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도화가 더는 입을 열지 않자 묵범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 강민진을 잡으러 어디로 가는지 물어볼 법도 한데. 도화는 아예 고개를 돌려서 창밖만 바라보았다.
[야, 들었냐? 네가 좋대.]
현천이 껄껄 웃으며 도화에게 말을 걸었다. 도화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슬쩍 손을 움직여 현천에게 딱밤을 먹였다.
[으악!]
현천이 호들갑을 떨며 바르르 떨었다. 손가락이 얼얼할 정도로 때렸으니 꽤나 아플 것이다. 도화의 귀에는 현천이 끙끙대는 소리가 시끄러웠지만, 둘만 나누는 대화였기에 차 안은 고요하기만 했다.
묵범의 차는 수락산을 빠져나와 동부간선도로로 진입했다. 얼마 전 가을비가 솔찬히 내린 덕에 창밖으로 보이는 중량천은 꽤 불어나 있었다. 마음을 다스리며 흐르는 물을 보고 있는데 묵범이 적막을 깨고 입을 열었다.
“여튼… 이런 부적은 다시는 안 쓰는 게 좋겠습니다.”
“좋….”
“?”
“아니. 아니야.”
묵범은 도화가 위험한 부적을 쓰는 것이 걱정되어 한 말이었지만, 도화의 귀에는 ‘좋겠습니다.’란 말만 크게 메아리치듯 들렸다. 손으로 귀를 마구 문질렀지만, 고막에 찰싹 달라붙은 것처럼 도통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게 다 저 자식이 이상한 소리를 해서 그런 거야.’
도화는 묵범을 찔러 버릴 것처럼 노려보았다. 묵범은 그런 도화의 눈빛을 자신이 잔소리를 해서 그런 것이라고 오해하고 부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걱정되어서 하는 말입니다. 동토라는 게 워낙 넓은 범위의 탈인데, 그걸 걸리게 하는 부적을 쓰는 건 홍도화 씨의 몸에도 무리가 크게 가는 일 아닙니까? 당신이 만든 역동토부에 대해 자세하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쓰지 마세요. 하늘이 내려야 하는 벌에 괜한 개입을 했다가 같이 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아, 그 정도로 심각한 부적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그러면 어느 정도의 동토입니까?”
“금속을 조심히 다루지 않으면 좀 다치는 정도로만 썼어.”
“흐음.”
금속이라는 말에 묵범은 침음을 흘렸다. 금속의 범주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잡아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였다. 압정이나 옷핀도 금속이고 자동차도 금속이다. 젓가락이나 포크, 과도도 금속이고 사람을 충분히 위협하다 못해 목숨도 쉽게 빼앗을 수 있는 무기이기도 했다.
도화는 자신의 말을 들은 묵범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자,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위험한 사고는 벌어지지 않아. 내가 그럴 능력이 있으면 여기서 이러고 있었겠냐. 그냥 한 번 정도 참치캔 따다 손 베이는 정도 수준이야. 그리고 재판 받고 벌 받는 동안에 부적 효능이 먼저 사라질걸?”
“그러면 다행이군요.”
사람을 셋이나 죽인 놈에게 저 정도 벌은 애교 수준이었다. 사실, 원귀가 된 뒤로 셋을 죽인 것 말고도 살아생전 박태선이 죽인 사람의 수는 열 손가락 모자랄 지경이었다.
질 나쁜 건달로 살던 놈이 금와의 재운을 받아 번듯한 회사를 차렸다 해서 개과천선할 리는 없었다. 오히려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속담을 몸소 실천한 인간이었다. 음지에서는 폭력을, 양지에서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사기, 협박을 저지르며 제 앞길을 막는 모든 것을 처리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 여럿 죽어 나가는 것은 필수불가결이라고 여기는 전형적인 소시오패스였다.
“아마 저승시왕의 재판에 들어가도 그 정도의 역동토부는 티도 나지 않을 겁니다. 워낙 여러 사람에게서 원망을 많이 산 놈이라 어디서 저주라도 받았겠거나 하겠지요.”
