믄장 아기가 합심하여 탄생시킨 존재가 월아였어.”
“그러니까… 월아 차사는 죽어 망자가 된 적이 없는, 애초에 차사로 태어난 사람이다 이 말입니까?”
“그렇지. 유일무이한 차사였어. 월아 한 명만 있어도 최소한 추혼부 일은 걱정 없는 능력자였지. 월아가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강림 도령의 입에서 끊임없는 칭찬이 흘러나오게 할 정도도 월아 차사의 능력은 뛰어났던 것 같다.
“그런데 월아 차사는 어쩌다 불의사망자가 된 겁니까?”
도화가 호기심을 억누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부터 교맥국을 노리는 무리가 있었거든.”
“…교맥국?”
갑자기 튀어나온 도깨비 나라 이야기에 도화의 이마가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런 도화의 반응을 눈치챈 묵범은 도화의 팔을 툭 치며 진정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자신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기회만 보이면 죽이려 드는 도깨비들의 나라, 교맥국 이야기를 진정하고 듣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강림 도령은 도화의 기운이 거칠어진 것을 느끼고는 잠시 이야기를 멈췄다. 그가 왜 성이 났는지 이유를 묻지 않아도 알기 때문이었다. 교맥국의 도깨비들이 반도깨비 홍도화를 없애고 싶어 한다는 것은 귀물들 사이에선 유명한 소문이었다.
[참아. 누가 알아? 뜻밖의 정보를 얻게 될지. 저래 보여도 강림 도령은 너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산 존재야. 허튼소리도 흘려듣지 말고 항상 기억해.]
[알…았어.]
뒤틀리던 마음은 현천의 조언에 간신히 잠잠해졌다. 도화의 숨소리가 평온해진 것을 확인한 강림 도령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교맥국의 도깨비들이 워낙 폐쇄적이라 외부와의 교류가 거의 없다시피 하거든. 그런데 교맥국의 국경 결계를 자꾸만 파훼하려는 무리가 나타나서 월아가 파견 나갔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임무였는데 막바지에 그 일이 터진 거다.”
도화도, 묵범도 그 일이란 게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이야기하는 강림 도령의 얼굴에 그늘이 짙게 진 것만 봐도 월아 차사의 불의사망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신들이 월아 차사의 불의사망 건을 조용히 묻으려고 한 건 그녀의 혼이 저승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야.”
“……네?”
“그게 무슨, 아니, 그러니까.”
묵범도 당황했는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러니까… 지금 신의 총애를 받던 월아 차사가 원귀가 되었다는 겁니까?”
무려 600년 전의 일이라지 않나. 600년간 저승차사들의 추격을 피한 영혼이 과연 멀쩡할까? 원귀? 정말 좋게 봐줘서 원귀라 말했지, 악귀라는 말로도 부족한 혼이 되었으리라 예상했다.
“차라리 원귀나 악귀가 되었다면 차사들이 잡으러 가기라도 하지.”
“?”
강림 도령은 새로이 술병을 집어 들며 말했다.
“하늘로 솟은 건지, 땅으로 꺼진 건지. 감쪽같이 사라졌어.”
“사라졌다니요.”
“말 그대로. 월아의 혼을 데리러 갔을 땐 시신만 있을 뿐, 범인도 월아의 혼도 찾을 수 없었다고. 명부에는 뒤늦게 불의사不意死라고만 적혔지. 혼의 행방을 수소문해도 작은 단서조차 나오질 않지. 어쩌겠어. 덮어야지.”
그는 피곤한 얼굴로 푸념했다. 하지만, 묵범은 강림 도령의 푸념은 안중에도 없단 듯이 미심쩍은 부분을 짚었다.
“그래도 신들이 월아 차사의 사망을 덮으려 한 명분은 부족한 듯하군요.”
“나도 알아, 짜식아.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더는 말 못 해. 했다간 삼신과 가믄장 아기가 내 목을 조르려고 달려올지도 몰라.”
전에 졸린 적이 있던 걸까. 강림 도령은 손으로 본인의 목을 슥슥 문질렀다. 삼신과 가믄장 아기 중 어느 쪽인지는 모르나 성정이 굉장히 불같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월아 차사의 영혼은 아직까지 행방불명, 오창석은 우리가 찾아야 하니 둘은 빼고. 나머지 일곱의 영혼은 찾았습니까?”
“다 회수했지. 어서 내 자료 파일이나 대충 훑어보고 오창석이나 잡으러 가. 홍 차사는 오창석을 잡으면 며칠 푹 쉬고.”
강림 도령은 더는 말하기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휴가 명령에 도화는 어리둥절했다.
“가믄장 아기가 네가 엿보는 것에 심술 나서 그런 부작용을 준 건 아닐 거다. 그냥 그 여자 성정이 뭣 같아서 쓰는 힘도 그런 거니, 신이 널 미워한다는 괜한 착각은 하지 마.”
“그렇…습니까?”
“가믄장 아기나 되는 거대 신이 반귀물까지 신경 쓸 리 없잖아?”
듣고 보니 그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도화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렇군요, 작게 중얼거렸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에게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좀먹던 고민을 날려 줄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지금껏 강림 도령을 술주정뱅이로만 보던 도화의 시선이 바뀌었다. 불의사망자 목록 서류철을 전 세계 주류 백과로 위장해 놓은 것을 보면 외부에는 일부러 술만 마시고 일은 안 하는 한량 이미지로 보이게 하는 중인 듯했다.
