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다른 사람은 어떨지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가믄장 아기님의 흔적을 엿보면 즉시 부작용이 옵니다.”
도화는 큰 결심을 한 속마음과 달리 아무렇지 않은 듯, 덤덤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강림 도령은 두 눈을 반짝이며 도화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보통은 20~30분 정도 추위를 탑니다. 정신을 잃을 정도는 아니지만, 충분히 고통스러울 정도의 추위라 관상은 무조건 집에서만 봅니다. 의뢰를 최소로 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하. 그래서 도방 선생에게 관상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이군.”
이제야 소문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며 강림 도령이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별 따기와 비교될 정도로 의뢰를 적게 받은 것은 아니지만, 정정하진 않았다. 그런 식으로 유명세가 퍼지면 요금을 더 올려도 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어제 오창석의 관상을 봤을 땐 왜 그렇게 심각했던 겁니까? 지금껏 망자의 관상을 본 적이 없던 건가요?”
묵범이 얼음만 남은 컵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당연히 망자의 관상을 본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오창석처럼 진짜 시신의 얼굴로 본 것이 아니라 망자의 생전 사진으로 본 것이라 평소의 부작용만 감내하면 되었어요.”
“흠. 망자여도 사진이 생전에 찍은 것이라면 괜찮다는 말이군요. 그렇다면 시신 사진으로 관상을 보면 어제처럼 그런 불상사가 일어난다고 이해해도 됩니까?”
묵범의 질문에 도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의 생명에 큰 위협이 될 만한 약점인데… 이걸 우리에게 말하는 이유라도 있나?”
강림 도령이 진지하게 물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지금 이 이야기는 누군가 도화에게 악의를 품고 악용하면 목숨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내용이었다.
“소문만 들은 상태였다면 모른다고 잡아뗐을 텐데, 두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이 있으니 발뺌할 수가 없어서요.”
도화가 옆에 있는 묵범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어제 저놈에게 부작용을 들키지만 않았어도 지금 이렇게 최대의 약점을 털어놓지 않았을 것이란 의미였다.
“차사 일을 당장 그만둘 것도 아니고요. 되도록이면 오래 하고 싶습니다.”
“하하. 하긴. 초봉을 이렇게 챙겨 주는 회사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거야.”
“그러니 제 부작용은—.”
“오케이. 오케이. 아무한테도 말 안 해. 내가 차사국의 유능한 차사의 약점을 아무한테나 떠벌릴 것처럼 보이나?”
그렇게 보입니다만.
“아니요. 아닙니다.”
도화는 마음과 다르게 아니라고 고개까지 저으며 부정했다. 인간들 틈에 살면서 익힌 최소한의 대처법이었다.
“흠. 어차피 차사국에선 자네에게 관상을 보게 할 일은 없을 듯하니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대신, 차사 일에 무리가 없도록 해야 해.”
‘뭐야. 혹시 내 블로그를 봤나?’
얼마 전, 다시 관상 의뢰를 받는다고 블로그 공지를 수정했던 도화는 괜히 찔려서 과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강림 도령은 도화의 대답으로 관상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묵범은 부작용이 도화의 몸에 지속적인 피해를 주는 것인지 궁금했으나 강림 도령이 더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게 끝내 버려서 물어볼 수 없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물어봐야겠군.’
강림 도령은 묵범의 시선이 도화에게 꽂혀 떨어지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무시하고 다시 금섬에 대해 이야기를 돌렸다.
“아까 강민진의 집안은 강민진 자체가 금섬이나 다름없다고 했었지? 강민진의 관상도 본 건가?”
“아직 가믄장 아기님의 흔적을 엿본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워낙 이 일을 오래 해서 사진만 봐도 얼추 보입니다.”
“흐음…….”
강림 도령이 강민진의 자료에 붙어 있는 그녀의 사진을 손끝으로 톡톡 치며 침음했다. 고민하는 듯한 모습에 도화는 꿀꺽 침을 삼켰다. 방금 본인 입으로 관상에 대해선 이야기를 끝내자고, 관상을 보게 할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저 모습을 보니 강민진의 관상을 보고 싶어 하는 눈치다.
입술을 달싹거리는 게 안 봐도 훤했다. 아니나 다를까. 강림 도령은 도화에게 검지를 슬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기. 흠. 딱 한 번만—.”
“안 됩니다.”
“……?”
순간. 도화는 자신이 대답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입술은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상태였다. 안 된다는 단호한 대답은 도화가 아닌 묵범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어제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한테 또 관상을 보라는 건 너무한 것 아닙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국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아랫사람을 아끼는 미덕이라곤 개미 코딱지만큼이나 없는 악독한 사람이었군요.”
“뭐… 뭐?”
묵범은 숨도 쉬지 않고 속사포로 강림 도령을 비난하는 말을 내뱉었다. 묵범의 비난을 듣던 강림 도령의 안색이 점점 일그러졌다.
“야, 그만해.”
“그만하라니요. 어제 제가 당신의 체온을 정상으로 올리느라고 욕ㅈ— 엌!”
도화는 묵범의 입에서 욕조라는 단어가 완성되기 전에 본능적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도화의 단단한 주먹이 묵범의 입을 사정없이 강타했다. 어찌나 세게 휘둘렀는지 주먹이 얼얼했다.
물론, 묵범의 얼굴에 고통이 서린 것은 당연했다. 그와 반대로 강림 도령의 얼굴은 언제 일그러졌었냐는 듯이 싱글벙글 웃음이 만개했다.
“손속이 시원시원한 게 아주 마음에 드는 젊은일세. 요번 달에 특별 보너스 좀 챙겨 줘야겠어.”
“감사합니다.”
도화는 얼얼한 손을 탁자 아래로 내리며 강림 도령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어으…….”
