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묵범의 차는 도로에 나가면 흔히 볼 수 있는 SUV 차량이었다. 좀 특이한 것이라면 창이란 창은 모두 짙은 선팅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창문에 얼굴을 갖다 대고 안을 들여다봐도 보이지 않을 만큼 짙었다. 그것 외에는 평범했다.
도화는 다온을 안고 뒷좌석에 앉으려고 했다. 벌써 꼬리가 세 개째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저승차사가 명부를 수정했다지만, 침으로 슥슥 지운 게 영 미덥지 않아 당장 다온의 숨이 끊어질지도 모른단 걱정이 컸다.
“앞에 타요.”
“사람을 안고 어떻게 앞에 탑니까?”
도화의 존대에 운전석에 앉은 묵범이 룸미러로 뒤에 있는 도화를 빤히 쳐다봤다.
“앞에 타요. 명부도 고쳐 주고 차도 태워 주는데 사람이 매정하게 뒷좌석에 앉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명부를 고쳐 주고 차까지 태워 주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지만, 뒷좌석에 앉는 게 왜 매정한 일인지 모를 일이었다.
“…….”
“안 죽어요.”
재차 안 죽는다고 호언장담을 하니 계속 걱정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도화는 최대한 조심히 다온을 시트에 눕히고 앞으로 왔다.
“귀물 전문 병원으로 갈 겁니까?”
“그래야겠지요.”
방금까지 이 새끼, 저 새끼, 변태 새끼라고 부르던 남자에게 존대를 하려니 어색했다. 아무리 저승차사를 싫어하지만, 이렇게까지 도움을 주는 데 지킬 건 지켜야 한단 마음이 앞섰다.
“거기 네비게이션 좀 눌러 주세요.”
“아… 네네.”
도화는 묵범이 시키는 대로 네비게이션에서 귀물 전문 병원의 주소를 설정했다. 서울 혜화동에 위치한 백화대 병원. 죽을 사람도 살린다는 소문난 명의가 많기로 유명한 종합 병원이다. 이건 하계의 인간들에게 해당되는 것이고 이쪽, 귀물의 세계에선 귀물 전문 병원으로 유명하다.
“우리 통성명이나 하죠.”
“이름을 왜 묻습니까?”
통성명을 하자는 말에 도화가 예민하게 반응했다. 다른 사람이 이름을 물어보았다면 모를까. 저승차사가 물어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자신의 본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그마저도 그 이름 대신 ‘도방’이란 이름으로 부른다. 자신이 그러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저승차사들도 도방이라고 알고 있다. 사실 망자의 명부를 다루는 차사라고 해서 모든 사람의 이름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할당된 명부에 관한 이름만 안다.
도화의 명부가 아직 저승에 오르지 않았으니 차사들이 도화의 진짜 이름을 모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면 그쪽을 뭐라 부를까요?”
“오늘 이후로 다신 보지 않을 텐데 이름을 알아 뭘 합니까?”
“누가 그럽니까?”
“?”
도화는 굉장히 불길한 소릴 들은 것처럼 묵범을 쳐다봤다. 백화대 병원에 도착하면 다신 보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묵범은 앞으로도 계속 만날 것처럼 말했다.
“원하는 게 내 이름인가?”
“그럴 리가요.”
도화는 심기가 불편해지자 바로 반말이 튀어나왔다. 묵범은 그런 도화의 변화가 재미있는지 빙글빙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함께 다니려면 기본적으로 이름은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앞으로 함께 다닌다고?”
이건 무슨 헛소리지?
[이보게. 도화. 절대 아니 되네. 어찌 산 자가 저승차사와 함께 다니겠나!]
주머니 속에서 현천이 안 된다고 성화다.
[나도 알아.]
도화 역시 절대 알려 주지 않을 것이고 함께 다니지도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뒤이은 묵범의 설명에 도화의 다짐은 흐물흐물해졌다.
“명부를 수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죄인지 모르는 것 같군요.”
“주… 중죄?”
