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묵범의 차는 차사국이 아닌 성수동으로 향했다. 국장에게 보고하는 것은 저 혼자 해도 충분하니 집에 가서 푹 쉬라며 도화를 내려 주고는 묵범은 혼자 차사국으로 향했다.
“길이 막히네.”
운전대를 손가락으로 탁탁 두드리던 묵범은 조수석 의자에 올려 둔 비닐 팩을 쳐다보았다. 불그스름한 털이 가득 들어 있는 비닐 팩은 이번 임무의 증거물이다.
‘화귀(火鬼)의 짓이면 좋으련만.’
하늘개의 짓이 아닌 것은 다행인 일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하늘개가 털을 뜯겨 도망칠 정도의 힘을 가진 상대라는 의미다.
하늘개가 특별한 능력이 없다 뿐이지 신체 능력은 뛰어나다. 두발짐승보다 네발짐승의 피지컬이 뛰어난 것은 하늘이나 땅이나 다를바 없다. 그런 하늘개가 원귀나 원혼에게 당할 확률은 희박했다.
‘대체 범인이 누굴까.’
고민하며 성수대교로 들어선 묵범은 대교의 중앙에 가까워지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추혼부 수석 차사 묵범. 차사국 출입을 청합니다.’
그러자 달리는 묵범의 차 앞에 거대한 천하대장군이 불쑥 솟아올랐다. 어찌나 거대한지 크게 벌린 입은 채 두 대 정도는 거뜬히 삼킬 정도였다.
성수대교에 나타난 천하대장군은 묵범의 눈에만 보이는지, 대교를 오가는 차들은 아무런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묵범은 천하대장군의 벌린 입을 향해 차를 몰았다. 벌건 대낮이었던 주변이 순식간에 깊은 동굴로 들어간 것처럼 어두컴컴해졌다.
묵범의 차가 입 안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천하대장군은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입을 닫았다. 꽉 닫힌 하얀 이는 묵범 이외의 자는 절대 들어올 수 없다고 경고하는 것처럼 빈틈 하나 보이지 않았다.
차사국은 저승과 이승 사이에 있다.
차사국의 통로인 천하대장군은 차사국에 속하거나 저승의 주인 대별왕의 허락을 받은 자만 드나들 수 있다. 원귀나 악귀는 천하대장군을 보지도 못할뿐더러 강대한 기운에 쓸려 소멸해 버린다. 귀물은 별 영향은 받지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똑같다.
묵범은 이승과 차사국을 잇는 천하대장군의 입 속 통로를 달리며 대별왕의 취향은 참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산월관이나 백화대 병원처럼 특정 장소를 지정하고 그곳에 도착해야만 입구가 열리게 하면 될 것을.
꼭 한강을 지나는 대교 위에서만 천하대장군이 소환되게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차사국 사자들은 대부분 자차로 출퇴근한다. 차가 없는 차사들은 차사국 셔틀버스를 이용한다.
만약, 차가 없는 사람이 셔틀버스마저 놓치는 지각을 하게 된다면 대교를 미친 듯이 뛰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흑립으로 모습을 감춰서 망정이지, 흑립마저 잊으면 그야말로 대교를 질주하는 미친놈으로 보일 게 분명했다.
천하대장군으로 들어온 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어느새 차사국에 도착했다. 통로의 끝은 차사국의 광활한 주차장. 대부분의 차사들이 차로 출퇴근을 하니 주차장이 만주벌판 수준이다.
차에서 내린 묵범은 국장실로 직행했다. 그는 1초라도 빨리 보고를 해치우고 집에 가서 쉬고 싶다. 집에 가는 길에 새로 생긴 쿠키 가게에 들러 종류별로 싹 쓸어 담을 계획을 세우며 국장실 문을 열었다.
“뭐야. 이젠 노크도 없이 막 들어오겠다?”
술을 홀짝이며 서류에 성의 없이 도장을 쾅쾅 찍고 있던 강림 도령이 묵범을 보고 혀를 쳤다.
“이거나 받으시죠.”
“?”
묵범은 하늘개의 털이 들어 있는 지퍼백을 강림 도령에게 던졌다.
“이게 뭔데?”
