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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화-44화 (45/146)

44화

달구. 보통 도근천 달구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제주도의 도근천에 서식하는 귀라서 그리 불린다.

그 말인즉슨. 저, 달구라는 놈은 제주도 이외의 곳에서는 나타나서는 안 되는 귀란 뜻이기도 했다.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습성은 딱히 특별할 것은 없지만, 반짝이는 것을 훔치기 위해 사람을 홀려 물속으로 끌어들인다는 게 문제였다. 게다가 스스로 반짝이는 것으로 변하기를 즐기니 사람이 달구에게 홀리면 자력으로 빠져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라 할 수 있다.

“달구는 도근천을 벗어나지 못하는 거 아니었어?”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저 달구는 도근천이 지루했나 봅니다.”

“도근천이 지루하다고?”

제주도를 가 본 적이 없는 도화지만, 도근천이 관광 명소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의 사람이 다녀가는 곳일 테니 반짝이는 장신구를 모으기는 수월했을 것이다. 좋아하는 게 사방에 수두룩한데 뭐가 지루하단 걸까.

“번쩍이는 장신구를 한 사람은 수두룩한데 정작 홀려서 뺏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이 드니 지루할 수밖에요.”

“사람을 홀리기 힘든 곳이야?”

“도근천에 안 가 봤습니까?”

“어. 난 아직 비행기도 배도 타 본 적이 없어.”

“그렇다면 모를 만하군요. 도근천은 관광지라 사람이 많이 드나들긴 하지만, 달구가 지내는 곳은 폭포 바로 밑, 깊은 못입니다. 달구가 반짝이는 것으로 아무리 변해 봤자 폭포의 물보라가 가려 버리니 사람을 홀리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겠지요.”

“그건 그렇다 치고. 어떻게 도근천을 떠나 여기까지 온 걸까.”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달구 같은 잔챙이 귀는 절대 자신의 터전을 벗어날 수 없을 텐데……. 아무래도 강림 도령에게 보고를 해야겠군요.”

“그런데… 저 남자. 저렇게 내버려 둬도 되는 거야?”

“아, 맞다.”

묵범은 도화의 손에서 다 마신 맥주 캔을 빼앗아 한 손으로 와그작 구겨 공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달구에게 홀린 남자를 향해 집어 던졌다. 탁구공 크기의 가벼운 알루미늄 공은 묵범의 힘을 받아 위협적으로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악!!”

퍽! 소리와 함께 남자가 고통 어린 비명을 지르며 물속으로 고꾸라졌다. 작은 알루미늄 공을 맞은 사람의 반응치고는 너무 과하다 싶었지만, 물속에서 나온 남자의 어깨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니 과했던 반응이 이해가 되었다.

“어떤 미친놈이 이딴 걸 던져!!”

남자는 어깨를 감싸 쥐고 씩씩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뒤늦게 자신이 물속에 있음을 깨달았다.

“어라? 왜 내가 여기에 있지? 분명 고기를 굽고 있었는데…….”

남자는 다치긴 했어도 달구의 현혹에서 빠져나온 건 확실했다. 지금 보니 남자의 목에 걸린 금목걸이가 햇빛에 반짝거리는 것이 달구가 환장할 만했다. 남자가 다시 고기를 구우러 몸을 돌리자 물속에서 반짝이는 빛이 일렁거렸다. 남자가 몸을 돌렸기에 망정이지, 또 달구에게 홀릴 뻔했다. 남자가 완전히 강에서 빠져나가자 진갈색의 작고 매끈한 동물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다 잡은 먹이가 도망가자 분했는지 작고 앙증맞은 손으로 물을 쳐대다 다시 사라졌다. 꼬리가 수면을 치며 풍덩 소리가 났다. 아까 들은 그 소리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 미세한 소용돌이가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게 포착되었다.

‘저건 수귀다.’

삼면이 바다고 내륙에도 강이 많은 땅에서 수백 년을 살다 보니 수귀의 특성은 꿰차고 있는 도화였다. 저 소용돌이는 수귀가 사람을 홀려 물속에 빠트린 뒤 빠져나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 사술이었다.

“수귀가 아니라 달구를 잡아야 하는 건가?”