“하늘이 정한 수명을 한낱 차사가 수십 년을 늘렸는데 중죄이지 않겠습니까? 하아… 들킨다면 무슨 지옥으로 떨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침으로 지우는 우스운 행동에 그래도 되는가 보다 했는데,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었다.
“들키지만 않으면….”
“당신이 마음에 들어 충동적으로 한 일인데 그러지 말 걸 그랬습니다.”
방금까지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웃고 있던 묵범이 갑자기 미소를 지우고 심각해진 얼굴로 말했다.
“천지왕의 성정이 대쪽 같은 것을 잊고 있었군요. 자애로운 대별왕께 빌어 봐야 하나.”
“…….”
명부를 수정한 게 천지왕과 대별왕까지 나올 일인가?
600년 가까이 살긴 했으나 이승에서만 굴러다녔던 도화는 선계나 지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모든 신의 신이자 하늘을 다스리는 천지왕. 천지왕의 장자이며 저승을 다스리는 대별왕은 고릿적부터 이 땅을 다스린 신이건만, 고작 이름만 아는 정도였다. 그래서 도화는 수명 몇십 년 정도 늘어난 것은 강림 도령 선에서 해결 볼 수 있는 일이란 것을 몰랐다.
어쨌든 저승차사가 그리 말하니 도화는 묵범에게 큰 부채가 생겼다. 그러고 슬금, 걱정이 고개를 들었다.
대체 얼마나 거창한 대가를 받으려고 중죄까지 저지른 걸까.
도화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묵범은 핸들을 부드럽게 돌리며 본인 소개부터 먼저 했다.
“제 이름은 묵범. 원래는 선계 소속이지만, 저승이 워낙 바쁘다 하여 잠시 도와주러 내려왔습니다.”
“선계? 당신… 신선이야? 저승차사가 아니라?”
흑립을 쓰고 도포를 걸친 데다 부용삭까지 가지고 있어서 당연히 저승차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선계의 신선이라니. 도화의 경계가 살짝 누그러들었다.
“다들 선계로 올라가지 못해서 안달인데. 이상한 놈이군.”
도화는 한풀 꺾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도화의 중얼거림을 들은 묵범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기간 한정 이직이라고 할까요? 스카웃으로 온 거라 이래저래 혜택이 많습니다.”
“기간 한정? 아, 잠시 내려왔다고 했지. 언제 올라가는데?”
“찾는 사람이 있어서요. 그 사람을 찾으면 올라갈 겁니다.”
묵범의 대답을 끝으로 대화가 끊어졌다. 묵범은 도화가 자신이 찾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대화가 뚝 끊겨서 도화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선계와 저승은 극과 극에 있어 정보를 얻기 힘들다. 그러기에 하계에 있는 자들은 선계와 저승의 정보에 지대한 관심을 갖기 마련이건만. 저승에서 도방으로 알려진 이 남자는 전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뒷좌석에 있는 여우만 살폈다.
도화는 묵범의 시선이 제 얼굴에 달라붙는 것을 느꼈지만, 무시했다. 선계와 저승, 두 곳과 동시에 관련된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다. 정보가 고팠지만, 사람 관계라는 게 별거 아닌 사소한 대화라도 계속 잇다 보면 점점 가까워지는 법이다. 그러기에 궁금한 것도 꾹 참고 버텼다.
도화는 묵범과 가까워질 이유가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누가 함부로 허리와 엉덩이를 만져 대는 변태와 가깝게 지내고 싶겠는가.
“혜택…. 궁금하지 않습니까?”
“?”
이거 또 무슨 수작이지?
마치 지하철역 주변에서 설문조사 좀 해 달라고 하는 듯한 뉘앙스다. 물론 그들은 도화의 덩치와 인상에 가까이 접근도 못 하고 다른 타겟을 찾아 떠났지만.
“신입 연봉 4,800부터 시작. 저승 4대 보험 가입. 하계 수도권에 25평형 아파트 무상 제공. 교통비, 식비 제공. 필요 시 회사 차량 제공. 공휴일 당번 근무. 시간 외 근무 수당 지급. 저승차사와 결혼 시 한 달 휴가. 출산 휴가 1년. 자녀 양육 지원금 매달 300만 원. 그리고—.”
