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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화-66화 (67/146)

66화

무슨 일이냐고 묻는 정보부 차사의 다급한 소리가 들렸지만, 묵범은 나중에 알려 주겠다며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어 버렸다.

“잠시만. 저도 내부 좀 확인하겠습니다.”

묵범은 안을 살피고 있던 도화에게 양해를 구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옆으로 몸을 비켜 준 도화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방 안을 살피는 묵범을 관찰했다.

‘이럴 때는 꽤… 진지하단 말이야.’

평소에도 저러면 얼마나 좋아. 도화는 장난기가 사라진 묵범의 옆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보통 귀물은 힘이 강할수록 외모도 뛰어나다. 묵범의 외모를 귀물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한 종족의 왕 정도가 아닐까 싶다.

묵범의 날카로운 옆모습을 구경하던 도화의 시선이 아래로 이동했다. 얼굴에서 이동한 시선이 멈춘 곳은 묵범의 허벅지였다.

손잡이 구멍에 눈을 맞추느라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은 묵범의 허벅지를 감싼 바지는 팽팽하게 당겨지다 못해 콕 찌르면 터질 것 같았다.

‘무슨 운동을 하면 저렇게 되는 거지?’

도화는 자신의 허벅지와 묵범의 허벅지를 번갈아 쳐다보며 비교했다. 저 또한 끊임없는 단련으로 꽤 훌륭한 몸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묵범과 비교하면 초라한 기분이 들곤 했다.

‘흠. 상체는 그래도 내가 더 나은 것 같은데…….’

가슴 근육은 묵범보다 자신이 더 나은 것 같다고 판단한 도화는 저도 모르게 본인의 허벅지를 꾸욱 움켜잡았다. 가만히 서 있어도 단단한 근육이 느껴졌지만, 바지를 터트릴 것 같은 묵범의 허벅지를 보니 한참 모자라게 느껴졌다.

“다리 저립니까?”

“…어?”

묵범의 질문에 도화는 그제야 자신이 무아지경으로 제 허벅지를 주무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얼마나 세게 주물렀는지 손을 뗐는데도 얼얼했다.

“아니. 그냥 바지에 뭐가 묻어서. 폐가라 그런가 먼지가 많네.”

묵범의 눈에는 먼지 하나 보이지 않은 깨끗한 바지로 보였지만, 뚝딱거리며 손으로 허벅지를 탁탁 터는 도화를 보고 그냥 웃어넘겼다.

“홍도화 씨는 어디 가서 절대 사기는 못 치겠습니다.”

“?”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도화의 반응에 묵범은 크게 터지려는 웃음을 꾹 참고 일어섰다. 좀 더 노닥거리고 싶지만, 안의 상태를 보니 슬슬 개입해야 할 것 같았다.

“부용삭은 이제 말을 잘 듣습니까?”

“아, 부용삭…. 뭐, 그럭저럭.”

저번, 수귀 때 오지게도 말을 안 듣던 도화의 부용삭은 무구부에서 정밀 검사를 했으나 아무 하자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부용삭은 문제가 없으니 사용자인 도화가 문제란 소리였다. 결국, 도화는 매일 퇴근 후에 몇 시간씩 부용삭 다루는 연습을 해야 했다.

“한 몸이라고 생각하면 다루기 쉽습니다.”

말이야 쉽지. 내가 언제부터 저런 걸 몸에 달고 다녔다고.

도화는 손목에 감아 둔 부용삭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정 말을 안 들으면 부용삭 말고 다른 방법을 써도 됩니다.”

“다른 방법?”

“부용삭처럼 원귀나 악귀를 포박하거나 위협을 가할 수 있다면 뭐든 괜찮아요.”

“음…….”

도화는 슬쩍 현천을 쳐다보았다. 도화의 시선을 느낀 현천은 펄쩍 뛰며 말했다.

[내가 저 지렁이처럼 흐물흐물 늘어날 것 같냐?]

크기를 자유자재로 바꾸니 채찍처럼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저 반응을 보니 불가능해 보인다. 결국, 도화는 부용삭을 쓰기로 했다. 묵범처럼 능숙하게는 못 하더라도 수귀 때보다는 훨씬 나아진 상태니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저 녀석도 있으니까.’

