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첫 출근 때, 담마와 함께 국장실로 오라고 했습니다.”
“담마를? 왜?”
“인간 아이와 섞여 지내게 해도 귀물은 귀물. 반드시 사고를 치기 마련이니 사전 교육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강림 도령이 한 말을 그대로 전하자 도화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귀물은 귀물이라.”
귀물은 귀물이란 말이 거슬린 듯했다. 여우의 피가 반은 섞였으니 귀물인 건 맞지만, 사고 운운하는 말이 뒤에 붙자 귀물 차별 느낌이 들었다.
“사고는 귀물보다 인간이 더 치지 않나? 인간끼리 범죄를 저지르다 못해서 귀물한테까지 피해를 주는 게 인간인데. 그런 차별적인 말을 하는 자가 차사국의 국장이라니 실망이군.”
도화의 예민한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던 묵범은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며 해명했다.
“그런 사고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담마의 절반은 인간이니 큰 문제 없이 인간 또래와 지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절반은 여우이지요. 게다가 한집에 살고 있는 사람도 인간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게 뭐가 어때서?”
“담마가 무의식중에 당신의 언행을 따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내 언행을?”
도화는 자신의 언행이 뭐가 문제인지 당장 떠오르는 게 없었다. 내 언행이 뭐가 문제라는 거지? 지금껏 살면서 인간쓰레기 외에는 절대 폭력을 쓴 적이 없다. 폭력도 적당한 수준에서 멈췄다. 인간이 만든 법규에서 벗어나는 일은 절대 없는 모범 시민이라 자부할 수 있었다. 세금도 따박따박 내고, 월세도 밀린 적이 없다. 요즘 세상에 빚 없는 사람 찾기가 더 힘든데 그 찾기 힘든 사람 중 하나가 홍도화였다.
그러니 이런 자신의 언행을 문제라고 말하는 묵범이 좋게 보일 리 없었다. 도화는 망설임 없이 묵범에게 쏘아붙였다.
“내가 아까 허튼소리 할 거면 꺼지라고 했지? 당장 꺼져.”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군요.”
“안 나가? 어디 한 군데 찔려 봐야 일어나려나?”
도화가 소파 위에 누워 있는 현천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묵범은 미소를 잃지 않고 친절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방금 제게 한 말 같은 것이 바로 문제라는 겁니다.”
“?”
“꺼져. 어디 한 군데 찔려 봐야- 같은 말은 담마 또래의 아이들은 쓰지 않을 말입니다. 쓰더라도 굉장히 불량한 아이로 찍히겠지요.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
그제야 도화는 묵범이 지적한 자신의 언행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릴 때부터 워낙 산전수전을 겪은 터라 도화의 언행이 거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 이유 없이 그리 행동하진 않았다. 본인 스스로를 모범 시민이라고 지칭할 정도로 그는 자신의 윤리와 도덕관념에 자신이 있었다.
도화가 거칠게 군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심기를 거슬리게 만든다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묵범과 현천이 그러했다.
요즘은 현천보다 묵범에게 더 집중된 상태이고.
“내 언행이 담마가 사고를 일으키게 만든다는 건 너무 비약 아닌가?”
“당신의 언행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건 부차적인 것이지요.”
“부차적? 그러면 근본적인 것은 뭔데?”
도화의 질문에 묵범은 미소를 살짝 지우고 진지하게 되물었다.
“만약 담마가 학교에서 감정이 격해지는 상황을 겪는다면 어찌 될 것 같습니까?”
“어찌 되긴. 당연히—.”
당연히… 어떻게 되는 거지?
갑자기 뚝 끊긴 생각에 하던 말도 끊겼다. 당연히 화를 내겠지. 하지만, 묵범은 그런 대답을 원해서 물어본 게 아닐 것이다. 평범한 인간 아이라면 화를 내다 주먹질도 하고, 어디 한 군데 다치면 보건실로 가겠지.
하지만, 반귀물인 담마는? 과연 화를 내는 것에서 끝이 날까?
