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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화-34화 (35/146)

34화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잠에서 깬 도화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월요일이라니…….”

쉴 새 없이 알바를 할 때 도화에게 월요일은 그저 7일 중 하루일 뿐이었다. 주말도 쉬는 날보다 일하는 날이 많기도 했고, 돈을 벌어야 했기에 오히려 쉬는 날이 생기면 불안해서 일일 알바 자리를 찾아다닐 정도였다. 그런 도화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월요일이란 사실에 실망을 넘어서 분노가 치민다. 이게 바로 악랄하고 지독하기로 자자한 월요병이구나.

도화는 난생처음 겪는 월요병을 이겨 내려고 노력했다. 안 그랬다간 출근 첫날에 사직서를 던지는 불상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도화는 텐트에서 나와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침대 옆 협탁 위에서 작게 지직대는 라디오를 껐다. 드디어 거실이 아닌 자신의 방에서 자기 시작한 도화였지만, 여전히 침대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였다. 바닥에 텐트를 치고 자는 모습은 참으로 지지리 궁상이란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제는 본인 방에서 잔다는 점에선 장족의 발전이긴 했다.

협탁 위 전자시계를 확인했다. AM 6:20. 한동안 늦게까지 자던 버릇은 첫 출근 앞에서 힘도 못 쓰고 사라졌다. 긴장으로 깊게 잠들지 못해서 한창 일을 할 때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일어났다.

방에 딸린 화장실에서 깨끗하게 씻고 나온 도화는 침대 위를 빤히 쳐다봤다. 진한 회색 셔츠와 검은색 정장 바지. 어젯밤, 미리 준비해 둔 출근 때 입고 갈 옷이었다.

묵범에게 고도로 발달한 구두쇠는 환경 운동가와 다를바 없다는 말을 들은 날, 바로 나가서 산 옷이었다. 추혼부 분위기를 살펴보고 앞으로 무슨 옷을 입고 다닐지 정하려고 우선 저렇게 한 벌만 샀다.

[도포와 흑립은 차사국에 가면 지급될 겁니다. 차사의(差使衣) 취급 안내서를 보고 사용 방법을 익히면 됩니다.]

차사 채용 계약까지 했는데 왜 저승차사라면 반드시 입는 도포와 흑립을 주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묵범의 답이었다. 생각해 보니, 보통 물건이 아닌데 아직 첫 출근도 안 한 신입에게 주는 건 아무래도 위험 부담이 있을 듯했다.

이해는 가는데. 이해는 했는데. 자신이 수습, 그것도 한 달간 ‘나비’라고 불릴 것까지 이어 떠오르니 불쑥 짜증이 치솟았다. 도화는 자신이 살면서 이렇게 짜증과 화가 많은 사람이었는지 새삼 깨닫고 있었다.

아직 덜 마른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슥슥 빗은 도화는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왔다. 담마를 깨워 아침밥을 먹여야 했다. 담마의 방으로 가려던 도화는 이미 나갈 채비를 다 하고 기다리고 있는 담마를 보고 멈칫했다.

“아침 드셔야죠.”

“너무 이른 시간이라 생각 없는데.”

“그럴 줄 알고 마시는 것으로 준비했어요.”

담마가 냉장고에서 길쭉한 유리병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렸다. 연한 갈색 액체가 되직하게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미숫가루인 듯했다.

저걸 언제 일어나서 만든 거지? 아니, 그보다 저 작은 키로 싱크대며 그릇장을 힘들게 오르내렸을 담마를 떠올리니 절로 인상이 쓰였다.

“나는 널 이런 일이나 시키려고 받아들인 게 아니야.”

“그래도 밥값은 해야죠.”

밥값?

안 그래도 처음 겪는 월요병 때문에 심기 불편한데 담마의 짤막한 대답이 더욱 깊게 긁는다. 첫 만남부터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게 한 담마였기에 더욱 녀석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는 게 싫었다.

