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도화는 난데없이 물속으로 끌려 들어간 제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앞을 보려 했지만, 탁한 물 속은 가시거리가 최악이었다. 물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순간 들이마신 짧은 호흡은 순식간에 바닥이 나고 말았다.
‘숨이….’
무언가 잡을 만한 게 있으면 좋으련만. 손을 마구 휘저어도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침착해야 해.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해도 숨이 쉬어지질 않으니 본능적으로 몸부림쳤다. 그래서 도화는 무언가 자신의 발목을 감고 계속 아래로 끌어당기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물이 너무 탁한 탓에 어디가 수면인지 구분이 안 갔다.
[도화!!]
달구를 꿰어 뭍으로 올라갔던 현천이 도화를 구하기 위해 다시 강 속으로 들어갔다. 현천에겐 도화의 다리를 휘어 감은 검은 머리카락이 선명하게 보였다. 우선 저 머리카락을 끊어 내야 도화를 수면 위로 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도화의 상태였다. 수면으로 올라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탓에, 잘못 움직였다간 도화가 다칠 수 있었다.
[가만히 좀 있어 봐!!]
현천이 도화에게 버럭 소리쳤지만, 도화의 뇌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홍도화!!!”
수면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잔잔했지만, 그건 거짓으로 꾸며진 광경이었다. 이 강 속에 수귀가 있는 걸 알고 있는데 저기에 속을 묵범이 아니었다. 묵범은 도화를 찾기 위해 주저 없이 강 속으로 뛰어들었다.
‘젠장. 누가 도깨비 아니랄까 봐 성격 하난 더럽게 급하네.’
선계에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던 묵범은 뭐든 신속하게 해결하려는 도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일을 빨리 끝낸들 어차피 보고를 위해선 차사국으로 들어가야 하고, 만약 강림 도령의 눈에 띄었다간 다른 일을 강제로 넘겨받을 게 뻔했다. 그래서 묵범은 일을 빨리 끝낼 이유도 없고 일찍 끝나더라도 퇴근 시간에 맞춰서 차사국에 들어갔다.
하지만, 도화는 첫 임무부터 불필요한 동선 따윈 없었다. 신속하게 처리하고 칼같이 복귀했다. 그리고 새로운 임무를 챙겨 다시 나왔다. 묵범으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찌 됐든, 이렇게 됐으니 다음부터는 내 말을 잘 들어먹겠지.’
묵범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탁한 물을 칼로 자르듯 손날로 가로 그었다. 그러자 탁했던 물이 서서히 맑아지기 시작했다.
‘어쩐지. 물이 과하게 탁하더라니. 수귀의 농간이었군.’
가시거리를 최악으로 떨어트리고 있던 미세한 부유물은 수귀의 힘이었다. 수귀에게 잡힌 사람이 안간힘을 써도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익사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자잘한 것들이 몸에 달라붙어 짓누르니 아무리 수영을 잘하는 사람도 익사할 수밖에.
‘저기 있군.’
바로 코앞이라 할 수 있는 거리에서 허우적대는 도화가 눈에 들어왔다. 묵범은 한차례 힘을 써서 부유물을 완벽하게 없앴다. 그러자 도화의 발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현천도 보였다. 묵범은 현천이 사람과 똑같이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도화를 끌어올릴 테니, 그때 수귀의 머리카락을 끊어 내십시오.]
[……!]
묵범의 목소리에 현천이 움찔했다. 그리고 검신을 흔들며 대답했다.
[어서 올려!]
현천은 남자였구나. 묵범은 짧은 감상을 끝내고 도화의 손목을 세게 틀어잡았다. 하지만, 두 눈을 꼭 감은 도화는 제 손목을 꽉 잡은 힘이 묵범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당연히 수귀가 완전히 저를 강바닥으로 끌어내리려고 손목마저 칭칭 감는구나, 했다.
‘무슨 힘이….’
살기 위한 움직임은 아무리 묵범일지라도 손쉽게 제압하지 못했다. 그래서 묵범은 가차 없이 도화의 목덜미를 손날로 후려쳤다. 어찌나 매서운 손속이던지 물속인데도 퍽! 소리가 나는 듯했다.
[지금!]
묵범은 축 늘어진 도화를 끌어올리며 현천에게 외쳤다. 그러자 현천이 쏜살같이 도화의 다리에 감긴 수귀의 머리카락으로 달려들었다.