묵범의 말에 도화는 그러냐고 대꾸하고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화가 단절되고 다시 적막이 감돌았다. 어느새 중량천의 폭이 많이 넓어진 게 확연히 보였다. 한강이 멀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제가 차사가 된 뒤로 한강은 아주 질리게 오는 것 같어.]
[그러게.]
애초에 출근부터 한강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어 있으니 당연했다. 전에는 먹고 사는 게 힘들어서 한강 근처에도 갈 일이 없었는데 요즘은 아주 질리도록 보고 있다. 집에서도 보고, 출근길에도 보고, 퇴근하면서도 보고. 이제는 외근하러 왔는데도 본다.
“강민진은 지금 어디에 있는데.”
“시신이 용산에 있어서 그곳으로 먼저 갑니다.”
“용산?”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홀로 죽었다고 하지 않았었나. 도화는 강민진의 시신이 있는 장소로 인적이 드물다 못해 끊어진 깊은 산속이나 강, 바다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용산이라니.
묵범은 도화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웃으며 부연 설명을 했다.
“도심지에도 폐가는 많습니다. 용산도 예외는 아니고요.”
“그런데 시신을 찾을 게 아니라 원귀가 된 강민진을 찾아야 하는 거 아냐?”
“아, 그게 말입니다.”
“?”
핸들을 꺾어 주택가로 들어선 묵범은 손가락으로 어느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강민진이 죽으면서 아주 강력하게 금섬을 저주했거든요.”
“금섬을?”
“예. 대상을 정하고 저주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모든 원망이 금섬을 향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모든 일은 금섬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요. 본인의 능력을 넘어서는 저주에 짓눌려서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창석은? 금섬이 원인이긴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오창석 때문에 인생이 망한 거잖아. 저주는 금섬이 아니라 오창석에게 가야 하는 거 아냐?”
“오창석은 아직 죽지 않았으니 우리 소관이 아닙니다. 죽어서 원귀가 되면 모를까.”
대답을 마친 묵범은 아까 가리킨 폐가 옆에 차를 주차했다. 그리고 능숙하게 ‘공무집행 중’이란 글이 써진 종이를 앞 유리에 붙여놓았다. 이렇게 해 두면 주차 문제로 속 썩이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나더라도 손가락을 튕겨 기억소거술을 쓰면 되었다.
“내립시다.”
흑립을 고쳐 쓰고 차에서 내린 도화는 조심성 없이 성큼성큼 폐가로 향하는 묵범의 뒤를 따랐다. 발소리 좀 죽이라고 말하려던 도화는 둘 다 흑립을 썼다는 사실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아직 저승차사란 직업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주택가 한가운데에 떡하니 자리 잡은 폐가는 흉물스럽기 그지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폐가 앞을 지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훤한 대낮에도 을씨년스럽고 악취도 진동을 하니 귀찮고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폐가가 있는 골목을 피해서 다니는 듯했다.
여름이 거의 끝나 간다지만, 낮은 여전히 후덥지근했다. 습기에 썩은 나무, 짐승 털, 그리고 누군가 몰래 내다 버린 쓰레기에서 나는 냄새가 한데 섞여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도 불쾌 지수가 마구 치솟았다.
[구린내가 진동을 하네. 아이구, 내 코야.]
현천이 코를 막아 맹맹한 소리를 냈다. 있지도 않은 코로 엄살을 떤다기엔 도화도 손으로 코를 막을 정도로 악취가 진동했다. 그래도 꾹 참고 다 쓰러져 가는 철 대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밖의 악취는 장난이었다는 듯이 진득한 악취가 훅! 달려들었다.
“이거 민원이 장난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잘 참는 듯했던 묵범도 결국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바람을 일으켜 내부 환기를 시키자니 밖으로 이 악취가 다 빠지면 민원이 빗발칠 게 뻔했다. 강민진의 시신은 발견이 되어야 하지만, 우선 일을 해결하고 난 뒤에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묵범은 소매로 코와 입을 가리고 폐가 내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바닥에 깨진 유리와 돌멩이가 버적버적 소리를 내며 밟혔다. 흑립을 쓰고 있어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인기척에 놀란 원귀가 난동을 부렸을지도 모른다. 참으로 신기한 물건이라 생각하며 도화는 강민진을 찾았다.