‘밥값이라…. 나도 스승님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천둥벌거숭이 반도깨비를 대가 없이 거둬들인 스승이 고마웠다. 하지만, 자신이 무슨 사고를 쳐도 그저 포용만 하는 스승의 태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사고를 일부러 친 것은 아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뒤쫓은 도깨비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들이었다. 그래도 인간에게 피해를 주고 산천초목을 뒤엎은 건 명백한 자신의 잘못이었다. 그리고 그걸 홀로 수습하는 스승에게 사죄하기 위해 뭐라도 도우려고 했다.

바로 지금의 담마처럼.

‘그때 스승님은 무슨 말을 했더라.’

도화가 잠시 옛 기억을 떠올리는 사이 담마는 까치발을 하고 식기 건조기에서 컵을 꺼내려 했다.

저 녀석이? 도화는 한걸음에 담마의 뒤로 가 건조기 뚜껑을 열려는 손을 붙잡았다. 깜짝 놀란 담마가 뒤돌아 도화를 올려다보았다.

“자꾸 이럴 거면 호골로 가는 게 좋겠다.”

“싫어요.”

“싫으면 이런 짓은 그만두든가.”

담마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도화는 자신의 목소리가 굉장히 냉랭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달래 줄 생각은 없었다. 그때, 스승님도 이런 게 다 보였던 걸까?

도화의 눈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것이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면서 뒤로는 쫓겨나지 않으려고 눈치를 보는 게 너무 빤히 보였다.

내가 저랬었구나. 그래서 스승님이 그리도 화를 냈었던 거였어. 도화는 당장 스승을 찾아가 그때 자신도 그랬었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스승은 이미 오래전에 죽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에 그럴 수 없었다.

“내가 널 거둔 이유는 네가 날 찾아와서, 그것뿐이야. 대가를 바라고 거둔 게 아니니 지금 이런 네 행동은 나를 불편하게 할 뿐이다.”

“…….”

아래로 푹 꺾인 고개가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도화는 담마의 작고 동그란 머리를 무심하게 한 번 쓰다듬는 것으로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알아듣겠지. 똑똑한 녀석이니까.

그는 담마가 꺼내려던 컵을 꺼내 병에 든 미숫가루를 따랐다. 어찌나 야무지게 타 놓았는지 작게 뭉쳐진 가루 하나 없이 되직한 액체가 곱게 흘러나왔다. 주먹을 쥐고 있는 담마의 손을 보니… 이런 걸 만들 만한 손이 아니다. 처음 사람 모습으로 변했을 때보다는 자라긴 했으나 학교에 입학할 나이대로는 보이지 않았다.

한 모금 마신 미숫가루는 꿀을 얼마나 넣었는지 달아도 너무 달았다. 역시 애는 애인가 보다. 반귀물이라 하는 행동이 어른스럽다 해도 입맛은 영락없는 아이 입맛이다.

단것을 싫어하는 도화는 그래도 꾹 참고 한 컵을 다 마셨다. 도화가 단번에 미숫가루를 마시는 사이 담마는 식기 건조기에서 컵을 꺼냈다.

“저도 주세요.”

담마가 컵을 도화에게 불쑥 내밀며 말했다. 아까는 방바닥과 싸우기라도 할 것처럼 노려보더니, 어느새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래.”

도화도 언제 담마에게 냉정하게 대했냐는 듯이 부드럽게 대답했다. 담마의 컵에 미숫가루를 가득 채웠다. 입에 컵을 가져가려던 담마는 양미간에 주름을 잔뜩 세우고는 식탁 위에 있는 미숫가루 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거 저도 먹으려고 만든 거예요.”

“음…?”

“그러니까 제가 다, 당신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게 절대 아니라고요.”

“그래? 그러면 된 거고.”

도화는 담마의 말을 덤덤하게 듣고 흘렸다. 진지하게 듣고 반응하면 부끄러워할 것 같아서였다. 그걸 아는 이유는 스승 때문이었다. 오래전, 스승에게 담마와 비슷한 말을 했었다. 그리고 스승님은 아주 호들갑을 떨었었지.

어찌나 난리던지 부끄러워서 근 나흘은 말을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났다. 한 번 당했던 기억이 아직도 잊히지 않기에 도화는 담마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됐으니까 당신 말고 삼촌이라고 불러.”

“……삼촌?”