옆에서 묵범의 앓는 소리가 났지만, 괜찮냐는 말 대신 그의 탁자 밑으로 손을 뻗어 그의 허벅지를 쿡 찔렀다. 헛소리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어디 할 말이 없어서 욕조 이야기를 꺼낼 생각을 했는지. 당장 현천으로 주둥이를 썰지 않은 걸 감사히 여기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욕…? 체온 올리는 게 욕 나올 정도로 힘들었다… 이건가?”
“네. 맞습니다.”
“…….”
도화의 단호한 대답에 묵범이 끙, 하고 언짢은 소리를 냈다. 그래도 주먹으로 주둥이를 맞은 효과가 있는지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뭐, 범 수석의 말도 일리는 있어. 내가 생각이 짧았네. 어제 그렇게 고생한 사람한테 또 그 고생을 시킬 순 없지. 그래, 자네 말대로 강민진이 금섬이나 마찬가지인 재복을 가진 사람이라 이거지?”
“네. 그녀의 얼굴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재물운은 모조리 끌어모아 만든 것 같았습니다.”
“신기하네. 보통 그런 얼굴은 부처님 닮기 마련인데.”
푸흡-.
옆에서 끙끙대던 묵범이 이번엔 웃음이 터졌다.
“왜. 아니야? 내가 관상은 못 봐도 예로부터 재복이 많은 얼굴은 얼굴이 이렇고 귀는 요렇고. 어? 이렇지 않아?”
묵범이 자신을 비웃는다고 느꼈는지 강림 도령은 자료를 뒤집어서 펜으로 슥슥 그림을 그렸다. 둥글고 넙데데한 얼굴에 커다란 귀와 두툼한 귓불. 어딜 봐도 후덕한 부처님상이었다.
묵범이 아예 고개를 돌려 그림을 외면하자 강림 도령은 도화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니야?”
“…….”
도화는 대답 대신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고 하기엔 잘못된 지식을 인정하는 게 되고, 아니라고 하기엔 아까 주겠다고 한 특별 보너스가 날아갈 것 같아서였다.
“됐어. 내가 관상을 볼 줄 알아서 뭐에 쓰나. 국장 업무만 잘하면 되는 것을.”
강림 도령은 쿨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지만, 불퉁하게 나온 입은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신이 나서야 이야기가 진행될 것 같아서 도화는 강림 도령의 앞에 있는 강민진의 자료를 끌어다 펼쳤다.
“여기 보면 강민진은 오창석과 만난 이후로 사업이 급격히 망해 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 추측은 오창석에게 붙어 있던 금섬이 강민진에게 옮겨 가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어찌 되었든 금섬은 재복을 가져다주는 귀물인데?”
“이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강림 도령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묵범이 했다. 그는 오창석에 대한 자료를 꺼내 붉게 강조한 부분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오창석이 강민진과 만난 이후, 강민진의 사업이 기울어지는 것과는 반대로 오창석의 사업은 막혔던 것이 뚫린 것처럼 잘 풀리고 있었거든요.”
“금섬이 오창석에게 계속 붙어 있을 수도 있지 않나?”
“애초에 오창석에게 재복을 줄 놈이었다면 처음부터 줬겠지요. 이번 일의 원흉인 금섬은 재복이 아니라 역운逆運을 주는 귀물인 듯합니다.”
“역운. 역운이라.”
강림 도령은 묵범이 말한 역운을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수염 자국도 없는 반들반들한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애초에 금섬이 아니었던 게 아닐까?”
묵범이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금섬이 아닐 리 없습니다. 강민진이 본인 입으로 오창석에게 노란 두꺼비가 그려진 그림을 선물 받았다고 했습니다. 분명 그것이 금섬—.”
“금섬이란 것은 깃들어도 금이나 보석으로 된 제 형상에 깃들지 종이에 깃들지 않아. 아마 그건 금섬을 흉내 낸 다른 귀물일 거다.”
“금섬이 아니라면 무엇인지 짐작 가는 게 있으십니까?”
제 대답이 뚝 잘렸지만, 묵범은 기분 나빠하지 않고 바로 반문했다.
“타락한 업신(業神).”
“업신?”
업신이라 함은 재물의 운수를 관장하는 가신이다. 둘의 능력은 비슷하나 귀물과 신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누구 짓인지 몰라도 일부러 가신을 타락시켜 인간 사이에 풀어 둔 것 같다.”
“가신이 아무리 예전보다 명성이 덜하다지만, 그래도 신이 타락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묵범이 바로 강림 도령의 말을 받아쳤다. 신의 정신력이 얼마나 강한데 흔들린단 말인가. 가능은 해도 그건 천지왕과 그에게 인정받은 소수의 거대 신이나 할 수 있다. 하지만, 할 수 있어도 안 하는 게 암묵적인 규율이다.
“규율을 어기는 자는 반드시 나타나는 법이지.”
강림 도령은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자신 있게 말했다.
‘뭐지? 이번 일에 뭔가 다른 것도 얽혀 있는 건가?’
도화와 묵범은 그런 강림 도령에게 의심을 품었다. 단순히 악귀와 금섬을 잡는 일인 줄 알았는데 업신이니 뭐니,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니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둘의 이런 속내를 눈치챈 강림 도령은 흠흠, 목청을 가다듬다 술로 목을 축였다.
“햐~ 살 거 같네.”
단번에 반 병을 해치운 그는 자리에서 탁자 위의 프린트물을 한데 모아 대충 정리했다. 슬슬 끝내자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당장이라도 범인으로 추정된 자의 정보를 풀 것 같았던 강림 도령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어리둥절한 도화와 묵범은 이어진 강림 도령의 명령에 의심이 더욱 깊어졌다.
“둘 다 금섬 잡기는 손 떼.”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