“잠깐.”
도화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잠재우기 위해 묵범의 말을 끊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묵범은 도화가 왜 자신의 말을 끊었는지 다 아는 것처럼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도화는 끝도 없이 나오는 엄청난 혜택에 홀려 묵범의 능구렁이 같은 미소를 보지 못했다.
[세상에. 이보시게. 도화. 엄청난 혜택 아닌가?]
바지 주머니 속, 현천도 호들갑을 떨며 엄청나다고 감탄했다. 진짜 엄청났다. 연봉 4,800? 그것도 신입이?
인간들이 다니는 대기업 초봉도 그 정도이긴 했다. 4대 보험, 교통비, 식비, 시간 외 근무 수당, 출산 휴가 등등. 복지가 잘되어 있는 곳도 많다. 엄청나긴 해도 유일무이한 조건인 것은 아니었다.
도화가 홀린 것은 집. 그것도 수도권 아파트 제공이었다. 요즘 경기에 내 집 마련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수도권 아파트는 금수저가 아닌 이상, 퇴직 연금까지 영끌을 해도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걸 제공… 그것도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말에 도화가 홀랑 넘어가는 것은 당연했다. 그토록 싫어하는 저승차사의 도움을 받은 이유도 월세에서 전세로 옮기기 위해 화린의 의뢰를 무사히 완수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1년 갱신 때마다 연봉도 오르고, 아파트 평수도 커집니다.”
“……!”
도화의 눈썹이 위로 휙 올라갔다.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달콤한 사탕이 끊임없이 입 안에 들어오는 기분이다.
묵범은 그런 도화의 반응을 놓치지 않고 사탕을 더 쏟아부었다.
“특히 추혼(追魂)부의 혜택이 가장 크지요.”
“추혼부…? 원귀나 악귀만 쫓는다는 곳?”
“잘 아시는군요.”
“그야 워낙 유명하니까.”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라는 말은 삼켰다. 추혼부의 임무만 놓고 보자면 형사와 다름없다. 하지만, 추혼부 차사들이 악명이 자자한 이유는 갱생의 여지가 충분한 원귀들까지 가차 없이 잡아가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원귀가 되기 직전의 영혼도 잡아갔다. 간단한 원한만 풀어 주면 윤회의 굴레에 들 수 있는 영혼도 말이다.
“위험한 악귀를 상대하는 일이라 위험 수당이 세게 나오는 편입니다.”
“얼마나?”
“악귀의 등급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한 건당 500 정도?”
꿀꺽.
도화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건당 500이면 열 번만 뛰어도 오천이다. 몇 년만 추혼부에서 구르면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이 그저 꿈으로만 끝나지 않겠는걸?
[도화. 너무 달콤한 건 독이라네.]
방금까지 좋다고 호들갑 떨던 현천이 갑자기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했다.
[나도 알아.]
[대충 여기까지만 듣고 선을 긋게.]
[날 스카웃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혜택만 말하는 거잖아.]
[과연 저자가 단순히 혜택 자랑만 하려고 저러는 것 같나?]
도화는 한껏 인상을 쓰고 무릎 위에 올린 주먹만 쳐다봤다. 조금이라도 고개를 돌린다면 묵범이 또 현혹될 소리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묵범은 할 말을 다 했는지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어느새 묵범의 차는 창경궁로로 진입했다. 사거리를 지나 조금만 더 가면 백화대 병원이다. 둘이 이렇게 대화를 나눌 시간도 얼마 없다는 의미기도 했다.
“도방.”
저 멀리 백화대 병원 본관이 보이자 묵범이 도화를 불렀다. 부를 줄 예상했기에 도화는 침착하게 고개를 들어 묵범을 쳐다봤다. 묵범은 운전 중인데도 앞이 아닌 도화를 쳐다보며 말했다.
“삼미호의 명부를 수정한 대가로 당신과 함께 일을 하고 싶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홍도화
중년바나나 장편 소설