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도화가 복귀하길 기다리던 사람들은 도화가 블로그에 새 글을 올리자마자 빠르게 의뢰 메일을 보내왔다. 물론, 반은 대폭 상승한 가격에 대한 항의였고 반은 가격은 상관없으니 의뢰를 받아 달라는 메일이었다.
항의 메일은 답장 없이 휴지통으로 보내고 의뢰 메일은 따로 정리해 두었다.
메일은 늦은 밤이 되어도 쉬지 않고 날아왔다. 결국, 도화는 제대로 쉬지 못하고 메일 정리만 하다 하루를 보냈다.
“하루 편히 쉬라고 빼 줬는데 어째 더 피곤해 보이는 얼굴입니다?”
도화를 데리러 온 묵범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도화는 잠을 제대로 못 잔 사람처럼 보였다.
“아, 오셨어요?”
나갈 채비를 한 담마가 도화 옆에 서서 묵범을 올려다보았다.
“너희 삼촌, 어제 뭐 했니?”
“삼촌… 어제 서재에서 굉장히 바쁘시던데. 잘 모르겠어요.”
“서재?”
묵범이 고개를 갸웃하며 도화를 쳐다봤다. 서재에서 책을 읽었다고 저렇게 피곤해할 린 없고. 밤새 운동이라도 했나?
하지만, 이틀이나 등산을 해도 멀쩡해던 홍도화다. 저건 육체적 피로가 아닌 정신적 피로였다. 예를 들면 퇴근하지 못하고 새벽까지 서류 업무를 봤다거나 하는.
“개인적인 일이니까 알려고 하지 마.”
“흠. 알겠습니다.”
도화가 선을 긋자 묵범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섰다.
뭐지? 개인적이라고 하면 무슨 일인지 알려 달라고 질척댈 줄 알았는데. 의외의 모습이었다.
묵범의 차가 성수대교로 진입할 때까지 차 안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뒤에 앉은 담마가 작게 부스럭대는 소리를 내는 것 말고는 짧은 대화조차 오가지 않았다. 평소에는 차사국에 도착할 때까지 묵범이 치근대고 도화가 화를 내는 대화가 반복됐었는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묵범이 너무 조용했다.
‘무슨 일이 있나?’
안 그러던 놈이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괜히 불안하다. 무슨 심각한 문제라도 터진 걸까.
먼저 묵범에게 말을 걸어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던 도화는 무슨 말을 해야 자연스러울지 고민했다. 그러다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하지?’란 생각에 다다라 인상을 썼을 때 즈음.
“산불은 모두 꺼졌으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묵범이 먼저 말을 걸었다.
뭐라도 말을 붙여 볼까 했던 도화는 묵범이 먼저 말을 걸어오자 내심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빨리 껐으면 좋았을 텐데.”
“물론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하늘도 골치 아팠던 모양이더군요.”
“뭐 때문에? 우선 비부터 뿌렸으면 피해는 줄일 수 있었어.”
다시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늘도 무심하지, 란 말이 있을 정도로 신이나 신선들이 워낙 하계와 관련된 일에는 뒷전이란 건 익히 겪어 알고는 있다. 하지만, 이번 일은 피해가 커도 너무 컸다.
“범인이 누구인지 특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하늘이 문제 해결을 위해 움직인다는 것을 들킬 순 없었다는군요.”
“누가 그래? 천계에 다녀오기라도 한 거야?”
도화의 질문에 묵범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강림 도령이 다녀왔습니다.”
“강림 도령이?”
“네. 직접 올라가서 우리가 가져온 하늘개의 털을 보여 주니 상황이 심각한 것을 깨달았는지 우선 비부터 뿌렸다는군요.”
“하늘개의 털을 가져가지 않았다면 불은 끄지 않고 범인이 나타나기만 기다렸을 거란 소리네?”
“뭐… 그렇죠.”
같은 신선이라지만, 묵범도 이건 쉴드 치지 못하겠는지 난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선 도착했으니 내리죠.”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차사국 주차장에 도착했다. 담마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강림 도령이 있는 국장실로 향했고 도화와 묵범은 추혼부로 이동했다.