[키엑!!!]
수귀의 단말마와 함께 숭덩 잘린 검은 머리카락이 힘없이 흩어졌다. 도화만 괜찮다면 당장 저 몹쓸 것을 따라가 멱을 따고 싶었지만, 기절한 도화가 신경 쓰여 현천은 묵범을 따라 물 밖으로 나왔다.
[도화는 괜찮은가?]
[물을 많이 먹은 것 같군요. 호흡 좀 되찾아야겠습니다.]
[호흡을 되찾는다고?]
숨을 쉬지 않는다는 건가? 현천이 도화의 머리맡을 빙빙 돌며 걱정했다. 눈코입 없는 은장도 모습이었지만,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느껴졌다.
묵범은 양손으로 도화의 가슴을 세게 눌렀다. 쉬지 않고 가슴을 압박하며 심폐소생술을 하니 도화의 입에서 울컥! 강물이 뿜어져 나왔다. 그렇게 몇 번이고 물을 뿜자 조금씩 호흡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제 됐겠거니 하던 현천은 갑자기 묵범이 손을 내저어 자신을 밀어내자 의아했다.
[무얼 하려고?]
[이렇게 하면 확실하게 깨어나겠지요.]
[……?]
묵범이 가쁜 숨을 내쉬는 도화를 향해 상체를 숙였다. 순간, 현천은 도화에게 크나큰 불상사가 벌어질 것을 직감했다. 말려야 하는데. 저자가 도화에게 뭘 하려는지를 알 수 없으니 하지 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묵범은 수귀의 손아귀에서 도화를 구한 은인이라 날을 세워 위협할 수도 없었다.
1초 뒤. 현천은 묵범을 막아서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심폐소생술을 하려면 제대로 계속할 것이지. 갑자기 입술 박치기를 하는 건 대체 무슨 심보란 말인가.
심지어 묵범의 입술이 도화의 입술을 덮친 순간, 도화의 의식이 돌아왔다.
[도, 도, 도, 도화!!!]
현천은 길고 긴 시간을 살았지만, 지금만큼 당황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까지 더듬으며 도화를 불렀다. 느릿하게 눈을 뜬 도화는 멍하니 하늘만 쳐다봤다. 그는 지금 제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긴, 물속에서 그 고생을 하다 정신을 잃었으니 여기가 뭍인 줄도 모르겠지. 현천은 어쨌든 도화의 의식이 돌아온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안 가 도화의 멍한 눈동자가 점점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서서히 상황 파악이 되고 있다는 의미였다.
뭐야.
도화는 뻑뻑한 눈을 끔뻑거리며 머리맡의 현천을 쳐다보았다. 현천이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보고는 지금, 뭔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깨닫고 인상을 썼다.
‘뭔가 답답해.’
입으로 크게 숨을 쉬고 싶은데 꽉 막힌 느낌이다. 뭐지? 뭐가 내 입을 막고 있는 거야?
수귀의 영향으로 몸이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 탓에 도화는 눈알만 굴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
도화는 제 눈에 보이는 동그랗고 시커먼 것을 보고 잠시 사고가 정지했다. 저게 뭐지? 생긴 게 꼭 사람 머리통같이 생겼다.
머리통……?
도화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저 머리통. 내가 생각하는 그 새끼 머리통은 아니겠지?
도화가 현천을 쳐다보며 눈빛으로 물었다. 현천은 차마 그렇다고 대답하진 못하고 슬쩍 검신을 옆으로 돌렸다. 그 모습을 본 도화는 자신의 불길한 예감이 맞다는 걸 직감했다.
‘그렇다면… 입술도?’
생각이 입술에 미치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서 멍했던 머리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깨어났다. 물먹은 솜처럼 늘어졌던 몸에 힘이 돌아왔다.
‘이 새끼가!’
도화는 자신의 입술에 맞대고 숨을 불어넣고 있는 묵범의 입술을 콱 물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묵범의 머리카락을 두피가 들릴 정도로 거세게 쥐고 잡아당겼다. 그러자 틀어막고 있던 묵범의 입술이 순순히 떨어져 나갔다.
도화에게 물린 부분이 붉게 부은 게 보였다. 젠장 입술이 너덜거릴 정도로 세게 물었어야 했는데.