“아닙니다. 달구는 남자의 목걸이를 빼앗으면 현혹을 풀었을 겁니다. 그리고 저기는 그다지 깊은 곳도 아니니 정신만 제대로 차린다면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왔겠지요.”

“그러면 여기서 벌어지는 익사 사고는 수귀 짓이 맞다는 거네.”

“그렇지요. 이 구역에서는 수귀의 활동이 보이지 않아 차사가 일찍 철수했다고 하더군요.”

“차사가 철수하자마자 익사 사고가 일어난 것이고?”

도화의 질문에 묵범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사가 돌아가길 기다렸다가 자리를 잡은 수귀라 생각했는데… 달구를 이용해서 제 악행을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하긴. 달구가 저리 나서면 수귀가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하겠지.”

묵범과 도화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이번에는 여자가 하나가 달구의 반짝임을 보고 강 속으로 이동했다.

[도화. 아무래도 누구 하나 명줄 끊을 때까지는 계속 홀릴 모양인데?]

[그러게. 빨리 잡아야지, 안 되겠어.]

도화는 사고가 터지기 전에 막을 생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묵범이 그런 도화의 앞을 막아섰다.

“왜? 저 여자, 죽게 내버려 두게?”

“그럴 리가요.”

“그러면 왜 막아?”

“달구가 있는 것은 확인했지만, 아직 수귀는 보지 못했잖습니까?”

“그러면 수귀가 나타날 때까지 두고 보자는 거야? 그러다 저 여자가 죽으면 어쩌려고?”

“안 죽습니다. 생명에 지장만 없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묵범의 대답에 도화는 기가 찼다. 생명에 지장만 없으면 된다는 말은 도화의 귀에 목숨만 붙어 있으면 어떤 상태가 되더라도 괜찮다는 뜻으로 들렸다.

“너는 차사이기 전에 선계의 신선이 아닌가?”

“정확하게는 진선입니다만….”

그걸 왜 지금 물어보냐는 듯한 시선에 도화는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진선이든 신선이든 간에, 내가 선계를 제멋대로 상상했나 보군.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길 줄은 몰랐어.”

“홍도화 씨. 그것은-.”

“됐어. 너는 거기서 수귀가 나올 때까지 초코 우유나 처먹고 있어. 나는 알아서 해결하고 서울로 올라갈 테니까.”

도화는 당혹한 기색이 역력한 묵범을 내버려 두고 성큼성큼 강으로 향했다. 뒤에서 그게 아니라고 하는 묵범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귀 기울여 보았자 뻔한 변명일 테니 듣기 싫었다.

[굉장히 실망한 것 같은데. 저자에게 기대했던 게 있었나 봐?]

현천이 도화의 기분을 살피며 슬쩍 떠보듯 물었다.

[기대는 무슨. 내가 저딴 변태 새끼한테 기대할 게 뭐가 있어?]

도화는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하고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화를 풀 대상이 현천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다시 돌아가서 묵범에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얼굴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실망? 내가 저 자식에게?’

차가운 물 속으로 발을 내디디며 도화는 현천의 말을 곱씹었다. 실망이라. 내가 뭐라도 기대를 했어야 실망도 하지. 이건 실망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양심을 묵범은 발의 때만큼도 갖지 못해서 화를 내는 것이다.

길고 긴 세월을 산 진선이라면 짧은 생을 사는 인간이 하찮게 보일 만도 하다. 하지만, 세상에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평등하게 윤회의 수레바퀴에 오른다. 그것은 선계에 적을 둔 이라 할지라도 다를바 없다. 그러니 정말 손도 쓰지 못할 악인이 아니고서야 고작 수귀 하나 잡는 데에 목숨을 위협받게 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저기요. 거기서 어서 나오세요.”

도화는 여자를 부르며 강으로 따라 들어갔다. 하지만, 도화의 부름에도 여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강 가운데로 움직였다. 아무래도 아까 남자를 놓친 것 때문에 작정하고 홀리는 중인 듯했다.

여자의 시선이 고정된 수면은 햇빛에 반사된 빛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지러울 정도로 반짝였다. 계속 보고 있다간 자신도 정신이 멍해질 것 같아서 도화는 머리를 흔들고 여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조심해. 도화. 물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어.]