“증거물입니다.”
“아, 산불 현장에 다녀온 거? 그거 벌써 다 돈 거야? 오늘 보니까 몇 군데 더 불났던데?”
“오늘 추가로 불이 난 산은 홍선의 불과 상관이 없습니다. 대부분 진화되었고요.”
“그래?”
강림 도령은 지퍼백을 열어 불그스름한 털을 책상에 탈탈 털었다. 딱 봐도 거칠게 뭉친 털이 서류 위로 후두둑 떨어졌다.
“윽. 술맛 떨어지게, 이게 무슨 냄새야?”
털에 찌든 불내에 강림 도령은 손으로 코를 막고 인상을 썼다. 그는 아직 술이 남아 있는 술잔을 들고 벌떡 일어나더니 책상과 최대한 멀리 떨어졌다. 그리고 남은 술을 홀랑 마셨다.
“범인을 잡든가 범인의 증거라도 확보하랬더니…. 산짐승의 털로 날 속일 수 있을 것 같냐? 이 고얀 놈!”
강림 도령이 분에 차서 묵범을 향해 술잔을 던졌다. 당연히 그 술잔을 순순히 맞아 줄 묵범이 아니었다. 물론, 받아 주지도 않았다. 묵범은 살짝 몸을 틀어 날아온 술잔을 피했다.
파삭-!
벽에 부딪힌 술잔은 산산조각 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내 술잔!”
강림 도령은 완전히 박살 난 술잔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소리쳤다.
“본인이 던져 놓고 안타까워하는 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그야 네놈이 받을 줄 알았지!”
“제가 왜요?”
묵범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잔해를 피해 강림 도령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슬쩍 강림 도령의 의자를 뺏어 앉으려고 손을 뻗었다.
“어딜.”
묵범의 손보다 강림 도령의 손이 더 빨랐다. 그는 자신의 의자를 책상 안으로 쏙 밀어 넣고는 턱으로 술 창고를 가리켰다. 집무실 의자는 하나이니 안에서 편히 이야기하자는 의미였다.
먼저 술 창고로 들어가던 묵범은 강림 도령이 빈손으로 따라 들어오려고 하자 턱짓으로 책상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증거물은 안 챙기십니까?”
“응? 저거? 그냥 짐승 털 아니야?”
냄새나서 만지기 싫다는 강림 도령의 반응에 묵범은 ‘그러시든지요.’라고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
자신이 챙기지 않으면 묵범이 챙길 줄 알고 빈손으로 술 창고에 들어가려 했던 강림 도령은 묵범의 무덤덤한 반응에 뭔가 자신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저게 뭔데?”
“개털입니다.”
“개털……?”
강림 도령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까 책상에 털을 쏟으며 만지작댔던 손을 쳐다보던 그는 묵범에게 삿대질을 하며 따졌다.
“증거 못 찾을 거 같아서 개털을 뽑아 온 거냐? 어? 아무리 천지왕이 아낀다지만, 너무 심한 거 아냐?”
“그냥 개털이 아닙니다.”
“야, 이 호랑이 새끼야. 이게 그냥 개털이 아니면 특별한 개털이라도 된다는 거야?”
“하늘개의 털입니다.”
“개털은 그냥 개털일 뿐…… 뭐?”
묵범에게 짜증을 쏟던 강림 도령은 하늘개라는 묵범의 말에 하던 말을 끝맺지 못하고 반문했다.
“그 털. 하늘개의 털입니다.”
“하, 하늘개?”
잠시 얼빠진 상태로 말까지 더듬던 강림 도령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책상으로 달려가 개털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작은 손이 엉망으로 뜯긴 털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아까는 탄내가 난다고 오만상을 짓더니 지금은 아예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그렇게 한참을 탐색하던 강림 도령은 하늘개의 털을 다시 지퍼백에 넣고 술 창고로 들어갔다.
“뭐 마실래.”
“카페 모카요. 모카 시럽은 열 번… 아니, 열다섯 번 정도?”
“술 창고에서 뭐? 술이나 처마셔.”