밖에서 봤을 때는 다 무너져 가는 외관 때문에 비좁을 것 같았는데. 직접 둘러본 내부는 꽤 넓었다. 강민진의 시신은 4개의 방 중 가장 작은 방에 있었다. 문이 완전히 망가진 3개의 방과 달리 강민진의 시신이 있는 방은 비교적 멀쩡한 문을 달고 있었다. 그래 봤자 다 썩은 나무 문이라 손잡이는 뽑혀 사라진 상태였다.
옆에서 따라오며 코가 썩는 것 같다고 쫑알대던 현천이 손잡이가 있던 구멍으로 날아가 내부를 살폈다.
“강민진. 있어?”
[어. 있어. 그런데 뭔가 하나 더 있네?]
“음? 뭐가 있다는 겁니까?”
묵범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분명 이곳에서 죽은 망자는 강민진 한 명뿐이라고 명부에 적혀 있었다.
폐가를 탐험하러 온 사람은 아닐 테고. 노숙자? 하지만, 여기는 노숙자도 사양할 만큼 악취가 심한 곳이다. 그리고 부패가 많이 진행된 시신을 보고도 가만히 있을 리도 없고.
[인간 시체.]
“강민진 말고 시신이 더 있다… 이 말인가?”
[그래. 죽은 지 얼마 안 된 인간 같은데?]
현천의 말에 당황한 묵범이 휴대폰을 꺼내 정보부로 전화를 걸었다. 여기서 죽은 인간은 강민진 하나임을 분명 확인하고 왔는데 시신이 하나 더 있다니.
짧은 신호음이 끝나고 정보부의 누구인지 모를 차사가 묵범의 전화를 받았다.
-언제나 친절하게 망자를 모시는 차사국 정보부입니다. 부서와 성명. 그리고 용건을 말씀해 주세요.
“추혼부 묵범입니다.”
-네네. 추혼부 묵ㅂ… 네…? 누구시라고요?
매너리즘에 빠진 목소리가 살짝 삐끗하더니 되려 묵범이 누구인지 되물었다. 묵범이 차사국으로 내려온 이후로 정보부에 직접 전화를 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니 놀랄 만도 했다.
“추혼부 묵범입니다. 지금 당장 용산동 ㅇㅇ가 21-33에 망자 확인 좀 빠르게 부탁드립니다.”
-자, 잠시만요. 용산이면…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 아, 폐가 말씀하시는 거죠?
“네.”
묵범이 통화를 하는 동안 도화는 현천을 밀어내고 손잡이 구멍으로 방 내부를 살폈다. 검은 연기처럼 일렁이는 원귀는 강민진일 것이다. 그리고 현천의 말대로 강민진의 시신 외에 하나 더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옷 밖으로 드러난 피부를 보니 정말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였다. 어쩌면 도화와 묵범이 도착하기 직전에 죽었을지도.
‘남자? 노숙자는 아닌 것 같은데…. 왜 강민진 옆에 쓰러져 있는 거지?’
죽은 남자의 시신은 노숙자와는 거리가 먼 옷을 입고 있었다. 게다가 금반지며 목걸이며, 번쩍거리는 액세서리가 여기저기 보였다.
-어라? 이게 언제 추가됐지?
“무슨 일입니까?”
-그게, 그러니까. 오늘 거기서 죽을 사람은 원래 없었는데 갑자기 명단이 추가된 게 확인되었습니다. 묵범 수석님.
“혹시 망자 이름이 오창석. 맞습니까?”
-헉. 어떻게 아셨어요? 네. 맞습니다. 이름 오창석. 성별 남. 1989년 3월 12일생. 20ㅇㅇ년 9월 28일 화. AM 11시 45분 23초 사망.
“사망 원인은?”
묵범이 사망 원인을 묻자 정보부 차사가 흐읍- 하고 숨을 급히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재차 묻자 그제야 당황한 목소리로 사망 원인을 말했다.
-원귀에 의한 교살…….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