도화의 분노 어린 아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묵범은 물린 입술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이런. 정신이 들었다고 말로 하면 될 것을. 참으로 거친 감사 인사군요.”
“뭐……? 감사 인사? 이 새끼가 미쳤나!”
남의 입술을 허락도 없이 훔쳐 놓고 뻔뻔하게 나오는 묵범의 행태에 어이를 상실한 도화가 빠득, 이를 갈았다. 비척거리며 간신히 바닥에서 일어난 그는 헛구역질을 하며 남은 물을 토해 내고는 옆에 둥둥 떠 있던 현천을 잡아챘다.
[뭐, 뭐 하게?]
[뭐 하긴. 저 새끼 멱 따려고 한다.]
멱을 딴다는 말에 현철이 크게 움찔했다. 도화의 손바닥에도 전달이 될 만큼 큰 반동이었다. 묵범이 도화에게 아주 무례한 짓을 하긴 했지만, 묵범이 아니었다면 그는 그대로 수귀의 먹잇감이 되었을 것이다.
“너 이 자식. 감히 내 입술을…….”
“아, 설마. 처음이었습니까?”
“뭐가?”
“키ㅅ… 아니, 인공호흡 말입니다.”
저 자식. 분명 키스라고 말하려고 했어. 그것도 티 나게 ㅅ까지 정확하게 발음하고 인공호흡으로 바꿨다. 저건 나를 놀려 먹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게 분명해. 도화는 점점 머리 뚜껑이 열리는 것 같았다. 그런 도화의 분노가 현천에게 전달되어 현천의 검신이 위협적으로 길게 늘어났다. 빛도 반사되지 않는 묵빛 날이 당장이라도 묵범을 찔러 버릴 기세다.
[저기, 도화.]
[뭔데.]
[저자가 널 구한 건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날… 구해? 네가 구한 거 아니었어?]
도화는 의식을 잃기 전, 현천이 제게 뭐라 말을 했던 것까진 기억이 났다. 수귀를 베어야 하는데 숨이 막혀서 발버둥 치는 저까지 벨까 봐 가만히 좀 있으라고 한 것이겠지. 지금 생각해 보니 발목부터 다리 전체에 수귀의 머리카락이 감겼던 것 같다. 나중에는 손목에도 감겼고.
그런데 현천이 아니라 저 변태 새끼가 날 구했다니. 도화는 둘이 짜고 자신을 속이려 드는 건가 싶어서 탐색하는 눈으로 현천과 묵범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묵범은 도화가 자신을 뜨거운 눈으로 쳐다본다고 여기고는 씨익 웃었다.
“수귀가 당신을 진득하게 잡고 놓아주질 않더군요. 아마 두 번의 사냥 실패 때문에 작정하고 당신을 옭아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목덜미는 괜찮습니까?”
“목덜미?”
“네. 당신을 구해야 하는데 하도 몸부림치길래 살짝 손 좀 썼습니다.”
“……?”
손을 썼다는 말에 도화는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윽…?”
뭐야. 왜 이렇게 얼얼해? 조심스럽게 아픈 목덜미를 훑으니 화끈거리는 열감과 부기가 느껴졌다. 마치 누가 인정사정없이 후려친 증상과 같았다.
‘살짝 손 좀 썼습니다?’
그제야 도화는 손을 썼다는 묵범의 말이 목덜미를 사정없이 후려쳤다는 의미임을 깨달았다.
“날 기절시키기고 구한 건가?”
“물속에서 발버둥 치는 괴력의 도깨비를 구하려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도화는 묵범이 자신을 구했다는 현천의 말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생명의 은인이라니. 변태 차사가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란 사실에 도화는 절망했다. 이러면 멱을 딸 수가 없지 않은가.
“젠장.”
도화는 한껏 늘여 놓은 현천을 다시 은장도 크기로 줄였다. 현천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생명의 은인을 찌를 뻔했다.
도화는 현천을 거둔 대신 싱글싱글 웃는 묵범의 얼굴에 주먹을 냅다 내리꽂았다.
“억!”
묵범이 생명의 은인인 것은 맞지만, 인공호흡이란 핑계로 입술을 맞댄 개새끼인 것도 맞다. 분이 풀릴 때까지 죽사발을 만들어 버리고 싶은 것을 생명의 은인이라는 이유로, 주먹 한 방으로 간신히 상쇄시켰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