강림 도령은 선반에서 대충 손에 잡히는 대로 술병을 한 아름 들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딱 봐도 도수 높은 술들이었다. 술병에서 도수부터 확인한 묵범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당장 혀가 마비될 정도로 달콤한 것을 먹으며 쉬고 싶은데. 식도를 마비시킬 독한 술과 함께 일을 해야 하다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표정이 왜 그러냐? 그 녀석 앞에서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줄 것처럼 헤실거리더니.”
“누가요. 제가요? 누구 앞에서?”
인상을 쓰고 강림 도령의 잔에 술을 따르던 묵범이 물었다.
“저는 항상 웃고 다니는데요? 딱히 누구 앞이라고 더 웃는 그런 일은…….”
있구나.
허튼소리라며 해명하려던 묵범은 머리를 스치는 홍도화의 얼굴에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런 묵범을 본 강림 도령은 입에 가져가던 술잔을 내려놓고 푸하하! 크게 웃었다.
“차사국 모든 차사들은 속아도 나는 안 속아. 내가 너를 곁에서 본 세월이 얼만데. 아니, 알아차렸을 수도 있겠군.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차사들이 꽤 있을 거야.”
“그게 무슨 헛소립니까?”
강림 도령은 묵범의 잔에 술을 콸콸 쏟으며 껄껄 웃었다. 어깨까지 들썩이느라 술이 사방으로 튀고 넘쳤다.
“그래. 헛소리로 생각해. 네가 그 재수 없는 가면을 벗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나저나. 이게 정말 하늘개의 털이라고?”
“……그렇습니다.”
강림 도령의 빠른 화제 전환에 묵범은 뭐라 더 묻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생각해 보니 강림 도령의 말이 맞았다. 가식적인 미소로 상대를 진심 없이 대했던 것도 사실이고, 처음으로 가식을 벗은 얼굴을 보인 것은 홍도화였던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 한들 남에게 지적받는 건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강림 도령이 하늘개의 털에 관해 묻자 묵범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죽은 건가?”
“안 죽었습니다.”
“아, 피 묻은 털은 아니라서?”
“그런 것도 있고요. 모근까지 빠진 털은 한 가닥도 없으니까요. 모두 중간에 끊기거나 날붙이에 베인 것들입니다.”
“아~ 그러네.”
묵범의 설명을 듣고 다시 털 뭉치를 살펴보던 강림 도령은 다리를 흔들며 생각에 잠겼다. 묵범은 그의 빈 술잔에 술을 가득 채우며 자신이 유추한 것을 말했다.
“원귀나 악귀는 아닙니다.”
“그럼. 절대 아니지. 어디 감히 쭉정이들이 하늘개를 건드려.”
“하늘개의 털을 자를 만큼 예사롭지 않은 무기를 가지고 있는, 그런 존재이겠지요.”
“그런 힘을 가지고 하늘개를 공격할 만한 귀물이… 있나?”
강림 도령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럴 만한 인물이 있는지 떠올리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그의 방대한 인맥망 속에서도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늘개의 털을 죄 뽑고 홍선을 빼앗을 만한 힘을 가진 귀물은 꽤 있는데….”
“영험한 산마다 불을 질러 기운을 쇠하게 만들 이유가 있는 귀물은 없겠지요.”
“그러니까.”
산의 영험한 기운을 쇠하게 만들려면 산의 기운이 지나가는 맥을 끊어 버리거나 산을 망가트리면 된다. 정체 모를 범인이 택한 것은 후자로, 산에 살고 있는 생명을 불태워 없애는 방법으로 기운을 쇠하게 했다.
“하늘개는 어디 있는지 알아냈나?”
“그걸 알면 제가 잡아 왔겠지요.”
“범인은?”
“그것도 똑같은 답을 드리겠습니다.”
“어떤 미친 새끼가 이런 개 같은 짓을 벌이는 걸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강림 도령은 속이 타는지 술을 병째 들이켰다.
“하늘개가 원한 살 일이라도 한 건 아닐까요?”
“개라 그런가, 성격이 개차반이긴 한데…. 워낙 소심해서 남에게 미움 살 짓은 못 한단 말이지.”
대체 누구지? 강림 도령은 도저히 범인이 누구인지 답이 나오지 않아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단정하게 잘 정돈되었던 머리카락이 산발이 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