“하늘개 사건은 이제 잊으세요. 강림 도령 손에 넘어갔으니 위에서 해결할 겁니다.”
잊으란 말에 도화는 까맣게 타 죽은 산짐승이 생각났다. 고통에 몸부림치다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고 입을 벌린 채 죽은 처참한 모습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렇게 신경 쓰이면 나중에 하루 날 잡아서 위령제라도 올리든가.]
산에 다녀온 이후, 도화의 마음이 내내 불편했던 걸 알고 있던 현천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제안했다.
[인간들이야 인간이 죽어야 신경 쓰지. 짐승이 죽은 것에 신경 쓰겠어? 기르던 동물도 아닌데.]
[그래야겠어.]
[네가 위령제를 지내 주면 맺힌 것 없이 깨끗하게 저승으로 갈 거다. 걱정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은 너인 것 같으니까.]
현천의 말에 도화는 말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걷던 묵범이 도화의 미세한 움직임을 눈치챘지만, 뒤를 돌아보진 않았다.
‘겉보기와 다르게 참 생각이 많단 말이야.’
묵범도 타 죽은 짐승을 보고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전직 산신이었는데 도화보다 더 속이 뒤집어졌으면 뒤집어졌지, 멀쩡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티를 내지 않은 것은 이미 죽은 혼을 끌어다 다시 되살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렇게 죄 없이 죽은 혼은 다음 생에 지금보다 훨씬 좋은 생을 점지받기에 그걸 위안 삼았던 덕분이기도 했다.
이 정도는 홍도화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걱정하고 화를 낸다는 것은 그가 단단한 겉모습과 달리 속이 매우 말랑하다는 증거였다.
‘귀엽긴 한데. 적이 알면 안 될 약점이야.’
저걸 어찌 단련시키지?
슬쩍 걸음을 늦춰 도화 옆에 나란히 선 묵범은 한눈에 봐도 단단한 도화의 어깨와 팔뚝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신체는 수련으로 단련할 수 있으나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듣자 하니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었으면서도 속이 저렇게 말랑거리는 건 타고난 천성이 저렇다는 것. 아마 바뀌려면 살아온 시간의 몇 배는 지나야 할 것이다.
추혼부에 들어서자 아무도 없는 텅 빈 내부가 둘을 반겼다. 다른 부서보다 외근 비율이 훨씬 높은 건 알고 있지만, 매번 부서에 올 때마다 세 명 이상 있는 꼴을 못 봤다. 오늘처럼 아예 아무도 없는 경우도 허다했다.
오히려 도화와 묵범이 매일 부서에 출근 도장을 찍는 걸 이상한 눈으로 보기도 했다. 귀찮게 뭐 하러 차사국까지 와서 출근 도장을 찍냐는 것이었다.
“오늘도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해 볼까요?”
라고 말하며 그는 가방을 자리에 두고 바로 부서 밖으로 나갔다. 도화는 그가 나가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의자에 편히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회식 자리에서 소개를 받은 차사들의 자리지만,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적이 별로 없으니 어느 책상이 누구의 자리인지 매치가 되지 않는다. 얼굴마저 가물거리는 차사가 있을 지경이다.
오늘은 어디로 나가려나.
하늘개 일은 위에서 알아서 할 테니 새로운 임무가 주어질 것이다. 이번에는 무슨 원귀를 잡으러 가야 하나. 부디 먼 곳은 아니길 바라며 의자에 앉아 있다 보니 볼일을 마친 묵범이 돌아왔다.
돌아온 묵범의 양손에는 차사국 내에 있는 카페 브랜드 로고가 박힌 테이크 아웃 컵이 들려있었다. 그걸 본 도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도화 씨 것도 사 왔습니다.”
“안 먹어.”
도화는 묵범이 컵을 제게 내밀기 전에 먼저 거절했다. 예민한 후각이 묵범에게서 나는 달콤한 냄새를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시럽 추가를 얼마나 많이 했으면 사람한테서 단내가 날까.