도화는 자연스럽게 묵범이 있어 든든하단 생각을 했다. 뒤늦게 아차 했지만, 임무 중 발생하는 돌발 상황을 항상 처리하는 사람은 묵범이었기에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자, 들어갑시다.”

도화가 고개를 끄덕이자 묵범이 발로 문을 걷어찼다. 썩은 나무 문은 묵범의 발에 산으로 쪼개지며 안으로 날아갔다. 방에 쌓여 있던 먼지가 난잡하게 흩날렸다.

[누, 누구!!!?]

방구석에서 강민진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들렸다. 예상보다 목소리가 멀쩡했지만, 박태선을 생각하면 연기일 수도 있었다.

[방심하지 마.]

현천이 타이밍 좋게 도화에게 조언했다. 안 그래도 방심하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있던 도화는 뜨끔했다.

“그나저나… 정말 냄새가 지독하군요.”

묵범이 손가락으로 코를 쥐고 말했다. 도화는 아예 숨을 멈추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악취가 옅어지면 숨을 쉴 생각이었다. 둘의 후각을 고문하는 악취 속에서 강민진은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문을 부순 범인을 찾았다. 하지만, 흑립을 쓴 도화와 묵범을 찾아낼 순 없었다.

[누구지? 누구세요?]

배우라서 그런가. 강민진의 떨리는 목소리는 정말 놀라서 겁먹은 것처럼 들렸다. 도화는 저도 모르게 강민진에게 작금의 상황을 만든 사연을 들어 보자고 할 뻔했다. 아니, 묵범이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면 이유를 물었을 것이다.

“우선 포박부터 하겠습니다.”

묵범이 부용삭으로 허둥대는 강민진을 묶었다. 난데없이 꽁꽁 묶인 강민진은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정신 차린 도화가 재빨리 몸으로 그녀를 막았다.

[꺄악!]

강민진은 보이지 않는 것에 부딪혀 뒤로 튕겨 나갔다. 상체가 묶인 상태로 잘만 돌아다니는 것이 불안해진 도화는 자신의 부용삭으로 쓰러진 강민진의 다리를 묶었다. 한차례 난장판이 끝나고, 잠시 숨을 돌릴…….

“안 되겠습니다. 민원이 들어가더라도 환기부터 하죠.”

“그러자.”

묵범은 악취를 참지 못하고 바람을 일으켜서 방 안의 공기를 밖으로 내보냈다. 악취가 밀려난 곳에 신선한 공기가 들어차자 묵범과 도화는 본능적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래 봤자 미세먼지로 텁텁한 공기였지만, 강민진의 시신에서 나는 시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귀… 귀신인가?]

강민진은 바닥에 쓰러진 상태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분명 이 안에 사람이 있는 건 확실한데 눈에 보이지 않았다. 혹시 죽으면 시력도 나빠지나?

하지만, 어둑한 방 안은 잘만 보였다. 허공에 떠다니는 먼지까지 선명하게 보이는데 정작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누,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저 좀 살려 주세요!]

강민진의 외침에 허공에서 하하! 하고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니 천장에 닿을락 말락 한 남자의 머리가 보였다.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이미 죽었는데 어찌 살려 줍니까?”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걸친 묵범이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강민진은 상대가 누구인지 물어볼 생각은 못 하고 묵범의 얼굴에 정신이 팔렸다. 본인이 입을 벌리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다 턱 빠지겠습니다.”