바지 주머니 속에서 물속 상황을 관찰하던 현천이 도화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도화는 현천의 경고보다 여자를 물 밖으로 끌어내는 데에 집중했다. 불러도 반응하질 않아 여자의 어깨를 잡아 끌어당겼다. 당연히 도화의 힘에 끌려올 줄 알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오히려 도화가 여자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무슨 힘이 이렇게 세?’

당황한 도화는 손에 더욱 힘을 주어 당겼다. 한눈에도 여자보다 도화의 체격이 훨씬 큰데 같이 끌려가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홀려도 단단히 홀린 모양이야. 힘을 제대로 써.]

[알았어.]

도화는 힘 조절하던 것을 그만두고 여자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그러자 여자가 버둥대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이 갑자기 끌어안아서가 아니라, 어서 저 반짝이는 것을 손에 넣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게 방해해서였다.

‘여기서 더 세게 제압하면 다칠 거 같은데.’

괴력으로 발버둥 치는 여자 때문에 난감해하는 도화에게 묵범이 크게 소리치며 다가왔다.

“목걸이를 뺏어요!”

‘목걸이?’

[달구가 이 여자를 현혹하는 이유가 뭐겠냐! 금붙이가 있어서 그런 거겠지!]

현천이 답답했는지 도화에게 외쳤다. 여자의 목덜미를 보니 묵범의 말대로 가는 금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단번에 잡아 끊으니 목걸이에 걸린 반짝이는 보석이 물속으로 퐁당 빠졌다. 그와 동시에 작은 수달처럼 생긴 갈색 짐승이 가까이 헤엄쳐 오는 게 보였다. 달구였다.

‘저걸 잡아야 하는데…!’

강 속에서 헤엄치는 달구를 쉽게 잡을 수 있을 리 없다. 게다가 목걸이를 끊어 내는 순간, 여자의 몸이 기절한 것처럼 축 늘어지는 바람에 손을 쓸 수가 없었다.

[현천!]

[알았다!]

수영복 바지 주머니 속에 있던 현천이 스르륵 흘러나와 강바닥으로 내려가는 달구를 따라 움직였다. 잠시 뒤, 뽀글거리는 기포가 마구 올라오더니 이내 길쭉한 은장도에 관통당한 달구가 물 위로 떠올랐다.

“이제 된 건가?”

현천은 달구를 찌른 채로 뭍으로 움직였다. 도화는 물속으로 들어오는 묵범에게 여자를 건넸다. 그런데 묵범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왜지?

“뭐야. 내가 달구를 처리한 게 마음에 안 들어?”

“그런 게 아닙니다.”

“아니면 왜 표정이 그래?”

도화는 그대로 물속에 서서 여자를 바닥에 눕히는 묵범을 빤히 쳐다봤다. 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

묵범은 여자가 숨을 제대로 쉬는지 확인하며 도화에게 해명했다.

“달구만 잡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수귀가 달구의 뒤에 숨어 사람을 죽이니, 수귀가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는 뭍으로 나온 현천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현천에게 관통당해 축 늘어진 달구는 완벽하게 숨이 끊어져 있었다. 하긴, 그냥 은장도도 아니고 귀신 잡는 현천상제가 쓰던 무구에게 찔렸는데 숨이 붙어 있을 리가. 살아 있다 한들 이 상황을 수귀는 다 보고 있을 테니 이용해 먹을 수도 없을 것이다.

“우선 철수합시다.”

“서울로 가자고?”

“네. 윗선에 보고는 해야지요. 예상치 못한 귀이긴 하지만, 달구를 잡았으니 대충 할당량은 채웠습니다.”

“수귀는?”

“그건 다른 차사들이 와서 잡겠지요. 우리는 수귀 말고 다른 악귀를 잡으러 가야 합니다.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

풍덩.

묵범은 뒤에서 들린 물소리에 말을 끝맺지 못했다. 풍덩? 갑자기 물소리가 날 일이 있나?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방금까지 물속에 서 있던 도화가 보이지 않는다.

“홍도화 씨…?”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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