“아, 도화 씨 거는 시럽 추가 안 한 커피이니 걱정 마세요.”
“…….”
도화는 의심쩍은 시선으로 묵범을 쳐다보다 마지못해 내민 컵을 받았다.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의심을 지웠다.
“오늘은 간단하게 두꺼비 한 마리 잡으러 갑시다.”
“…두꺼비?”
두꺼비란 말에 도화의 눈썹이 위로 휙 올라갔다. 악귀나 원귀를 잡는 일을 하러 들어온 추혼부인데 제대로 잡은 귀신은 몇 없고 툭하면 이상한 일만 맡았다.
‘설마 이런 게 사내 따돌림이라는 건가…?’
자신의 과거 행적을 떠올려보니 충분히 따돌림 당할 만했다. 어쩌면 추혼부 차사들이 부서에 오지 않는 이유도 자신과 마주치기 싫어서 일지도 모른단 생각까지 미치자 도화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다행히도 이어진 묵범의 임무 설명에 도화의 걱정은 해소되었다.
“그냥 두꺼비가 아니라 금두꺼비입니다.”
“금두꺼비라면… 금섬(金蟾)?”
“역시. 바로 이해했군요.”
“당연한 거 아냐? 저승차사가 할 일 없이 그냥 두꺼비나 잡으러 다닐 리 없잖아.”
도화는 속으로 걱정했던 것을 들킬세라 일부러 강하게 대답했다. 묵범은 그런 도화의 모습을 보고 소리 없이 웃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눈에 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괜히 고개를 돌리고 말한 것 하며, 억양도 묘하게 어색한 것이 속으로 ‘날 골탕 먹이려고 두꺼비나 잡으러 가자는 건가?’라고 생각했을 게 뻔했다.
“금섬은 왜? 원귀도 아니고 악귀도 아니잖아.”
[그러게. 귀물이긴 하나 막대한 재물을 가져다주잖나.]
현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도화의 얼굴 위로 부럽다는 감정이 스쳤다. 전설의 금두꺼비는 아주 옛날부터 인간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세상 어디에 굴러들어오는 재물을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백이면 백 금두꺼비 금섬이 자신의 집으로 뛰어 들어오길 바랐다. 오죽하면 황금으로 크고 작은 동상을 만들고 도장에도 새기며 그림으로도 그렸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이면 웬만한 일은 다 해결되니 명실상부 물질의 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에 넘어가 저승차사 일을 하는 중인 도화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원귀도 아니고 악귀도 아니지만, 원귀나 악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 귀물이라 그렇습니다.”
“원귀나 악귀를 만들 수 있다고? 금섬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나?”
그저 돈만 불려 주는데 그게 어떻게 그런 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 도화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현천도 도화와 마찬가지인지 주머니에서 빠져나와 허공에서 빙그르르 돌았다.
“금섬은 홍도화 씨가 아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귀물입니다.”
“음… 확실히 돈이 많으면 주변에 노리는 사람이 많을 법하지.”
“그런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위험한 것이 금섬의 변덕이거든요.”
“변덕?”
도화의 반문에 묵범이 고개를 끄덕이며 음료를 쪽 빨았다. 어느새 묵범의 컵은 얼음만 남기고 모두 그의 위장으로 사라진 상태였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도 막대한 재물을 주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도 줍니다.”
“?”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원리라면 모를까. 도화는 여전히 이해 가지 않는 눈치다.
“금섬의 재운은 하늘에서도 손꼽을 만큼 매우 강력한 운입니다. 이런 강력한 운이 갑자기 평범한 인간에게 쏟아진다? 과연 그 인간은 금섬의 재운을 이겨 낼 수 있을까요?”
“그건…….”
묵범의 말을 듣고 나니 금섬의 재운이 절대 호의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재운을 이겨 내면 모를까. 이겨 내지 못하면 재운이 아니라 재액이나 다름없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