‘그런데 왜?’
유능해 보이는데 어째서 그런 이미지를 만든 거지? 본래 모습을 숨겨야 하는 이유라도 있는 걸까?
강림 도령의 속내를 알 순 없지만, 아무래도 차사국 내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확실한 듯했다.
‘거기까진 내가 신경 쓸 이윤 없겠지.’
도화는 더욱 복잡해지려는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강림 도령에 대한 관심은 끄기로 했다. 그저 담마의 교육만 잘 하면 될 일이니까.
어쨌든, 도화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묵범과 함께 불의사망자들의 정보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결 가벼워졌던 마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무거워졌다.
* * *
묵범의 차를 타고 이동하던 도화는 자꾸만 아까 강림 도령의 술 창고에서 읽었던 것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월아 차사와 이번에 죽은 오창석을 제외한 불의사망자의 공통점이 자꾸만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원귀나 악귀가 될 줄 알았는데. 윤회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린다니….”
사람의 혼이 그리될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차라리 악귀가 되는 게 나을 것 같군요.”
“그러게.”
아무리 악귀여도 순순히 잡혀가 저지른 죄에 합당하는 죗값을 치른다면 그나마 윤회의 굴레에 다시 들어설 수 있는 희망은 있다. 물론, 처음부터 사람으로 태어날 린 없고 파리나 모기 같은 것부터 시작하겠지만. 어쨌든 희망은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망가질 수 있지? 하늘에선 그런 거 조사 안 하나?”
대체 위에서 하는 일이 대체 뭐야? 도화의 목소리에 답답함이 묻어났다. 하늘개 때도 제때 비를 내렸다면 산불 피해를 최소로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비 내리는 게 뭐가 어렵다고.
‘하긴, 어렵지도 않은 일도 제때 안 하는데 영혼이 박살 난 일에 손을 댔겠어?’
도화는 스스로 답을 내고는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이렇게 답답해해 봤자 해결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분노가 하늘에 닿는 것도 아니고.
“아마 하고 있을 겁니다.”
뒤늦게 묵범의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도화의 마음에 드는 확답은 아니었다. 하긴, 차사국으로 파견 온 지 한참 됐다는데 뭘 알겠나 싶다.
“그런데 오창석이 어디 있는 줄 알고 이동하는 거야? 국장님의 자료대로라면 오창석의 영혼도 위험할 텐데….”
어쩌면 영혼이 망가졌을지도 모른단 말은 하지 않았다. 도화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부류에 자신도 포함되었다고 여기며 살았던 생각을 고치기로 했다. 좀 불쌍한 부류로. 가장 불쌍한 부류는 불의사망자다.
“윤회도 못 할 정도로 망가졌다는 건 신도 고칠 수 없다는 의미이니 손을 놓고 있진 않을 겁니다. 신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자신의 신위에 도전하는 것이니까요.”
“가장 싫어한다면서 600년이나 해결 못 하고 있는 걸 보면 범인이 굉장한 녀석인가 보네.”
“…….”
도화의 빈정거림에 묵범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사실, 신들도 손을 쓰고 있다는 말은 묵범이 대충 둘러댄 변명이었다. 월아 차사의 일은 천계에 있을 땐 들어 보지 못했다. 차사국에 파견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으니 신들은 불의사망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600년이나 지났는데도 게속 피해자가 나오는 것을 보면 잊어버렸거나 아예 그런 일이 생겼는지도 모를 가능성도 있었다.
‘정말이지. 내가 생각해도 위에선 뭘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하늘에서의 생활은 너무 심심했다. 평화롭고, 평화로웠으며, 평화로웠다. 물론, 천계도 시스템에 따라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지만, 부서에 따른 업무량의 차이가 천차만별이었었다. 묵범은 전직 산신의 경험을 살려 산신이 사라진 산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었다.
말이 산신 없는 산의 관리이지, 전국의 산이란 산은 도맡았다고 하는 게 맞았다. 요즘 세상에 산신이 제대로 붙어 있는 산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의외로 묵범은 전국의 산을 관리하는 것치고는 너무나도 한가하게 지냈다. 차사국에 파견까지 올 정도로.
이유는 단순했다. 인간들이 산마다 산림관리자를 두어 관리하기 때문이었다. 묵범이 나서는 일은 산을 과도하게 망가트리며 개발하는 정도다.
요즘은 개발할 만한 지역은 다 하기도 했고 환경문제도 신경을 쓰다 보니 묵범이 나설 정도의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래서. 지금 어디로 가는 건데.”
“경주로 갑니다.”
“경주? 혹시 강민진의 본가?”
창밖을 내다보던 도화가 묵범을 쳐다보며 물었다.
“맞아요. 거깁니다.”
“거기에 오창석의 영혼이 있을 거란 증거라도 있어?”
“금섬의 그림이 있잖습니까.”
“그건 그림일 뿐이잖아.”
“오창석에겐 특별했을 겁니다. 여러 의미로.”
여러 의미라는 말에 도화는 오창석이 황금 두꺼비 그림에 어떤 의미를 두었을지 생각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