혼신의 힘을 다해 아무렇지 않은 척하던 담마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도화를 올려다보았다. 도화는 어서 마시라고 턱짓을 하며 말했다.

“어디 나가서도 나를 당신이라고 부를 생각은 아니겠지.”

“그렇지만… 삼촌보다는 오빠가—.”

“삼촌.”

도화는 딱 잘라 삼촌이라 말했다. 오빠라니. 아무리 귀물들이 오랜 세월을 산다지만, 최소 600년 차이가 나는데 오빠라 불리는 건 양심에 털이 나다 못해 썩어 빠진 놈이 아닌 이상 당연히 거절해야 할 호칭이었다.

“그러면 아ㅃ-.”

“삼촌.”

도화는 담마가 더는 헛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말을 끊었다.

“어서 마시고 컵 이리 내. 준비하고 나가야지.”

“…알았어요.”

하마터면 여자 손 한 번 잡아 보지 못했는데 애가 생길 뻔했다. 도화는 자신이 사용한 컵을 닦으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현천, 이 자식은 아직도 자는 건가?

검 주제에 잠이 많다. 원래도 많았는데 좋은 침대에서 자니 끝도 없이 자는 것 같다. 무슨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아니고.

도화는 컵을 다 닦고 나서도 싱크대에 서서 담마를 기다렸다. 뒤에서 꼴깍꼴깍 미숫가루 마시는 소리가 들린다. 너무 달아서 입이 저릿할 지경인데, 담마는 맛있게 잘도 마셨다.

“여…기요. 삼촌.”

담마가 다 마신 컵을 도화에게 내밀었다. 제가 직접 싱크대 상판에 올리고 싶었으나 까치발로도 닿지 않자 도화에게 준 것이었다. 도화는 말없이 담마의 컵을 받아 깨끗하게 씻어 식기 건조기에 넣었다.

오늘 일로 담마의 자존심이 굉장히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금은 강하게 선을 긋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지만, 그것으로 담마의 고민이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님을 안다.

‘스승님이 했던 것처럼.’

그는 오늘 집에 돌아오면 주방 가구 위치를 좀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밥솥이나 전자레인지는 위치를 담마의 손이 닿을 정도의 위치로 바꾸고, 담마가 올라가도 안전하고 튼튼한 간이 사다리도 사야겠다.

담마를 이 집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인 이상, 녀석이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주는 게 옳다. 도화는 자신이 담마를 대접받기만 하는 손님 취급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승님도 뒤늦게 깨닫고 제게 자잘한 집안일을 시켰었다.

‘스승님은 저 녀석을 보면 뭐라 하셨을까.’

너와 똑 닮은 녀석이 하나 더 굴러들어 왔구나.

스승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리는 것 같다. 살아온 세월에 비하면 스승과 함께 지냈던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도화가 가진 좋았던 기억의 대부분이 모두 스승과 함께했던 시기에 몰려 있기에 스승과 관련된 것은 무엇 하나 잊지 못하고 있었다.

딩동- 딩동-.

이른 아침부터 누군가 찾아왔다. 인터폰 화면을 확인하지 않아도 옆집 변태 묵범일 게 뻔했다.

“나가요?”

“아니, 잠깐만. 먹었으니까 가글이라도 하고 나가야지.”

“알았어요.”

도화와 담마는 각자 방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둘 다 가글이 아닌 양치를 했다. 현관으로 가는 길에 침대에 폭 파묻혀 행복하게 자고 있는 현천을 챙겼다.

[아니, 자는 사람을 이렇게 험하게 깨우면 어쩌나!]

[네가 사람이야? 검이지.]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리고 이 몸도 현신하면 사람일세!]

[시끄러워. 오늘부터 출근이야.]

눈코입도 없는 검이 사람처럼 침대에 누운 모습은 몇 번을 봐도 생소했다.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문을 열어 주지 않으니 묵범이 쉴 새 없이 초인종을 눌렀다. 담마가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을 열자 어디 흠 잡을 곳 하나 없이 잘 차려입은 묵범이 서 있었다. 그는 도화의 차림새를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꽤 괜찮은 옷을 입었군요. 환경 운동가에서 한 열 걸음은 멀어졌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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