도화는 옆에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담마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주먹질이라도 한다면? 반귀물의 힘이 범인보다 훨씬 강한 것은 당연하다. 상대는 보건실에서 해결될 정도의 상처로 끝이 날까?
‘그리고 주먹질에서 끝이 아니라면.’
도화는 담마가 처음, 제게 찾아왔던 때를 떠올렸다. 매우 작은 털 뭉치였으나 방 하나를 초토화로 만들 정도의 위력을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이 담마의 본모습일 테고. 귀물의 초기 성장 속도는 매우 빠르니, 지금쯤이면 한눈에 여우인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컸을 터.
본디 귀물은 부모나 조부모, 또는 종족의 어른이 아이를 교육한다. 자신의 의지로 본신을 드러내며 감정이 아무리 격해져도 사람 모습을 잃지 않도록.
원래대로라면 담마도 어미인 다온과 화린에게서 배웠어야 했다. 하지만, 담마는 호골로 가길 거부했다. 다온과 화린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도 꺼려 했다. 그렇다면 담마의 교육을 담당해야 하는 건.
‘내가 해야 하는데…….’
도화는 담마에게서 시선을 거둬 묵범을 쳐다봤다. 모르겠다. 자신도 스승에게서 감정을 제어하고 본신을 깊숙이 숨기는 방법을 배웠으나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 스승도 잘 가르치는 편은 아니라서 고생했던 기억만 났다.
도화는 이제야 묵범이 전한 강림 도령이 하겠다는 ‘교육’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그리고 걱정이 되었다. 잠깐 만났지만, 강림 도령의 성격은 무척이나 개차반이었다. 그런 놈에게 갓 태어난 담마의 교육을 맡겨도 될까?
“담마. 만약 네가 싫다고 하면.”
“괜찮아요.”
싫다면 강림 도령에게 데려가지 않겠다고 말하려는데, 담마가 먼저 선수 쳤다.
“배워야 하는 거면 배워야지요. 학교보다 국장님께 배우는 게 제겐 더 유익할 테니까요.”
무표정한 표정으로 말하는 담마는 묘하게 학교를 도외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학교를 안 가겠다는 건 아니지?”
“궁금하긴 하니 갈 거예요. 하지만, 제가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두게 해 주세요.”
“음? 어째서?”
도화가 묻기 전에 묵범이 먼저 물었다.
“반귀물이 인간 틈에서 부대껴 봤자 얼마나 친해질 수 있겠어요.”
“평범히 잘사는 귀물도 많다만.”
“그거야 중요한 것은 숨기고 적당히 선을 그어 가며 사니 그런 것이겠지요.”
담마의 대답에 도화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애초에 귀물은 인간에게 정체를 드러내선 안 된다. 법제화된 것은 아니나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온 불문율이었다. 그럼에도 극소수의 귀물은 진심으로 신뢰하는 인간에게 정체를 드러내곤 했다. 그리고 그런 경우의 대부분은 불행으로 끝이 났다. 담마의 모친 다온이 그 예 중 하나다.
귀물은 인간 생활에 큰 호기심을 가지기 마련인데, 담마가 이토록 무덤덤한 이유는 다온의 사례를 보았기 때문이리라.
“인간 학교는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니까 국장님께 교육받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을게요.”
담마는 대답했으니 들어가 보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개인 컴퓨터를 방에 설치해 준 뒤로 요즘 담마는 인터넷에 푹 빠져 살고 있다. 온갖 분야의 영상과 글을 섭렵하는 듯했다.
현천도 침대에 눕고 싶다며 자리를 뜨는 바람에 거실에는 도화와 묵범, 둘만 남게 되었다.
“담마 일은 해결됐고. 이제 홍도화 씨, 당신 이야기만 남았군요.”
홍도화 씨…? 도화가 팔에 오소소 올라온 소름을 손으로 슥슥 문질러 눌렀다. 홍도화 씨라니. 제 이름이 맞는데도 굉장히 생소하게 들렸다.
현천은 자신을 이보게, 자네, 도화라고 불렀고 도깨비들은 반편이, 등신, 머저리, 잡종으로 불렀다. 인간 틈에서도 항상 을의 입장이었기에 저렇게 이름을 높이는 호칭이 붙은 건 처음이다. 그래서 어색했다.