묵범은 강민진이 정신 차리도록 세게 손뼉을 쳤다. 짝! 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이 돌아온 강민진은 몸을 꿈틀대며 묵범에게서 멀어지려고 애를 썼다. 묵범과 도화의 손에 들린 흑립이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저 흑립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저 본능적으로 눈앞의 두 남자가 자신을 잡으러 온 저승차사란 것을 알렸다. 잡히면 죽는다. 이미 죽은 몸이지만, 저들에게 잡히면 영혼까지 죽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사로잡혀 당장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도망치려고 몸을 뒤틀수록 붉은색 끈이 살을 파고들 것처럼 옥죄어 왔다. 마치 발버둥 치면 칠수록 깊게 빠져드는 개미지옥 같았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그녀는 눈알을 굴려 밖으로 도망칠 틈을 물색했다. 귀신이 되면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사물을 통과할 줄 알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강민진은 자신이 죽은 이 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유를 찾고, 해결하고 싶었으나 죽은 적도, 귀신이 된 적도 처음이라 무얼 어찌해야 할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묵범은 강민진이 도망갈 틈을 찾는다는 걸 알면서도 느긋하게 아까 품에 도로 넣어 두었던 두루마리를 꺼내 펼쳤다. 어차피 나갈 틈은 없다. 방 안의 악취를 밖으로 내보내면서 원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결계를 펼쳤으니까.

“이름 강민진. 성별 여. 1989년 1월 23일생. 20ㅇㅇ년 8월 23일 월. PM 9시 32분 19초 음독으로 자살. 맞습니까?”

[그, 그걸 어떻게…….]

강민진은 어떻게 자신의 죽음을 그리 상세히 아는지 물었다. 눈앞의 남자가 저승차사인 것까진 인지했지만, 죽어 본 게 처음이니 당연했다.

“저승차사니 알지요. 우선 데려가기 전에 한 가지 확인할 게 있습니다.”

[무엇을…….]

“저기, 죽어 있는 오창석. 당신이 죽였습니까?”

묵범이 강민진의 썩어 문드러진 시신 옆에 누워 있는 오창석의 시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고개를 돌려 묵범의 손가락을 따라가 보니 아직 썩진 않았지만, 딱 봐도 시신으로 보이는 오창석이 보였다.

[…….]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빨갛게 물들었던 것 같다. 아직 멀쩡한 오창석의 시신을 보니 바로 옆에 있는 썩어 문드러진 자신의 시신이 떠올라서 그랬다.

[도화.저 여자-.]

[알아. 눈 확인했어.]

도화는 현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받아치며 앞으로 나섰다. 멀쩡해 보이던 강민진의 눈이 순간적으로 붉게 물드는 것을 확인했다.

‘박태선보다 상태가 나은 건지 심각한 건지 모르겠어.’

박태선의 눈은 내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에 비해 강민진의 눈은 방금 순간적으로 붉어진 것 외에는 평범한 망자 같았다. 물론, 음독 자살을 한 탓에 안색이 굉장히 좋진 않았지만.

[저… 지옥에 가는 건가요?]

“저주를 한 것으로도 모자라 사람까지 죽였으니 그러겠지요.”

[저주요? 제가요? 누구를?]

강민진이 눈알만 굴려 오창석의 시신을 쳐다봤다. 오창석 때문에 자신의 사업이며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져 버렸다. 만약 죽기 전 피를 토하듯 허공에 퍼부었던 원망이 저주라면, 자신이 오창석을 저주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 가지만 물어봅시다. 대답을 잘한다면 당신의 재판을 잘 봐 달라는 이야긴 상부에 해 줄 수 있어요.”

묵범이 쓰러져 있는 강민진에게 친절히 웃으며 제안했다.

[무엇이 궁금하신…데요?]

제 죄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는 말에 잔뜩 겁먹고 경계하던 강민진의 눈이 반짝였다.

“오창석이 당신한테 뭔가 선물한 게 있지 않습니까?”

[선물…. 툭하면 이것저것 사 와서 무얼 말하는지 모르겠어요.]

자신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온갖 비싼 것을 선물이랍시고 끊임없이 가져왔었다. 그땐 몰랐는데. 죽을 때가 다 되어서 생각해 보니 제게 투자금을 뜯어내는 게 목적이었음을 깨달았다.

“두꺼비나 개구리 같은 것 받지 않았습니까?”

[노란 두꺼비가 그려진 그림을 받긴 했어요. 뭐라더라. 이걸 집에 두면 재복을 불러온다면서 줬었는데.]

강민진의 대답에 묵범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그 그림.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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