“춥습니까?”
“어? 아니. 아닌데.”
“아니긴. 아무리 반도깨비라지만, 에어컨을 이리 틀어 대면 감기 걸립니다.”
묵범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리모컨으로 에어컨을 꺼 버렸다. TV에서 무소음 에어컨이라고 광고를 엄청 때려 대던 에어컨이었는데. 끄니까 거실이 더욱 조용해졌다.
“나한테 할 이야기는 뭐야.”
도화는 어서 묵범을 집에서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 정리에 담마의 학교 전입 신고까지 해내느라 요 며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묵범의 방문으로 어설프게 깨 버렸다. 어서 내보내고 다시 자고 싶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첫 출근인 건 기억하고 있죠?”
“내가 까마귀야? 그런 걸 까먹게?”
“그날, 회식 있습니다.”
회식? 도화의 얼굴에 귀찮단 표정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한눈에 봐도 절대 참석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굳건했다. 그래서 묵범은 도화가 거절하기 전에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못을 박았다.
“홍도화 씨. 당신의 추혼부 입사를 축하하는 자리이니 절대 빠져선 안 됩니다.”
아, 젠장.
도화가 작게 중얼거렸다. 지금 묵범과 이렇게 마주하고 대화하는 것도 불편해 죽겠는데. 생판 모르는 사람과 한자리에 모여서 무언갈 먹는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강림 도령께서 회식 거하게 하라고 카드까지 주셨습니다. 산월관에서 한도 없이 긁어도 되지만, 당신이 빠지면 회식은 취소입니다.”
“…….”
사방이 꽉 막혀 도망가지도, 숨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국장이 마음대로 쓰라고 카드까지 줬는데 참석 안 해서 회식이 취소된다면. 앞으로의 직장 생활이 어떨지는 안 봐도 훤했다.
그래도 도망갈 구멍 만들기는 시도해 보자는 마음으로 묵범에게 물었다.
“보통 직장인은 회식을 싫어하지 않나?”
일터가 저승일 뿐이지, 저승차사도 보통의 직장인과 다를바 없다. 회식을 하면 퇴근이 늦어진다. 게다가 월요일부터 회식? 다음 날 출근도 지장이 클 테니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묵범의 대답은 도화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다른 부서는 그럴지 몰라도 추혼부는 회식을 좋아합니다.”
“보통 직장인이 아닌 건가…….”
“아무래도 다른 부서와는 비교도 안 되게 밖에서 힘을 쓰고 돌아오니 술과 고기로 보충하려는 것이겠지요. 게다가 추혼부는 동료애가 아주 끈끈하기로 유명합니다. 그러니 추혼부 차사들에게 회식은 불편한 자리가 아니라 즐겁고 놀고먹는 휴식 시간이지요.”
이야기를 듣던 도화는 굳은 얼굴로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식이 자주 있는 편은 아니지만, 당신을 환영하기 위해 모이는 자리니 첫 회식만 참석하고 다음부터는 빠져도 되도록 말해 두겠습니다.”
“알았어.”
한 번만 참자. 한 번만.
고기는 먹어도 술은 즐기지 않는 도화는 부디 추혼부 차사들의 술버릇이 정상적이길 바랐다.
“이제 할 말은 끝난 건가?”
“아,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뭔데.”
“음….”
방금까지 청산유수처럼 말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말을 어찌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묵범의 예상치 못한 침묵에 도화는 설핏 인상을 찌푸렸다. 싱글싱글 웃는 낯도 짜증 나지만, 갑자기 이러는 것도 거슬렸다.
“말 안 할 거면 이만 가 줬으면 좋겠는데.”
“귀령면 말입니다.”
가라는 축객령에, 묵범은 언제 고민했냐는 듯이 귀령면을 언급했다.
“…귀령면?”
도화의 한쪽 눈썹이 씰룩, 위로 솟구쳤다. 묵범이 귀령면을 언급한 게 거슬리는 눈치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